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X-R, 스즈키 스포츠모터사이클의 상징 그 자체
스즈키를 대표하는 스포츠 모터사이클에는 ‘GSX-R’의 이름이 가장 앞에 쓰인다. 40년의 짧지 않은 기간동안 자존심 그 자체였던 GSX-R의 시작부터 가장 최근에 복귀를 선언한 GSX-R 40주년을 기념한 GSX-R1000R까지의 역사를 들여다봤다.
GSX-R의 탄생 배경
스즈키의 GSX-R은 현대 스즈키 스포츠 모터사이클의 상징 그 자체다. 이것은 또한 스즈키의 스포츠 모터사이클 중심이 2스트로크 엔진에서 4스트로크 엔진의 시대로 전환되는 그 기점이기도 하다.
최상위급 슈퍼바이크, 스포츠 모터사이클에 대한 스즈키의 핵심 철학과 그 철학을 반영한 기술적 정점에서 탄생한 GSX-R. 그 역사는 지난 2025년을 기점으로 40주년을 맞았다.
시작점인 1985년은 앞서 밝힌 것처럼, 4스트로크 4기통 엔진 경쟁이 심화되던 때였다. 스즈키 역시 이에 대한 필요가 있었고, 여기에 스즈키 모터사이클 개발 총괄을 맡고 있던 요코우치 에츠오(Yokouchi Etsuo)가 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스즈키 모터사이클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한 그는 독특한 철학이 있었다. 일반적인 라이더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점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한계점을 넘어서는 과도한 출력보다는 가속과 감속, 코너링 등에서의 모든 동적 성능을 향상하는 방법론으로 경량화가 출력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믿었다. 무게가 크게 높아지면 그것이 스포츠 주행에서의 즐거움을 해칠 것이라고 판단했다.
GSX-R750의 등장
경량화에 집중해 선보인 GSX-R750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당대 동급 배기량의 스포츠 모터사이클들보다 40kg 이상 가벼웠기 때문이다. GSX-R750의 무게(건조중량)는 약 179kg으로 400cc급 수준밖에 되지 않을 정도였으니 모두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가능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량화에 있었다. 수랭식 엔진이 된다면 라디에이터와 냉각수가 필요했으니 엔진의 크기와 그 부대적인 장치로 무게가 늘어날 수밖에 없겠지만 스즈키는 공유랭 방식을 최적화는 것으로 동등한 수준의 성능을 내면서 충분한 냉각 성능을 발휘하도록 했다.
스즈키는 오일의 냉각 효과를 높이기 위해 피스톤 뒷면과 연소실 상단 부에 직접 오일을 분사하는 방식을 적용하는 한편 공랭식 엔진처럼 냉각핀을 촘촘하게 배치해 공유랭 효과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차체 설계에 있어서도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강철 파이프 프레임 대신 알루미늄 각재를 사용한 더블 크레들 타입의 프레임으로 경량화와 높은 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모델이 갖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도 있다.
GSX-R750의 개발은 당시 스즈키의 내구레이스 머신인 GS1000R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된 기체였는데 사실은 1985년에 등장한 GSX-R750 이전인 1984년에 등장한 GSX-R이 존재했다. 엔진의 배기량은 400cc였지만 동급을 완전히 뛰어넘는 최고출력인 59마력을 발휘했기에 모델명에 배기량을 뜻하는 400이 빠진 것이 특징이었다. 대단한 자신감이었지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특히 이 모델은 앞서 밝힌 GS1000 R 내구 레이서 머신의 복제품이란 의미로 ‘레플리카’로 출시됐다. 오리지널 레이서보다 배기량도 작고 출력도 당연히 그보다 낮지만, 추구하는 성향과 오리지널 레이서의 감각으로 즐길 수 있는 일반 시판용 바이크라는 뜻으로 ‘레플리카’란 용어가 적용되기 시작한 시점으로도 평가되는 의미도 있다.
2세대 GSX-R로 풀 체인지가 됐던 1988년 모델은 미쿠니(Mikuni)의 슬링샷 캬뷰레터의 채용이 중요한 포인트였다. 엔진 내부적으로 스트로크를 더 줄이는 한편, 프레임 강성을 높이고 휠 사이즈를 17인치로 변경하면서 최신 타이어 기술에 대응하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이런 성능 향상을 위한 노력이 GSX-R의 정체성과 같았던 경량화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최초의 GSX-R750 대비 16kg이나 무게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스즈키의 고민은 커졌다. 엔진 출력을 높여야만 하는 상황에서 경쟁 브랜드들의 모델들이 열 관리가 훨씬 쉬운 수랭식 엔진으로 엔진 성능을 더욱 더 높여갔기 때문이다.
