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바로 그 장면’④, 폭주했던 그 시절, ‘爆音列島’(만화_ 폭음열도 2003년작)

2022-05-11

하릴없이 마음이 들끓었던 십대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웃음도 화도 크게 터지던, 언제나 갈팡질팡하고 있단 사실을 숨기려고 센 척 하던, 그리고 무엇보다도 겁이 없었던 그 시절을 말입니다. 저도 어른이 되고 한참 지나서야 안 사실이지만, 실제로 십대의 뇌는 아직 성장 중이기 때문에 어른에 비해 더 스릴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좋게 말하면 태양을 향해 날아간 이카루스처럼, 나쁘게 말하면 하루살이처럼 살던 어릴 적 친구들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폭주족의 세계를 빠져나온 작가


다카하시 츠토무의 만화 ‘폭음열도’는 바로 그 아이들이 주인공인 바이크 만화입니다.


정확히는 십대 폭주족 만화죠.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십 년 넘게 연재됐기 때문에 총 18권이나 됩니다.


작가인 다카하시 츠토무는 자신의 폭주족 경험을 만화로 그려냈고 그만큼 리얼합니다.


1980년대 특공복을 입고 도쿄 시내를 누비던 십대 폭주족들의 모습과 대형 폭주동호회들의 대단했던 위세, 고속도로 아래 공터를 뒤흔드는 바이크의 폭음. 15세인 다카시는 한 눈에 그 세계에 빠집니다. ‘강하고 멋진 남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거죠. 폭주동호회들의 이름도 다카시가 소속된 제로스부터 시작해서 레드엠퍼러, 극락, 헤븐스 조커처럼 요란하기 짝이 없습니다.


다카시는 폭주족이 된 십대가 할 만한 짓들을 골고루 저지릅니다. 부모님과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경찰을 따돌리며 폭주를 뛰고, 술·담배는 물론이고, 폭주족 간의 패싸움에서 굳이 중요한 역할을 도맡고 싶어합니다. 폭주족 선후배들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선망하며 기꺼이 따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다카시는 폭주족 사회에서 꽤 중요한 인물로 성장하고 그가 저지르는 사고의 규모도 커집니다. 그렇지만 다카시는 “폭주족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말할 만큼 폭주족의 삶에 심장을 빼앗겨버리게 됩니다.


달콤하고도 씁쓸한 회상


사실 그런 이야기가 전부라면 중간에 읽다 말았을 겁니다. 센 척하는 어린애들의 이야기를 읽기에 저는 너무 나이가 들었으니까요. 다행히 작가는 폭주족의 이야기를 딱히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도쿄 시내에 쩌렁쩌렁 울리는 수백 대 바이크의 폭음과 바람을 가르는 감각, 동료들 사이에서 무서울 것 없었던 여름밤의 공기처럼 작가가 강렬하게 기억하기에 어쩔 수 없이 미화되고 마는 대목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대목에서 독자들은 폭주족들의 본모습을 발견하고 맙니다. 스티커를 강매해서 돈을 모으는 폭주족들, 별 것 아닌 일에 괜히 위세를 과시하다 개싸움을 벌이는 폭주족들, 자신의 막막한 미래를 잊기 위해 도피하는 폭주족들처럼요. 찌질하고 나약해서 오히려 더 폭주하는 그들의 모습에 조금씩 연민을 갖게 됩니다.


폭주족들의 이야기인 만큼 혼다의 고릴라와 CB400T(호크2), 가와사키 마하3 등 그 시절을 주름잡던 일제 바이크들이 줄줄이 등장합니다.


클래식 바이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눈이 돌아갈 만한 대목들이죠. 동시에 당시 일본의 풍요가 씁쓸하게 와 닿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6.25 전쟁 때문에 쌓아올릴 수 있었던 풍요니까요. 바이크에 관한 대화도 아주 자주 등장합니다. 요시무라의 직관 머플러, 일본의 바이크 면허 체계에 대한 이야기, 당시의 인기 기종에 대한 대화가 쏠쏠한 재미를 줍니다.


