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시골길을 달리는 베스파
라이더들은 지나온 길의 온도와 습도, 냄새를 기억하곤 합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다르고 북쪽 지방과 남쪽 지방도 분명 차이가 납니다.
내륙 산길과 해안 도로는 말할 것도 없고요. 국내와 해외는 더 차이가 큽니다. 많은 경험은 없지만, 베트남이나 태국, 미국 서부나 유럽 포르투갈 등지에서의 라이딩 경험은 서로 너무나 달랐고 그만큼 각각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다만 너무 빡빡한 일정들이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바이크로 천천히 어슬렁거리는 해외투어를 계획해보려고 합니다.
특히 유럽의 시골길도 궁금하던 참에 만난 영화가 ‘토스카나’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격 나쁜 셰프, 토스카나에서 멈추다

덴마크의 유명 셰프 테오는 오래전 연락이 끊긴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을 찾아갑니다.
아버지의 유산은 ‘리스톤키’라는 작은 고성. 테오는 리스톤키를 팔아 자신의 식당 사업에 보탤 계획입니다. 참고로 그는 무뚝뚝하고 인간미가 없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란, 인성에 상당히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인물입니다. 자신의 업인 요리와 식당 운영 외에는 관심도 없어 보입니다. 무슨 재미로 사나 싶은 사람입니다.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은 리스톤키는 식당을 운영하며 근근이 유지되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그가 성주, 즉 건물주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식당 종업원 소피아가 싸늘한 반응을 보입니다. 알고 보니 소피아는 집시의 딸로, 테오의 아버지가 어릴 적 거둬 친딸처럼 키워왔습니다. 그런 만큼 성을 팔아버리려는 테오가 영 맘에 들지 않습니다.
또 알고 보니 소피아와 테오는 어렸을 적 리스톤키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테오가 아직 아버지를 따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소피아는 만만치 않은 성격이라 테오와 투덕거리지만, 관객들이 기대하는 대로 점점 서로 마음을 열게 됩니다.
베스파와 피어난 이상한 로맨스

그렇지만 저는 테오가 소피아의 삼촌뻘처럼 보이고, 무엇보다 소피아가 곧 결혼식을 앞두고 있으며, 테오 역시 여자친구가 있기에(아주 비즈니스 파트너처럼 보이는 관계이긴 합니다만) 둘 사이에 로맨스가 싹트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소피아의 예비 남편은 테오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싹싹한 데다 잘생기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발 이 영화가 소피아와 테오를 엮지 않기만을 빌었는데 유럽인들은 참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특히 둘의 친밀도를 높여준 계기는 클래식 베스파입니다. 소피아가 결혼식 준비를 위해 이리저리 들를 곳이 많던 참에 테오가 정말 오래된 베스파로 소피아를 태워줍니다.
아름다운 토스카나의 한적한 도로를 달리면서 누군들 즐겁고 신나지 않을까요. 인상파 회화처럼 평온하면서도 애잔한 풍광이 이어지고 둘의 표정도 무척 행복합니다. 다른 어떤 바이크도 아니고 베스파, 그것도 수십 년은 묵었을 클래식 베스파로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을 달리는 기분을 제가 묘사해드리고 싶지만, 저도 그래본 적이 없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다른 바이크였다면 어땠을까 잠시 상상해 봅니다. 토스카나에선 아무래도 이탈리아 브랜드여야 할 것 같은데, 모토굿찌나 아프릴리아도 좋겠지만 조금씩 아쉽습니다. 베스파처럼 유유자적한 느낌은 아니니까요. 이탈리아 바깥의 브랜드로 넓혀 트라이엄프 본네빌이나 제가 타는 가와사키 W800, 심지어 혼다 슈퍼커브까지 떠올려봤습니다. 사실 어떤 기종으로 달려도 만족스럽고 즐거울 겁니다.
느슨한 하루를 만들어 준 라이딩

그러나 베스파만큼 유럽의 풍경화에 잘 녹아드는 기종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들은 바쁘면서도 정서적으로 매우 느슨한 하루를 보내는 중입니다. 역시 그런 분위기에는 베스파가 최적의 기종입니다.
베스파는 특히 젊은 라이더들의 감수성을 건드리는 면모가 강합니다. 멋진 외모에 그렇지 못한 내구성과 정비성이 아쉽고 오너조차 ‘예쁜 쓰레기’라고 자조하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어도 가슴 떨리는 실루엣에 다시 녹아내리는 라이더들에게 저도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요리사인 만큼 요리 장면도 꽤 나옵니다. 본토에서 공수한 식자재로 만든 요리들이 워낙 맛깔스럽게 비쳐서 눈이 즐겁습니다. 이탈리아 시골의 고성에 바이크를 세워두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마시는 와인, 저의 새로운 버킷 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주방의 규율, 유럽의 고성 매매를 둘러싼 이해관계, 토스카나 고성에서의 결혼식 등 재미를 더하는 요소들도 있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평이하지만 토스카나라는 배경과 베스파, 요리라는 소재가 엮여 심심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해방이 필요한 날에 추천합니다.
영화 속 그 바이크
베스파 150

