배달라이더 스토리⑧, 안수정등(岸樹井藤)

2021-10-07

2021년 배달 시장의 규모는 여전히 확대되고 있다. 한국이륜차신문은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와 더욱 가까워진 배달 라이더들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연재할 계획이다. 본지는 배달 라이더 노동단체인 라이더유니온 소속의 전성배 라이더가 전하는 ‘배달 라이더들의 세계’를 소개한다. 이번 호에서는 전성배 라이더가 전하는 ‘배달라이더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좋아하는 설화가 있다. 한 사람이 숲 속을 거닐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 깊이 들어가 빠져나오려 했지만 ‘산군’이라는 호랑이에 걸려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정신없이 도망가다 보니 막다른 절벽으로 내몰렸다. 호랑이는 뒤에 바짝 붙어 있고 맞설까 뛰어내릴까 하다 절벽 끝을 보니 칡덩굴이 보여 매달리게 되었다. 덩굴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려 했지만 설상가상으로 밑은 독사로 가득한 독사 굴이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덩굴에 매달려 있으니 점점 힘이 빠져 아래로 조금씩 내려가게 된다. 


그 와중에 머리 위에 석청이 있어 한 방울씩 꿀이 떨어지는데 그걸 받아먹으니 또 그렇게 달았다.(안수정등 岸樹井藤, 불가의 설화이며, 이쪽에서는 호랑이가 아닌 코끼리가 등장했다. 안수정등 고사에 대한 변형으로 보인다. 편집자 주)


이 설화는 여기서 끝인데, 사람 인생을 비유하는 이야기다. 지금 하고 있는 생활 속에서 공감이 많이 된다.


평창동의 아침 배달


요지경


배달을 업으로 삼고 일한 지 2년 차. 이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별의별 일이 다 있다'라는 것이다. 마트 배달을 갔는데 배달 물품에 숙취 해소제가 가득했고 배송 메시지에는 ‘전날 과음한 사원이 출근을 안 해서 나올 때까지 문을 두드려 깨워달라’라는 요청이었다.


코로나19 시국에 자가 격리 중인 분들에게 필요한 식사와 물품도 배달했었고, 배달음식을 문 앞에 두고 문자 보내달라는 고객에게 문자를 잘못 보내 웃지 못 할 해프닝도 겪어보았으며, 하루 종일 길거리를 다니다 보니 떨어져 있는 지갑이나 휴대폰 같은 분실물을 찾아드렸던 경험, ‘더운데 고생한다’며 음료를 건내 주는 친절한 고객도 만나봤다.


최근에는 취약계층이나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는 봉사도 하고 있는데, 가져다드린 도시락이 그대로 있기에 ‘이상하다’ 생각해서 전화를 드려도,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기에 담당 공무원에게 알렸었다. 며칠 후에 그분이 ‘고독사’ 하신 걸 알게 됐다. ‘그래도 빠르게 확인할 수 있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도 받았지만 씁쓸했다.


그럼에도 안수정등


이른 아침의 배달에는 특별한 기운이 있다


안 좋은 일은 빠르게 잊으려 노력하지만 가끔은 불의한 말과 시선이 비수가 되어 가슴 속에 박힐 때도 있다. 배달 2년 차,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넘길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


‘빨리빨리’가 당연한 배달 문화 속에서 안전 운행을 지키지 못하고 위험천만한 배달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배달 환경’의 구조적 문제는 도외시된 채 모든 책임과 비난은 개인 라이더가 받는다. 하지만 나를 진정 힘들게 하는 것은 ‘과연 내가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란 불안이다. 내가 처음 배달 일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배달 일은 과연 ‘같은 일이 맞나?’라고 할 정도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플랫폼의 A.I 도입, 라이더의 동의 없는 정책 변경, ‘책임지지 않는 노동력 무한 축적’ 같은 구조적인 문제들이 원인이다. 나는 배달 일을 좋아한다. 가치 있고 정직한 일이란 생각 그리고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도 많다. 


배달 중에 만난 노을


가끔은 아침 일찍 배달하다 보면 이유 없이 기분 좋아 흥얼거리기도 하고, 바람을 맞으며 도로 위를 달릴 때는 자유를 느끼고, 그러다가 노을이 지는 것을 보게 되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한다. 밤 야경에 취해 감상에 빠지게 될 때도 있다. 한편 ‘좋아하는 일이라고, 내가 열심히 한다고, 노력한다고 과연 이런 환경이 변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많다.


배달 라이더는 미천하다는 인식, 모든 이륜차 라이더들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들을 이겨내기란 나에게도 지난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안감을 안고서 내가, 그리고 배달 라이더들이 계속 달리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설화처럼 하루하루 절벽에 매달려 버티면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단 꿀을 받아먹는 입장이지만, 조그마한 바람이 있다면 ‘이 일을 건강하게 오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하나뿐이다.


글·사진/전성배 라이더

(다음에 계속)

 

전성배 라이더


국내 최초로 ‘배달라이더 노동단체’로 인정받은 ‘라이더유니온’의 조합원이다.


배달 라이더들의 권익을 위해 노력하는 라이더 유니온은 현재 전국적으로 약 400여 명의 조합 원 수를 보유하고 있다.


전성배 라이더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해 직장생활을 접고 배달 대행을 시작했으며 현재도 여러 플랫폼 배달대행 라이더로 근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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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383호 / 2021.7.16~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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