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솔, 나는 레이서다_‘차’를 탓하기보다 ‘나’를 탓하는 것이 낫다

2021-09-07

라이더 자신의 스킬과 퍼포먼스를 끌어올리는 것은 노력과 습관으로 해결할 수 있어… 저배기량 클래스와는 달리, 고배기량 클래스에서 라이더의 기량 차이에 따른 중요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단기 목표를 위해 셋업을 추구할 때인지, 혹은 아직 라이더 자체 역량을 키울 단계인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

KTM의 1190 RC8R을 타고 주행하는 김솔


적어도 라이더는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


불과 바로 이전 글(한국이륜차신문 374호)에서 레이스 머신 및 다른 모든 구성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역시나 모터사이클 레이스에서 라이더의 능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고장이 없는 머신, 우왕좌왕하지 않는 팀, 활동을 뒷받침하는 자금 등은 일종의 선결 조건이며 사전에 준비돼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라이더는 예선이나 결승과 같은 무대에서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거나, 혹은 망쳐버릴 수도 있는 결정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우리가 레이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일단은 사람이 똑바로 타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이것은 객관적인 구조로서도 사실에 가까우며, 라이더 스스로가 더 좋은 결과를 위해 노력하고자 할 때 당연히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다른 요소(ex:머신의 튠업 등)를 발전시키는 데에는 자금이 들거나 운에 기대야 하지만 라이더 자신의 스킬과 퍼포먼스를 끌어올리는 것은 노력과 습관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존재하는 것이다. 게다가 상위 클래스로의 승급을 꾸준히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누구나 모터사이클의 잠재적인 대부분을 소화해낼 수 있는 저배기량 클래스와는 달리, 감히 완벽히 타내기 힘든 고배기량 클래스에서 라이더의 기량 차이에 따른 중요성은 더욱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


미니 트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대형 경기장에 데뷔했던 2015년은 무척 버거웠던 동시에 많은 것을 얻게 된 한 해였다.


레이스 시작 10년 만에 갖게 된 시즌 챔피언 타이틀은 물론, 같은 해 여름 참가했던 KSRC 내구레이스 또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상당한 성과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소속팀의 넉넉한 스케일로 인한 물량의 우위와 팀 내부적으로 나에게 이루어지는 집중도로 인한 위력 또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분위기가 좋았다. 마치 급물살을 탄 것처럼 많은 것들이 순조로워졌기 때문에, 이어지는 2016년에도 물살에 맞춰서 노를 저으면 이전보다 훨씬 큰 출력을 얻게 될 것임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400cc 급을 우승했으니 600cc 급으로 승급하는 것이 적절하지만 재직 중인 KTM에는 해당 모델이 존재하지 않았고 승급 가능한 상위 차량으로서는 오직 단 한 대, 바로 1190 RC8R 모델이 마침 국내에 수입되어 있었다.


개인적인 재정 상황, 승급 클래스의 너무나 큰 격차, 타 브랜드 4기통 머신과의 경쟁력 등 몇 가지 장애 요소가 있었지만 일단은 ‘묻고 더블’로 가기로 했다. 불확실한 것이 많았지만 그래도 가야할 때라고 생각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KTM 1190 RC8R


KTM의 1190 RC8R은 2008년에 첫 선을 보인 후 2011년에 단 1회 개량되어 2015년까지 생산된 짧은 역사를 가진 모델이다.


오프로드 명가 KTM에서 내놓은 첫 온로드 슈퍼바이크였으며 시장 점유에 치열하게 뛰어든 모델이 아닌 까닭에 객관적인 스펙에서 타사 최신 바이크와 차이가 드러났다. 중량은 무겁고 사이즈는 컸으며, 출력 또한 20마력 정도 부족하고 퀵시프터, TCS 같은 전자제어장비는 전무했다.


노련한 선수 입장에서 시즌을 계획할 때에 선택할 만한 바이크는 아니지만, 리터 클래스 자체에 입문하는 본인의 상황에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를테면 그러한 비교 경쟁력이나 셋업의 문제는 적어도 바이크 퍼포먼스의 90% 근처를 다룰 수 있을 때에 할 만한 고민이기 때문이다.


나는 리터 클래스 경험이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라이더의 퍼포먼스를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했으며, 그것 외에는 중요한 것이 없었다.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여 1190 RC8R과 합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예상외의 장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V형 2기통의 슬림한 구조 덕분에 기울임 동작이 경쾌했고, 최고출력은 부족할지언정 유효한 토크 밴드가 매우 넓어 부담 없이 효율적으로 스로틀을 조작할 수 있었다. 또한 서스펜션과 프레임 강성은 소프트한 편으로 리터 클래스 입문자가 섬세하지 못하게 바이크를 다룰 때에 유연하게 받아주는 메리트로서 작용했다.


물론 시즌 후반에는 또 다시 첨예하게 포인트를 다투게 되었기 때문에 마지막 경기에 근접할수록 연습을 통한 스킬 향상보다는 당장 확보할 수 있는 랩타임 단축을 위한 셋업을 추구했다. 어느 정도 바이크를 일정하게 주행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미캐닉과 대화가 가능한 상태에 이르면 당연히 효율적인 셋업과 계획을 가져가야 한다.


결국 지금이 단기 목표를 위해 셋업을 추구할 때인지, 혹은 아직 라이더 자체 역량을 키울 단계인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다.

 

김솔의 수상 경력


2011 제 1회 KMRC 내구레이스 우승(미니 통합)

2013 제 3회 KMRC 내구레이스 우승(ST250)

2015 RC 390 Korea CUP 시리즈 챔피언

KSRC 5시간 내구레이스 우승

2016 SUPER ROOKIE CHALLENGE 시리즈 준우승

2017 KSEF 6시간 내구레이스 우승

2018 대한민국 쿼터 클래스 그랜드 슬램

2019 KSEF 123 내구레이스(1,000cc) 우승

前 KTM 코리아 인스트럭터

現 DUCATI 코리아 인스트럭터

 

라떼는? 2016년 슈퍼루키 챌린지(1,000cc 신인전)


갈수록 큰 격차로 벌어지는 기존과 신규 선수들 사이의 수준 차이, 또한 그로 인한 신규 유입의 저하를 막기 위해 2016년 KMG 프로모터는 새롭게 슈퍼루키챌린지 클래스를 런칭했다.


프리미어 클래스 경험이 없는 신규 인원을 대상으로 하여 상당한 볼륨으로 참가가 이어졌고, 전국 각 팀에서 나름대로 흥미진진하게 선수들 간의 구도가 형성됐다.


非선수 출신이지만 지역 트랙데이에서 상당한 속도를 보여주는 인물, 왕년에는 좀 달렸지만 최근에 잊혀졌던 올드스쿨 선수들, 혹은 최근 하위 클래스에서 선전하며 막 승급한 선수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기존 로드레이스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KTM 브랜드 이름을 레이스 결과지 상단에 기록하고자 열심히 달렸다.


시즌 초반의 적응 미비와 부끄러운 실책을 밑거름 삼아 후반으로 갈수록 힘을 내어 마지막 4전 경기에서 폴 투 피니쉬로 우승했지만 시즌 포인트 1점 차로 챔피언십 준우승에 머물렀다. 어느 유명한 레이서의 말대로 ‘진 사람들 중에 1위’에 불과했다.


글/김솔 

사진/고영석, 박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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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376호 / 2021.4.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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