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바로 그 장면’⑨_아키라의 ‘바로 그 장면’에 대한 최고의 헌사

2022-10-13

놉(NOPE), 2022년 작


영화 놉의 포스터


공포영화 ‘놉(NOPE)’을 얼마 전 극장에서 두 번 관람했습니다.


‘조동필’이란 애칭까지 있을 만큼 한국에서도 꽤 마니아층을 거느린 조던 필 감독의 세 번째 국내 개봉작입니다.


앞서 ‘겟아웃(2017년 작)’과 ‘어스(2019년 작)’에서 깊은 감동을 했는데 설마 더 엄청난 영화로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딱 한 대뿐이긴 하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바이크가 등장하더군요. 영화의 스포일러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줄거리까지도 최대한 피하면서 썼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보면 좋을 영화라 되도록 영화를 본 다음 읽기를 추천합니다.


목장과 테마파크와 시트콤


오티스 주니어(OJ) 헤이워드


‘놉’은 대체로 공포영화지만 SF 영화, 서부 영화의 면모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오티스 주니어(OJ) 헤이워드와 에메랄드 헤이워드 남매입니다. 위기에 처한 목장을 회생시켜야 하는 OJ는 언제나 뚱한 표정이지만 동생인 에메랄드는 뭐가 그리 신났나 싶을 만큼 항상 기운차고 떠들썩합니다. 에메랄드는 영화 초반에 ‘모터사이클도 탄다’라고 언급하죠. 성격이 극과 극이라 티격태격하던 남매는 ‘이상한 현상’을 계기로 어쩔 수 없이 뭉치게 됩니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은 인근 테마파크의 사장인 ‘주프’로 출연합니다. 어지간한 영화였다면 상당히 기능적으로만 소비됐을 법한 인물인데 과거의 트라우마 덕에 한층 다층적인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끔찍한 과거를 떠올릴 때의 나른해 보이는 얼굴이 오히려 무시무시합니다.


여동생 에메랄드 헤이워드


주프는 남매보다 앞서 ‘이상한 현상’을 목격하고 나름의 계획을 세워둔 상태입니다. 주프는 이 계획을 통해 (아마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끔찍한 사건을 극복하는 동시에 큰돈을 벌려고 합니다.


영화 초반에는 조금 어리둥절할 수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다짜고짜 이상한 시트콤을 보여주거든요. 별 상관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영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장면이니까 처음부터 집중해서 봐야 합니다. 그리고 OJ와 에메랄드, 주프가 차례대로 등장하면서 소개되는 과정에서도 꽤 많은 정보를 줍니다. 처음부터 아주 스펙터클한 전개는 아니라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영화가 끝나고 약간 충격을 받게 될 만큼 의미심장한 내용과 대사들이 많습니다.


침팬지 길들이기


영화에서는 ‘길들임’에 대한 묘사가 거듭 이뤄집니다. 시트콤의 등장인물들은 침팬지를 길들여서 가족이 되고, 헤이워드 남매는 목장의 말들을 길들이는 법을 어렸을 때부터 배웠고요. ‘침팬지를 길들였다’라고 믿는 주프는 어른이 되어서 과거의 어른들과 똑같은 시도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들에게 깊은 애정과 유대감을 가진 OJ와 달리 주프는 말들을 ‘수단’으로만 취급합니다. 동물들의 습성과 기분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OJ와 그렇지 못한 주프가 각자 어떤 결말을 맞는지가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관람 포인트는 인종차별입니다. 조던 필 감독은 전작에서 꾸준히 인종차별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노예제나 조지 플로이드 사건(2020년 미국 경찰이 비무장 상태의 흑인을 과잉 진압해 결국 사망케 한 사건)처럼 거대하고 직접적인 폭력이 아니라, 차별받는 사람만이 알아챌 수 있는 일상적인 폭력에 대해서요.


흑인에 대한 차별이 별로 와 닿지 않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해외에서 백인들에게 ‘칭챙총’, ‘니하오’란 말을 듣고 무시 받는 인종이란 사실을 꼭 기억합시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바로 그 장면


그래서 도대체 바이크는 언제 등장하냐고요?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정체 모를 누군가가 남매의 목장에 나타납니다. 상당히 낯설게 생긴 전기바이크로요. 이 바이크는 이탈리아 전기바이크 회사인 에네르지카(Energica, 영어식으로는 에너지카라고 읽습니다)의 에바 에스에스9(Eva EsseEsse9)입니다. 


미국의 제로 모터사이클과 함께 (비교적) 대중적인 전기 모터사이클로 쌍벽을 이루는 회사인데 충전 시간만 빼면 대단한 스펙을 자랑합니다. 왜 하필 전기바이크인지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키라의 슬라이드 모습


유려하게 목장을 가로지르는 이 바이크는 나중에 에메랄드에게 아주 큰 쓸모를 발휘합니다. 그리고 에메랄드는 이 바이크를 타고 무려 ‘아키라 슬라이드’를 오마주합니다. 오토모 가츠히로의 애니메이션 ‘아키라’에서 카네다가 빨간 바이크로 슬라이딩 턴을 하는 그 장면 말입니다. 이미 다양한 영화·만화에서 숱하게 오마주 또는 패러디한 장면이지만 이보다 멋졌든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라이더로서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죠.


이 글이 지면에 실릴 때쯤에도 ‘놉’의 극장 상영이 이어지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될 수 있으면 극장에서, 극장이 어렵다면 최대한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감상하시길 권합니다. 이왕이면 바이크 슬라이드 장면에서 손뼉도 쳐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바이크가 질리도록 등장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결코 잊지 못할 장면일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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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12호 / 2022.10.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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