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계숙의 바람이 그린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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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은 겨울에 먹는 음식일까? 여름에 먹는 음식일까? 어떤 사람들은 냉면을 먹으면 속이 차지기 때문에 몸이 열을 내니 겨울에 먹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냉면이 무더위를 싹 가시게 해주니까 여름에 먹어야 한다고 한다. 내 생각은 이렇다 ‘어떤 계절에 먹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냉면을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나이들수록 더 좋아지는, 내 생애 최초의 냉면
대학생 때 등산을 좋아하시는 지도교수님께서 우리 과 학생들 몇 명을 데리고 이곳, 경기도 양평에 있는 옥천냉면을 왔다. 이것이 내가 맛본 최초의 냉면이었다. 마당 한가운데 우물 같은 곳이 있었고 당시에 만화가로 유명했던 신동우 화백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정확한 상호도 몰랐고 냉면 맛도 제대로 알아차릴 경험도 없어서 ‘우물과 만화’로 이곳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의 감상이란 ‘이런 음식도 있네? 어떻게 달지도 않고 시지도 않고 맹맹한 맛이 나지?’였다.
아삭한 식감의 반찬
이후 대학원의 지도교수님께서 ‘양평에 냉면 먹으러 가자’해서 따라 나선 곳이 또 옥천냉면이었다. 선생님의 냉면 칭송은 끝이 없었다. ‘다른 식당 냉면은 면발이 아주 가는데 이집 냉면은 면발이 아주 굵단다’, ‘면발이 굵으면 삶기가 아주 어려운데 아주 잘 삶아낸다’, ‘이 무김치 좀 먹어봐, 아삭아삭하면서 깊은 맛이 나지?’ 선생님의 이렇게 값진 추천사에도 ‘냉면이 냉면이지. 뭐가 그리 맛있다고 그러시나?’ 라고만 느꼈었다.
그런데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 집의 냉면 맛이 좋아졌다. 더욱이 지금 같은 날에는 냉면 생각이 더욱더 간절하다.
바이크를 타면 늘 서울을 빠져나가는 일이 걱정인데 다행히도 오늘은 차가 많지 않아서 그런지 신호등에도 걸리지 않고 무사통과다. 왠지 올 한해도 이렇게 술술 풀릴 것 같은 예감까지 든다.
별미인 완자와 편육
양평교에 접어드니 두물머리가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살짝 스며드는 바람은 애교로 봐 주고 싶다. 계속 쭉 달리고 싶지만 나는 어느새 양평 만남의 광장(이하 양만장)에 도착했다. 목적지가 바로 10분 남았는데 그래도 양만장에서 커피 한잔을 하면서 이 세상의 다양한 바이크를 구경한 뒤 ‘양평 옥천냉면’에 도착했다. 옥천냉면은 주차장이 평평하고 아주 넓어서 바이크 수 십대도 주차가 가능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찌나 따스한지 열대지방에 온 것 같다. 메뉴판에 있는 모든 요리를 다 주문하고 싶다. 완자와 편육 반반하고 물냉면을 주문한다. 이곳에서 3대째 냉면집을 경영하는 이인숙 사장(59)이 나를 반긴다. 금세 삶아져 찬 육수에 담겨 나온 냉면은 보기만 해도 지난겨울처럼 시원하게 느껴진다. 식초와 겨자를 조금씩 치고 달걀노른자를 육수에 풀어서 한 모금 마시는 것으로 옥천냉면에 왔다는 신고식을 치른다.
이인숙 사장이 풀어내는 ‘우리가게 이야기’
이곳을 운영하는 이인숙 대표
사장님에게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단골이었음을 고백하고 냉면이야기를 청했다. 우선 이곳의 냉면 면발이 굵은 이유를 물었다.
“냉면을 반죽해서 면발을 뽑는 틀을 분틀이라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면발을 굵게 하기 위해서 원래 나무분틀을 사용했어요. 이후에 쇠로 만든 분틀로 바꾸기는 했는데 다른 집 보다 여전히 면발은 굵게 빼고 있지요. 손님들이 냉면을 드시면서 씹히는 맛이 있으니 좋다고 하셔서 개업 때부터 굵은 면발을 고수하고 있어요. 1990년대부터 냉면을 삶을 때 U자 형태로 된 스팀 가마를 사용해서 삶는 것도 많이 수월해졌어요. 면발이 얇으면 훨씬 빨리 익어서 편하기는 할 거예요. 그런데 늘 그렇게 굵게 빼던 것이 습관이 되었기에 처음처럼 하고 있어요.”
사장님이 “복장을 보니 바이크를 타고 오신 것 같은데, 안 추워요?”라고 묻는다. ‘시원해요’라고 대답했더니 “80년대 90년대 바이크 타는 손님들 정말 많이 오셨어요. 저희 주차장에 바이크로 꽉 찬 적도 있었지요. 그때는 이 주위에도 음식점이 많이 없었어요. 90년대가 넘어가니 양평과 양평 일대에 식당들이 많이 생겨나, 바이크 타는 분들이 갈 곳이 많아졌는지 요즘은 좀 뜸해요”라고 하신다. 이 식당의 역사에 대해 궁금해져, ‘식당은 언제 시작했어요?’라고 물어봤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부모님, 그러니까 저의 증조부님께서 황해도에서 황해식당이라는 냉면집을 하셨대요. 당시는 맹인 두 명이 메밀을 맷돌에 갈아서 냉면을 만들었다고 하니 하루에 몇 그릇이나 팔았겠어요? 그 후 전쟁이 나서 할아버지는 먼저 아버지를 데리고 남쪽으로 오셨고 할머니는 고모와 친척을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을 오셨는데 어느 날 우연히 만나셨대요. 그래서 살 곳을 찾다가 이곳 옥천에 정착해서 냉면집을 열게 된 거예요.
처음 개업할 때는 냉면만 했어요. 그러다가 돼지를 잡는 날 돼지 창자에 멥쌀을 박아서 순대를 만들어 팔기도 했구요. 70년대는 만두를 만들어 판적이 있었고, 장사가 잘 되니까 할머니가 편육하고 완자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메뉴가 됐어요. 냉면집을 오래하다 보니 젊었던 손님이 나이가 드시고 아들과 오고, 손주를 데리고 오세요. 저희도 손님하고 함께 세월을 보내다 보니 다녀가신 손님이 오랫동안 안 오시면 궁금하기도 해요. 오토바이 타시는 분들이 전처럼 많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모든 것이 새롭게 피어나는 봄이 도래했다. 매서웠던 겨울 뒤에 찾아와 생기를 흩뿌리는 계절인 봄, 라이더들로 장사진을 이뤘던 이곳이 다시 한 번 배기음으로 가득 채워지길 희망한다.
옥천냉면 황해식당 본점
주소/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고읍로 140
연락처/031-772-9693
가격/물냉면 10,000원, 편육+완자 20,000원
신계숙 교수
현재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이며, EBS 〈세계테마기행〉 ‘꽃중년 길을 나서다–중국·타이완’편,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에 출연해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의 입담과 유쾌한 매력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한중식학연구소’(계향각)’이라 이름을 붙인 곳에서 고 조리서를 연구하며, 베스파 스쿠터와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을 타고, 취미로 색소폰을 연주하는 등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다.
신계숙의 바람이 그린 맛집은 ‘맛터사이클 다이어리 시즌2(EBS 월요일 밤 10시 50분)’ 촬영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교수님의 사정으로 잠시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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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377호 / 2021.4.16~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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