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을 상당 기간 즐기다 보면 어느 순간 단순히 바이크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은 줄어들게 되고, 대신 어떤 느낌의 바이크를 어떠한 방식으로 얼마 동안 즐길 것인가에 대해 밑그림을 먼저 그리게 되곤 한다. 최근 눈에 띈 그 바이크가 본인의 모토 라이프와 어느 정도 결부되는지, 라이딩 스타일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튠업은 수월한지, 라이딩 기어의 대대적인 재 세팅이 필요한지, 그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설계한 다음에야 고 or 스톱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고민의 과정 또한 상당히 재미있고 설레는 기간이다. 올 해가 막 시작되는 겨울 즈음 두카티 스크램블러 아이콘 모델이 눈에 띄었다. 방향 설정은 오히려 온로드에 중점을 둔 레트로 디자인의 로드스터 스타일로 만들어 가면 재밌을 것이라 생각됐다.
기본적으로 투어링 등 공공도로 주행에 기반을 두지만 동시에 한 편으로 레이싱 트랙을 달릴만한 이벤트가 존재하는지 또한 점검했고, 결과적으로 2021 KSEF 6시간 내구레이스에 신설된 ‘뉴트로 클래스’에 출전 가능한 것을 확인한 후 차량 구입과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됐다.
스크램블러에서 로드스터로의 전환
순정 차량은 본래 온로드 스포츠 라이딩에 매우 적합한 타입은 아니다. 엔진은 고회전에서 최고출력을 쏟아내기보다는 중저회전에서 여유 있게 토크를 뿜어내는 두카티 전통의 L트윈 공랭 방식으로 803cc 배기량에 80마력이 채 되지 않는다. 핸들과 스텝도 일상 주행에서 편안하도록 설계됐고, 서스펜션 세팅 또한 매우 부드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램블러는 조금만 손을 대면 제대로 달리기에 충분한 포텐셜을 지녔다. 최고출력 대비 토크의 양이 넉넉한 편이고, 가벼운 엔진과 탄탄한 섀시 덕분에 움직임이 날쌔다.
클래식한 디자인만을 강조하거나 지나치게 육중한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두카티가 만들어낸 모던한 네이키드 바이크이기 때문에 그렇다. 약간의 지오메트리 변경과 파츠 업그레이드를 거치면 이것은 적당히 편안한 포지션과 멋진 레트로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동시에 펀치력 있는 가속감과 날렵한 움직임을 가진 로드스터 바이크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런 특성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올 해는 스크램블러와 함께 하기로 했다.
섀시와 지오메트리 변경
8월 8일 진행 예정인 내구레이스까지는 시간이 넉넉하므로 공공도로 라이딩을 즐기면서, 또한 연간 진행되는 ‘레트로 레이서 트로피’에 출전해 트랙을 주행하면서 차근차근 차량의 셋업을 잡아가기로 했다.
바이크가 내 수족처럼 움직이게 하기 위해 지오메트리에 대해서 먼저 접근했다. 미드레인지 클래스의 차체 무게가 보통 150kg 안팎을 갖게 되는 한 편 라이더 무게는 60kg ~ 80kg에 달하기 때문에 핸들과 시트, 스텝 변경을 통한 미세한 라이더 포지션 변화는 차량 전체의 하중 밸런스에서 매우 큰 부분으로 작용한다. 보다 민첩한 핸들링을 위해서, 또한 전륜의 하중을 증가시키기 위해 핸들을 낮은 제품으로 교환했다.
스텝 또한 포지션 변경이 가능한 제품으로 교환해 기본 위치보다 높게 설정했다. 스텝 교환만으로도 라이더 무게의 이동으로 인한 조종성 변화가 굉장히 크다. 절대 접지력의 크기를 좌우하는 타이어는 메첼러 타이어의 레이스텍 RR 제품을 사용했다. 타이어의 접지력과 컨트롤 성능을 극대화시켜줄 서스펜션 또한 교환했다.