바이크를 가까이서 비추는 장면이 거의 없어 클래식 베스파 150이란 사실까지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955년에 처음으로 등장한 베스파 150 GS를 기준으로 보면 7,500rpm에서 8마력의 힘을 냈고, 피아지오 레이싱 팀 운영에서 쌓은 경험을 기반으로 탄생한 바이크인 만큼 당시 성능 면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클래식 바이크 마니아들이 찾는 모델이기도 합니다.
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유주희 #바로그장면 #토스카나 #베스파
한국이륜차신문 448호 / 2024.4.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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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시골길을 달리는 베스파
라이더들은 지나온 길의 온도와 습도, 냄새를 기억하곤 합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다르고 북쪽 지방과 남쪽 지방도 분명 차이가 납니다.
내륙 산길과 해안 도로는 말할 것도 없고요. 국내와 해외는 더 차이가 큽니다. 많은 경험은 없지만, 베트남이나 태국, 미국 서부나 유럽 포르투갈 등지에서의 라이딩 경험은 서로 너무나 달랐고 그만큼 각각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다만 너무 빡빡한 일정들이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바이크로 천천히 어슬렁거리는 해외투어를 계획해보려고 합니다.
특히 유럽의 시골길도 궁금하던 참에 만난 영화가 ‘토스카나’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격 나쁜 셰프, 토스카나에서 멈추다
덴마크의 유명 셰프 테오는 오래전 연락이 끊긴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을 찾아갑니다.
아버지의 유산은 ‘리스톤키’라는 작은 고성. 테오는 리스톤키를 팔아 자신의 식당 사업에 보탤 계획입니다. 참고로 그는 무뚝뚝하고 인간미가 없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란, 인성에 상당히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인물입니다. 자신의 업인 요리와 식당 운영 외에는 관심도 없어 보입니다. 무슨 재미로 사나 싶은 사람입니다.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은 리스톤키는 식당을 운영하며 근근이 유지되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그가 성주, 즉 건물주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식당 종업원 소피아가 싸늘한 반응을 보입니다. 알고 보니 소피아는 집시의 딸로, 테오의 아버지가 어릴 적 거둬 친딸처럼 키워왔습니다. 그런 만큼 성을 팔아버리려는 테오가 영 맘에 들지 않습니다.
또 알고 보니 소피아와 테오는 어렸을 적 리스톤키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테오가 아직 아버지를 따르던 시절이었습니다. 소피아는 만만치 않은 성격이라 테오와 투덕거리지만, 관객들이 기대하는 대로 점점 서로 마음을 열게 됩니다.
베스파와 피어난 이상한 로맨스
그렇지만 저는 테오가 소피아의 삼촌뻘처럼 보이고, 무엇보다 소피아가 곧 결혼식을 앞두고 있으며, 테오 역시 여자친구가 있기에(아주 비즈니스 파트너처럼 보이는 관계이긴 합니다만) 둘 사이에 로맨스가 싹트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소피아의 예비 남편은 테오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싹싹한 데다 잘생기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발 이 영화가 소피아와 테오를 엮지 않기만을 빌었는데 유럽인들은 참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특히 둘의 친밀도를 높여준 계기는 클래식 베스파입니다. 소피아가 결혼식 준비를 위해 이리저리 들를 곳이 많던 참에 테오가 정말 오래된 베스파로 소피아를 태워줍니다.
아름다운 토스카나의 한적한 도로를 달리면서 누군들 즐겁고 신나지 않을까요. 인상파 회화처럼 평온하면서도 애잔한 풍광이 이어지고 둘의 표정도 무척 행복합니다. 다른 어떤 바이크도 아니고 베스파, 그것도 수십 년은 묵었을 클래식 베스파로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을 달리는 기분을 제가 묘사해드리고 싶지만, 저도 그래본 적이 없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다른 바이크였다면 어땠을까 잠시 상상해 봅니다. 토스카나에선 아무래도 이탈리아 브랜드여야 할 것 같은데, 모토굿찌나 아프릴리아도 좋겠지만 조금씩 아쉽습니다. 베스파처럼 유유자적한 느낌은 아니니까요. 이탈리아 바깥의 브랜드로 넓혀 트라이엄프 본네빌이나 제가 타는 가와사키 W800, 심지어 혼다 슈퍼커브까지 떠올려봤습니다. 사실 어떤 기종으로 달려도 만족스럽고 즐거울 겁니다.
느슨한 하루를 만들어 준 라이딩
그러나 베스파만큼 유럽의 풍경화에 잘 녹아드는 기종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들은 바쁘면서도 정서적으로 매우 느슨한 하루를 보내는 중입니다. 역시 그런 분위기에는 베스파가 최적의 기종입니다.
베스파는 특히 젊은 라이더들의 감수성을 건드리는 면모가 강합니다. 멋진 외모에 그렇지 못한 내구성과 정비성이 아쉽고 오너조차 ‘예쁜 쓰레기’라고 자조하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어도 가슴 떨리는 실루엣에 다시 녹아내리는 라이더들에게 저도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요리사인 만큼 요리 장면도 꽤 나옵니다. 본토에서 공수한 식자재로 만든 요리들이 워낙 맛깔스럽게 비쳐서 눈이 즐겁습니다. 이탈리아 시골의 고성에 바이크를 세워두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마시는 와인, 저의 새로운 버킷 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주방의 규율, 유럽의 고성 매매를 둘러싼 이해관계, 토스카나 고성에서의 결혼식 등 재미를 더하는 요소들도 있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평이하지만 토스카나라는 배경과 베스파, 요리라는 소재가 엮여 심심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해방이 필요한 날에 추천합니다.
영화 속 그 바이크
베스파 150
바이크를 가까이서 비추는 장면이 거의 없어 클래식 베스파 150이란 사실까지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955년에 처음으로 등장한 베스파 150 GS를 기준으로 보면 7,500rpm에서 8마력의 힘을 냈고, 피아지오 레이싱 팀 운영에서 쌓은 경험을 기반으로 탄생한 바이크인 만큼 당시 성능 면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클래식 바이크 마니아들이 찾는 모델이기도 합니다.
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유주희 #바로그장면 #토스카나 #베스파
한국이륜차신문 448호 / 2024.4.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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