스즈키의 유랭 엔진이 고성능화를 거치면서 열 관리까지 해내려면 오일 쿨러가 커지는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공기저항이 높아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GSX-R를 덮친 파이어블레이드의 충격
결국 GSX-R도 유랭 엔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수랭식 GSX-R750이 처음으로 등장한 1992년은 최고 118마력까지 출력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무게는 초대 모델보다 30kg, 2세대 모델과 비교하더라도 15kg 가까이 더 무거워졌다.
여기엔 몇 가지 문제가 복합됐다. 수랭화된 엔진의 무게는 물론이지만, 높아진 출력에 대응하는 특유의 더블 크레들 프레임 구조를 더 보강하면서 프레임 무게도 늘었다. 차라리 트윈 스파 알루미늄 프레임을 사용했다면 무게 절감이 가능했겠지만, GSX-R의 정체성을 유랭 엔진과 더블 크레들 프레임이라고 이야기하던 때였기 때문에 포기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스즈키의 내부적 사정과 GSX-R의 정체성이라 주장되던 이야기 따위는 문제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1992년은 슈퍼바이크 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혼다의 파이어블레이드, CBR900RR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혼다 CBR900RR의 조건은 매우 간단했다. 마치 초대 GSX-R 때 스즈키가 추구했던 바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고출력의 엔진 때문에 무게가 높아지는 것을 피하고, 출력을 뺀 나머지 모든 영역에서 플러스 효과를 낼 수 있는 경량화를 추구했다.
그 결과 CBR900RR은 GSX-R750보다 무게가 23kg이나 더 가벼웠다. GSX-R이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경쟁자들을 난감하게 만들었던 ‘경량화의 충격’을 이제 스즈키가 되돌려 받게 된 것이다. 부드러운 엔진의 특성과 고속 안정성에 있어서 호평을 받았다고는 해도 민첩성과 가속 능력, 브레이킹, 승차감 등등의 가벼운 무게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장점이 희석된 댓가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스즈키도 즉각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다. 엔진 내부 부품을 개선하거나 소폭의 경량화도 이뤄졌다. 하지만 최초의 수랭화된 GSX -R의 실패는 초심을 잃은 대가였으며, 수랭 엔진에 최적화된 새로운 차체 설계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초심으로 돌아간 GSX-R: 슬래드의 전설
절치부심한 스즈키는 1996년에 새로운 전용 트윈 스파 프레임을 적용한 차세대 GSX-R750이 등장하면서 GSX-R의 명성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 모델은 당시 월드 그랑프리에서 챔피언을 차지했던 케빈 슈완츠(Kevin Schwantz)가 탔던 RGV 감마 500의 섀시 지오메트리를 거의 그대로 이식한 것이었다. 이 섀시의 기본 구조는 프레임의 무게를 줄이면서도 엔진 블럭을 프레임의 일부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비틀림 강성을 크게 높이는 완성도를 높였다.
또한 스즈키 램 에어 다이렉트(Su zuki Ram Air Direct). 흔히 SRAD( 슬래드)라고 불리는 공기 역학 기술의 도입으로 고성능화를 꾀했다. 그 결과 스즈키는 신형 GSX-R750으로 초대 모델 때의 건조 중량인 179kg을 다시 달성했다.
단지 무게만 줄인 것도 아니었으며 극단적으로 짧아진 휠베이스로 코너링 성능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또한 초대 GSX-R750 대비 21마력이 더 높아진 128마력의 최고출력을 자랑했다. 덕분에 750cc급이면서 리터급의 출력을 낸다는 이야기도 이 때 나왔다.
하지만 시대적 흐름에 따라 슈퍼바이크 시장의 기준선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600cc급 슈퍼스포츠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스즈키의 GSX-R은 GSX-R600으로 새로운 수요에 대응했다.
완성체 GSX-R1000의 등장
스즈키는 GSX-R750을 중심으로 자사의 기술력을 집중해왔다. 하지만 앞서 언급됐던 슈퍼바이크 시장의 변화는 600cc급 슈퍼스포츠와 1리터(1,000cc)급 슈퍼바이크로 양분되는 구조로 이어졌다.
스즈키가 R750을 포기하진 않았지만, 경쟁 브랜드들의 리터급 모델들과 직접 경쟁한 모델이 필요했다. 그렇게 2001년, 최초의 GSX-R1000은 건조 중량 170kg의 무게로 최고 160마력을 달성하며 등장했다.
