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바로 그 장면’②,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2013년작)

2022-01-11

‘주저앉을 것인가,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지금 할리우드에는 양대 산맥이 아니라 양대 ‘라이언’이 있습니다. 라이언 레이놀즈(데드풀 그 분)와 라이언 고슬링(라라랜드 그 분)이죠. 같은 이름인데 심지어 둘 다 모터사이클 라이더입니다. 둘 중에서 오늘은 라이언 고슬링에게 초점을 맞춰보려고 합니다.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The Place Beyond the Pines·2013년작)’라는,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을 맡아 열심히 바이크를 타는 영화가 한 편 있거든요. 아주 흥행작은 아니지만 상당히 호평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선택의 기로에 몰린 흙수저와 금수저


루크와 로미나


스포일러 없이 줄거리를 적어보겠습니다.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주인공 ‘루크’는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바이크 쇼를 하는 스턴트맨입니다. 예전에 잠깐 만났던 ‘로미나(배우는 에바 멘데스, 이 영화를 계기로 고슬링과 만나 부부가 됐습니다)’가 자신의 아이를 낳아 키워왔단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 없이 자란 루크는 아들에게 자신과 같은 삶을 물려주기 싫어서, 그리고 로미나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어서 이곳에 정착하기로 합니다.


이후 어떤 사건과 함께 이야기의 중심은 신참 경찰인 ‘에이버리’로 옮겨갑니다. 에이버리는 판사인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고,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신념을 위해 경찰이 된 사람입니다. 루크가 그랬듯 에이버리도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이야기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흙수저·금수저인 둘의 삶이 점점 뚜렷하게 대비됩니다.


다만 이 영화는 루크와 에이버리를 선악으로 가르지 않습니다. 삶에는 우연한 불운과 행운이 있고, 어떤 우연을 맞이하더라도 이유 따위는 없다는 관점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인생의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전진할 것인가, 절망에 빠진 채 남은 삶을 보낼 것인가.”


바이크 씬 70%는 직접 촬영


영화 대부분의 장면에서 바이크를 타고 등장하는 루크


바이크는 정말 많이 나옵니다. 영화 도입부에서 루크는 다른 라이더 두 명과 함께 좁은 원형 철창 안에서 중력을 거스르며 질주합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저는 라이더가 아니었기 때문에 별 느낌이 없었는데 라이더인 지금 보면 정말 살벌한 장면입니다. 영화 제작 후기를 찾아보니 직경 4.5미터의 철창에 최고의 바이크 스턴트맨들을 투입해 찍었다더군요.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영화 포스터


쇼 장면처럼 위험한 대목은 스턴트맨들이 찍었지만, 루크가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장면의 70% 정도는 고슬링이 직접 찍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스미즈(Brian Smyj)는 할리우드 최고의 바이크 스턴트맨으로서 여러 배우와 협업해왔습니다. 유튜브를 더 뒤져봤더니 “지금까지 함께 일한 배우들 중 누가 제일 바이크를 잘 타느냐”는 질문에 답한 대목이 있더군요. 키아누 리브스, 실버스타 스탤론과 함께 고슬링을 꼽았습니다.


이 영화에는 스즈키 DR-Z400, 혼다 CRF230L 등이 등장합니다. 바이크 쇼 말고도 인상적인 대목이 있는데, 로미나와 아이 때문에 한참 고민하던 루크가 바이크로 숲 속 오프로드를 질주하는 장면입니다. 카메라를 바이크 앞펜더에 달아서 생생한 느낌을 살렸다네요.


고슬링의 또다른 영화, ‘드라이브’


라이언 고슬링의 또 다른 영화, 드라이브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왓챠·네이버 시리즈온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보는 김에 한 편 더 추천하자면 고슬링의 또 다른 영화 ‘드라이브(2011년작)’입니다.


‘드라이브’에선 고슬링이 범죄 도주용 자동차를 모는 드라이버로 등장합니다. 역시 사랑을 위해 과묵하게 질주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다만 줄거리가 탄탄한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와 달리 ‘드라이브’는 홍콩 느와르 영화 쪽에 가깝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진부하지만 인물, 액션, 음악까지 하나하나 멋을 부렸죠. 다행히 완성도가 높아서 꽤 인기를 끌었습니다.


고슬링도 ‘드라이브’에서의 역할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감독인 니콜라스 윈딩 레픈과 한 편을 더 찍었습니다. ‘드라이브’와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닌데, 과묵한 주인공과 비정한 액션과 멋부림이라는 면에서 상당히 비슷한 ‘온리 갓 포기브스(2014년작)’입니다. 당시 엄청난 기대감을 안고 봤는데 도저히 좋아할 구석이 없는 망작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저는 레픈 감독의 그 다음 작품 ‘네온 데몬(2016년작)’도 극장에서 봤습니다. 또 망작이더군요. 그럼에도 아직 레픈 감독의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드라이브’는 멋진 영화였고, 바이크나 자동차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


다음 편에선 더 어두운 바이크 영화 ‘이스턴 프라미스’로 찾아뵙겠습니다.

 

DR-Z400과 CRF230L은 어떤 바이크?

 

스즈키 DR-Z400



2000년부터 생산된 스즈키의 듀얼퍼퍼즈 모델. 399cc의 수랭식 단기통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공차중량은 145kg, 시트고는935mm다. DR-Z400은 킥 시동만 가능했지만 DR-Z400E, S는 셀버튼이 적용됐다. 33.4마력, 25.6lb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시트고가 890mm로 좀더 낮은 DR-Z400 SM은 특히 국내의 오프로드 라이더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혼다 CRF230L


2008~2009년 사이 생산, 미국과 캐나다에서 판매됐던 혼다의 듀얼 퍼퍼즈 모델. 오프로드에서만 달릴 수 있었던 기존 CRF230F에 속도계, 헤드라이트, 방향지시등 같은 공도형 사양을 더하고 30mm CV 카뷰레터, 접이식 탠덤용 풋페그 등을 추가해 출시했다. 223cc 공랭식 단기통 SOHC 엔진을 갖췄으며 공차중량 113.5kg의 가벼운 무게에 810mm의 비교적 낮은 시트고, 저렴한 가격대(북미 기준 4,499달러)로 입문자들로부터도 사랑받았다.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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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394호 / 202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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