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 여행, 어디까지 가 봤니?
세상에는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터사이클로 전 세계를 일주한 최초의 라이더는 누구인지 아십니까? 미국의 영화제작자인 칼 스턴스 클랜시입니다. 클랜시는 1912년 10월부터 1913년 8월까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북아메리카에서 1만8,000마일(약 2만 9,000km)을 바이크로 여행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또 숱한 도전자들이 있었을 텐데,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인물은 아무래도 세계 최초로 혼자 모터사이클 세계 일주에 성공한 여성 라이더, 안느 프랑스 도스빌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그림책’이 2020년 미국에서 출간된 데 이어 2022년 3월에는 한국판으로도 출간됐습니다.
그림책으로 만나는 모터사이클
누가 이 책을 만들었는지는 건너뛰고 도스빌의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1943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도스빌은 1968년에 바이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 바이크는 ‘불량배들이나 탄다’라는 이미지였지만 평등과 반전과 반권위주의를 외치던 68혁명의 시대였으니까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당시 광고계에서 일하고 있던 도스빌은 출퇴근용으로 바이크를 타기 시작합니다. 50cc짜리 혼다 바이크로 시작해 점점 바이크의 매력에 빠진 그는 모토굿찌 V7 스페셜(750cc)로 기변을 감행합니다.
이 바이크로 1972년 ‘오리온 레이드’ 바이크 투어에 홀로 참가하는데 당시 105대의 바이크 중 동승자가 아닌 여성 라이더는 도스빌 혼자였다고 합니다. 이 투어는 프랑스에서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파키스탄까지 달리는 험한 투어로 105대 중 92대만 이란에 도착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선 11대, 최종 목적지인 파키스탄까지는 단 5대만 완주에 성공했습니다. 그 5대 중 하나는 물론 도스빌의 모토굿찌였고요.
도스빌은 이때의 경험을 책(‘모터사이클을 탄 여자’·국내 미출간)으로 펴냈는데 당시에는 바이크를 타는 여자가 정말 드물다 보니 '거짓말 아니냐, 도와줄 인력과 트럭 따위를 대동하고 다닌 것 아니냐?'라는 반응도 받았다고 합니다.
초장기 투어에 매혹당한 도스빌은 곧바로 세계 일주를 준비합니다. 그가 택한 바이크는 100cc짜리 가와사키. 모델명은 책에도, 어떤 인터뷰에도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찾아 헤맨 결과 GA5-A 100을 살짝 개조한 것 같습니다. 도스빌은 1973년 7월 파리에서 출발해서 비행기로 캐나다 몬트리올에 도착, 미국 알래스카까지 달린 후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도쿄로 날아가 3주 머물렀다고 합니다.
가와사키 바이크의 고향에 간 김에, 또 나머지 여정을 위해 엔진을 교체한 다음 인도로 향했습니다. 틈틈이 프랑스의 바이크 잡지에 여행기를 기고하면서요. 그리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이란, 터키,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오스트리아, 독일을 거쳐 다시 파리로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이때가 1973년 11월, 여행 거리는 총 1만2,500마일(약 2만 117km). 그리고 두 번째 책(‘바람을 따라갔다’ 국내 미출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2만km의 바이크 투어
여행길에서 그는 수많은 낯선 사람들로부터 환대받았습니다. 특히 중동 국가에서는 여성이 바이크를 타는 모습 자체를 상상하기 어려웠을 테니, 어디를 가든 신기해하는 눈빛을 받았겠죠. 모르는 사람이 대신 밥값을 내주고 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고생도 많았습니다. ‘길 위의 모터사이클’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도스빌이 세계 일주를 위해 챙긴 짐의 목록입니다. 옷은 단 한 벌의 라이딩 복장과 여행지에서의 휴양을 위한 원피스 한 벌뿐. 침낭과 방수포와 냄비, 포크와 숟가락을 제외하면 정말 꼭 필요한 바이크 수리용 연장, 구급약품이 전부입니다. 그 간소한 물품만으로 2만km를 지내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그 불편함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많겠지만 저로서는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넘어지기도 많이 넘어졌습니다. 구글에서 도스빌의 사진을 찾아보면 넘어져 있는 바이크, 수리 중인 바이크 사진을 적잖이 볼 수 있습니다. 도스빌 본인은 즐거웠다고 하지만요. 다만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넘어졌을 때 혼자 세울 수 있는 바이크여야 한다”라고 밝혔고 실제로 모토굿찌 750 대신 작은 가와사키 바이크로 세계 일주에 나선 걸 보면 오리온 레이드에서는 큰 바이크 때문에 적잖이 고생한 듯합니다.
