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바로 그 장면’⑦_번아웃(BURN OUT)

2022-08-29

머리를 굴릴 필요 없는 라이더라면 종종 봐줘야 하는 영화

 

분명 옛날에는 모터사이클이 등장하는 명작 영화가 많았는데, 요새는 왜 없을까? 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나이가 든 것입니다. 모터사이클 영화는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요즘 영화’를 한 번 소개해봅니다. 물론 ‘존 윅’이나 ‘탑건:매버릭’처럼 누구나 아는 영화 말고요. 오늘의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2017년 프랑스 영화, ‘번아웃’입니다.

 

프로 레이서의 꿈, 그리고 마약조직


번아웃 포스터


첫 장면부터 서킷에서 출발하는 영화입니다. 헬멧 안에서만 들을 수 있는 거친 숨소리가 레이서인 ‘토니’의 긴장감을 드러내줍니다. 그는 상당히 절실한 레이서입니다. 프로 레이서라는 꿈을 위해 모든 걸 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직업은 파트타임 지게차 운전사, 바이크 때문에 가정에 소홀해져서 아내와는 이혼. 어머니는 건강이 안 좋으신 듯하고 그나마 어린 아들을 만나는 낙으로 살아갑니다.


다행히 레이싱 실력이 좋은 편이라 두카티 팀에서 프로가 되느냐 마느냐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팀 내의 경쟁자들보다 나이가 많아(그래봐야 26살입니다) 남들보다 배로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지만요. “키워봐야 5~6년이면 끝이니까 남들보다 바퀴당 0.5초씩은 빨라야 한다”는 코치의 칼같은 지시가 참 냉혹하게 들립니다.


이런 성공의 갈림길에서 토니는 하필 마약조직과 얽히게 됩니다. 아내가 마약에 손을 대다 빚을 졌거든요. 토니가 레이서란 사실을 알게 된 조직 두목 미겔은 “두 달 동안 바이크로 물건을 배달해 주면 빚을 탕감해주겠다”고 제안하고, 토니는 아내와 아들을 지키기 위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첫 배달은 쉬운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부턴 경찰들이 모터사이클로 토니를 추격합니다. 긴장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토니는 미겔의 권유대로 각성제를 먹기 시작하고, 배달이 거듭될수록 각성제의 양이 늘어납니다. 카메라는 헬멧 속 토니의 얼굴을 자주 비추는데, 그의 얼굴은 이제 공포에 질려 보입니다.


원없이 감상하는 두카티


두카티 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는 영화의 한 장면


뒷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고, 이번엔 영화 속 모터사이클을 감상할 차례입니다.


토니가 두카티 팀에서 프로 선발전에 참여하는 만큼 두카티 바이크의 비중이 높습니다. 서킷에서 타는 바이크는 두카티 959 파니갈레, 토니가 평소에 타고 다니는 바이크는 두카티 몬스터 900, 배달용(?!) 바이크는 1299 파니갈레입니다. 디아벨, 하이퍼모타드 821도 잠깐 등장하고요. 두카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만족감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꼭 두카티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비싼 바이크로 서킷과 도로를 질주하는 토니의 모습에 살짝 대리만족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두카티 이외에도 여럿입니다. BMW의 S 1000 RR이 서킷에서 등장하고, 모든 사건이 마무리된 후엔 가와사키의 닌자 H2도 아련한 분위기에서 화면을 가로지릅니다. 그리고 도로를 질주하는 온로드 바이크에 조금 질렸을 때쯤엔 KTM의 엔듀로 바이크인 300 EXC도 출연해 줍니다. 도시에 폭동이 계속돼 배달을 하기 어려워지자, 잘 닦인 도로가 아닌 길로 요리조리 달려보기로 한 거죠.


“어떤 바이크가 필요해?”라고 묻는 미겔에게 토니가 “티맥스요, 아… 아니 엔듀로 바이크요.”라고 답하는 대목에서 왠지 반갑더군요. 한국에서도 인기 기종인 티맥스가 대화 속에서나마 등장했으니까요. 토니가 입고 쓰는 다이네즈 재킷, 아라이 헬멧 역시 반갑습니다.


그렇게 모터사이클이 주르륵 등장하는데도 바이크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실수가 반복되긴 합니다. 두카티 V트윈 엔진 소리가 나야 할 장면에서 4기통 직렬 엔진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요.


어두운 영화를 좋아한다면, 픽


총평하자면, ‘번아웃’은 어디서 많이 본 단순한 이야기에 그다지 깊이는 없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평범한 영화입니다. 오로지 이 영화를 위해서 넷플릭스에 가입했다간 실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생소한 프랑스어 영화인 데다 유머나 감동이나 신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한국이륜차신문'을 읽고 있습니다. 모터사이클이 줄줄이 등장한다는 이유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정말 진지하게 따져본 것은 아니지만 ‘번아웃’의 러닝 타임 중 바이크가 등장하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을 구분해 보면 전자가 더 길 겁니다. 그만큼 토니는 주구장창 바이크를 타고 달리고, 그럴 때의 긴박감과 생생함은 라이더들에게 만족할 만한 재미를 줍니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 바이크로 한밤중의 도로를 한계속도로 질주한다거나 경찰 ‘싸이카’를 따돌린다거나 하는 일들을 영화로나마 지켜보면서 솔직히 짜릿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겠죠. 음악은 적절한 비트로 스릴을 더해주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군더더기도 없는 편입니다. 머리를 굴릴 필요 없이 바이크 바퀴를 따라가면 되는 거죠. 라이더로서 종종 봐줘야 하는 그런 영화입니다.


다만 모든 바이크 영화가 어둡고 우울하고 비장할 필요는 없겠죠. 그래서 다음 편에는 상당히 산뜻한 볼거리와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힌트는 ‘ㅅㅍㅋㅂ’입니다.


영화 속 바이크, 두카티 1299 파니갈레


2015년 출시된 두카티 1299 파니갈레(1,285cc)는 4기통 L트윈 엔진으로 205마력(10,500rpm)의 힘과 144.6Nm(8,750rpm)의 토크를 발휘한다. 그럼에도 알루미늄 모노코크 프레임 등의 경량화로 무게를 덜어내고 덜어낸 덕분에 건조중량이 166.5kg에 불과한 슈퍼 바이크.


한편 '파니갈레'는 두카티 본사가 위치한 이탈리아 볼로냐의 '보르고 파니갈레'란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모르고 들으면 멋스럽지만 알고 보면 ‘고흥’이나 ‘문경’ 같은 느낌인 것이다.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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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09호 / 2022.8.1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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