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바로 그 장면’_RRR (2022년 作)

2024-09-05

식민지 영웅들의 통쾌한 복수


기본적으로 뮤지컬에 관심이 없고, 대사를 노래에 실어 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들을 낯간지럽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노래와 춤이 빠지지 않는 발리우드(인도) 영화를 제대로 본 적도 없었습니다. 2022년을 꽤나 흔들었던 영화, ‘RRR’을 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Rise(저항)·Roar(함성)·Revolt(반란)’의 줄임말인 ‘RRR’은 영국의 식민 통치받던 1920년대의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한국 관람객에게도 분명 소구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러닝타임이 무려 3시간이지만 지루하지 않을 겁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자유를 찾는 두 독립운동가


주인공 ‘빔’은 평화로운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도 식민정부 총독이 멋대로 데려간 동생을 되찾기 위해 델리로 향하게 됩니다.


영국 치하의 인도인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깊이 이입하게 됩니다. 우리의 조상들도 겪었던 일들이니까요.


그리고 유능한 경찰 ‘라주’는 빔을 생포하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라주는 영국 정부에 빌붙은 친영파(우리나라였다면 친일파인 셈입니다)이자 둘째가라면 서러울 냉혈한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역시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리고 라주도 빔도 엄청난 무도가들입니다. 호랑이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정도입니다.


적으로 만났지만, 우정을 쌓게 된 둘은 이제 총독부를 겨냥하게 됩니다. 이들이 무예를 뽐내는 장면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과장돼 있기에 자꾸만 웃음이 나옵니다. 게다가 밑도 끝도 없이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초대형 액션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정도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제로 감상해보시길 권합니다.


1920년대 인도 거리의 모터사이클들


1920년대의 인도인 만큼, 당시의 모터사이클들이 상당히 자주 등장합니다.


둘이 사이좋게 탠덤하고 우정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BSA M20이, 말과 모터사이클의 질주 장면에서는 로얄엔필드 뷸렛, 그리고 이 밖의 여러 장면에서 벨로세트 MSS 같은 모델이 눈길을 끕니다.


BSA 모터사이클은 영국의 총기류 제조사인 버밍햄 스몰 암즈가 선보인 모터사이클 브랜드로 1910년 첫 모델을 생산했습니다. 이후 BSA는 전쟁터에서 환영받았던 M20 모델을 포함해 다양한 모터사이클을 선보였고, 1950년대에는 세계 최대 모터사이클 제조사로 부상했습니다. 당시 전 세계에서 판매된 모터사이클 중 약 25%가 BSA 모터사이클이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1973년 생산을 중단하게 됩니다. 이후 2021년에야 부활한 BSA는 2016년 인도 마힌드라 그룹에 인수됩니다. 원래 영국에서 출발한 로얄엔필드가 인도 아이셔 그룹에 인수된 것과 비슷한 행보입니다.


벨로세트 역시 영국에서 1904년 출범한 모터사이클 브랜드인데, BSA나 노튼 같은 영국 바이크 브랜드들보다 규모는 훨씬 작았습니다. 그러나 성능으로는 유명해서 1920~1950년대의 모터사이클 레이싱 대회에 빠지지 않고 출전했다고 합니다. 벨로세트는 1971년 생산을 종료했습니다.


화끈함, 중독성, 그리고 통쾌함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음악과 춤이 등장합니다. 때로는 다소 길고 진심으로 배우들의 무릎이 걱정되지만 그래도 흥겹습니다.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영화가 끝난 후에도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될 겁니다.


예상대로 통쾌한 복수가 이어집니다. 심지어 라주와 빔은 실존했던 인도의 독립운동가들을 모티브로 삼아 만든 캐릭터들입니다. 인도에서 흥행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인 셈입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영국인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대부분 아일랜드인이라고 합니다. 1922년 독립하기 전까지 영국의 식민 지배를 겪었던 아일랜드 출신인 만큼 촬영 현장에서 커다란 공감대가 형성됐을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인도인들의 화끈함, 그리고 자본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순하지만 호쾌한 영화이자 발리우드 입문용으로 손색없는 영화입니다. 기분이 처질 때, 불쾌한 일을 겪은 후 치료 약이 필요할 때 꼭 ‘RRR’을 떠올려 보시길 권합니다.


영화 속 그 바이크

벨로세트 MSS


1930년대 벨로세트가 생산한 M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495cc 공랭식 단기통 모델이며 최고속도는 시속 130km였습니다.


모터사이클 라이더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영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의 주인공인 버트 먼로가 사랑했던 모델이기도 합니다. 2기통 모터사이클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1968년 단종됐습니다.


유주희 (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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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58호 / 2024.9.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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