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바로 그 장면' ⑬_너는 나의 UFO (2022년 작)

2022-12-26

터키의 공도 레이스, 그리고 달달한 로맨스

 

이국적인 풍경, 이국적인 바이크


영화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바이크와 함께합니다.


주인공 ‘에쎄’는 길거리 바이크 레이서이고 바이크 센터를 운영하는 대가족의 일원입니다. 에쎄가 타는 바이크는 센터에서 이런저런 부품을 가져다 거의 새로 창조한(아마도 혼다 CG125가 원형일 것 같긴 합니다) 다음 기름 탱크에 ‘UFO’라고 써 붙인 녀석입니다. 또 다른 주인공 ‘데니즈’는 어렸을 때부터 UFO를 좋아하고 꿈꿔 왔기에 에쎄의 UFO 바이크에 유난히 눈길이 갑니다.


그러나 둘은 상당히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습니다. 에쎄의 가족은 바이크 센터인 ‘독수리 모터스’를 아주 근근이 운영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좀 부족할지언정 사랑과 활기가 넘칩니다. 조금 거칠어 보이긴 하지만 아주 따뜻한 사람들이죠. 그래서인지 에쎄도 다소 불량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아주 솔직하고 다정한 면모를 보입니다. 예상과 달리 데니즈의 속을 썩이지도 않고요.


반면 데니즈의 부유한 부모는 서로 물어뜯지 못해 안달인 데다 데니즈에게 적성에도 맞지 않는 진로를 강요합니다. 데니즈가 어렸을 때부터 UFO를 꿈꾼 이유도 매일같이 싸우는 부모로부터 멀리 떠날 수 있게 해 줄 존재라는 환상을 품었기 때문이죠. 데니즈는 음악을 좋아하고 그만큼 재능도 있지만 부모의 성화 때문에 음대 진학을 포기한 참입니다.


주변 친구들도 너무 다릅니다. 에쎄의 친구들은 대체로 없는 집안에서 귀하게 자란, 길거리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데니즈의 친구들은 전부 부잣집 자제들이고요.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지만 다행히 에쎄와 데니즈는 어찌어찌 만나 점점 가까워집니다. 둘은 주로 바이크를 타고 데이트하러 다니는데, 터키인들의 미감에 따라 커스텀한 바이크(주로 일제)가 터키의 도시와 교외에서 달리는 풍경 자체가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공도 레이스의 스릴


에쎄와 독수리모터스에게는 목표가 하나 있습니다. 공도 레이스에서 경쟁팀인 야사르 팀을 이기고 상금과 명예를 차지하는 겁니다. 독수리모터스를 운영하느라 진 빚도 청산하고요.


이 공도 레이스는 상당히 특이한 점이 있는데 바로 자세입니다. 영화에 구체적으로는 언급되지 않지만 아마도 각 센터별로 자체 제작한 바이크가 출전하고, 레이서들은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진 속 자세로 주행합니다. 따로 카메라로 비춰주진 않지만 이따금 왼손을 기어 페달 쪽으로 내리는 걸 보면 클러치를 잡지 않고 기어를 변속하는 논클러치 시프팅을 쓰는 듯합니다. 역시 카메라에 잡히진 않지만 반대로 기어 페달을 밟고 클러치를 쓰지 않은 채 변속하는 레브매칭을 쓸 수도 있을 테고요.


이들의 레이스는 무조건 제일 빠른 사람이 이깁니다. 서킷이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공도에서 아무런 안전 장비도 없이 레이싱 하는 모습이 매우 위험해 보입니다. 그런데 라이더의 마음 한켠에는 스릴을 추구하는 폭주족이 살고 있기 마련 아닙니까? 살짝 대리만족이 되는 듯도 싶습니다. 절대 현실에서 일어나선 안 될 일이지만요.


이들은 레이싱이든 출퇴근이든 헬멧조차 쓰는 법이 없습니다. 다행히 에쎄의 뒷자리에 데니즈가 타면 헬멧을 씌워주긴 하더군요. 그래도 장갑, 보호대는 없습니다. 안전을 중시하는 라이더라면 식겁할 만한 장면들이지만 영화니까 봐 줍시다.


진부해도 괜찮아


각자의 그늘이 있는 두 십대 청소년의 사랑, 그리고 바이크 레이스. 여기서부터 진부하긴 합니다.


데니즈와 에쎄의 고난과 둘 사이의 대화가 참신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터키 영화입니다. 터키 라이더들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어줍니다. 또 저는 터키에 가본 적이 없어서 터키의 풍경은 저렇구나, 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터키에 가보셨다면 그리운 풍경이 반가울 테고요.


그리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터키의 파티, 터키의 카페(마치 분당의 카페거리 같은 느낌을 주는 곳도 있습니다), 터키의 호수공원, 길거리 케밥, 터키 대가족의 떠들썩한 저녁 식사도 흥미롭습니다.


영화는 로맨스와 바이크 레이스, 빈부격차를 축으로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결코 깊숙이 들어가진 않습니다. 골치 아플 일 없이 보기 좋은 팝콘 무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두 번째 공도 레이스는 아주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나름 힘을 주고 찍었는지 살짝 ‘분노의 질주’ 1편 같은 느낌(차이는 많이 납니다만)도 듭니다.


에쎄와 독수리모터스는 레이스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데니즈는 부모의 반대를 꺾고 사랑과 꿈(음대 진학)을 쟁취할 수 있을까요? 직접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영화 속 바이크, IZh Planeta 3


영화에는 꽤 많은 바이크가 등장하는데 그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IZh 플라네타3였습니다.


사이드카가 달려있어서 또 우랄인가? 싶었는데 찾아보니 IZh였습니다.


1973년에 첫 출시된 346cc의 단기통 바이크로 최고 110km의 시속을 낸다고 합니 다. 영화에서는 민트색의 사이드카를 달아 커스텀 한 모델이 등장하며 애칭까지 붙어 있습니다. 데니즈는 “탈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말라 ”는 에쎄의 말을 믿고 본축에 올라타 시원하게 달립니다. 자신의 꿈을 향해 전진하듯요.


한편 IZh는 AK47 소총 제작사(현재는 칼라 시니코프로 합병)로도 알려진 회사인데 한때 자동차, 바이크 사업부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자동차 부문은 1958년부터 IZh 408, IZh 2715, IZh Oda 등을 생산해 1977년 누적 100만 대 생산을 달성할 정도였지만 냉전 시대가 끝나고 소련의 국력도 쇠퇴하면서 결국 2009년 도산했습니다. 바이크 부문은 무려 1928년 IZh 1을 시작으로 IZh56·350·K-13·플라네타·주피터 등을 생산했으나 역시 2008년 폐업했습니다.


그러나 미련을 버리지는 않았나 봅니다. 칼 라시니코프는 1930년대 생산했던 바이크 IZh 49를 전기이륜차로 되살려내는 등 2010년대 이후로 꾸준히 전기차, 전기이륜차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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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17호 / 2022.12.16~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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