각자의 바이크 여행을 추억하며
이후에도 도스빌은 1981년까지 바이크를 타고 남미, 호주 등지를 횡단하면서 꾸준히 자신의 여정과 경험을 글로 남겼습니다.
그의 여행기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도스빌이 직접 TED 강연(프랑스어로 말하지만, 유튜브 자막 자동번역 기능 덕에 대충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2016년에는 패션 브랜드 끌로에의 뮤즈로 선정돼 바이크 세계 일주를 테마로 한 의류 디자인에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길 위의 모터사이클’은 불과 20여 페이지의 그림책인 데다 당연히 텍스트도 얼마 안 됩니다. 하지만 낯선 길을 바이크로 여행하는 한 인간이 느낄 법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아마 우리가 라이더라 더 진하게 느끼는 것 아닐까요.
알래스카의 유콘강에서 오로라를 보며 천연 온천에 몸을 담그고, 인도에서 코끼리에게 손을 흔들고, 16세기 전에 만들어진 거대한 아프가니스탄의 석불 앞에 바이크를 세워 사진을 찍는 경험은 누구나 가능한 건 아닐 겁니다. 그렇게 도스빌은 전 세계를 몸에 걸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느 조용한 밤, 그림책을 천천히 넘기며 도스빌의 이야기에 푹 빠져보시길 권해봅니다.
책 속의 그 바이크
가와사키 GA5-A 100
1971년식을 기준으로 11마력, 10.8 Nm의 힘을 내며 무게는 고작 87kg입니다. 최고 시속이 113km라 조금 답답할 수는 있겠지만 힘이 세지 않은 사람이 홀로 수개월 간 투어를 다니기엔 최고 아닐까요. 도스빌의 바이크는 프런트 포크와 바퀴 정도를 개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길위의모터사이클 #도스빌
한국이륜차신문 418호 / 2023.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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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 여행, 어디까지 가 봤니?
세상에는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터사이클로 전 세계를 일주한 최초의 라이더는 누구인지 아십니까? 미국의 영화제작자인 칼 스턴스 클랜시입니다. 클랜시는 1912년 10월부터 1913년 8월까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북아메리카에서 1만8,000마일(약 2만 9,000km)을 바이크로 여행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또 숱한 도전자들이 있었을 텐데,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인물은 아무래도 세계 최초로 혼자 모터사이클 세계 일주에 성공한 여성 라이더, 안느 프랑스 도스빌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그림책’이 2020년 미국에서 출간된 데 이어 2022년 3월에는 한국판으로도 출간됐습니다.
그림책으로 만나는 모터사이클
누가 이 책을 만들었는지는 건너뛰고 도스빌의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1943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도스빌은 1968년에 바이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 바이크는 ‘불량배들이나 탄다’라는 이미지였지만 평등과 반전과 반권위주의를 외치던 68혁명의 시대였으니까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당시 광고계에서 일하고 있던 도스빌은 출퇴근용으로 바이크를 타기 시작합니다. 50cc짜리 혼다 바이크로 시작해 점점 바이크의 매력에 빠진 그는 모토굿찌 V7 스페셜(750cc)로 기변을 감행합니다.
이 바이크로 1972년 ‘오리온 레이드’ 바이크 투어에 홀로 참가하는데 당시 105대의 바이크 중 동승자가 아닌 여성 라이더는 도스빌 혼자였다고 합니다. 이 투어는 프랑스에서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파키스탄까지 달리는 험한 투어로 105대 중 92대만 이란에 도착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선 11대, 최종 목적지인 파키스탄까지는 단 5대만 완주에 성공했습니다. 그 5대 중 하나는 물론 도스빌의 모토굿찌였고요.
도스빌은 이때의 경험을 책(‘모터사이클을 탄 여자’·국내 미출간)으로 펴냈는데 당시에는 바이크를 타는 여자가 정말 드물다 보니 '거짓말 아니냐, 도와줄 인력과 트럭 따위를 대동하고 다닌 것 아니냐?'라는 반응도 받았다고 합니다.
