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꼭 닮은 이들, 모터사이클과 함께 달리는 것만을 세상 유일한 의미로 느끼는 사람, 빠른 속도에 열광하는 사람, 선택조차 할 수 없이 빠져들게 되는 사람들. 나와 동류인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이 발굴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KTM RC390컵 챔피언을 지낸 필자
글을 연재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12인승 승합차는 늘 80km/h 남짓으로 느릿느릿 달렸고, 옆 차선으로 지나쳐 가는 매끈한 승용차들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부아가 치밀었다.
케이블 TV가 없던 시절, 4개뿐인 지상파 채널에서 운 좋게 카레이스 장면이라도 볼 때면 그 화려하고 아찔한 모습에 어쩔 줄 몰라 안달했던 모습이 생생하다. 너무나 멋진 세계였지만, 동시에 지금의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였기 때문에 나는 도저히 그런 것들에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까마득한 마음도 들었다.
한 때는 정말이지 지구가 곧 멸망이라도 할 것같은 망상에, 빠르고 멋진 바이크를 타고 달려보는 일은 내게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나이를 먹으며 내 삶을 스스로 살아가게 됨에 따라 기회만 닿으면 내 가능성이 얼마 만큼인지 확인하려 했고, ‘역시 나는 보통 이상의 사람이다, 나에게는 가능성이 있다’라는 확신(혹은 착각)이 들 때 마다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렇게 스무 살 이후 15년간 달려온 현재, 나는 결코 아무 것도 아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아무 것’도 아닌 애매한 지점에 서게 되었다.
가장 멋지고 위대한 사람들
이제와 돌이켜 보니 꿈만 같다. 스물한 살, 앞뒤를 재거나 결코 망설이지 않을 나이에 시작하여 무턱대고 빠져들어 순수하게 달렸다. 좋아하는 만큼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코피를 흘려가며 연습했고, 스스로 조금씩 빨라질 때마다 가슴 언저리가 벅찬 느낌이 들었다.

대림 KSRC 경기 모습
처음에는 미니 트랙을 달리는 저배기량 레이스로 시작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는 스쿠터 레이스인 대림KSRC에 출전하여 스포츠 라이딩의 기본을 배웠다. 2010년 즈음부터는 파주에서 열리는 KMRC를 통해 매뉴얼 미니 바이크를 경험했다. 레이스 현장은 열악하면서도 활기가 돌았고 작은 경기장에 수백 명의 인파가 북적이는 훌륭한 주말 이벤트였다. 당연하게도 이런 자리에서 시상대에 서는 선두권 선수들은 가장 멋지고 위대한 사람들이었다.
이제 막 중위권 수준이었던 나로서는 범접하기 힘든 포스를 느낌과 동시에 언젠가 저 자리에, 저렇게 멋진 모습으로 서고 싶다는 동경을 품었다. 여전히 주말마다 열심히 연습했고, 여전히 조금씩 빨라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후반기에는 간신히 5위권에 진입하며 시상대에 서기도 했다.
일직선으로 간다
2015년, 레이스를 시작한지 10년이 되던 해, KTM RC 390 Korea CUP을 통해 첫 시리즈 챔피언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덜컥, 어느 순간 일어난 것이었고, 우주의 모든 기운이 나에게 모인 것만 같았다. 탄력이 제대로 붙었다. 같은 해 KSRC 5시간 내구레이스 우승, 2016년 1,000cc 수퍼루키챌린지 시리즈 준우승, 2017년 KSEF 6시간 내구레이스 우승, 2018년 대한민국 쿼터 클래스 그랜드 슬램, 2019년 1,000cc 내구레이스 우승까지 기세를 이어갔다.
이기는 방법을 터득했고 목표를 설정하여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황홀했다. 나는 어느새 그토록 동경하던 빠른 사람이 되어 있었고, 나를 대하는 주변의 공기가 훈훈해지는 것은 끊을 수 없는 달콤함이었다.

달달한 꿈에 취해 현실을 잊고 달려온 결과 가끔은 상실감이 든다. 지난 15년을 달려오는 동안 양쪽 발목이 골절되어 장애를 갖게 되었고 통장은 마이너스로 돌아선지 오래다. 소규모 비인기 종목인 까닭에 안정적인 비전은 없는 반면, 어느덧 나이는 찼다.
