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은, 정말이지 우승할 수 있는 머신이 함께할 때에만 가능하다… 치열하게 몰입하던 중 어느 순간 덜컥 맞이하게 되는 우승 트로피만큼 달달한 것은 세상에 없다… 몸과 마음의 컨디션 조절에도 집중했고 하다못해 레이싱 부츠 끈의 적절한 조임을 찾기 위해 몇 번이나 미리 연습하고 리허설 했다.
RC 390 Korea CUP 경기 모습
나는 모터사이클과 관련된 어떤 것을 상대에게 설명할 때에, 외부의 예시를 끌어와 빗대어 얘기하는 것을 삼가는 편이다.
외부 예시, 특히 나보다 상대방의 주력 분야에 가까운 예시를 끌어올 때에 핵심을 명확하게 적용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되면 오해만 가중될 뿐 이해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외적으로(2%의 망설임과 함께) 이 표현을 쓰고자 한다.
우리가 하는 것은 권투가 아니다. 모터사이클 레이스에서 상대를 이기는 것은 결코 내 위대한 정신력과 값진 노력, 두 주먹으로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라이더, 미캐닉, 감독, 후원사의 노력과 능력과 실력과 자본과 경험과 데이터, 그리고 그 모든 것으로 인해 완성도 높게 만들어진 머신이 함께 했을 때 가능하다.
이례적으로 라이더의 퍼포먼스가 매우 뛰어난 경우, 일반적인 스펙의 머신으로 5위를 달성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런 스킬을 가진 사람이 5위에 어울리는 머신을 탄다면 3위까지도 노릴 수 있다. 그러나 준우승에 오르고자 한다면 최소한 3위를 달성할 수 있는 머신이 필요하다. 우승은, 정말이지 우승할 수 있는 머신이 함께할 때에만 가능하다.
만약 본인이나 주변에 알고 지내는 어떤 이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누군가 3위, 5위, 혹은 그보다 부족한 머신으로 클래스 우승을 거머쥐었다면, 솔직히 그것은 해당 시즌에 해당 클래스의 난이도가 낮았던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세상은 넓고 영웅호걸은 많으며, 상위 리그에 올라설수록 나의 모든 노력과 우주의 기운까지 끌어 모아 제대로 해내야 한다. 그토록 치열하게 몰입하던 중 어느 순간 덜컥 맞이하게 되는 우승 트로피만큼 달달한 것은 세상에 없다.
2015년, 첫 시리즈 챔피언에 오르다
KTM 200 DUKE 모델과 함께
나는 2014년 겨울, 그간 재직하던 바이크 전문지가 폐간함에 따라 기존 출입처였던 스포츠모터사이클코리아(KTM)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KTM 모터사이클을 국내에 공식 수입하는 회사는 마침 새롭게 확장되는 온로드 모델 라인업에 따른 영업 & 마케팅을 구상하던 참이었다. 그 중 핵심이 되는 뉴 모델은 바로 본격 레이서 레플리카 모델인 RC 390, 마케팅 전략은 원메이크 레이스 개최, 자연스레 ‘RC 390 Korea CUP’ 기획에 참여함과 동시에 선수로서 출전도 병행하였다.
연간 총 4전의 챔피언십 엔트리 리스트를 살펴보니 나의 위치는 한 눈에 보아도 5위 정도가 마땅할 것으로 예상됐다. 경쟁이 치열하던 ST250 클래스 챔피언 출신 등, 내로라하는 이름의 선수들이 북적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시즌 개막 후 레이스가 진행되며 우연에 우연을 거듭한 결과 나는 그만 1전에서 4위, 2전에서 3위, 3전에서 2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내 앞은 모두 훌륭한 라이더와 오랜 경력의 레이싱 팀들이었지만 저마다 우여곡절을 한 번씩 겪었기 때문이다.
RX125로 경기 출전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챔피언십 포인트를 계산해보니 이번에 우승하면 챔피언십 시리즈 우승을 갖게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고백컨대 오랜 기간 ‘라이더가 80%, 머신이 20%’라고 생각해왔었다. ‘일단은 사람이 똑바로 타야 한다’고 여겨왔었다.
그러나 막상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철학이나 지론이 문제가 아니라 다만, 오직 나의 우승이 중요했다. 우선 레이스 머신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체인, 클러치, 브레이크 패드를 모두 신품으로 교환하고 특별히 조달한 엔진오일을 사용하는 등 규정에서 허용하는 모든 튜닝과 셋업을 점검했다. 몸과 마음의 컨디션 조절에도 집중했고 하다못해 레이싱 부츠 끈의 적절한 조임을 찾기 위해 몇 번이나 미리 연습하고 리허설 했다.
그렇게 마지막 4전 경기 당일, 내가 탄 머신은 다른 어떤 머신보다 빨리 달렸고, 비록 나의 라이딩 스킬은 부족했지만 머신의 우월한 출력에 힘입어 실제로 우승하게 되었다. 연말에 치러진 종합 시상식에서 ‘2015 RC 390 Korea CUP 시리즈 챔피언’ 타이틀을 받게 되었고, 우리 팀은 그 길로 서울 강남에 위치한 초밥집으로 갔다. 회가 달았다.
