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남의 더히스토리_110년의 역사 그리고 진행형, EICMA

2024-11-06

세계에서 가장 큰 모터사이클 전시회이자,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전시회로 잘 알려진 EICMA가 2024년 81회로 110주년을 맞는다. 사실상 모터사이클의 역사나 다름없는 EICMA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EICMA의 역대 포스터들은 그 자체로 예술적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모터사이클의 역사 그 자체

EICMA를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 존재 자체의 의미나 역할에 대해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며, 영향력에 관해서도 설명할 수 있겠다. 우선은 가장 쉽게 접근해보자. 

EICMA는 매년 이탈리아 밀라노 근교, 로 피에라 밀라노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모터사이클 쇼다. 한때는 격년으로 열리기도 했지만 1997년 이후로는 매년 열리고 있다. 규모와 집중도 그리고 영향력 면에서는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탈리아의 밀라노가 세계 모터사이클의 수도로 불리게 되는 것은 바로 이 EICMA 쇼 때문이며, 그 중요도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EICMA는 이탈리아어로 ‘Esposizione Internazionale Ciclo Motociclo e Accessori’의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모터사이클과 자전거 및 액세서리 국제 전시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는데, 이것은 애초에 모터사이클과 자전거가 구조적 유사성을 갖고 있고 그 덕분에 구성 요소들에서도 겹치는 것이 많아 같은 산업으로 분류됐다. 

지금은 세부적인 부분에서 많은 것이 변했지만, 자전거를 뜻하는 Ciclo와 모터사이클을 뜻하는 Motociclo란 용어를 떠올려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전거에 모터를 단 것이 모터사이클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전시회로 열렸다는 것은 특정 국가의 범위를 벗어나 당시의 세계 시장 전체로 산업의 규모를 확대하는 역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 덕분에 이탈리아의 주요 모터사이클 및 액세서리 제조사들도 그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고, 다른 나라의 제조사들 역시 이 기회를 통해 상호 협력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모터사이클과 자전거 산업의 역량들이 집적화된 이 쇼가 1914년 이래로 110년을 지속해오면서 이들의 역할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제조와 생산에 필요한 기반 요소들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중소기업들이 이 자리에 모였고, 이들과 협력하면서 최종 모터사이클 제조사들은 발전해나갔다. 또한 이러한 모터사이클 제조사들의 대부분이 자사의 모델들을 경쟁적으로 선보이면서 산업 전반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고도화된 기술력들을 경쟁하는 것은 모터사이클 쇼 이외에도 레이스 등을 통해 이뤄질 수 있었지만 모터사이클의 세계가 대중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미디어가 발전해가면서 더더욱 쇼의 중요성은 커져 갔다. 단지 레이스에서의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쉽게 탈 수 있는 모델들을 한 자리에서 선보일 수 있었고, 저마다의 제조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뉴 모델들이 한 자리에서 공개되면서 일종의 품평회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914년 첫번째 EICMA가 밀라노에서 열렸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다양한 브랜드들의 뉴 모델들이 모이면서 시대를 관통하는 트렌드가 생겨날 수 있었고 또한 기존의 트렌드를 뒤집는 새로운 모델들이 등장하는 것 또한 가능해졌다. 단지 산업에 대한 중요성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면 EICMA는 총성 없는 제조사들의 전장처럼 비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반 관람객들에게 EICMA는 일종의 축제나 다름없다. 새로운 뉴 모델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장이기에 트렌드를 엿볼 수 있고, 과거의 일들을 통해서 미래를 전망하는 것도 가능했다. 

새로운 모터사이클들을 직접 만나는 일이 미디어와 통신이 극도로 발전한 현재에도 여전히 중요하고 많은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50년 전, 가깝게는 20년 10년 전에는 어땠을까? 

EICMA 현장을 방문하는 관람객. 즉,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축제도 없지 않았을까. 모터사이클 세계의 최전선이자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 EICMA는 110년이란 긴 역사만큼이나 사실상 모터사이클 세계의 역사를 집대성한 것과 다름없다. 


EICMA가 가능했던 이유

국제 모터사이클 자전거 및 액세서리 전시회란 뜻을 가진 EICMA는 어떻게 탄생해서 진행됐을까. 이 배경을 살펴보는 것은 모터사이클이란 산업 분야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먼저 EICMA가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전시회라는 점에서 출발해보자. 국제 전시회가 조직되려면 그것을 위한 조직위원회가 필요하고 이러한 조직은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모임에서 출발한다. EICMA는 ANCMA의 주관으로 열린다. 

그럼 ANCMA는 무엇일까. ANCMA는 ‘Associazione Nazionale Ciclo Motociclo Accessori’의 머리글자들을 따 만들어진 이름이다. 직역하자면 ‘전국(이탈리아) 자전거 및 모터사이클 액세서리 협회’를 말한다. 이 협회가 출범한 것은 지난 1920년의 일이며, 이를 계기로 이탈리아의 자전거 및 모터사이클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협회가 단독적으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지만 이 또한 전체 산업계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자전거 및 모터사이클 산업의 발전은 이탈리아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한편 경제적 이득을 만들어 냄으로써 국가 전체의 경제 성장과 발전에도 기여한다. 

