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여인은 ‘몬스터’를 탄다
포스터부터 헬멧을 들고 있는 드라마라니, 안 볼 수 없습니다. ‘우먼 오브 더 데드’, 그러니까 ‘죽음의 여인’은 보기 드문 오스트리아 드라마입니다. 관광지 몇 곳 가봤을 뿐 오스트리아에 대해 아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만, 우리와 먼 문화권의 콘텐츠를 접하게 될 때면 ‘얼마나 인기 있었으면 한국에까지 소개됐을까?’ 싶어 기대가 커집니다. 게다가 6부작으로 짧은 편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말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서진 행복, 이야기의 시작

주인공 블룸의 직업은 특이하게도 장의사입니다. 부모도, 조부모도 그랬듯이 자택 지하에 마련된 작업 공간에서 고인을 염하고 떠나는 길을 배웅합니다.
더 독특하게도, 블룸은 고인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이웃들과 대화하는 것처럼 가벼운 잡담들, 농담들입니다. 이 능력이 진짜인지 블룸이 그저 작업 도중 무료함 때문에 상상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해 보입니다.
이제껏 블룸은 행복한 가정을 꾸려왔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듯한 딸이 조금 걱정이지만 남편과의 사이는 더없이 돈독합니다. 남편의 직업은 경찰로 두카티 몬스터를 타고 경찰 제복 차림으로 출퇴근합니다. 그러나 남편은 블룸이 보는 앞에서, 그것도 집 앞에서 차에 치여 사망합니다. 가해 차량은 마치 남편이 사망했는지 확인하듯 잠시 현장에 머물렀다가 그대로 떠납니다.
그렇게 블룸의 행복이 깨집니다. 블룸은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남편의 시신을 직접 염하며 오열합니다.
서늘한 복수의 길

경찰이 뺑소니 차량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가고, 정비소에서 블룸에게 연락이 옵니다. 수리를 마친 몬스터의 반짝임이 오히려 슬프게 느껴집니다.
블룸은 오랫동안 모터사이클을 타지 않았지만, 다행히 면허는 갖고 있습니다. 그대로 몬스터를 몰고 집으로 향하는데, 남편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발산하듯 다소 거친 주행입니다.
그렇게 달리는 길은 처연하게 아름답습니다. 눈 쌓인 산 사이로 구불구불한 왕복 2차선 도로가 이어지는데, 유럽을 잘 몰라서 그런지 언뜻 노르웨이나 핀란드 같은 느낌입니다. 찾아보니 촬영 지역이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 알프스 산맥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라이더로서는 장갑도 없이, 오픈페이스 헬멧에 코트 차림으로 몬스터를 탄 블룸이 몹시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드라마적 허용이겠지만 저 정도의 날씨라면 손가락과 턱의 동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우려에 급기야 티롤 지역의 월별 평균 기온까지 찾아봤습니다. 다행히도 예상과 달리 티롤의 한겨울 최저 기온은 평균 영하 6도로 한국보다 따뜻한 편이었습니다.
한여름의 낮 최고 기온이 14도로 1년 내내 서늘하거나 춥지만 그렇다고 한국처럼 매섭게 춥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산에 쌓인 눈이 만년설이며 드라마의 시간적 배경도 좀 더 따뜻한 3, 4월이라고 가정하고 나서야 블룸의 손가락에 대한 걱정이 가셨습니다. 도로의 살얼음이나 블랙아이스에 대해서까지 상상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블룸은 이후 대부분의 이동을 두카티 몬스터로 해결합니다. 첫 주행 이후로는 장갑도 챙기고, 옷차림도 모터사이클에 어울리게 바뀝니다. 다만 풀 페이스 헬멧을 살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차가운 도로를 달리며 서늘한 기운을 풍기는 블룸의 몬스터를 감상하다 보면 장의차만큼은 아니더라도 죽음과 복수의 이미지에 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저함도 망설임도 없이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물건을 정리하던 블룸은 사소하게 미심쩍은 점을 발견합니다. 처음에는 외도를 의심했지만, 곧 남편의 죽음에 얽힌 이들에 대한 단서를 찾게 됩니다. 그렇게 발견한 진실은 역겹기 짝이 없습니다.
다행히 블룸은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여인이라는 제목처럼 단호합니다. 물론 살아있는 범죄자들을 처치하는 일은 죽은 이들을 염습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지만, 블룸을 얕보는 범죄자들의 오만함을 이용해 허를 찌르는 전략이 꽤나 성공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유력자, 부패 경찰 등 다소 진부한 설정도 눈에 띕니다. 그런데도 블룸이라는 인물이 단선적이지 않은 데다 이야기 전개도 빨라 흠을 메워줍니다. 종종 화면을 가득 채우는 모터사이클 주행 장면에서 속이 탁 트이는 것은 물론입니다.
서늘한 스릴러 드라마, 모터사이클을 멋지게 담아내는 드라마로 격하게 추천해 봅니다.
영화 속 그 바이크
두카티 몬스터

