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_HARLEY-DAVIDSON, 2021 STREET BOB

2021-09-16

구식은 모든 세대가 비웃지만, 클래식은 인류사와 함께 영속한다


‘구식은 모든 세대가 비웃지만, 클래식은 인류사와 함께 영속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에서 알 수 있듯, 클래식은 단순히 오래된 것이나 그런 스타일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것, 오랜 세월에도 비평을 이겨내고 살아남아 여전히 널리 향유되는 최고의 명작을 비로소 클래식이라 칭할 수 있다.

2021 스트리트 밥의 연료탱크 색상이 강렬하다


모터사이클은 아마도 장르 자체로서 위대함을 품고 있기 때문에 클래식이라 말할 만한 브랜드가 꽤 현존하는 편이지만,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역시 할리데이비슨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2021 STREET BOB(스트리트 밥)은 모터사이클 태동기에 결정된 필수 요소, 즉 지난 100년 이상 변하지 않은 ‘엔진과 두 바퀴로 달린다’는 기본 명제에 더 없이 집중하고 있다. 부가 요소가 끼어들 틈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채, 그저 달리는 행위 자체만을 조명하는 방식은 놀랍게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매우 정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머슬 엔진


단차가 있는 시트가 승차감을 높여준다


2021 스트리트 밥은 2020년형의 1,745cc 엔진 대신 1,868cc로 배기량을 키운 밀워키 에이트 114 엔진을 적용했고, 탱크에 넘버 원 그래픽을 입히고 탠덤 시트를 추가했다.


단지 그 뿐이다. 언제나 그랬듯 특별히 대단한 변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우리가 그들을 좋아할 수 있게끔 하는 할리 데이비슨의 코어가 유지되고 있는 것 또한 바로 그 사실 덕분이다.


매우 낮은 rpm에서도 끈끈하게 회전력을 유지하는 엔진은 790rpm ~ 900rpm 사이를 오가며 아이들링 하고 1,500rpm부터는 어떤 기어에서도 끊어짐 없이 회전력을 상승시키며 금세 155Nm의 묵직한 토크를 이끌어낸다. 특히 6단 기어로 2,000rpm을 유지하면서 크루징할 때에 감탄사를 아낄 필요가 없는데, 마치 어린 시절 기차나 선박 앞에서 느꼈던 거대하지만 정적인 힘, 그러한 엔진 사운드에 대한 기억이 그 순간 되살아오기 때문이다.


이 엔진에는 남 앞에 나서서 과시하고 싶은 마음 대신 내면으로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정 반대되는 캐릭터를 끄집어내는 것 또한 가능하다. 신호등 앞에서 rpm을 띄운 채로 파란불을 기다리다가 적극적인 반 클러치를 사용하며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로켓 스타트 또한 반드시 경험해보아야 할 행위다.


가속력의 빠르기는 400cc 스포츠 바이크보다 조금 빠른 정도지만, 감동은 3배 정도 된다. 평소 우리에게 익숙한 빨리 달리기란 다기통 엔진으로 고회전역에서 바삐 변속을 이어가는 날렵한 스타일이지만, 스트리트 밥의 가속 행위는 흡사 토르나 헐크가 땅을 박차고 달려가는 느낌에 가깝다. 한 마디로 호쾌한 맛이 있다. 기통 당 900cc를 상회하는 고배기량 V트윈 엔진이기에 가능한 감성이며, 출력보다 토크에 집중하는 정통 아메리칸 OHV 머슬 엔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같은 형식 엔진의 탄생으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2021년 현재에도 이런 경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아슬아슬하게 다행인 부분이다. 모든 브랜드가 가장 뛰어난 엔진을 만들어내는 일에 여념이 없던 내연기관의 클라이맥스는 이미 명백하게 지났으며, 우리 세대는 공랭식, 카뷰레터, 2스트로크 방식과 같은 개념들을 경험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묵직한 주행감을 보이는 스트리트 밥


그런 측면에서 골수팬들의 ‘이것은 진짜 스트리트 밥이 아니다’와 같은 푸념은 일부분 인정할 만하다. 엔진은 10여 년 전에 비해 꾸준히 부드러워졌고 긍정적인 의미의 진동 또한 감소하여 전반적으로 생동감과 거친 감각이 줄어들었다. 특색이 희미해졌다고도 말할 수 있는 이러한 변화들은 한 편으로는 배출가스 규제를 통과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편으로는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서기 위함이다.