이 새로운 R1000의 가치는 명확했다. 750cc급의 경쾌하고 날카로운 핸들링과 리터급 엔진의 강력한 출력을 발휘했기에 상대적으로 후발주자로 참여했지만, 단숨에 슈퍼바이크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그리고 2005년에 GSX-R1000 K5가 등장한다. 현재까지도 최고의 GSX-R 시리즈 중 하나로 꼽힐 뿐 아니라 최고의 슈퍼바이크 중 하나로 꼽히는 명기로 평가되는 이 모델의 엔진은 현재의 GSX-S1000 시리즈에서 다시 사용되고 있을 만큼 가치를 인정받았다.
어째서 그랬을까. 당시 다른 브랜드의 경쟁 모델들이 회전수를 극대화해 최고출력을 끌어내는 것과 달리 스즈키는 상대적으로는 롱스트로크 엔진으로 중저속 토크와 트랙션을 확보하는데 집중했다. 덕분에 실제 주행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영역에서 최대치의 다루기 쉬운 토크를 발휘했기에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또한 차체의 경량화 또한 극대화하면서 건조 중량은 166kg을 달성했고 이 무게는 거의 600cc급 모델에 준하는 수치였다.
최종 단계의 GSX-R1000R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슈퍼바이크 시장은 급격하게 식었고 일본의 모터사이클 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판매량이 급감했기 때문에 신규 모델을 개발하는데 비용을 들이기가 쉽지 않아졌다. 그리고 그 위기 상황에 유러피안 프리미엄 브랜드의 성장이 겹치면서 상대적인 위축이 더 심화됐다.
하지만 브랜드의 슈퍼바이크는 자존심과 같은 것이었으며 GSX-R의 이름을 다시 드높이기 위해 2017년에 완전히 새로운 GSX-R1000/R이 등장했다. 기본 사양과 고급화된 버전을 함께 선보이면서 소비자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추는 것은 물론이고, 기계식 가변 밸브 타이밍 시스템을 적용하면서 토크와 연비를 확보하는 한편 최고 회전 영역을 높이면서 최고 마력도 202마력까지 높였다.
역대 최고 수준, 최종 단계의 진화라고 할 수 있었을 GSX-R이었지만 그 역사가 길게 이어지진 못했다. 빠르게 강화되는 배기 배출가스 기준 때문에 유로4 기준을 맞춘 이후, 유로5에 대응하지 않으면서 단종으로 이어지게 됐다.
하지만 지난 2025년 GSX-R 시리즈의 40주년을 기념하며 GSX-R 1000R이 부활하면서 2026년 시장에서 GSX-R 시리즈의 최고봉을 다시금 만나볼 수 있게 됐다.
대대적인 업데이트가 없다는 점을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지만, 돌아온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이 GSX-R이다.
오히려 현실적인 접근성의 가격과 충분한 성능을 제공하며, 슈퍼바이크 장르에서도 더 폭넓은 선택지를 제공함으로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나경남 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사진_스즈키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나경남의 더히스토리 #History of GSX-R
@한국이륜차신문 Corp. www.kmnews.net 무단복제 및 전재 – 재배포금지
GSX-R, 스즈키 스포츠모터사이클의 상징 그 자체
스즈키를 대표하는 스포츠 모터사이클에는 ‘GSX-R’의 이름이 가장 앞에 쓰인다. 40년의 짧지 않은 기간동안 자존심 그 자체였던 GSX-R의 시작부터 가장 최근에 복귀를 선언한 GSX-R 40주년을 기념한 GSX-R1000R까지의 역사를 들여다봤다.
GSX-R의 탄생 배경
최상위급 슈퍼바이크, 스포츠 모터사이클에 대한 스즈키의 핵심 철학과 그 철학을 반영한 기술적 정점에서 탄생한 GSX-R. 그 역사는 지난 2025년을 기점으로 40주년을 맞았다.
스즈키 모터사이클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한 그는 독특한 철학이 있었다. 일반적인 라이더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점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한계점을 넘어서는 과도한 출력보다는 가속과 감속, 코너링 등에서의 모든 동적 성능을 향상하는 방법론으로 경량화가 출력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믿었다. 무게가 크게 높아지면 그것이 스포츠 주행에서의 즐거움을 해칠 것이라고 판단했다.
GSX-R750의 등장
이게 가능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량화에 있었다. 수랭식 엔진이 된다면 라디에이터와 냉각수가 필요했으니 엔진의 크기와 그 부대적인 장치로 무게가 늘어날 수밖에 없겠지만 스즈키는 공유랭 방식을 최적화는 것으로 동등한 수준의 성능을 내면서 충분한 냉각 성능을 발휘하도록 했다.