김솔의 수상 경력
2011 제 1회 KMRC 내구레이스 우승(미니 통합)
2013 제 3회 KMRC 내구레이스 우승(ST250)
2015 RC 390 Korea CUP 시리즈 챔피언
KSRC 5시간 내구레이스 우승
2016 SUPER ROOKIE CHALLENGE 시리즈 준우승
2017 KSEF 6시간 내구레이스 우승
2018 대한민국 쿼터 클래스 그랜드 슬램
2019 KSEF 123 내구레이스(1,000cc) 우승
前 KTM 코리아 인스트럭터
現 DUCATI 코리아 인스트럭터
라떼는? 쿼터급 레이스 연간 소요 비용
2015년 ~ 2020년까지 크게 붐이 일었던 쿼터급(사전적 의미의 쿼터는 1000cc의 1/4, 250cc 클래스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최근 흔히 사용되는 250cc 이상, 400cc 이하 세그먼트를 지칭한다) 레이스를 기준으로 연간 소요 비용을 간추려 보자.
모델 간 평균값, 신차 혹은 신차에 준하는 신동급 차량 기준으로 모터사이클 구매 금액 700만 원, *FRP 카울, 리어셋, 핸들부, 서스펜션, 흡배기 튠업 등 최소한의 사항 등 초기 셋팅 비용 600만 원, 연습 1회 + 레이스 1회 x 연간 5전 = 총 주행 10회 연간 참가비 250만 원, 타이어, 엔진오일, 체인, 브레이크 등 유지 관리비 300만 원, 여기에 레이스 머신 운송비, 트랙에 동행할 미캐닉 인건비를 합하면 총 2,300만 원이 넘는다.
레이스 바이크를 판매할 경우 600만 원 선에 거래 가능하므로, 그것을 제하고 순수 소비한 비용만 들면 1,700만 원이다. 어림잡은 것이지만 최소한에 가깝게 간추린 것이며, 단 한 번도 슬립 사고나 트러블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연간 1,700만 원을 취미에 소비하는 것은 서민 혹은 중산층 젊은이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모터스포츠는 손쉽게 재화의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업종이 아니므로 스폰서십 계약 또한 순조롭지 않다. 객관적으로 모터사이클 레이스는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선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이미 빠져들었다면, 이것을 장기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글/김솔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김솔 #레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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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374호 / 2021.3.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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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은, 정말이지 우승할 수 있는 머신이 함께할 때에만 가능하다… 치열하게 몰입하던 중 어느 순간 덜컥 맞이하게 되는 우승 트로피만큼 달달한 것은 세상에 없다… 몸과 마음의 컨디션 조절에도 집중했고 하다못해 레이싱 부츠 끈의 적절한 조임을 찾기 위해 몇 번이나 미리 연습하고 리허설 했다.
RC 390 Korea CUP 경기 모습
나는 모터사이클과 관련된 어떤 것을 상대에게 설명할 때에, 외부의 예시를 끌어와 빗대어 얘기하는 것을 삼가는 편이다.
외부 예시, 특히 나보다 상대방의 주력 분야에 가까운 예시를 끌어올 때에 핵심을 명확하게 적용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되면 오해만 가중될 뿐 이해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외적으로(2%의 망설임과 함께) 이 표현을 쓰고자 한다.
우리가 하는 것은 권투가 아니다. 모터사이클 레이스에서 상대를 이기는 것은 결코 내 위대한 정신력과 값진 노력, 두 주먹으로만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라이더, 미캐닉, 감독, 후원사의 노력과 능력과 실력과 자본과 경험과 데이터, 그리고 그 모든 것으로 인해 완성도 높게 만들어진 머신이 함께 했을 때 가능하다.
이례적으로 라이더의 퍼포먼스가 매우 뛰어난 경우, 일반적인 스펙의 머신으로 5위를 달성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런 스킬을 가진 사람이 5위에 어울리는 머신을 탄다면 3위까지도 노릴 수 있다. 그러나 준우승에 오르고자 한다면 최소한 3위를 달성할 수 있는 머신이 필요하다. 우승은, 정말이지 우승할 수 있는 머신이 함께할 때에만 가능하다.
만약 본인이나 주변에 알고 지내는 어떤 이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누군가 3위, 5위, 혹은 그보다 부족한 머신으로 클래스 우승을 거머쥐었다면, 솔직히 그것은 해당 시즌에 해당 클래스의 난이도가 낮았던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세상은 넓고 영웅호걸은 많으며, 상위 리그에 올라설수록 나의 모든 노력과 우주의 기운까지 끌어 모아 제대로 해내야 한다. 그토록 치열하게 몰입하던 중 어느 순간 덜컥 맞이하게 되는 우승 트로피만큼 달달한 것은 세상에 없다.
