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남의 더 히스토리_미들급 600cc 슈퍼스포츠의 정석이자 정점

2024-02-08

history of CBR600RR


지난해 11월, EICMA 2023을 통해서 혼다는 CBR600RR의 세계 무대 복귀를 선언했다. 환영의 분위기는 절대적이다. 왜 그랬을까. CBR600RR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있다.

 

미들 클래스의 개척자이자 정복자


2003 CBR600RR


혼다의 CBR600RR이 처음 시장에 등장한 것은 지난 2003년부터였다. 맞다, 약 20년 전의 일이다. 이 시기는 인터넷의 발전으로 세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진 시기였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전문 스포츠 채널 등의 TV와 출판물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인터넷 덕분에 모터사이클 레이스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지고 그 영향력이 그 이전보다 훨씬 더 크게 성장했다. 모터사이클 세계의 최상위 레이스인 월드 그랑프리(World GP)와 월드 슈퍼바이크 챔피언십(WSBK) 등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모터사이클 레이스의 세계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월드 그랑프리는 현재의 모토GP란 이름으로 새로워졌고, 또한 2스트로크 엔진을 사용했던 것에서 4스트로크 엔진을 사용하는 새로운 시대로 전환하고 있었다.


혼다는 이 시기에 가장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브랜드였다. 모토GP의 대전환기에 혼다는 2스트로크 엔진과 4스트로크 엔진 모두 최고의 성적을 거뒀고, 일반 시판 차량을 기준으로 하는 WSBK에서도 그 명성은 여전했다. 특히나 600cc급 배기량의 슈퍼스포츠란 장르를 개척하는 역할 또한 혼다의 CBR600F 시리즈로부터 시작됐다.


RC211V와 CBR600RR


파이어블레이드(CBR) 시리즈가 정립한 새로운 스포츠 모터사이클에 대한 정의는 미들급 슈퍼스포츠 시장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됐고, 혼다는 자사의 차세대 모토GP의 레이스 머신 ‘RC211V’에서 영감을 얻은 차체 디자인으로 출시와 동시에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물론 RC211V와 CBR600RR 또는 CBR1000RR은 서로 완전히 다른 모델이긴 하지만 레이스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개발된 섀시와 디자인 큐 등은 일치했으며, 실제로 CBR600RR은 당시 모토GP 레이서의 그래픽을 적용한 모델을 선보여 인기를 끌기도 했다. 말하자면 진정한 의미로 ‘레이스 머신의 복제품’인 뜻에 해당하는 ‘레플리카’에 해당하는 모델이기도 했다.


2005 CBR600RR Special Edition


1세대 CBR600RR이 등장했던 2003년 이후, 2년 만에 1세대의 후기형 모델이 발표되는데 이미 동급 최경량 수준이었던 CBR600RR에서 5kg을 더 덜어냈다. 프런트 서스펜션은 도립식으로 바뀌었고, 프런트 브레이크 역시도 레디알 마운트 방식으로 변경됐다.


CBR600RR은 레이스에서의 활약도 대단했다. 월드 슈퍼바이크 챔피언십의 슈퍼스포츠 부문인 WSS에서 CBR600RR은 데뷔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연속 우승을 거둔 한편, 그 이후에도 2010, 2012, 2014년도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정점에 선 CBR600RR


2007 CBR600RR

2007 CBR600RR Special Edition


2세대 모델이 등장하는 것은 1세대 후기형 모델이 발표된 2005년에서 또다시 2년이 더 지난 2007년에서다. 이 당시에는 모델 변경 주기가 매우 짧고 그 변화의 폭이 무척 넓었다.


2세대 CBR600RR은 우선 외적 디자인부터 크게 변경됐다. 단단한 갑옷을 두른 것처럼 느껴졌던 전체적인 카울링은 훨씬 더 가볍고 경쾌한 인상으로 변했으며, 무게는 이전 대비 또다시 무려 8kg이나 더 줄었다. 1세대 후기형이 전기형보다 5kg이 줄었던 것을 생각하면 불과 4년 만에 무게가 13kg이 줄어든 셈이다. 


장비 중량은 약 187kg. 동급의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 모든 슈퍼스포츠 모터사이클 중에서 가장 가벼운 모델이기도 했다. 핵심은 엔진을 더 콤팩트하게 설계하는 것으로 엔진에서만 2kg을 줄였고 엔진이 콤팩트화되면서 또다시 휠 베이스를 기존보다 15mm를 더 줄이는 한편, 질량 집중화를 이루면서도 섀시 전반에서 4.5kg을 더 덜어냈다.