스즈키는 오일의 냉각 효과를 높이기 위해 피스톤 뒷면과 연소실 상단 부에 직접 오일을 분사하는 방식을 적용하는 한편 공랭식 엔진처럼 냉각핀을 촘촘하게 배치해 공유랭 효과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차체 설계에 있어서도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강철 파이프 프레임 대신 알루미늄 각재를 사용한 더블 크레들 타입의 프레임으로 경량화와 높은 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모델이 갖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도 있다.
GSX-R750의 개발은 당시 스즈키의 내구레이스 머신인 GS1000R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된 기체였는데 사실은 1985년에 등장한 GSX-R750 이전인 1984년에 등장한 GSX-R이 존재했다. 엔진의 배기량은 400cc였지만 동급을 완전히 뛰어넘는 최고출력인 59마력을 발휘했기에 모델명에 배기량을 뜻하는 400이 빠진 것이 특징이었다. 대단한 자신감이었지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특히 이 모델은 앞서 밝힌 GS1000 R 내구 레이서 머신의 복제품이란 의미로 ‘레플리카’로 출시됐다. 오리지널 레이서보다 배기량도 작고 출력도 당연히 그보다 낮지만, 추구하는 성향과 오리지널 레이서의 감각으로 즐길 수 있는 일반 시판용 바이크라는 뜻으로 ‘레플리카’란 용어가 적용되기 시작한 시점으로도 평가되는 의미도 있다.
2세대 GSX-R로 풀 체인지가 됐던 1988년 모델은 미쿠니(Mikuni)의 슬링샷 캬뷰레터의 채용이 중요한 포인트였다. 엔진 내부적으로 스트로크를 더 줄이는 한편, 프레임 강성을 높이고 휠 사이즈를 17인치로 변경하면서 최신 타이어 기술에 대응하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이런 성능 향상을 위한 노력이 GSX-R의 정체성과 같았던 경량화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최초의 GSX-R750 대비 16kg이나 무게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스즈키의 고민은 커졌다. 엔진 출력을 높여야만 하는 상황에서 경쟁 브랜드들의 모델들이 열 관리가 훨씬 쉬운 수랭식 엔진으로 엔진 성능을 더욱 더 높여갔기 때문이다.
스즈키의 유랭 엔진이 고성능화를 거치면서 열 관리까지 해내려면 오일 쿨러가 커지는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공기저항이 높아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GSX-R를 덮친 파이어블레이드의 충격
결국 GSX-R도 유랭 엔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수랭식 GSX-R750이 처음으로 등장한 1992년은 최고 118마력까지 출력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무게는 초대 모델보다 30kg, 2세대 모델과 비교하더라도 15kg 가까이 더 무거워졌다.
여기엔 몇 가지 문제가 복합됐다. 수랭화된 엔진의 무게는 물론이지만, 높아진 출력에 대응하는 특유의 더블 크레들 프레임 구조를 더 보강하면서 프레임 무게도 늘었다. 차라리 트윈 스파 알루미늄 프레임을 사용했다면 무게 절감이 가능했겠지만, GSX-R의 정체성을 유랭 엔진과 더블 크레들 프레임이라고 이야기하던 때였기 때문에 포기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스즈키의 내부적 사정과 GSX-R의 정체성이라 주장되던 이야기 따위는 문제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1992년은 슈퍼바이크 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혼다의 파이어블레이드, CBR900RR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혼다 CBR900RR의 조건은 매우 간단했다. 마치 초대 GSX-R 때 스즈키가 추구했던 바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고출력의 엔진 때문에 무게가 높아지는 것을 피하고, 출력을 뺀 나머지 모든 영역에서 플러스 효과를 낼 수 있는 경량화를 추구했다.
그 결과 CBR900RR은 GSX-R750보다 무게가 23kg이나 더 가벼웠다. GSX-R이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경쟁자들을 난감하게 만들었던 ‘경량화의 충격’을 이제 스즈키가 되돌려 받게 된 것이다. 부드러운 엔진의 특성과 고속 안정성에 있어서 호평을 받았다고는 해도 민첩성과 가속 능력, 브레이킹, 승차감 등등의 가벼운 무게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장점이 희석된 댓가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스즈키도 즉각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다. 엔진 내부 부품을 개선하거나 소폭의 경량화도 이뤄졌다. 하지만 최초의 수랭화된 GSX -R의 실패는 초심을 잃은 대가였으며, 수랭 엔진에 최적화된 새로운 차체 설계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초심으로 돌아간 GSX-R: 슬래드의 전설
이 모델은 당시 월드 그랑프리에서 챔피언을 차지했던 케빈 슈완츠(Kevin Schwantz)가 탔던 RGV 감마 500의 섀시 지오메트리를 거의 그대로 이식한 것이었다. 이 섀시의 기본 구조는 프레임의 무게를 줄이면서도 엔진 블럭을 프레임의 일부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비틀림 강성을 크게 높이는 완성도를 높였다.
