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바로 그 장면’⑫_영화, 잃어버린 아이들(2015년 작)

2022-12-12

아버지는 달린다, 낡은 바이크처럼


지난 주말 1990년대 영화인 지존무상 1, 2(왓챠, 티빙, 웨이브, 시리즈온)를 봤습니다.


유덕화와 알란 탐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는 데다 지존무상 2 포스터에는 바이크를 배경으로 장검을 든 유덕화가 포즈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두 영화에는 정작 바이크가 별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건너뛰어, 유덕화의 2015년 작 ‘잃어버린 아이들(왓챠, 티빙, 웨이브, 시리즈온)’을 틀었습니다. 


제작 당시 기준으로 50대 후반이었던 유덕화가 낡은 바이크를 타고 중국 전역을 돌며 잃어버린 아들을 찾는 영화입니다. 이미 가슴이 찡해지지 않습니까? 다행히 눈물 펑펑 흘리게 만드는 신파극은 아니었습니다.


깃발을 펄럭이며 달리는 바이크


레이저 콴(유덕화)은 15년째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중국 전역을 헤매는 중입니다. 지저분한 얼굴로 길바닥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는 모습, 더 이상 흘릴 눈물조차 남지 않은 듯한 지친 얼굴이 가슴이 아픕니다.


그의 낡고 더러운 바이크에는 단출한 여행 짐과 함께 아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인쇄된 깃발들이 달려 있습니다. 그렇게 헤매던 그는 어느 날 트럭과 부딪혀 사고를 당합니다. 바이크를 고쳐준 수리점 청년 정솨이는 그의 사연을 알고는 수리비를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시 길을 나선 레이저 콴을 따라서 온 정솨이. 뜬금없이 묻습니다.


“부모가 어떻게 자식을 잃어버릴 수 있죠?”


자식을 찾아 헤매는 부모에게 무례한 질문이지만 레이저 콴은 담담하게 대답합니다. 자식을 잃어버리고픈 부모는 없다고요. 그러면서 오히려 실종 아동에 대한 정보를 무엇이라도 알게 되면 꼭 인터넷에 글을 올리라고 당부합니다. 글이 많을수록 희망도 커진다면서요.


알고 보니 정솨이는 그 역시 어렸을 때 유괴당한 실종 아동입니다. 중국은 산아제한, 남아선호 등으로 인해 특히 남자아이를 유괴해 매매하는 사건이 자주 발생했다고 합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혹은 아들이 없어서, 심지어 아이가 많을수록 복이 들어온다는 미신 때문에 영유아들을 유괴해 매매하는 거죠.


중국도 바이크는 고속도로 금지


레이저 콴의 바이크는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완전히 못 쓰게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레이저 콴과 정솨이는 정솨이의 바이크에 타고 당분간 동행하기로 합니다. 정솨이의 바이크는 레이저 콴의 것과는 달리 반짝반짝한 새 차입니다.


정솨이는 4살 때의 기억을 되살려 자기 부모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생면부지지만 자식을 잃어버린 아버지, 부모를 잃어버린 자식으로서 둘은 서로에게 커다란 연민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가족을 상대방의 얼굴에 비추어보기도 할 테고요. 안전 장비라고는 반모 헬멧뿐이라는 게 내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둘은 마치 진짜 아버지와 아들처럼 서로를 챙기고 때로는 투덕거리기도 하면서 여행을 이어갑니다.


둘의 여정은 어떻게 끝을 맺게 될까요? 결말은 직접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놀라운 정보.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실화의 주인공은 24년간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40만km를 헤맨 궈강탕입니다. 1997년 2세 아들이 유괴된 후 전국을 떠도느라 바이크를 10대나 폐차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길 위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은 기꺼이 그를 도와줬고, 2015년 영화가 개봉한 후 그의 이야기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면서 공안의 도움 끝에 2021년 드디어 아들을 찾았습니다. 영화에 담긴 선의가 실제로 결실을 본 셈입니다.


영화에는 라이더들의 눈길을 끌 만한 장면도 적잖이 등장합니다. 정솨이의 수리점 풍경, 중국 풍경을 배경으로 달리는 바이크들. 그리고 레이저 콴이 바이크에 탄 채 고속도로에 진입했다가 경찰에 붙잡히는 장면도 라이더로서는 감상이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바이크의 고속도로 진입이 금지된 국가가 몇 없는 와중에 한국, 중국이 같은 상황이라니 말입니다. 중국은 사회주의이기 이전에 하나의 당이 단독으로 정권을 잡아 온 국가로서… 여기까지만 적겠습니다.


바이크의 자유보다는 책임


레이저 콴의 낡은 바이크, 정솨이의 신형 바이크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또 재미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바로 중국의 바이크 분류법입니다. 우리나라의 네이키드는 ‘가차(街車)’라고 부릅니다. 한자 자체는 ‘스트리트 바이크’ 정도의 느낌이네요. 소위 ‘R차’라고도 부르는 레플리카, 스포츠 바이크는 ‘달릴 포’를 붙여서 ‘포차(跑車)’입니다. 레이싱 바이크를 가리킬 때는 또 ‘새차(賽車)’를 씁니다. ‘굿할 새(賽)’에는 ‘우열을 겨룬다’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중국어에서 경기, 대결 등의 단어에 쓰입니다.


클래식 바이크는 ‘복고차(復古車)’, 투어러는 ‘여행차(旅行車)’ 그리고 오프로드 바이크는 들판을 달린다는 ‘월야(越野) 바이크(摩托車)’라고 합니다. 크루저는 영어의 뜻 그대로 ‘순항차(巡航車)’인데, 황태자가 타는 바이크라며 ‘태자차(太子車)’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20세기 중반, 홍콩의 부잣집 자제들이 미국에서 들여온 크루저를 즐겨 탄 데서 비롯된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스쿠터는 ‘발판(踏板)’이 있다는 의미에서 ‘답반차(踏板車)’ 또는 스쿠터를 그대로 음차해서 ‘속극달(速克達, 중국어 발음은 ‘수커다’입니다)‘이라고 합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대부분의 바이크 영화는 바이크의 스릴과 자유를 주로 다뤘지만, 이 영화는 가혹한 운명을 짊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래되고 낡은 바이크는 그들의 지친 얼굴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습니다.


한순간에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심정을 감히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그 끔찍한 고통은 무엇을 위한 걸까요? 왜 어떤 사람들은 평생 불행해야 하는 걸까요? 삶이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무자비할 수 있음에도 영화처럼 타인의 불행에 함께 아파하고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돼야겠단 생각을 다시금 해봅니다.

 

영화 속 그 바이크

중선(宗申)의 창업(創業), ZS150-6B


149cc 단기통 수랭식 엔진으로 최고출력은 8.5 kW/8,500rpm, 최대토크는 10N·m/7,500 rpm을 발휘하며 건조중량 130kg, 최고 속도는 시속 95km. 2011년부터 판매했습니다.


내구성 등은 떨어지지만 저렴한 가격(초기 출시가 90만 원대)이 매력적이라는 중국 라이더들의 평가입니다.


이 바이크의 제조사인 ‘중선(宗申)’은 1982년 설립돼 현재 2만여 명의 직원이 소속돼 있는 중국 바이크 제조사 중 상위권 기업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종쉔(‘중선’은 국립국어원의 외국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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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16호 / 2022.1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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