리어는 올린즈 STX 46 제품으로 어셈블리 교환, 프런트는 포크 내부의 스프링과 오일만 올린즈 제품으로 셋업했다. 올린즈 코리아는 대부분의 트랙데이와 레이스 현장에서 레이싱 서비스를 진행할 뿐 아니라 수퍼바이크 레이서 출신 박민호 매니저의 매니지먼트가 매우 큰 메리트로 작용한다.
서스펜션 튠업을 단순히 파츠 장착만으로 끝내서는 내재된 퍼포먼스를 제대로 사용하기가 어렵다. 주행을 거듭한 피드백과 전문가의 상담, 그로 인한 반복적인 셋업이 쌓여야만 비로소 최상의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주저 없이 올린즈 제품을 선택했다.
부질없지만 가장 중요한 출력 튜닝
미드레인지 이상 클래스의 스포츠 바이크를 셋업할 때에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작은 분야가 바로 출력 튜닝이다. 흡기, 배기, 연료계통을 기본적으로 개선하려고 해도 300 ~ 400만 원 선, 제대로 하려고 하면 1,000만 원도 순식간이다. 그나마 저출력 클래스에서는 출력 개선의 차이를 체감할 수 있고, 반대로 바이크 자체의 출력이 높은 클래스로 갈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그럼에도 스스로 이것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기분 때문이다.
두카티 정품의 떼르미뇨니 슬립온 머플러와 두카티 공식 서플라이어 제품인 스프린트 필터 제품으로 에어필터 또한 교환했다. 내 바이크는 공공도로에서나 트랙에서나 항상 시끄럽고 화려하고 빨라야 한다.
극한의 경험, 내구레이스
2021 KSEF 6시간 내구레이스는 8월 8일 전남 국제자동차경주장 상설 트랙에서 열린다.
오전 10시 반에 스타트해 오후 4시 반에 체커가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고 달린다. 각 팀 당 머신은 1대, 선수는 4인까지 구성해 탈 수 있다. 선수는 빠르고 안정적으로 오래 달릴 수 있어야 하며, 레이스 머신 또한 신차에 준하는 컨디션과 보강된 내구성을 바탕으로 극한의 상황에서 6시간 동안 전속력으로 달려줘야 한다.
주유 및 선수교체를 위한 피트인 작전도 중요하다. 가능하다면 적은 피트인 횟수를 설계해 멈춤 없이 주행을 지속하는 것이 좋지만, 너무 욕심 부리다 보면 주유량 계산에서의 미세한 오차로 인해 연료가 떨어져 리타이어하는 경우도 있다.
사소한 트러블과 예상치 못한 이벤트 또한 우승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참가에 의의를 두는 순수한 도전자들은 4인 1팀 구성의 라이더와 추가 2~3명의 서포터로 출전하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 팀은 2인의 라이더와 3인의 전문 메카닉, 내구레이스 경험이 풍부한 4인의 서포터, 레이스 머신과 똑같은 동일 기종 바이크(스페어 파츠 적출을 대비) 1대와 자잘한 스페어 파츠를 준비했다.
물량을 준비할 수 있는 경제력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오랫동안 이어온 인적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됐다. 예상치 못한 트러블은 어느 팀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그 때에 만약 우리 팀이 빠르게 트러블을 해결한 반면, 만약 상대 팀은 그렇지 못한다면 그 순간 우승은 우리 것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즐기기로 했다.
틀림없이 우승하기로 시뮬레이션 하고 모든 것을 챙겼다. 그러나 만약 그 누구보다 많은 지식과 경험과 큰 열정과 지독한 준비과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나에게 우승이 약속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즐기기로 했다. 멋진 단체복을 사전에 제작해 맞춰 입고, 당일 피트에는 음악을 틀고 점심 식사도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 우승을 준비했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웃을 것이다.