기억나는 대사 하나를 적어보겠습니다. “이제 CBX의 시대니까 네가 면허를 딸 때쯤엔 이런 바이크(CB400 F)는 없어질지도 몰라.”


그 때는 몰랐겠죠, CB400F 같은 바이크를 원하는 라이더가 지금도 이렇게 많을 줄은요.


폭주족도 어른이 되나요


작품 후반부로 가면서 폭주족으로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다카시는 점차 미래를 고민하게 됩니다.


멋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 누구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기 때문이겠죠. 폭주족 생활을 졸업하고 (다카시가 보기에)초라해진 선배들, 그리고 몇 건의 치명적인 사고도 다카시를 변화로 이끕니다. 


이런 전개는 꼭 폭주족이 아니더라도 상당수의 라이더가 공감할 것 같습니다. 입문 초기에는 오히려 무서운 줄 모르고 바이크에 빠져 살지만 시간이 흐르고 되돌아보면 아찔한 순간이 분명 있었음을 깨닫게 되죠. 주변 라이더들의 사고 소식도 가끔 들려오고요. 그러다보면 가늘고 오래 타자는 목표가 자리잡는 것 아닐까요.


결국 다카시의 이야기는 성장담으로 끝을 맺지만 어쩐지 쓸쓸한 느낌도 듭니다. 다만 이 작품을 읽는 사람이 어떤 십대 시절을 보냈는지에 따라 차이가 크게 날 듯도 합니다. 십대 때 바이크를 타셨던 분들이라면 무조건 재미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십대 때든 지금이든 질풍노도의 시기 따위 없었던 분들이라면 그다지 공감되는 대목이 없을 것도 같고요.


저는 십대 시절 같은 작가의 작품 ‘지뢰진(세주문화 버전, 기억나시는 분?)’을 꽤 좋아했고 세상을 동물의 왕국 같은 약육강식의 세계로 인식했던 기억이 살짝 납니다. 다카시와 똑같이요. 그런 십대 시절의 가치관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 이 만화를 보면서 새삼 되새겨보게 됐습니다.


마지막 감상을 덧붙이자면 서른이 넘어서 바이크에 입문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듭니다.


글 첫머리에도 적었지만 십대들은 겁이 없고, 바이크 사고율도 높습니다. 실제로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6~2018년 이륜차 교통사고 발생건수에서 25세 미만이 차지하는 비중은 34.2%나 됩니다.


혹시 폭음열도처럼 바이크를 타는 십대와 마주치게 된다면 꼭 설득해서 미래를 지켜줘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글을 끝맺어 봅니다.

 

만화 속 드림 바이크, ‘혼다 CB400F’




다카시가 처음으로 갖게 된 바이크가 CB 400F입니다. 혼다가 1975년 첫 출시한 바이크로 408cc의 공랭식 4기통 SOHC 엔진을 장착했으며 최고 출력은 37마력, 최대 토크는 32.5 Nm. 다소 낮은 핸들바와 살짝 뒤에 자리잡은 풋페그 덕분에 공격적인 라이딩 포지션을 취하게 된다. 바로 그 점이 매력 포인트지만 통학이나 통근용으로는 다소 불편한 감이 있는 데다 CB400F가 출시된 직후 일본의 면허 체계가 바뀌는 바람에 대형 바이크 면허를 취득해야 탈 수 있는 바이크가 되어버렸다.


시장 반응이 미지근하자 혼다는 1976년에 부랴부랴 더 높은 핸들바와 덜 스포티한 위치의 풋페그를 단 데다 배기량을 398cc로 낮춘 CB400F를 선보이지만 이미 뒤늦은 감이 있었다. 결국 CB400F는 1977년식을 마지막으로 빠르게 단종됐다.


물결처럼 흐르는 매니폴더를 포함한 클래식한 디자인은 지금 봐도 상당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출시 직후의 광고 카피, ‘너는 바람이다’도 라이더들의 심금을 울렸다.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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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02호 / 2022.5.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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