두카티를 대표하는 모델 중 하나로 출시한 지 30년이 넘어 어느덧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기종이기도 합니다.
937cc 엔진으로 최대 111마력(82kW/ 9,250rpm)의 힘과 9.5kg·m/6,5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합니다. 그러면서도 무게는 건조중량 기준 166kg으로 가볍습니다. 슬림한 복서의 탄탄한 근육이 연상되는 디자인으로 라이더라면 한 번쯤 꿈꿀 법한 모터사이클입니다.
유주희(ginger@sedaily.com)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유주희 #바로그장면 #우먼오브더데드 #두카티 #몬스터
한국이륜차신문 2024.12.16~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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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여인은 ‘몬스터’를 탄다
포스터부터 헬멧을 들고 있는 드라마라니, 안 볼 수 없습니다. ‘우먼 오브 더 데드’, 그러니까 ‘죽음의 여인’은 보기 드문 오스트리아 드라마입니다. 관광지 몇 곳 가봤을 뿐 오스트리아에 대해 아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만, 우리와 먼 문화권의 콘텐츠를 접하게 될 때면 ‘얼마나 인기 있었으면 한국에까지 소개됐을까?’ 싶어 기대가 커집니다. 게다가 6부작으로 짧은 편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말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서진 행복, 이야기의 시작
주인공 블룸의 직업은 특이하게도 장의사입니다. 부모도, 조부모도 그랬듯이 자택 지하에 마련된 작업 공간에서 고인을 염하고 떠나는 길을 배웅합니다.
더 독특하게도, 블룸은 고인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이웃들과 대화하는 것처럼 가벼운 잡담들, 농담들입니다. 이 능력이 진짜인지 블룸이 그저 작업 도중 무료함 때문에 상상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해 보입니다.
이제껏 블룸은 행복한 가정을 꾸려왔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듯한 딸이 조금 걱정이지만 남편과의 사이는 더없이 돈독합니다. 남편의 직업은 경찰로 두카티 몬스터를 타고 경찰 제복 차림으로 출퇴근합니다. 그러나 남편은 블룸이 보는 앞에서, 그것도 집 앞에서 차에 치여 사망합니다. 가해 차량은 마치 남편이 사망했는지 확인하듯 잠시 현장에 머물렀다가 그대로 떠납니다.
그렇게 블룸의 행복이 깨집니다. 블룸은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남편의 시신을 직접 염하며 오열합니다.
서늘한 복수의 길
블룸은 오랫동안 모터사이클을 타지 않았지만, 다행히 면허는 갖고 있습니다. 그대로 몬스터를 몰고 집으로 향하는데, 남편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발산하듯 다소 거친 주행입니다.
그렇게 달리는 길은 처연하게 아름답습니다. 눈 쌓인 산 사이로 구불구불한 왕복 2차선 도로가 이어지는데, 유럽을 잘 몰라서 그런지 언뜻 노르웨이나 핀란드 같은 느낌입니다. 찾아보니 촬영 지역이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 알프스 산맥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라이더로서는 장갑도 없이, 오픈페이스 헬멧에 코트 차림으로 몬스터를 탄 블룸이 몹시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드라마적 허용이겠지만 저 정도의 날씨라면 손가락과 턱의 동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우려에 급기야 티롤 지역의 월별 평균 기온까지 찾아봤습니다. 다행히도 예상과 달리 티롤의 한겨울 최저 기온은 평균 영하 6도로 한국보다 따뜻한 편이었습니다.
한여름의 낮 최고 기온이 14도로 1년 내내 서늘하거나 춥지만 그렇다고 한국처럼 매섭게 춥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산에 쌓인 눈이 만년설이며 드라마의 시간적 배경도 좀 더 따뜻한 3, 4월이라고 가정하고 나서야 블룸의 손가락에 대한 걱정이 가셨습니다. 도로의 살얼음이나 블랙아이스에 대해서까지 상상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블룸은 이후 대부분의 이동을 두카티 몬스터로 해결합니다. 첫 주행 이후로는 장갑도 챙기고, 옷차림도 모터사이클에 어울리게 바뀝니다. 다만 풀 페이스 헬멧을 살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차가운 도로를 달리며 서늘한 기운을 풍기는 블룸의 몬스터를 감상하다 보면 장의차만큼은 아니더라도 죽음과 복수의 이미지에 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저함도 망설임도 없이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물건을 정리하던 블룸은 사소하게 미심쩍은 점을 발견합니다. 처음에는 외도를 의심했지만, 곧 남편의 죽음에 얽힌 이들에 대한 단서를 찾게 됩니다. 그렇게 발견한 진실은 역겹기 짝이 없습니다.
다행히 블룸은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여인이라는 제목처럼 단호합니다. 물론 살아있는 범죄자들을 처치하는 일은 죽은 이들을 염습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지만, 블룸을 얕보는 범죄자들의 오만함을 이용해 허를 찌르는 전략이 꽤나 성공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유력자, 부패 경찰 등 다소 진부한 설정도 눈에 띕니다. 그런데도 블룸이라는 인물이 단선적이지 않은 데다 이야기 전개도 빨라 흠을 메워줍니다. 종종 화면을 가득 채우는 모터사이클 주행 장면에서 속이 탁 트이는 것은 물론입니다.
서늘한 스릴러 드라마, 모터사이클을 멋지게 담아내는 드라마로 격하게 추천해 봅니다.
영화 속 그 바이크
두카티 몬스터
두카티를 대표하는 모델 중 하나로 출시한 지 30년이 넘어 어느덧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기종이기도 합니다.
937cc 엔진으로 최대 111마력(82kW/ 9,250rpm)의 힘과 9.5kg·m/6,5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합니다. 그러면서도 무게는 건조중량 기준 166kg으로 가볍습니다. 슬림한 복서의 탄탄한 근육이 연상되는 디자인으로 라이더라면 한 번쯤 꿈꿀 법한 모터사이클입니다.
유주희(ginger@sedaily.com)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유주희 #바로그장면 #우먼오브더데드 #두카티 #몬스터
한국이륜차신문 2024.12.16~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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