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줄곧 레이스 해오는 동안 속도 자체로 가장 빨리 달리는 라이더는 아니었다. 부끄럽지만 대부분의 레이스 시즌 동안 내 옆에는 더 환상적인 속도로 멋지게 달리는 라이벌 선수들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비교적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많은 트로피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행히도 스스로 보유한 라이딩 스킬 이외의 특징 몇 가지가 장점으로 작용된 까닭일 것이다.
가장 빠르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
말하자면 그렇다. 내가 다른 그 누구보다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을 마주하는 것은 일종의 고통이다.
더욱이 빛나는 재능으로 아름답게 해내는 그들을 꾸준히 상대하며 겨루어야 할 때는 ‘대체 저런 걸 어떻게 이겨야 할는지’ 하며 막막한 느낌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해낼 수 있는 것이 레이스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지 선수 대 선수의 재능으로 인해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한 스토리 라인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드라마인 까닭에 시즌의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을 이어갔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결과를 만나게 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늘고 길게 타도 괜찮다
몸과 마음의 퍼포먼스가 하락세로 접어들기 이전, 그러니까 20대 중반 무렵까지는 슬립이나 접촉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쾌한 느낌으로 모터사이클을 조종하며 과감히 배틀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미니 트랙에서 저배기량 클래스에 출전하던 시절이었고 성적이나 스킬의 완성도는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주행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정확히 각성한 상태에서 라이딩 했었다. 그러던 중 현재까지 장애로 남게 된 사고를 한 번 겪고 나서는 슬립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차츰 주변의 규모가 커져서 더 이상 혼자 취미로 하는 레이스가 아니게 되면서부터는 확연히 조심스러운 캐릭터로 변해가며 사소한 사건도 만들지 않으려 하게 됐다.
대형 트랙에서 빠르게 달리는 상위 클래스로 승급함에 따라 슬립에 의한 머신의 파손 규모와 부상 위험 자체도 증가했고, 그것으로 인한 일정의 수정이나 정비 작업이 동료들에게 추가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심한 스타일로 몇 년을 달리고 나서 뒤돌아보니 자신에게는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했다고 느껴진다. 함께 달리던 많은 이들이 부상이나 머신 파손으로 레이스를 쉬거나 포기하게 될 때에, 나는 줄곧 아무런 이벤트도 만들지 않고 아주 작은 향상이나마 쌓아오면서 꾸준히 달려왔던 것이다.
자동차가 멈췄다 다시 출발할 때 큰 힘이 필요하듯 레이스 또한 한 번 멈추면 다시 시작하기 쉽지 않고, 마음을 굳게 먹는다 해도 일정 궤도에 올리기까지는 이전보다 세 배 이상의 힘을 쏟아야 한다. 워낙 소심하게 주행한 탓에 흡사 깻잎 장아찌를 한 장씩 쌓아 올리는 것만큼 매우 작은 발전을 해왔겠지만, 그나마 쌓아올린 깻잎을 무너뜨리지는 않은 것이다.
간혹 전처럼 모터사이클과 완전히 연결된 것 같은 일체감과 컨디션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부상이나 손해를 입으면 다시 이어가기 힘들 것 같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금처럼 가늘고 길게 가는 스타일을 고수할 생각이다.
집중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늘게 타도 좋다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최선을 다할 때에 각자의 캐릭터 차이를 얘기한 것일 뿐, 적당히 해도 된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집중을 끈질기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예를 들어 나에게는 2015년의 첫회 RC390 Korea CUP 시즌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연간 총 4회 개최된 레이스를 차례대로 4위, 3위, 2위, 1위를 기록하며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시즌 챔피언 타이틀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즌이 시작될 때만 해도 나는 스스로도, 또한 밖에서도 그 정도로 평가되는 선수가 아니었다. 운 좋게 1전에서 4위를 기록한 후에도 특별히 목표 설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선두권 선수들의 기량은 탁월했다. 그 중 굉장히 빨랐던 선수 한 명이 안타깝게 연이은 사고로 시즌을 포기하게 됐고, 특히 2전에서는 레인 컨디션에서의 혼란을 틈타 3위에 오를 수 있었다.
3전을 앞둔 상황에서는 내 앞의 선수 한 명이 부상을 입어 컨디션 난조를 보였고, 그 해 가장 빨랐던 다른 선수 한 명이 머신 트러블로 결승전에 불참하며 어부지리 준우승을 수상했다. 마지막 4전에서는 이렇게 된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승하고 싶었기 때문에 레이스 머신에도 각별히 신경 쓰며 혼신의 힘을 다해 결국 우승하게 됐다.
종종 주위에서 ‘운도 실력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운을 가져오는 실력을 뜻한다고 생각되지는 않고, 다만 ‘운이 따랐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홈런을 칠 수 있을 만큼의 기본 소양을 다졌는가’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적당한 것 같다.
정말로 나의 속도가 대단히 빠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나는 그 해 운동을 꾸준히 했고, 여름휴가나 가족 여행, 친구의 결혼식에 모두 불참하며 연습에 집중했고, 공공도로에서 바이크를 탈 때에도 늘 조심했으며, 내 레이스 머신이 항상 좋은 컨디션으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회사 정비실에 출입할 때마다 언제나 아이스크림을 사갖고 들어갔다.