그러나 가끔 마음이 비틀거리기는 할지언정 여전히 틈만 나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앞으로 더 나아갈지를 구상한다. 뒤돌아보고 망설이는 대신 시나브로 일직선으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임을 알기에, 다시 선택라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어느 유명한 레이서의 말처럼 ‘내가 더 이상 빨라지지 않을 때 까지’ 가려 한다.

KTM RC390컵 경기 장면
모두가 챔피언이 되기를 바라며
나와 꼭 닮은 이들, 모터사이클과 함께 달리는 것만을 세상 유일한 의미로 느끼는 사람, 빠른 속도에 열광하는 사람, 선택조차 할 수 없이 빠져들게 되는 사람들. 나와 동류인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이 발굴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지난 기간 달려오며 겪은 에피소드, 교훈, 노하우를 나누며 로드레이스 전반과 한국에서 레이스를 해나가기 위한 노력들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나보다는 덜 고생하고, 더욱 효율적으로 빨라지기를 바란다.
나와 같이 애매한 지점에 서지 않고 더 좋은 자리에 서기를 바란다. 그렇게 우리의 세계가 두터워지고 단단해지는 데에 일말의 보탬이 된다면 영광이겠고, 꼭 그러한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다만 나와 동류인 사람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 뿐으로도 족하다.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준 한국이륜차신문에 감사드린다.
김솔의 수상 경력
2011 제 1회 KMRC 내구레이스 우승(미니 통합)
2013 제 3회 KMRC 내구레이스 우승(ST250)
2015 RC 390 Korea CUP 시리즈 챔피언
KSRC 5시간 내구레이스 우승
2016 SUPER ROOKIE CHALLENGE 시리즈 준우승
2017 KSEF 6시간 내구레이스 우승
2018 대한민국 쿼터 클래스 그랜드 슬램
2019 KSEF 123 내구레이스(1,000cc) 우승
前 KTM 코리아 인스트럭터
現 DUCATI 코리아 인스트럭터
글/김솔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나는레이서다 #김솔
한국이륜차신문 368호 / 2020.1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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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꼭 닮은 이들, 모터사이클과 함께 달리는 것만을 세상 유일한 의미로 느끼는 사람, 빠른 속도에 열광하는 사람, 선택조차 할 수 없이 빠져들게 되는 사람들. 나와 동류인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이 발굴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KTM RC390컵 챔피언을 지낸 필자
글을 연재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12인승 승합차는 늘 80km/h 남짓으로 느릿느릿 달렸고, 옆 차선으로 지나쳐 가는 매끈한 승용차들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부아가 치밀었다.
케이블 TV가 없던 시절, 4개뿐인 지상파 채널에서 운 좋게 카레이스 장면이라도 볼 때면 그 화려하고 아찔한 모습에 어쩔 줄 몰라 안달했던 모습이 생생하다. 너무나 멋진 세계였지만, 동시에 지금의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였기 때문에 나는 도저히 그런 것들에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까마득한 마음도 들었다.
한 때는 정말이지 지구가 곧 멸망이라도 할 것같은 망상에, 빠르고 멋진 바이크를 타고 달려보는 일은 내게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나이를 먹으며 내 삶을 스스로 살아가게 됨에 따라 기회만 닿으면 내 가능성이 얼마 만큼인지 확인하려 했고, ‘역시 나는 보통 이상의 사람이다, 나에게는 가능성이 있다’라는 확신(혹은 착각)이 들 때 마다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렇게 스무 살 이후 15년간 달려온 현재, 나는 결코 아무 것도 아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아무 것’도 아닌 애매한 지점에 서게 되었다.
가장 멋지고 위대한 사람들
이제와 돌이켜 보니 꿈만 같다. 스물한 살, 앞뒤를 재거나 결코 망설이지 않을 나이에 시작하여 무턱대고 빠져들어 순수하게 달렸다. 좋아하는 만큼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코피를 흘려가며 연습했고, 스스로 조금씩 빨라질 때마다 가슴 언저리가 벅찬 느낌이 들었다.