또한 스즈키 램 에어 다이렉트(Su zuki Ram Air Direct). 흔히 SRAD( 슬래드)라고 불리는 공기 역학 기술의 도입으로 고성능화를 꾀했다. 그 결과 스즈키는 신형 GSX-R750으로 초대 모델 때의 건조 중량인 179kg을 다시 달성했다.
단지 무게만 줄인 것도 아니었으며 극단적으로 짧아진 휠베이스로 코너링 성능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또한 초대 GSX-R750 대비 21마력이 더 높아진 128마력의 최고출력을 자랑했다. 덕분에 750cc급이면서 리터급의 출력을 낸다는 이야기도 이 때 나왔다.
하지만 시대적 흐름에 따라 슈퍼바이크 시장의 기준선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600cc급 슈퍼스포츠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스즈키의 GSX-R은 GSX-R600으로 새로운 수요에 대응했다.
완성체 GSX-R1000의 등장
스즈키가 R750을 포기하진 않았지만, 경쟁 브랜드들의 리터급 모델들과 직접 경쟁한 모델이 필요했다. 그렇게 2001년, 최초의 GSX-R1000은 건조 중량 170kg의 무게로 최고 160마력을 달성하며 등장했다.
이 새로운 R1000의 가치는 명확했다. 750cc급의 경쾌하고 날카로운 핸들링과 리터급 엔진의 강력한 출력을 발휘했기에 상대적으로 후발주자로 참여했지만, 단숨에 슈퍼바이크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그리고 2005년에 GSX-R1000 K5가 등장한다. 현재까지도 최고의 GSX-R 시리즈 중 하나로 꼽힐 뿐 아니라 최고의 슈퍼바이크 중 하나로 꼽히는 명기로 평가되는 이 모델의 엔진은 현재의 GSX-S1000 시리즈에서 다시 사용되고 있을 만큼 가치를 인정받았다.
어째서 그랬을까. 당시 다른 브랜드의 경쟁 모델들이 회전수를 극대화해 최고출력을 끌어내는 것과 달리 스즈키는 상대적으로는 롱스트로크 엔진으로 중저속 토크와 트랙션을 확보하는데 집중했다. 덕분에 실제 주행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영역에서 최대치의 다루기 쉬운 토크를 발휘했기에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또한 차체의 경량화 또한 극대화하면서 건조 중량은 166kg을 달성했고 이 무게는 거의 600cc급 모델에 준하는 수치였다.
최종 단계의 GSX-R1000R
하지만 브랜드의 슈퍼바이크는 자존심과 같은 것이었으며 GSX-R의 이름을 다시 드높이기 위해 2017년에 완전히 새로운 GSX-R1000/R이 등장했다. 기본 사양과 고급화된 버전을 함께 선보이면서 소비자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추는 것은 물론이고, 기계식 가변 밸브 타이밍 시스템을 적용하면서 토크와 연비를 확보하는 한편 최고 회전 영역을 높이면서 최고 마력도 202마력까지 높였다.
역대 최고 수준, 최종 단계의 진화라고 할 수 있었을 GSX-R이었지만 그 역사가 길게 이어지진 못했다. 빠르게 강화되는 배기 배출가스 기준 때문에 유로4 기준을 맞춘 이후, 유로5에 대응하지 않으면서 단종으로 이어지게 됐다.
하지만 지난 2025년 GSX-R 시리즈의 40주년을 기념하며 GSX-R 1000R이 부활하면서 2026년 시장에서 GSX-R 시리즈의 최고봉을 다시금 만나볼 수 있게 됐다.
대대적인 업데이트가 없다는 점을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지만, 돌아온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이 GSX-R이다.
오히려 현실적인 접근성의 가격과 충분한 성능을 제공하며, 슈퍼바이크 장르에서도 더 폭넓은 선택지를 제공함으로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나경남 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사진_스즈키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나경남의 더히스토리 #History of GSX-R
@한국이륜차신문 Corp. www.kmnews.net 무단복제 및 전재 –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