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바로 그 장면’_상견니 (2022년 作)

2024-11-25

무한히 시간을 거스르는 사랑


‘상친자’는 무슨 뜻일까요? 답을 맞추셨다면 축하드립니다. 트렌드에 상당히 밝은 독자님일테니까요. 상친자는 대만 드라마 ‘상견니에 미친 자’라는 뜻입니다. 상견니는 대만에서 큰 인기를 끈, 그리고 한국에서도 적잖은 팬층이 형성돼 있는 드라마입니다.

상견니는 2019년부터 2020년 사이 대만에서 방영됐습니다. 그 후 우리나라에도 전파됐고, 2023년 1월에는 상견니 영화판이 국내 개봉했습니다. 저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만 특유의 싱그러운 감성이 담긴 청춘 영화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견니는 예상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달달한 시작과 예상치 못한 전개


드라마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기 싫어서 영화부터 봤습니다. 영화판이 드라마판의 요약본이거나 번외편이라고, 어쨌거나 영화판만 봐도 충분할 거로 생각해서입니다.


가볍게 볼 생각으로 영화를 틀었는데 첫 장면부터 예상을 벗어났습니다. 의미심장한 죽음을 묘사하는 첫 장면은 일단 접어두고, 주인공들의 이야기부터 살짝 소개해 보겠습니다.


리쯔웨이와 황위쉬안은 2009년 밀크티 가게에서 직원과 손님으로 만나 가까워지고 사랑에 빠집니다. 이후 전형적인 대만 청춘 로맨스물다운 달콤한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다소 억지스러운 우연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대사가 지루해질 때쯤, 영화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버립니다. 리쯔웨이가 의문의 사고로 사망한 후 혼자가 된 황위쉬안은 어떠한 계기를 통해 과거로 이동합니다.


도착한 시점은 리쯔웨이가 죽기 이틀 전입니다. 그런데 단순한 타임 슬립이 아닙니다. 황위쉬안은 자신과 매우 닮은 또 다른 여성, 천윈루로서 과거에서 눈을 뜹니다. 몸은 천윈루지만 정신은 미래에서 온 황위쉬안임을 설명하는 과정, 그리고 리쯔웨이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고 리쯔웨이 본인과 과거 시점의 황위쉬안을 설득하는 과정은 다행히 속도감 있고 설득력 있게 전개됩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닙니다. 세어보진 않았습니다만, 영화 속의 인물들은 서로를 구하기 위해 수 차례의 타임 슬립을 거듭합니다.


대만 영화의 필수 소품, 모터사이클


사실 첫 타임 슬립 대목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잠시 인터넷을 검색해 봤습니다.


알고 보니 상견니 영화판은 상견니 드라마를 이미 본 ‘상친자’들을 위한 선물 세트 같은 영화였습니다. 그러니 여기까지의 소개로 흥미가 생긴 분들은 드라마를 먼저 시청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현재 국내에서 상견니 드라마를 감상할 수 있는 플랫폼은 없는 상황입니다.


다행히 영화판은 네이버 시리즈온, 왓챠, 웨이브 등에서 볼 수 있으며 제작진들은 ‘드라마를 안 봤어도 영화판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영화에는 종종 리쯔웨이의 모터사이클이 등장합니다. 황위쉬안도 뒷좌석에 타고 행복한 시간을 누리는 장면도 빠질 수 없습니다. 리쯔웨이의 모터사이클은 대만 스즈키의 ‘슝스 125 SD’라는, 우리에게 꽤나 낯선 모델명입니다.


이 모델은 그간 ‘바로 그 장면’에서 등장했던 그 어느 모터사이클보다 관련 정보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아마도 대만 등 일부 국가에서만 출시됐던 모델이기 때문일 겁니다. 다행히 중국어 전공자로서 오랜만에 전공을 살려본 결과, 대만 스즈키의 출발점부터 정보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브릿지스톤이 대만 스즈키에 넘긴 것


대만 스즈키의 전신은 ‘타이룽 공업’이었습니다. 타이룽 공업은 일본 타이어 회사인 브릿지스톤과의 합작으로 모터사이클을 생산합니다.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브릿지스톤도 직접 모터사이클을 생산하던 시절(1952~1970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혼다, 스즈키, 가와사키, 야마하 등 자국의 쟁쟁한 모터사이클 기업들은 브릿지스톤의 자체 모터사이클 생산을 곱게 봐주지 않았습니다. 모터사이클 시장에서 경쟁하든, 타이어만 공급하든 둘 중 하나만 택하라는 압박이 이어집니다.


결국 브릿지스톤은 모터사이클 사업을 포기하고 대만의 타이룽 공업에 넘깁니다. 이후 1984년 타이룽 공업은 일본 스즈키와의 합작 회사인 대만 스즈키(타이링)을 창립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브릿지스톤이 생산했던 BS 100 모델을 기반으로 만든 모델이 바로 대만 스즈키의 ‘슝스 125 SD’입니다.


현재 단종됐기 때문에 어떤 모터사이클인지 알 방법은 없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모습만 보면 레트로의 정석 같은 디자인입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면, 저는 사실 영화 중반쯤에서 누가 어디로 타임 슬립을 했는지 이해하기를 포기했습니다. 주인공 두 명과 똑같이 생긴 두 명이 자꾸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데다 여러 시간대가 뒤엉킨 탓이라고 해명해 봅니다. 그러나 해석하면서 퍼즐을 풀어야 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님들이라면, 그러면서 달콤하고 애절한 사랑이 곁들여진 이야기를 원한다면 상견니를 추천해 봅니다.

 

영화 속 그 바이크

스즈키, 슝스 125 SD

 

스즈키 로고를 달고 있지만 색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브릿지스톤이라는 배경 때문일 겁니다. 바로 위의 사진은 상당히 투박해 보이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슝스 125 SD는 아주 반짝이도록 손을 본 녀석입니다.


124cc 공랭식 엔진으로 최고출력은 10.2ps/6,500rpm, 최대토크는 1.16kg -m/5,000rpm을 발휘하며 공차중량은 137kg입니다. 슝스 125 SD는 원래 125cc외에 135cc, 150cc까지 삼형제였습니다.

 

유주희 (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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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63호 / 2024.11.1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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