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바로 그 장면’_핫라드(2007년 作)

2023-10-10

모페드와 함께 성장하는 우리들


영화든 소설이든 성장 이야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성장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스스로 행복하면 그만이니까요. 무조건 성장해야 하고 변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이나 이 사회가 참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비슷한 느낌을 받으신다면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습니다. 미국 영화 ‘핫라드’입니다. 시리즈온, 웨이브, 티빙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설픈 스턴트맨과 친구들


영화의 주인공 로드 킴블은 자칭 스턴트맨입니다.


아주 조그만 토모스 모페드(자전거+모터사이클)로 이런저런 묘기에 도전합니다. 그런데 어째 신통치가 않습니다. 그의 토모스는 아주 낡았고 바이크 스턴트는 자꾸만 실패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새긴 노란 망토와 가짜 콧수염을 달고 동네 꼬마들을 약간 몰고 다닐 뿐입니다. 한마디로 ‘동네 바보형’인 셈입니다.


어느 날인가는 공설 수영장에서 호기롭게 멋진 스턴트를 선보이겠다며 입장료까지 받지만 처참하게 실패하고 맙니다.


같이 다니는 친구들도 좀 모자라 보입니다. 다 컸지만 소위 ‘어른들의 세계’에는 받아들여지지 못할 법한, 덜 자란 어른들입니다. 한국 같았으면 넌 언제 철들래, 취업해야지, 결혼해야지, 같은 친척들의 잔소리를 백만 번쯤 들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이 코미디 영화는 로드와 친구들을 코믹하게 묘사할지언정 비웃지 않습니다. 오히려 덜 자란 어른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합니다. 로드는 의붓아버지의 심장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친구들도 기꺼이 힘을 합칩니다. 오히려 ‘계산적인 어른’들이라면 하지 않을 법한 일입니다.


로드가 짝사랑하는 옆집 데니스도 함께입니다. 다만 아쉽게도 데니스는 번쩍이는 쉐보레 콜벳을 몰고 다니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버스 15대를 넘어라, 결전의 날


우여곡절 끝에 로드는 데니스와 점점 가까워지고, 수술비를 모으기 위한 거대한 스턴트 이벤트도 준비합니다.


그러나 로드의 바이크 실력이 형편없었음을 아는 시청자로서는 아무리 훈련했다고 해도 미덥지 못합니다.


이러나저러나 결전의 날은 다가오고, 로드는 이제 혼다 CRF 250을 타고 바이크 점프대에 올라섭니다. 적잖은 관중 앞에서 로드는 바이크 점프로 버스 15대를 넘어야 합니다. 과연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길 바랍니다.


한심하면서도 웃기면서도 사랑스러운 로드 킴블 역은 미국 드라마 ‘브루클린 나인나인’의 주인공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던 앤디 샘버그가 맡았습니다. 미워할 수 없는 저돌적인 바보 역할에 역시나 적격입니다. 데니스 역은 ‘쇼퍼홀릭’, ‘나우 유 씨 미’ 등 많은 영화에 출연한 아일라 피셔가 연기했습니다.


그리고 로드의 의붓아버지를 연기한 배우는 ‘존 윅’ 시리즈에서 뉴욕 컨티넨탈 호텔 지배인인 윈스턴으로 존재감이 강했던 이안 맥쉐인입니다. 로드의 친구들 역시 이 영화 저 영화에서 많이 본 배우들. 그만큼 출연진이 화려합니다.


밤거리를 달리자, 노래하자


‘핫라드’는 탄탄한 출연진과 타율 좋은 ‘병맛’ 코미디, 따뜻한 분위기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바이크 스턴트가 이어지는 만큼 라이더들에겐 더욱 추천하고픈 영화이기도 합니다.


토모스를 타고 노래를 부르면서 밤거리를 유유자적 달리는 장면에선 문득 야간 라이딩이 절실하게 그리워집니다. 그저 바이크가 타고 싶어서 퇴근하고 다시 헬멧을 쓰고 나갔던 시절도 떠오르고요.


80, 90년대 음악들도 이 영화의 분위기를 뒤받쳐줍니다. 신나는 디스코, 웅장한 록까지. 마음에 드는 곡들이 많아서 OST까지 찾아봤습니다. 음악도, 주로 등장하는 바이크(토모스)도 왠지 예스러운 건 우연일까요?


우연이 아닌 듯싶은 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80~90년대 영화들 특유의 기법이 활용됐습니다. 그 시절 영화들을 기억한다면 반드시 즐거울 겁니다.

 

영화 속 그 바이크

토모스 스프린트


토모스는 1954년 슬로베니아에서 설립된 모페드 회사입니다. 모터사이클처럼 엔진으로 달리다가도 자전거처럼 페달을 밟아 굴릴 수 있습니다. 토모스는 역사가 오래된 만큼 모페드의 대명사죠. 농기계 같은 시끄러운 배기음이 특징입니다.


토모스 스프린트는 49cc의 A35 엔진(1992년~2006년 생산)을 탑재하고 있으며 속도는 시속 30마일(약 48km/h)로 생각보다는 빠릅니다. 바이크 중량은 고작 68kg. 아쉽게도 국내에서 정식 판매하고 있진 않지만, 만일 들어온다면 복고적인 디자인과 편리함으로 꽤 인기를 끌지 않을까요?

 

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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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36호 / 2023.10.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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