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바로 그 장면'⑧_애니메이션 ‘슈퍼커브’

2022-09-23

그 두근거림을 기억하시나요

 

2021년을 휩쓸었던 바이크 명작, ‘슈퍼커브’를 소개합니다. 애니메이션 ‘슈퍼커브’는 혼다 슈퍼커브가 혼자 움직이거나 대사를 읊진 않지만 사실상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인 애니메이션입니다. 슈퍼커브 누적 생산량 1억 대 돌파(2017년, 원작 만화도 2017년 작입니다)를 기념해 혼다와 협업해 만든 이 작품, 라이더라면 꼭 보길 추천합니다.

 

외로운 아이가 만난 신세계


이 애니메이션의 인간 주인공인 ‘코구마’는 부모도 친구도 없이 학교와 집만 오가는 고등학생입니다.


혼자서 즉석 식품으로 대강 식사를 때우는 모습, 하루 종일 말 한 마디도 않는 듯한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자전거로 꽤 먼 거리를 통학하던 코구마는 어느 날 도로 위의 스쿠터를 보고 1만 엔(약 10만 원)짜리 중고 슈퍼커브를 구입합니다. 통학로에는 오르막길도 꽤 많아서 힘들던 참이었거든요. 참고로 1만 엔은 터무니없이 싼 가격인데, 전 주인들이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코구마는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소심해 보이지만 대범한 성격이란 게 드러나는 대목이죠.


단순히 필요에 의해 슈퍼커브를 구입했을 뿐이지만 이후로 코구마의 삶은 크게 바뀝니다.


우선 이동의 자유가 생겼죠. 이동 반경이 넓어지자 마음속의 시야도 넓어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친구가 생겼습니다. 텅 빈 집에서 커튼을 열면 바로 앞 주차장에서 코구마를 바라보는 슈퍼커브. 그 모습이 의외로 듬직합니다.


인간 친구도 생깁니다. 코구마보다 먼저 바이크를 타고 다녔던 동급생 ‘레이코’입니다. 라이더끼리는 서로를 끌어당기기 마련. 코구마는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은 반면 레이코는 활기가 넘치는 타입으로 언뜻 잘 안 맞을 것 같지만 서서히 절친한 사이가 됩니다. 


레이코는 원래 일본 우체국 전용 커브인 일명 ‘우정 커브(MD90)’를 타다 ‘헌터 커브(CT110)’로 기변하게 되는데, 이유가 참 대단합니다. MD90으로 후지산 등정을 하려다 바이크가 망가져 버렸거든요. 이 일화에서 보듯, 레이코는 도전정신과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입니다.


그 시절의 낯선 두근거림


이렇다 할 기승전결도, 인상적인 사건도, 클라이맥스도 그다지 없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주인공 코구마부터가 말이 별로 없고요. 그가 엉겁결에 슈퍼커브를 들인 다음 우비도 사고, 날이 쌀쌀해지자 월동준비도 하고, 슬슬 정비도 배워서 열심히 슈퍼커브를 돌봐주고, 방학 때는 슈퍼커브로 서류 배달 아르바이트도 하고, 마침내 장거리도 달려보고 이런 정도가 끝입니다. 성공적으로 정비나 투어를 마쳤다고 해서 코구마가 호들갑을 떨 성격도 아니고요. 배경음악조차도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대부분입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을 바라보는 라이더로서 상당히 훈훈하고 뿌듯합니다.


“추우니까 단단히 챙겨 입어야 할 텐데”, “바이크에 수납공간이 있어야 편하지”, “옳지 잘 한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코구마의 하루하루를 함께 하다 보면 어느새 입 꼬리가 올라가더군요.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초보 시절을 돌이켜보게도 됩니다. 보호 장비는 커녕 장갑 하나 없이 혼다 CBR125를 타고 속도를 내보기도 했고, 얇게 입고 달리다 강원도에서 호되게 떨어보기도 했고, 비를 예상치 못했다가 재래시장에서 급히 우비를 사 입기도 했고요. 그 시절의 낯선 두근거림을 똑같이 겪는 코구마를 보면서 미소를 짓게 됩니다. 바이크와 각종 용품을 놓고 수다를 떠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우리들과 너무도 똑같습니다.


특히 코구마는 감정 표현이 별로 없는 캐릭터이기에, 정말 가끔 배시시 웃는 장면이 등장하면 그렇게 마음이 벅찰 수가 없습니다. 한가한 일본 중소 도시의 도로라든가 산길, 호숫가 같은 풍경이 매우 아름답게 그려져 있어서 언젠가 꼭 한번 저런 곳에서 달려봐야겠다는 결심도 하게 됩니다.


이동 거리와 자유의 관계


바이크든 사륜차든 타기 시작하면 깨닫게 되곤 합니다. 언제든 내키면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 지를요. 실제로 떠나고 말고는 사실 큰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건 떠날 수 있는 능력과 수단이니까요. 이 능력과 수단은 마음 속 한 켠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알게 모르게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마치 겉보기에 후줄근하지만 알고 보니 건물주인(속물적인 비유 죄송합니다만)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바이크는 사륜차 대비 좀 더 자유로운 이동과 여행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주차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길을 잘못 들어도 금방 바이크를 돌려 빠져나올 수 있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잠시 멈춰 서기 편리하니까요. 바이크 기종에 따라 산길까지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고요. 한국이륜차신문 독자님들이 바이크에 매혹된 이유 중 하나도 이런 자유로움이겠죠.


그런 자유를 서서히 깨닫는 코구마의 모습이 오래 여운을 남깁니다. 어두운 집에서 홀로 도시락을 준비하던 코구마는 이제 슈퍼커브와, 친구들과 함께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걸 배우고 경험할 겁니다. 독자님들과 똑같이 말입니다.


‘슈퍼커브’가 마음에 드셨다면 고교생 캠핑 마니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유루캠’도 추천해 봅니다. 슈퍼커브보다는 좀 더 시끌벅적하고, 슈퍼커브만큼은 아니지만 바이크도 꽤 자주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슈퍼커브’와 ‘유루캠’ 모두 네이버 시리즈온, 왓챠, 티빙, 웨이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속 바이크, 슈퍼커브


슈퍼커브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 ? 누구나 편하게 탈 수 있는 바이크를 만들겠 다는 혼다 소이치로 창업주의 철학을 집대성한 모델, 기름 냄새만 맡아도 움직인다는 말이 나올 만큼 놀라운 연비(리터당 62km), 시간이 지날수록 정이 붙는 디자인, 바이크지만 거의 생활가전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모델.


1958년 첫 출시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슈퍼커브와 희로애락을 겪었을지 상상해볼 때마다 설렙니다.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슈퍼커브 #슈퍼커브애니메이션 #유주희


한국이륜차신문 411호 / 2022.9.16~9.30


Copyright ⓒ 한국이륜차신문 www.kmnews.net 무단복제 및 전재 –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