대림 KSRC 경기 모습
처음에는 미니 트랙을 달리는 저배기량 레이스로 시작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는 스쿠터 레이스인 대림KSRC에 출전하여 스포츠 라이딩의 기본을 배웠다. 2010년 즈음부터는 파주에서 열리는 KMRC를 통해 매뉴얼 미니 바이크를 경험했다. 레이스 현장은 열악하면서도 활기가 돌았고 작은 경기장에 수백 명의 인파가 북적이는 훌륭한 주말 이벤트였다. 당연하게도 이런 자리에서 시상대에 서는 선두권 선수들은 가장 멋지고 위대한 사람들이었다.
이제 막 중위권 수준이었던 나로서는 범접하기 힘든 포스를 느낌과 동시에 언젠가 저 자리에, 저렇게 멋진 모습으로 서고 싶다는 동경을 품었다. 여전히 주말마다 열심히 연습했고, 여전히 조금씩 빨라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후반기에는 간신히 5위권에 진입하며 시상대에 서기도 했다.
일직선으로 간다
2015년, 레이스를 시작한지 10년이 되던 해, KTM RC 390 Korea CUP을 통해 첫 시리즈 챔피언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덜컥, 어느 순간 일어난 것이었고, 우주의 모든 기운이 나에게 모인 것만 같았다. 탄력이 제대로 붙었다. 같은 해 KSRC 5시간 내구레이스 우승, 2016년 1,000cc 수퍼루키챌린지 시리즈 준우승, 2017년 KSEF 6시간 내구레이스 우승, 2018년 대한민국 쿼터 클래스 그랜드 슬램, 2019년 1,000cc 내구레이스 우승까지 기세를 이어갔다.
이기는 방법을 터득했고 목표를 설정하여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황홀했다. 나는 어느새 그토록 동경하던 빠른 사람이 되어 있었고, 나를 대하는 주변의 공기가 훈훈해지는 것은 끊을 수 없는 달콤함이었다.
달달한 꿈에 취해 현실을 잊고 달려온 결과 가끔은 상실감이 든다. 지난 15년을 달려오는 동안 양쪽 발목이 골절되어 장애를 갖게 되었고 통장은 마이너스로 돌아선지 오래다. 소규모 비인기 종목인 까닭에 안정적인 비전은 없는 반면, 어느덧 나이는 찼다.
그러나 가끔 마음이 비틀거리기는 할지언정 여전히 틈만 나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앞으로 더 나아갈지를 구상한다. 뒤돌아보고 망설이는 대신 시나브로 일직선으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임을 알기에, 다시 선택라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어느 유명한 레이서의 말처럼 ‘내가 더 이상 빨라지지 않을 때 까지’ 가려 한다.
KTM RC390컵 경기 장면
모두가 챔피언이 되기를 바라며
나와 꼭 닮은 이들, 모터사이클과 함께 달리는 것만을 세상 유일한 의미로 느끼는 사람, 빠른 속도에 열광하는 사람, 선택조차 할 수 없이 빠져들게 되는 사람들. 나와 동류인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이 발굴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지난 기간 달려오며 겪은 에피소드, 교훈, 노하우를 나누며 로드레이스 전반과 한국에서 레이스를 해나가기 위한 노력들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나보다는 덜 고생하고, 더욱 효율적으로 빨라지기를 바란다.
나와 같이 애매한 지점에 서지 않고 더 좋은 자리에 서기를 바란다. 그렇게 우리의 세계가 두터워지고 단단해지는 데에 일말의 보탬이 된다면 영광이겠고, 꼭 그러한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다만 나와 동류인 사람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 뿐으로도 족하다.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준 한국이륜차신문에 감사드린다.
김솔의 수상 경력
2011 제 1회 KMRC 내구레이스 우승(미니 통합)
2013 제 3회 KMRC 내구레이스 우승(ST250)
2015 RC 390 Korea CUP 시리즈 챔피언
KSRC 5시간 내구레이스 우승
2016 SUPER ROOKIE CHALLENGE 시리즈 준우승
2017 KSEF 6시간 내구레이스 우승
2018 대한민국 쿼터 클래스 그랜드 슬램
2019 KSEF 123 내구레이스(1,000cc) 우승
前 KTM 코리아 인스트럭터
現 DUCATI 코리아 인스트럭터
글/김솔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나는레이서다 #김솔
한국이륜차신문 368호 / 2020.1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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