만약 그로 인해 브랜드 판매량이 꾸준히 유지되거나 증가한 덕분에 더 오랜 기간 할리 데이비슨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라면 다소 캐릭터가 약해진다 할지라도 동의할 수밖에 없다. 결국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되겠지만 적어도 이번 스트리트 밥과 밀워키 에이트 114 엔진은 찬성할만한 범주 안에 충분히 들어온다.


담백한 섀시와 뛰어난 디테일


엔진 외의 모습들 또한 매력적이거나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스트리트 밥은 할리 데이비슨 중에서 비교적 날렵하면서도 쉬운 코너링 특성을 보이는데, 건조중량도 284kg으로 가벼운 편(!)에 속하며 폭이 좁은 앞 타이어를 사용해서 더욱 그렇다. 무게 중심은 낮게 깔린 상태로 좀처럼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프런트/리어 서스펜션을 통해 질량을 안정적으로 옮긴다거나 하는 노력이 필요 없다. 언제나 앞/뒤 바퀴에 충분한 무게가 준비되어 있어서 그저 쉬울 뿐이다.


브레이크는 애초에 앞바퀴 하중이 많지 않은 구조인 까닭에 싱글 디스크를 장착하고 있으므로 리어 풋 브레이크를 적극 사용하는 것이 요령이다. 풋 브레이크 페달의 작동 폭이 큰 편이기 때문에 쉽게 사용할 수 있다. 바버 스타일을 선도해온 장본인답게 디자인과 디테일이 훌륭하며 운전할 때에 바라보는 시야, 즉 콕핏 뷰는 으뜸이다. 


심플한 계기반 주위


핸들 클램프에 최소화시켜 장착한 계기판은 필요 충분한 기능을 모두 탑재했음에도 얼핏 보면 계기반이 없는 것과 같은 시원한 시야를 확보해준다. 좌측 스위치 뭉치의 버튼 하나를 반복적으로 누르기만 하면 되는 조작 방법도 마음에 든다. 대부분의 현대적인 모터사이클의 최첨단 풀 컬러 멀티 펑션 TFT 계기반에 익숙한 이라면 기가 차겠지만, 바로 그러한 것들의 정 반대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 스트리트 밥이다.


뭣이 중헌디


옛 것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레트로 무드는 거의 모든 산업 디자인과 일상에서 길게 유행하고 있다.


갈수록 정밀해지고 우수해지고 복잡해지고 다분화되고 합리적일 것이 요구되는 어려운 세상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모터사이클 중에서 일종의 향수와 감성을 지닌 모델을 찾고자 한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워낙 오랜 기간 대명사로 인지되어 오기도 했고 특유의 동호회 문화 등으로 인해 오히려 다른 장르로 오해받는 경우도 있어왔지만, 실은 할리 데이비슨이야말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최고의 클래식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이토록 담백한 이야기를 간결하게 풀어내는 모터사이클을 만나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2021 STREET BOB 주요제원

 

엔진 형식 - 밀워키 에이트 114

보어×스트로크 - Ø102×114(mm)

배기량 - 1,868cc

압축비 - 10.5 : 1

최대토크 - 155Nm/3,250rpm

전장×전폭×전고 - 2,320×865×1,160(mm)

축간거리 - 1,630mm

시트고 - 680mm

연료탱크 - 13.2ℓ

타이어 - (F) 100/90B19,57H,BW (R) 150/80B16,77H,BW

브레이크 - (F)4캘리퍼 (R)2캘리퍼

웨트 중량 - 286kg

판매가격 - 2,690만 원


차량협조/할리데이비슨 코리아

글/김솔 시승전문 객원 기자 사진/편집부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할리데이비슨 #스트리트밥  #클래식 #시승 #김솔


한국이륜차신문 387호 / 2021.9.16~9.30


Copyright ⓒ 한국이륜차신문 www.kmnews.net 무단복제 및 전재 –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