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바로 그 장면’⑯_더 바디(2021년 작)

2023-02-10

죽은 아내가 살아 돌아왔다


‘바로 그 장면’을 연재하면서 어느 날 문득 W800이 등장하는 영화는 없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햇수로 7년째 타고 있는 가와사키의 W800 말입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과연 있더군요. 스페인 영화 ‘더 바디’입니다.


스페인어 제목 역시 ‘몸’이라는 뜻의 ‘El cuerpo’,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4년 개봉했고 2018년 ‘사라진 밤(주연 김희애, 김강우, 김상경)’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왓챠, 네이버 시리즈온, 티빙, 시즌, 웨이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라진 시체, 수상한 결혼



사실 W800이 얼마나 등장하는지가 제일 궁금했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님도 저와 같은 마음일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자면 사실 W800의 등장 분량은 얼마 안 됩니다. 딱히 무슨 의미를 갖고 등장하지도 않고요. 그나마도 밤 장면에서 나오기 때문에 반짝이는 W800의 실루엣을 감상하는 데 그쳐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꽤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참신하거나 짜임새 있거나 심오하진 않지만 잠시 스릴을 즐기고 싶을 때 추천할 만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시체안치소 경비원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부터 시작합니다. 수사를 맡은 하이메 페냐 형사는 경비원이 근무하던 시체안치소에서 마이카 빌라베르데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자연스럽게 마이카의 남편인 알렉스 울로아를 조사하게 됩니다.


마이카는 거대 제약사의 대표이사였으며 알렉스는 그녀의 사랑받는 남편이었는데, 문제는 그 사랑이 좀 과했다는 점입니다. 마이카는 남편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다루면서 집착해왔습니다. 그리고 알렉스는 결혼할 때부터였는지 그 이후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마이카에게 마음이 없습니다.


W800의 빛나는 존재감


그리고 알렉스는 자신이 강의하던 대학 학생인 카를라 밀러와 불륜 중입니다.


한밤중에 카를라를 만나기 위해 W800의 시동을 겁니다. 이들이 눈에 뜨이고 싶지 않은 마음만큼이나 어두운 무광 블랙 헬멧과 짙은 갈색의 가죽 재킷, 밤을 가르는 검은색 W800이 역시 라이더의 심금을 울립니다. W800의 배기음도 두어 번 들려줍니다. W800 오너로서 익숙한 소리가 아니라 다른 바이크 소리 같긴 하지만요.


이 영화에서 굳이 W800이 등장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그저 대충 주인공에게 가죽 재킷을 입히기 위한 도구 정도 아닐까 싶습니다. 그 자리에 다른 기종을 집어넣었으면 어땠을지 잠시 상상해 봅니다.


할리데이비슨의 포티에잇이나 아이언883이 떠오르지만, 미국 바이크라서 그런지 스페인 영화에는 묘하게 안 어울립니다. 유럽 브랜드인 두카티의 스크램블러라면? 캐주얼한 느낌이라 역시 분위기가 안 맞습니다. BMW 모토라드의 R18이나 알나인티, 트라이엄프의 본네빌이라면 적절할 텐데 W800보다 비싸서 영화 제작자들이 싫어하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니 정말 의미 없는 상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비(非) 라이더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요. 이 영화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W800의 존재감에 감탄하는 건 저와 독자님들 정도뿐일 겁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


수사가 계속되고, 알렉스는 불안에 떨면서 이 모든 게 마이카의 계획일 거란 의심에 사로잡힙니다.


결국 알렉스는 하이메 형사에게 진실을 털어놓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꾸만 하이메 형사의 과거 회상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는 10년 전 아내를 잃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반복적으로 삽입되는 회상 장면들을 보면서 하이메 형사라는 인물의 서사를 자꾸 덧대어주려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는데 영화 후반부에서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다 이유가 있었더군요.


영화는 마지막 반전을 향해 나아갑니다. 반전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궁금해서라도 끝까지 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그 반전이 엄청나게 설득력이 있지는 않지만, 배우들의 좋은 연기, 그리고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을 표현하는 연출이 긴장감 있게 이어집니다.


이 영화를 만든 오리올 파울로 감독은 스페인에서 매우 유명한 흥행 감독이기도 합니다. ‘줄리아의 눈’의 각본을 써서 이름을 알린 후 ‘더 바디’의 감독으로 스페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이후 ‘인비저블 게스트’, ‘폭풍의 시간’ 같은 작품을 잇달아 선보였습니다. ‘인비저블 게스트’는 우리나라 영화 ‘자백(주연 소지섭, 김윤진, 나나)’으로도 리메이크됐고요.


겨울에는 특히 이불 밖이 위험합니다. 한가한 겨울의 주말, 집에서 안전하게 스릴을 느끼고 싶다면 ‘더 바디’를 추천해 봅니다. 잠깐이나마 W800의 등장이 반가우실 겁니다.

 

영화 속 그 바이크, 가와사키 W800


1965~1974년 가와사키가 생산했던 W 시리즈의 현대적인 버전입니다.


1999년 출시됐던 W650이 2007년 단종되면서, 그리고 레트로 클래식 바이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W800 마니아층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W800의 최대 장점은 예쁘다는 점.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773cc의 공랭식 버티컬 트윈 엔진은 적당히 묵직한 진동과 배기음을 선사하고, 라이더가 굽힐 필요 없는 핸들바의 위치와 푹신하고 긴 시트 덕분에 주행감도 편안. RPM 상관없이 비슷하게 유지되는 힘이 어찌 보면 지루할 수도 있지만 장거리 투어에선 상당한 안정감을 줍니다.


저의 2017년식 기준으로 매우 아날로그적인 부품들이 매력 포인트이자 단점(편리하진 않으니까요)이기도 했는데, 이제는 ABS와 LED 헤드라이트 등 현대적인 요소가 조금 더 추가됐습니다.


단점은 건조중량 226kg의 무게. 경사가 있는 길에서 후진한다거나 잠시 끌바를 해야 할 때 매우 고생하곤 합니다. 또 휠베이스가 긴 클래식 바이크의 특성상 핸들링이 둔한 편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예쁘니까요.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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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20호 / 2023.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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