2015년, 첫 시리즈 챔피언에 오르다
KTM 200 DUKE 모델과 함께
나는 2014년 겨울, 그간 재직하던 바이크 전문지가 폐간함에 따라 기존 출입처였던 스포츠모터사이클코리아(KTM)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KTM 모터사이클을 국내에 공식 수입하는 회사는 마침 새롭게 확장되는 온로드 모델 라인업에 따른 영업 & 마케팅을 구상하던 참이었다. 그 중 핵심이 되는 뉴 모델은 바로 본격 레이서 레플리카 모델인 RC 390, 마케팅 전략은 원메이크 레이스 개최, 자연스레 ‘RC 390 Korea CUP’ 기획에 참여함과 동시에 선수로서 출전도 병행하였다.
연간 총 4전의 챔피언십 엔트리 리스트를 살펴보니 나의 위치는 한 눈에 보아도 5위 정도가 마땅할 것으로 예상됐다. 경쟁이 치열하던 ST250 클래스 챔피언 출신 등, 내로라하는 이름의 선수들이 북적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시즌 개막 후 레이스가 진행되며 우연에 우연을 거듭한 결과 나는 그만 1전에서 4위, 2전에서 3위, 3전에서 2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내 앞은 모두 훌륭한 라이더와 오랜 경력의 레이싱 팀들이었지만 저마다 우여곡절을 한 번씩 겪었기 때문이다.
RX125로 경기 출전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챔피언십 포인트를 계산해보니 이번에 우승하면 챔피언십 시리즈 우승을 갖게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고백컨대 오랜 기간 ‘라이더가 80%, 머신이 20%’라고 생각해왔었다. ‘일단은 사람이 똑바로 타야 한다’고 여겨왔었다.
그러나 막상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철학이나 지론이 문제가 아니라 다만, 오직 나의 우승이 중요했다. 우선 레이스 머신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체인, 클러치, 브레이크 패드를 모두 신품으로 교환하고 특별히 조달한 엔진오일을 사용하는 등 규정에서 허용하는 모든 튜닝과 셋업을 점검했다. 몸과 마음의 컨디션 조절에도 집중했고 하다못해 레이싱 부츠 끈의 적절한 조임을 찾기 위해 몇 번이나 미리 연습하고 리허설 했다.
그렇게 마지막 4전 경기 당일, 내가 탄 머신은 다른 어떤 머신보다 빨리 달렸고, 비록 나의 라이딩 스킬은 부족했지만 머신의 우월한 출력에 힘입어 실제로 우승하게 되었다. 연말에 치러진 종합 시상식에서 ‘2015 RC 390 Korea CUP 시리즈 챔피언’ 타이틀을 받게 되었고, 우리 팀은 그 길로 서울 강남에 위치한 초밥집으로 갔다. 회가 달았다.
김솔의 수상 경력
2011 제 1회 KMRC 내구레이스 우승(미니 통합)
2013 제 3회 KMRC 내구레이스 우승(ST250)
2015 RC 390 Korea CUP 시리즈 챔피언
KSRC 5시간 내구레이스 우승
2016 SUPER ROOKIE CHALLENGE 시리즈 준우승
2017 KSEF 6시간 내구레이스 우승
2018 대한민국 쿼터 클래스 그랜드 슬램
2019 KSEF 123 내구레이스(1,000cc) 우승
前 KTM 코리아 인스트럭터
現 DUCATI 코리아 인스트럭터
라떼는? 쿼터급 레이스 연간 소요 비용
2015년 ~ 2020년까지 크게 붐이 일었던 쿼터급(사전적 의미의 쿼터는 1000cc의 1/4, 250cc 클래스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최근 흔히 사용되는 250cc 이상, 400cc 이하 세그먼트를 지칭한다) 레이스를 기준으로 연간 소요 비용을 간추려 보자.
모델 간 평균값, 신차 혹은 신차에 준하는 신동급 차량 기준으로 모터사이클 구매 금액 700만 원, *FRP 카울, 리어셋, 핸들부, 서스펜션, 흡배기 튠업 등 최소한의 사항 등 초기 셋팅 비용 600만 원, 연습 1회 + 레이스 1회 x 연간 5전 = 총 주행 10회 연간 참가비 250만 원, 타이어, 엔진오일, 체인, 브레이크 등 유지 관리비 300만 원, 여기에 레이스 머신 운송비, 트랙에 동행할 미캐닉 인건비를 합하면 총 2,300만 원이 넘는다.
레이스 바이크를 판매할 경우 600만 원 선에 거래 가능하므로, 그것을 제하고 순수 소비한 비용만 들면 1,700만 원이다. 어림잡은 것이지만 최소한에 가깝게 간추린 것이며, 단 한 번도 슬립 사고나 트러블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연간 1,700만 원을 취미에 소비하는 것은 서민 혹은 중산층 젊은이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모터스포츠는 손쉽게 재화의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업종이 아니므로 스폰서십 계약 또한 순조롭지 않다. 객관적으로 모터사이클 레이스는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선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이미 빠져들었다면, 이것을 장기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글/김솔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김솔 #레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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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374호 / 2021.3.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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