글/김솔(SOL42 레이싱 대표)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김솔 #레이서
한국이륜차신문 385호 / 2021.8.1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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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줄곧 레이스 해오는 동안 속도 자체로 가장 빨리 달리는 라이더는 아니었다. 부끄럽지만 대부분의 레이스 시즌 동안 내 옆에는 더 환상적인 속도로 멋지게 달리는 라이벌 선수들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비교적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많은 트로피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행히도 스스로 보유한 라이딩 스킬 이외의 특징 몇 가지가 장점으로 작용된 까닭일 것이다.
가장 빠르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
말하자면 그렇다. 내가 다른 그 누구보다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을 마주하는 것은 일종의 고통이다.
더욱이 빛나는 재능으로 아름답게 해내는 그들을 꾸준히 상대하며 겨루어야 할 때는 ‘대체 저런 걸 어떻게 이겨야 할는지’ 하며 막막한 느낌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해낼 수 있는 것이 레이스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지 선수 대 선수의 재능으로 인해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한 스토리 라인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드라마인 까닭에 시즌의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을 이어갔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결과를 만나게 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늘고 길게 타도 괜찮다
몸과 마음의 퍼포먼스가 하락세로 접어들기 이전, 그러니까 20대 중반 무렵까지는 슬립이나 접촉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쾌한 느낌으로 모터사이클을 조종하며 과감히 배틀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미니 트랙에서 저배기량 클래스에 출전하던 시절이었고 성적이나 스킬의 완성도는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주행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정확히 각성한 상태에서 라이딩 했었다. 그러던 중 현재까지 장애로 남게 된 사고를 한 번 겪고 나서는 슬립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차츰 주변의 규모가 커져서 더 이상 혼자 취미로 하는 레이스가 아니게 되면서부터는 확연히 조심스러운 캐릭터로 변해가며 사소한 사건도 만들지 않으려 하게 됐다.
대형 트랙에서 빠르게 달리는 상위 클래스로 승급함에 따라 슬립에 의한 머신의 파손 규모와 부상 위험 자체도 증가했고, 그것으로 인한 일정의 수정이나 정비 작업이 동료들에게 추가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심한 스타일로 몇 년을 달리고 나서 뒤돌아보니 자신에게는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했다고 느껴진다. 함께 달리던 많은 이들이 부상이나 머신 파손으로 레이스를 쉬거나 포기하게 될 때에, 나는 줄곧 아무런 이벤트도 만들지 않고 아주 작은 향상이나마 쌓아오면서 꾸준히 달려왔던 것이다.
자동차가 멈췄다 다시 출발할 때 큰 힘이 필요하듯 레이스 또한 한 번 멈추면 다시 시작하기 쉽지 않고, 마음을 굳게 먹는다 해도 일정 궤도에 올리기까지는 이전보다 세 배 이상의 힘을 쏟아야 한다. 워낙 소심하게 주행한 탓에 흡사 깻잎 장아찌를 한 장씩 쌓아 올리는 것만큼 매우 작은 발전을 해왔겠지만, 그나마 쌓아올린 깻잎을 무너뜨리지는 않은 것이다.
간혹 전처럼 모터사이클과 완전히 연결된 것 같은 일체감과 컨디션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부상이나 손해를 입으면 다시 이어가기 힘들 것 같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금처럼 가늘고 길게 가는 스타일을 고수할 생각이다.
집중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늘게 타도 좋다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최선을 다할 때에 각자의 캐릭터 차이를 얘기한 것일 뿐, 적당히 해도 된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집중을 끈질기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예를 들어 나에게는 2015년의 첫회 RC390 Korea CUP 시즌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연간 총 4회 개최된 레이스를 차례대로 4위, 3위, 2위, 1위를 기록하며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시즌 챔피언 타이틀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즌이 시작될 때만 해도 나는 스스로도, 또한 밖에서도 그 정도로 평가되는 선수가 아니었다. 운 좋게 1전에서 4위를 기록한 후에도 특별히 목표 설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선두권 선수들의 기량은 탁월했다. 그 중 굉장히 빨랐던 선수 한 명이 안타깝게 연이은 사고로 시즌을 포기하게 됐고, 특히 2전에서는 레인 컨디션에서의 혼란을 틈타 3위에 오를 수 있었다.
3전을 앞둔 상황에서는 내 앞의 선수 한 명이 부상을 입어 컨디션 난조를 보였고, 그 해 가장 빨랐던 다른 선수 한 명이 머신 트러블로 결승전에 불참하며 어부지리 준우승을 수상했다. 마지막 4전에서는 이렇게 된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승하고 싶었기 때문에 레이스 머신에도 각별히 신경 쓰며 혼신의 힘을 다해 결국 우승하게 됐다.
종종 주위에서 ‘운도 실력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운을 가져오는 실력을 뜻한다고 생각되지는 않고, 다만 ‘운이 따랐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홈런을 칠 수 있을 만큼의 기본 소양을 다졌는가’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적당한 것 같다.
정말로 나의 속도가 대단히 빠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나는 그 해 운동을 꾸준히 했고, 여름휴가나 가족 여행, 친구의 결혼식에 모두 불참하며 연습에 집중했고, 공공도로에서 바이크를 탈 때에도 늘 조심했으며, 내 레이스 머신이 항상 좋은 컨디션으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회사 정비실에 출입할 때마다 언제나 아이스크림을 사갖고 들어갔다.
글/김솔(SOL42 레이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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