글/김솔(SOL42 레이싱 대표)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김솔 #KSEF #내구레이스
한국이륜차신문 383호 / 2021.7.16~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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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사이클을 상당 기간 즐기다 보면 어느 순간 단순히 바이크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은 줄어들게 되고, 대신 어떤 느낌의 바이크를 어떠한 방식으로 얼마 동안 즐길 것인가에 대해 밑그림을 먼저 그리게 되곤 한다. 최근 눈에 띈 그 바이크가 본인의 모토 라이프와 어느 정도 결부되는지, 라이딩 스타일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튠업은 수월한지, 라이딩 기어의 대대적인 재 세팅이 필요한지, 그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설계한 다음에야 고 or 스톱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고민의 과정 또한 상당히 재미있고 설레는 기간이다. 올 해가 막 시작되는 겨울 즈음 두카티 스크램블러 아이콘 모델이 눈에 띄었다. 방향 설정은 오히려 온로드에 중점을 둔 레트로 디자인의 로드스터 스타일로 만들어 가면 재밌을 것이라 생각됐다.
기본적으로 투어링 등 공공도로 주행에 기반을 두지만 동시에 한 편으로 레이싱 트랙을 달릴만한 이벤트가 존재하는지 또한 점검했고, 결과적으로 2021 KSEF 6시간 내구레이스에 신설된 ‘뉴트로 클래스’에 출전 가능한 것을 확인한 후 차량 구입과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됐다.
스크램블러에서 로드스터로의 전환
순정 차량은 본래 온로드 스포츠 라이딩에 매우 적합한 타입은 아니다. 엔진은 고회전에서 최고출력을 쏟아내기보다는 중저회전에서 여유 있게 토크를 뿜어내는 두카티 전통의 L트윈 공랭 방식으로 803cc 배기량에 80마력이 채 되지 않는다. 핸들과 스텝도 일상 주행에서 편안하도록 설계됐고, 서스펜션 세팅 또한 매우 부드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램블러는 조금만 손을 대면 제대로 달리기에 충분한 포텐셜을 지녔다. 최고출력 대비 토크의 양이 넉넉한 편이고, 가벼운 엔진과 탄탄한 섀시 덕분에 움직임이 날쌔다.
클래식한 디자인만을 강조하거나 지나치게 육중한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두카티가 만들어낸 모던한 네이키드 바이크이기 때문에 그렇다. 약간의 지오메트리 변경과 파츠 업그레이드를 거치면 이것은 적당히 편안한 포지션과 멋진 레트로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동시에 펀치력 있는 가속감과 날렵한 움직임을 가진 로드스터 바이크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런 특성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올 해는 스크램블러와 함께 하기로 했다.
섀시와 지오메트리 변경
8월 8일 진행 예정인 내구레이스까지는 시간이 넉넉하므로 공공도로 라이딩을 즐기면서, 또한 연간 진행되는 ‘레트로 레이서 트로피’에 출전해 트랙을 주행하면서 차근차근 차량의 셋업을 잡아가기로 했다.
바이크가 내 수족처럼 움직이게 하기 위해 지오메트리에 대해서 먼저 접근했다. 미드레인지 클래스의 차체 무게가 보통 150kg 안팎을 갖게 되는 한 편 라이더 무게는 60kg ~ 80kg에 달하기 때문에 핸들과 시트, 스텝 변경을 통한 미세한 라이더 포지션 변화는 차량 전체의 하중 밸런스에서 매우 큰 부분으로 작용한다. 보다 민첩한 핸들링을 위해서, 또한 전륜의 하중을 증가시키기 위해 핸들을 낮은 제품으로 교환했다.
스텝 또한 포지션 변경이 가능한 제품으로 교환해 기본 위치보다 높게 설정했다. 스텝 교환만으로도 라이더 무게의 이동으로 인한 조종성 변화가 굉장히 크다. 절대 접지력의 크기를 좌우하는 타이어는 메첼러 타이어의 레이스텍 RR 제품을 사용했다. 타이어의 접지력과 컨트롤 성능을 극대화시켜줄 서스펜션 또한 교환했다.