초장기 투어에 매혹당한 도스빌은 곧바로 세계 일주를 준비합니다. 그가 택한 바이크는 100cc짜리 가와사키. 모델명은 책에도, 어떤 인터뷰에도 언급이 되지 않았지만 찾아 헤맨 결과 GA5-A 100을 살짝 개조한 것 같습니다. 도스빌은 1973년 7월 파리에서 출발해서 비행기로 캐나다 몬트리올에 도착, 미국 알래스카까지 달린 후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도쿄로 날아가 3주 머물렀다고 합니다.
가와사키 바이크의 고향에 간 김에, 또 나머지 여정을 위해 엔진을 교체한 다음 인도로 향했습니다. 틈틈이 프랑스의 바이크 잡지에 여행기를 기고하면서요. 그리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이란, 터키,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오스트리아, 독일을 거쳐 다시 파리로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이때가 1973년 11월, 여행 거리는 총 1만2,500마일(약 2만 117km). 그리고 두 번째 책(‘바람을 따라갔다’ 국내 미출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2만km의 바이크 투어
여행길에서 그는 수많은 낯선 사람들로부터 환대받았습니다. 특히 중동 국가에서는 여성이 바이크를 타는 모습 자체를 상상하기 어려웠을 테니, 어디를 가든 신기해하는 눈빛을 받았겠죠. 모르는 사람이 대신 밥값을 내주고 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고생도 많았습니다. ‘길 위의 모터사이클’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도스빌이 세계 일주를 위해 챙긴 짐의 목록입니다. 옷은 단 한 벌의 라이딩 복장과 여행지에서의 휴양을 위한 원피스 한 벌뿐. 침낭과 방수포와 냄비, 포크와 숟가락을 제외하면 정말 꼭 필요한 바이크 수리용 연장, 구급약품이 전부입니다. 그 간소한 물품만으로 2만km를 지내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그 불편함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많겠지만 저로서는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넘어지기도 많이 넘어졌습니다. 구글에서 도스빌의 사진을 찾아보면 넘어져 있는 바이크, 수리 중인 바이크 사진을 적잖이 볼 수 있습니다. 도스빌 본인은 즐거웠다고 하지만요. 다만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넘어졌을 때 혼자 세울 수 있는 바이크여야 한다”라고 밝혔고 실제로 모토굿찌 750 대신 작은 가와사키 바이크로 세계 일주에 나선 걸 보면 오리온 레이드에서는 큰 바이크 때문에 적잖이 고생한 듯합니다.
각자의 바이크 여행을 추억하며
이후에도 도스빌은 1981년까지 바이크를 타고 남미, 호주 등지를 횡단하면서 꾸준히 자신의 여정과 경험을 글로 남겼습니다.
그의 여행기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도스빌이 직접 TED 강연(프랑스어로 말하지만, 유튜브 자막 자동번역 기능 덕에 대충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2016년에는 패션 브랜드 끌로에의 뮤즈로 선정돼 바이크 세계 일주를 테마로 한 의류 디자인에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길 위의 모터사이클’은 불과 20여 페이지의 그림책인 데다 당연히 텍스트도 얼마 안 됩니다. 하지만 낯선 길을 바이크로 여행하는 한 인간이 느낄 법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아마 우리가 라이더라 더 진하게 느끼는 것 아닐까요.
알래스카의 유콘강에서 오로라를 보며 천연 온천에 몸을 담그고, 인도에서 코끼리에게 손을 흔들고, 16세기 전에 만들어진 거대한 아프가니스탄의 석불 앞에 바이크를 세워 사진을 찍는 경험은 누구나 가능한 건 아닐 겁니다. 그렇게 도스빌은 전 세계를 몸에 걸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느 조용한 밤, 그림책을 천천히 넘기며 도스빌의 이야기에 푹 빠져보시길 권해봅니다.
책 속의 그 바이크
가와사키 GA5-A 100
1971년식을 기준으로 11마력, 10.8 Nm의 힘을 내며 무게는 고작 87kg입니다. 최고 시속이 113km라 조금 답답할 수는 있겠지만 힘이 세지 않은 사람이 홀로 수개월 간 투어를 다니기엔 최고 아닐까요. 도스빌의 바이크는 프런트 포크와 바퀴 정도를 개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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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18호 / 2023.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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