2009 CBR600RR

2010 CBR600RR


또다시 2년 뒤인 2009년에 마이너 체인지가 이뤄진 CBR600RR은 엔진 회전 한계를 높이면서 출력을 더 끌어올리는 변화를 꾀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변화는 역사상 최초로 슈퍼바이크 전용 전후 연동 ABS를 적용한 것이다.


혼다는 원래부터 독자적인 전후 연동 브레이크 시스템인 콤바인드 브레이크 시스템(CBS)을 통해 제동 안정성을 높이는 방식을 꾸준히 제시해왔다. 하지만 2세대 중기형 CBR600RR에서 적용된 것은 전후 연동이자 슈퍼스포츠 전용 ABS 시스템을 탑재하는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이 시스템이 놀라웠던 이유는 복합적이다. 현시점에서는 슈퍼바이크에 ABS가 적용되는 것이 신기한 것이 없지만, 이 당시에는 그 시도 자체가 놀라운 것이었던 것은 물론, 그 완성도에 또 한 번 놀라게 됐다. 실제로 당시 슈퍼바이크 및 모토GP에 출전 경험이 있는 개발 테스트 라이더에게 이 브레이크 시스템을 탑재한 것을 설명해주지 않고 테스트했을 때, C-ABS가 적용됐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그 완성도가 높았다.


이 시스템은 브레이크 바이 와이어. 즉, 전자식 브레이크 제어 시스템의 탑재로 가능한 것이었다. 전후 연동으로 아주 높은 수준의 제동 성능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급격한 제동 조작에서도 브레이크가 잠겨 슬립하는 것도 막을 수 있었다.


슈퍼스포츠 모터사이클에 이런 시스템이 탑재되는 것 자체가 파격적으로 인식될 수 있었지만, 사실 또 혼다로서는 이게 전혀 맥락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혼다는 자사의 레이스 부문인 HRC가 개발한 웍스 레이스 머신 RVF에서 R-CBS를 적용했던 바 있었으니, 레이스를 통해서 쌓은 기술을 일반 시판 모델에 적용한 의미도 있었다.


10년의 기다림


2013 CBR600RR


국내에서 정식 수입 판매된 마지막 CBR600RR은 2013년에 등장했다.


CBR600RR이 2003년에 데뷔한 이래로 2년을 주기로 꾸준하면서도 대대적인 변화가 계속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4년 만에 모델 체인지가 이뤄진 것이었다.


사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시장의 흐름이 예전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상 이야기되는 2008년과 2010년의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덕분에 모터사이클 시장에서도 특히, 슈퍼바이크 및 슈퍼스포츠 장르가 큰 타격을 입었다. 혼다의 CBR600RR도 마찬가지. 


후기형 모델이 등장했던 2013년의 판매량은 초기형 대비 약 1/5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이런 분위기는 단지 혼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600cc급 슈퍼스포츠 장르 전체가 침체한 것은 물론 아예 슈퍼바이크 레이스 등의 인기도 크게 떨어졌다. 이 때문에 혼다는 CBR600RR의 후기형 모델에서 배기 배출가스 규제에 대응하지 않으면서 한동안 그 명맥이 끊기게 됐다.


다시 말하지만 배기 배출가스 규제치에 대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은 지난 2020년을 기점으로 일본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만 판매된 2세대 CBR600RR 최종형에 해당하는 모델이 등장했던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2023년 EICMA에서 모습을 드러낸 CBR600RR


하지만 국내 시장에는 이 모델이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2023년의 EICMA에서 유럽 시장에서의 판매를 전제로 최신 환경규제인 유로5+에 대응하는 모델이 소개된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CBR600RR이 시장에 처음 선을 보였던 것에서 20년 전,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소개된 CBR600RR 이후 또한 10년이 지나서였다.


기본적으로 2023년에 발표된 유로5+ 대응 모델은 2세대 CBR600RR의 최종형(일본 내수)에서 또 한 번 진화해 6축 IMU(관성측정장치)를 도입하는 등 최신 기술이 모두 투입된, 그야말로 CBR600RR 시리즈의 최종 진화형 모델이다.


아직 국내 도입 여부는 미확정이지만, CBR600RR이 도입될 가능성만으로도 관심을 집중할 이유는 충분하다.


나경남(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사진/HO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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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44호 / 2024.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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