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솔, 나는 레이서다_일직선으로 간다

2021-10-19

‘나는 여전히 대한민국 슈퍼바이크 챔피언을 꿈꾸고 있다’

 

올 초부터 계획했던 KSEF 6시간 내구레이스 참가를 결국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심화되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거듭 변경되는 일정으로 인해, 많은 인원들의 협업이 필수적인 이번 계획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애초에 2021년 시즌의 라이딩을 구상하며 내구 레이스를 염두에 두었고, 모터사이클 구입과 파츠 세팅 전반에 KSEF 기술 규정을 참고하여 진행해온 터라 다소간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계획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KSEF 측에 미안한 감정이 더 크다.


KSEF는 지난 11년간 우리 사이에서 내구 레이스 붐을 선도해왔다. 특히 불안정한 로드레이스 시장에서 ‘1년에 한 번 내구 레이스 개최’라는 약속을 내걸고서 어느 누구보다 노력해왔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올 해를 겪어내며 더욱 효율적이고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실력과 새로운 방식들을 찾아내어 내년과 그 이후로도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잘 나아가 주기를 바란다. 비단 KSEF 뿐만이 아니라 다른 프로모터, 레이싱 팀, 라이더 외 구성원들 모두가 이번을 기회삼아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나에게 합당한 약속 따위는 원래 없다


그런데 원래 레이스에는 약속된 것이 없다. 기술 규정의 업데이트나 강력한 뉴 모델 출시로 인해 애써 셋업해온 완성도 높은 머신의 비교 경쟁력이 불현 듯 떨어지기도 한다.


스스로 100%를 준비했다고 장담한들 사실 그것은 100% 아닌 90%에 불과했을 수도 있고, 더욱 치밀하게 93%를 준비해온 라이벌이 우승을 차지할 수도 있다. 라이벌과 서로 경쟁을 통해 실력을 높이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95%, 96%를 향해 나란히 달려 나가다가도, 어느 순간 99% 짜리 초 사이어인이 등장하며 세대교체를 알리기도 한다. 멀쩡하던 머신이나 라이딩 기어가 꼭 레이싱 트랙에서 문제를 일으키기 일쑤고, 정말 중요한 결승전 마지막 랩에서 해맑은 모습으로 처음 참가한 백마커에 가로막혀 망쳐버리는 일도 있다. 


겨울 동안 만반의 준비를 거쳐 새로 시작하는 시즌 첫 연습에서 머신 트러블로 전도하여 골절 부상과 함께 그대로 시즌을 종료하는 경우도 있고, 바로 이러한 차량의 뒤를 따르던 중 아무 잘못 없이 함께 전도하여 수 백 만원 수리비가 나오기도 한다. 원래 그렇다. 험하고, 예측할 수 없고, 어렵고, 무섭고, 억울하고, 아픔 투성이 인 것이 레이스다.


그래도 하지 않을수가 없다


그럼에도 일직선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레이스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를 취사선택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자들이다.


사실 모터사이클 레이스란 것이 우리 스스로 느끼기에 무엇보다 멋지고 중요한 일임은 분명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예들 들어 인류 사회를 옳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거나 지구의 일원으로서 생태계를 아름답게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들처럼 중요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운 좋게 일정한 자본과 자산을 소유할 수 있었던 한정적 인원이 접근할 수 있는 다분히 특권적이고 소비적인 여가 활동이다. 당사자에게는 상당한 비용 지출과 위험을 수반하기까지 한다.


단언컨대 레이스는 만약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여름 밤 형광등 불빛에 모여드는 날벌레들처럼 불가항력적으로 빠져드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이성적 판단이 무용지물이다. 우리는 이것을 하지 않으면 병이 난다. 지나치게 매혹적이고, 중요하고, 멋지고, 꼭 하고 싶은 일이다.


내 삶에 이것이 없었던 때가 중세 암흑기처럼 느껴진다. 레이스가 열리는 주말에 트랙 주변에서 마주치게 되는 각 지방의 레이싱 팀 트럭을 볼 때 괜히 솟는 반가움, 애틋함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가족, 친구, 동료도 아니고, 삶의 방식과 모습이 판이하게 다른 이 사람들이 바로 대한민국에서 내가 가장 가깝게 느끼는 50명, 100명인 것이다.


글을 끝내며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모터사이클 로드레이스와 관련해 지난 10개월 간 글을 써올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과 이 경험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다. 미숙한 탓에 적절한 내용을 충분히 전달했는가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미처 나누지 못한 아름다운 장면들과 미치도록 가슴 뛰는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그 보다 더 많은 사건들이 앞으로 일어날 것 또한 알고 있다.


나는 여전히 대한민국 슈퍼바이크 챔피언을 꿈꾸고 있다. 비록 실제로 그것을 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시도하지 않았을 때의 가능성은 확실히 0%, 반대로 시도를 시작하는 순간, 1%의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다시 한 번 제대로 해낼 수 있기를, 그러한 중에 곳곳에서 여러분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김솔(SOL42 레이싱 대표)

사진/김승욱·신동환, 정진수


그동안 ‘김솔의 레이스 이야기’를 게재해 준 김솔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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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387호 / 2021.9.16~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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