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바로 그 장면'_⑪, 주원 주연의 ‘카터’ (2022년 작)

2022-11-15

끝까지 밀어붙이는 K-액션


‘존윅’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모터사이클 6대에 쫓기는 장면 기억하실 겁니다. 키아누 리브스 역시 맨 앞에서 모터사이클을 탄 채 추격자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 중입니다. 카메라가 이들의 뒷모습을 비추며 따라붙고, 추격자들은 소름 끼치는 금속성과 함께 일제히 장검을 빼 듭니다. 총과 검이 난무하는 이 모터사이클 추격전이 한국 영화 ‘악녀’에 나온 장면을 오마주한 사실은 알고 계실 겁니다. ‘악녀’에서는 김옥빈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추격자들에게 검을 휘두릅니다. 정말 멋진 장면입니다.


그리고 ‘악녀’를 찍은 정병길 감독님의 신작, ‘카터’가 지난 8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됐습니다. 더 화려한 모터사이클 액션 장면과 함께 말입니다.


호평은 어려워도 라이더라면


카터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카터(주원 배우)’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채로 낯선 장소에서 깨어납니다. 귓속에 심어진 장치를 통해 지령이 내려옵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면역을 가진 소녀를 데려오지 않으면 카터의 입 안에 심어둔 초소형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위협과 함께 말입니다. 카터는 영문도 모른 채 쫓기기 시작하는데 아무런 기억이 없지만 엄청나게 잘 싸웁니다.


이 과정에서 온갖 장소에서 다양한 방식의 액션이 이어지는데 아쉽게도 참신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하드코어 헨리’가 떠오르는 슈팅 게임식 연출, ‘이스턴 프라미스’가 생각나는 목욕탕 혈투, 기능적으로만 움직이는 인물들, 진부한 이야기 전개가 얽혀 영화 속에서 아무리 피가 튀고 숨이 거칠어져도 몰입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카터’는 꽤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조금 덜컹거리는 전개일지언정 액션만큼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제작진들의 뚝심이 그렇습니다. 목욕탕 혈투는 신기하지도 미학적이지도 않지만 죽어 나가는 적들의 숫자만큼은 어마어마합니다. 노란 승합차와 모터사이클 두 대로 끝날 줄 알았던 추격전에는 이제 검은 승합차 두 대가 가세하고, 세 대의 승합차가 같은 속도로 달리면서 마치 3량짜리 열차에서 격투가 벌어지는 듯한 착시효과를 안겨줍니다.


쏟아지는 K-바이크의 향연


무엇보다도, 정 감독님은 바이크를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악녀의 바이크 추격전에 이어 ‘카터’에서는 초반부터 피자 배달 바이크 추격전이 펼쳐집니다. 맨몸에 가운만 걸친 채 파파존스 배달 바이크를 타고 시장통을 누비는 카터의 모습은 엄숙하면서도 재밌습니다. 사실 영화 내내 이런 엄숙하면서도 웃음 터지는 장면들이 이어지는데 아마도 제작진 나름의 유머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그리고 한국의 라이더라면 놓칠 수 없는 장면. 코멧650이 무더기로 등장합니다. 12대의 코멧650이 달리는 장면을 전 세계 어느 영화에서 볼 수 있겠습니까. 상상도 못 했는데 이렇게 현실화하고 말았습니다. 바이크 대수로만 보면 악녀나 존윅의 두 세배입니다. 


코멧650들은 잠시 대열 주행하다가 이내 전투를 시작합니다. 바이크 위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총을 쏘고, 넘어지고 날아갑니다. 특히 코멧650 대여섯 대가 카터를 한가운데로 몰아넣고 압박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긴박감 넘치는 장면으로 꼽을 만합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어느새 죽음의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탈출한 카터는 북한 어딘가의 황야에서 효성 트로이, 드네프르650들에게 쫓깁니다. 드네프르는 1967년 우크라 키이우에서 시작된 나름 유서 깊은 모터사이클 브랜드입니다. 사이드카가 달린 이 모터사이클에 올라탄 추격자들은 2인 1조라는 점에서 매우 강력해 보이지만 역시 크게 활약하지 못하고 카터에 의해 처단당합니다.


틀면 놓을 수 없는 영화


마지막으로는 산속에서 트로이들의 추격전이 벌어집니다. 코멧650R처럼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얼추 7, 8대 정도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다니 또 감격스러울 따름입니다. 게다가 당당하게 오프로드를 달리는 트로이라뇨. 제가 바이크를 타기 시작했던 2014년에만 해도 도로에서 종종 트로이를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녀석이라 더 반갑습니다. 지금은 한국 기업들이 저런 바이크를 만들었던 때가 있었단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카터는 결국 목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결말은 직접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저도, 지인들도 이 영화를 보곤 “틀면 끝까지 보게 되는 영화”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긴박감이 넘쳐서 손에 땀이 나거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거나 참신하지는 않은 영화지만 시종일관 밀어붙이는 액션의 향연 때문입니다.


대규모의 액션이 계속되는 데다 잔인한 장면도 많아 다소 피곤한 감도 있지만 점점 더 “어디까지 가나 보자”라는 마음으로 스크린 앞을 지키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듯, 영화가 끝날 즈음에는 물리법칙을 더욱 거스르는 수준의 액션이 등장합니다.


판단은 독자님들께 맡기겠습니다. 다만 앞서 언급한 풍성한 바이크 액션 덕분에 라이더라면 일반 시청자보다는 더 재미있게 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정 감독님은 과연 다음 영화에서도 모터사이클 액션을 찍으실까요? 차기작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기대해 봅니다.

 

영화 속 바이크, KR모터스 '코멧 GT 650R'


토종 바이크 중 유일한 레플리카 모델이자 최고 배기량을 자랑했던 기종. V형 2기통의 647cc 엔진에 최고 출력은 53.5kW/9,250rpm, 최대 토크는 61.9Nm/7,500rpm의 성능을 발휘. 시트고가 높고(830mm) 무게가 나가는 데다(215kg) 일제 바이크들과 비교해 주행감은 다소 거칠었고 조작성은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엔진이 튼튼하면서 저렴해 많은 라이더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쿼터급 이상의 레저용 바이크가 다시 한국 기업으로부터 나올 미래를 꿈꿔봅니다.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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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14호 / 2022.11.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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