리어는 올린즈 STX 46 제품으로 어셈블리 교환, 프런트는 포크 내부의 스프링과 오일만 올린즈 제품으로 셋업했다. 올린즈 코리아는 대부분의 트랙데이와 레이스 현장에서 레이싱 서비스를 진행할 뿐 아니라 수퍼바이크 레이서 출신 박민호 매니저의 매니지먼트가 매우 큰 메리트로 작용한다.
서스펜션 튠업을 단순히 파츠 장착만으로 끝내서는 내재된 퍼포먼스를 제대로 사용하기가 어렵다. 주행을 거듭한 피드백과 전문가의 상담, 그로 인한 반복적인 셋업이 쌓여야만 비로소 최상의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주저 없이 올린즈 제품을 선택했다.
부질없지만 가장 중요한 출력 튜닝
미드레인지 이상 클래스의 스포츠 바이크를 셋업할 때에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작은 분야가 바로 출력 튜닝이다. 흡기, 배기, 연료계통을 기본적으로 개선하려고 해도 300 ~ 400만 원 선, 제대로 하려고 하면 1,000만 원도 순식간이다. 그나마 저출력 클래스에서는 출력 개선의 차이를 체감할 수 있고, 반대로 바이크 자체의 출력이 높은 클래스로 갈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그럼에도 스스로 이것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기분 때문이다.
두카티 정품의 떼르미뇨니 슬립온 머플러와 두카티 공식 서플라이어 제품인 스프린트 필터 제품으로 에어필터 또한 교환했다. 내 바이크는 공공도로에서나 트랙에서나 항상 시끄럽고 화려하고 빨라야 한다.
극한의 경험, 내구레이스
2021 KSEF 6시간 내구레이스는 8월 8일 전남 국제자동차경주장 상설 트랙에서 열린다.
오전 10시 반에 스타트해 오후 4시 반에 체커가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고 달린다. 각 팀 당 머신은 1대, 선수는 4인까지 구성해 탈 수 있다. 선수는 빠르고 안정적으로 오래 달릴 수 있어야 하며, 레이스 머신 또한 신차에 준하는 컨디션과 보강된 내구성을 바탕으로 극한의 상황에서 6시간 동안 전속력으로 달려줘야 한다.
주유 및 선수교체를 위한 피트인 작전도 중요하다. 가능하다면 적은 피트인 횟수를 설계해 멈춤 없이 주행을 지속하는 것이 좋지만, 너무 욕심 부리다 보면 주유량 계산에서의 미세한 오차로 인해 연료가 떨어져 리타이어하는 경우도 있다.
사소한 트러블과 예상치 못한 이벤트 또한 우승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참가에 의의를 두는 순수한 도전자들은 4인 1팀 구성의 라이더와 추가 2~3명의 서포터로 출전하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 팀은 2인의 라이더와 3인의 전문 메카닉, 내구레이스 경험이 풍부한 4인의 서포터, 레이스 머신과 똑같은 동일 기종 바이크(스페어 파츠 적출을 대비) 1대와 자잘한 스페어 파츠를 준비했다.
물량을 준비할 수 있는 경제력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오랫동안 이어온 인적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됐다. 예상치 못한 트러블은 어느 팀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그 때에 만약 우리 팀이 빠르게 트러블을 해결한 반면, 만약 상대 팀은 그렇지 못한다면 그 순간 우승은 우리 것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즐기기로 했다.
틀림없이 우승하기로 시뮬레이션 하고 모든 것을 챙겼다. 그러나 만약 그 누구보다 많은 지식과 경험과 큰 열정과 지독한 준비과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나에게 우승이 약속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즐기기로 했다. 멋진 단체복을 사전에 제작해 맞춰 입고, 당일 피트에는 음악을 틀고 점심 식사도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 우승을 준비했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웃을 것이다.
글/김솔(SOL42 레이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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