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바로 그 장면’⑩_TT 3D : 클로저 투 디 에지 (2011년작)

2022-10-25

그래, 우리는 레이싱에 미쳤어!


TT레이스에 출전한 가이 마틴과 CBR1000RR 파이어 블레이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레이싱, 영국 맨섬에서 열리는 TT(투어리스트 트로피) 레이스에 대해 아실 겁니다.


1907년부터 매년 5~6월에 2주간 열리는 이 대회의 특이점은 공도 레이스라는 점. 맨섬의 산길과 주택가 도로로 구성된 코스기 때문에 자칫 사고가 나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시속 300km로 달리다가 삐끗해도 서킷에선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곳에서는 조금만 이탈하면 급경사 아래로 추락하거나 주택 벽돌담에 충돌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회가 시작된 이래 2022년 현재까지 265명이 사망했을 정도입니다.


TT3D : 클로저 투 디 에지 포스터


그런 위험을 무릅쓰는 이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TT에 대한 2011년작 다큐멘터리 ‘TT3D : 클로저 투 디 에지’를 감상했습니다.


제목처럼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TT 레이서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다큐멘터리는 3D로 제작됐었다고 하는데 극장에서 3D로 봤다면 몰입감이 어마어마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불행히도 한글 자막은 없어서(그나마 영어 자막으로 볼 수 있는 채널도 있습니다만 말이 너무 빨라서 한 번에 이해하긴 어려웠습니다), 독자님들이 좀 더 편히 영상을 감상하실 수 있도록 이 지면에 최대한 많은 내용을 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극한의 위험에 중독된 사람들


다큐멘터리에는 유명한 TT 레이서들이 줄줄이 등장합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반항아로 유명한 가이 마틴 선수에 초점을 맞춥니다.


울버린을 연상시키는 머리와 수염, 진한 링컨셔 억양의 영어, 기자간담회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규정 위반으로 주최 측을 도발할 만큼 자유분방한 매력으로 상당한 규모의 팬클럽을 거느린 있는 선수입니다.


다른 선수들의 인터뷰와 소개도 이어집니다. 과묵한 무사 같은 이미지의 이안 허친슨, 아버지와 삼촌을 모터사이클 레이싱 사망 사고로 잃고도 TT에 참가한 마이클 던롭. 그의 삼촌인 조이 던롭은 TT에서 26차례나 승리를 거뒀지만 단 한 순간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여성 레이서로서 TT에서 최고의 기록(2010년 촬영 당시 기준)을 거둔 제니 틴머스도 잠시 등장합니다.


카메라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TT를 꾸리는 사람들에게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춥니다. 그중 한 명이 과거 TT 우승까지 했지만 사고 후 더 이상 레이싱에 출전할 수 없게 된 리처드 ‘밀키’ 퀘일입니다. 그는 이제 TT 진행 요원으로서 레이싱을 지켜봅니다.


레이스 코스 중간중간을 지키며 경기 진행을 돕는 마셜들, 응급구조 요원들, 사진작가들은 TT에 대한 다양한 설명을 보태줍니다. 레이싱 코스에 갑자기 사슴이 뛰어들어서 선수에게 상처를 입힌 사건, TT의 우승 요건(속도뿐만 아니라 완벽한 미케닉과 멘탈 관리와 체력, 신속한 피트스톱, 그리고 엄청난 운이 필요하죠), 무시무시한 죽음의 위협도요.


공도 레이스의 기쁨과 눈물


한 출연자는 서킷 레이싱과 공도 레이싱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서킷 레이싱이 로프를 묶은 채로 하는 암벽 등반이라면, 공도는 맨손 암벽 등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킷에선 작은 실수를 해도 로프에 매달려 살아남을 수 있지만, 공도에선 심각한 부상 또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전설적인 엔진 튜너로 수많은 레이싱 머신의 엔진을 책임진 크리스 메이휴는 그동안의 고통을 털어놓습니다. 자기 손을 거친 엔진으로 출전한 선수들의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마약 딜러 같은 사람 아닌가, 레이싱이라는 마약에 중독된 선수들이 생명을 지킬 수 있게 내가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깊은 자책감에 시달린다고요. 영화에는 TT에서의 숱한 사고 영상이 담겨 있습니다.


남편인 폴 돕스 선수를 TT에서 잃은 부인 브리짓 돕스의 이야기는 충격적입니다. 브리짓은 2010년 TT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잠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혹시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다시는 TT를 즐기지 못하겠지?” 그리고 한 시간 후, 남편의 비보를 전해 듣습니다.


‘누구든 TT에서 죽을 수 있지만 나는 아닐 것’이란 마음으로 2주간 같은 양말만 신는 미신적인 노력을 거듭하는 레이서의 얼굴도 기억에 남습니다.


극한의 짜릿함을 감당 하시겠습니까


TT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나, 이제 2010년 TT의 승리자가 누가 될지만 남았습니다.


10년도 더 지난 경기니까 검색해보면 바로 나오겠지만 이제 상당히 친근하게 느껴지는 선수 중 누가 이길지 상당히 긴장감 넘치는 기분으로 경기를 지켜보게 됩니다. 마치 편한 차림으로 집 마당에서 TT를 구경하는 맨섬 주민들처럼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가이 마틴이 결국 승리를 거두게 될까요? 마지막에 정말 긴박한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TT에서 쏜살같이 달리는 바이크들도 원 없이 볼 수 있습니다. 두 바퀴가 온전히 땅에 붙은 바이크보다는 공중 부양한 바이크가 어째 더 자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마운틴 코스를 유려하게 지나가는 레이싱 바이크를 지켜보며 그 아름다움에 순간 숨을 멈추게도 됩니다. 그러다가도 ‘이건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물론 저는 어떤 레이스에도 나갈 실력이 안 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서킷 경력을 쌓고 자신감이 생기면 TT에 나가보고 싶어질까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한국인 TT 출전자나 우승자도 나오게 될지 상상해봤습니다.


독자님이라면 TT 출전을 결심 하시겠습니까? 내 생명,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을 무릅쓰면서까지 극한의 속도에 도전 하시겠습니까?


영화를 보면서 숙고해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영화 속 바이크, CBR1000RR 파이어 블레이드


2010년 TT에서 가이 마틴이 타고 출전한 바이크입니다.


1992년 선보인 CBR900RR을 계승한, 혼다 의 기술력을 집약한 슈퍼 바이크. 2010년식 기준으로 176마력의 최고출력과 115Nm/11.73 kg·m의 최대토크를 냅니다.


TT에서 23차례나 우승 경력을 가진 존 맥기 니스 선수 역시 이 바이크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뒀습니다.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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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13호 / 2022.10.16~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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