실제로 ANCMA는 별개의 조직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산업 총연맹인 CONFINDUSTRIA(콘핀두스트리아,Confederazione generale dell’industria Italiana)의 산하로 정확하게는 CONFINDUSTRIA ANCMA로 표기된다. 콘핀두스트리아는 이탈리아의 공공기업을 포함해 약 15만 개 이상의 중소 및 대기업이 가입됐으며, 약 544만 명가량의 직원들이 여기에 소속됐다. 실제로 이 조직이 발생시키는 경제적 규모는 이탈리아 GDP(국내총생산)의 약 34%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다. ANCMA에 포함된 기업들의 숫자는 약 170개가 넘고 이들은 모터사이클과 자전거 제조사, 각 부분의 제조에 필요한 부품과 액세서리, 헬멧 등의 제조사가 포함된다. ANCMA 회원사가 직접적으로 고용하고 있는 직원의 규모는 약 13,500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의 연간 매출액만 약 40억 유로(한화 약 6조 원)에 이른다. 관련 산업 전체의 규모로 보면 약 6,000여 개 이상의 판매점들이 각각의 분야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종사자들의 숫자는 약 9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탈리아가 여전히 전 세계의 모터사이클 및 자전거 산업에서 세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모터사이클과 자전거 산업을 발전시키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체계적인 조직을 통해 그 역량을 키우고 그것을 잘 육성한 덕분이다. 전 세계의 라이더들이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는 EICMA는 이런 체계 위에서 존재할 수 있었다. 


위기에 강한 EICMA 

유럽 시장 중심의 모터사이클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모터사이클 쇼는 주요 시장 모두에 존재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자국 시장 중심의 유러피안 이벤트라고 한다면 이탈리아의 EICMA와 독일의 INTERMOT는 국제적인 주목도와 참여율을 자랑하는 대표적 국제 모터사이클 이벤트였다. 상대적으로 INTERMOT의 역사는 짧은 편으로 1998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이래로 2006년부터 쾰른에서 열리고 있는 이벤트다. 

EICMA의 110년 역사 속에서도 굴곡은 있었다. 1914년 첫 번째 쇼가 열린 이후에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1920년에 되어서야 쇼가 이어질 수 있었고, 1941년 이후에는 또다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쇼가 이어지지 못하다가 1946년에 돌아왔다. 

쇼의 규모는 최초에 24개 업체가 참여했던 것에서 1946년에는 212개 업체로 크게 확대됐고, 1952년에는 502개 업체로 두 배 이상으로 확대됐다. 대신 달라진 점도 있었다. 1957년 이후에는 매년, 또는 1년에도 2번 개최된 적이 있던 쇼가 2년 주기로 열리게 됐다. 격년 개최의 기조는 1957년부터 1997년까지였고, 1998년 이후로는 매년 열리게 됐다. 110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올해의 쇼가 81회에 그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근의 가장 큰 위기는 아무래도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선진국 가운데서도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극심했던 나라 중 하나로 그야말로 전쟁과도 비교할 수 있을 법한 큰 위기를 맞았다. 

팬데믹 선언 이후 직후였던 2020년의 EICMA가 취소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전 세계인들의 이동 자체가 크게 제한됐고, 실내 공간에서 열리는 이벤트인 만큼 대량 감염 및 전파의 가능성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벌써 약 5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일이지만 그 당시를 기억하면 정말이지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오히려 모터사이클이란 레저 스포츠 도구를 재발견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대중 교통 수단이 아닌 개인적인 탈 것으로써 여행과 레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도구로써 다시 주목받았고, 이 기회를 EICMA는 놓치지 않았다. 

COVID-19 이후 강행했던 2021년의 EICMA은 그야말로 과감한 선택이었다

팬데믹 상황이 아주 말끔하게 종식됐다고 말할 수 없었던 2021년의 11월 하반기에 EICMA는 다시금 돌아왔다. 물론 상황은 전혀 쉽지 않았다. BMW 모토라드와 KTM 그룹, 심지어는 이탈리아 브랜드인 두카티 같은 몇몇 대형 모터사이클 제조사들이 EICMA에 참여하는 대신 온라인을 통해 더 많은 고객을 직접 만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팬데믹 상황이 완벽히 정리되지 않은 각국의 사정 때문에 참가 브랜드들은 많이 축소됐다. 2019년의 1,800여 업체에서 2021년은 그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820개 브랜드밖에 참여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EICMA의 조직위는 이 쇼가 갖는 가치를 재정립하며 미래를 위한 투자로써 팬데믹 이후의 첫 모터사이클 쇼를 강행했다. 실제로 이 당시 쇼를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야말로 참담하고 암울한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조직위는 감염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인원 제한 등의 수칙을 지키면서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맞이하는 초유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 결과로 이듬해인 2022년에는 2018년도 이상의 참가 업체를 확보했고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다. 팬데믹 기간에 모터사이클 쇼가 열리지 못했던 상황에서도 적지 않는 모터사이클 판매량을 올렸던 브랜드들은 그들이 선택했던 온라인상의 신모델 소개 등의 방법이 효과적이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EICMA는 오히려 팬데믹 이후, 발달한 소셜 미디어의 위력을 이미 2021년에 실감했고, 이것이 EICMA가 앞으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주요한 요소로서 인식했다. 제아무리 동영상 등을 통해서 새로운 모터사이클에 대한 소식 자체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실제로 만나고 싶어 했다. 심지어 실제로 쇼가 열리자 각 브랜드가 직접적으로 자신들의 신모델 소식을 전파하려고 노력했던 것의 수십 배 이상의 소셜 미디어를 통한 홍보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EICMA를 비롯한 오프라인 전시 이벤트에 앞으로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던 브랜드들이 2024년의 EICMA 쇼에 복귀를 선언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EICMA가 쇼의 존폐를 가를 위기 속에서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기대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심지어 EICMA는 단순 전시 이벤트로만 진행됐던 EICMA의 의미를 더욱 확장해 라이딩 시즌에 맞춰 라이더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라이딩 이벤트 ‘EICMA RIDING FEST’를 개최해 관심을 더욱 집중시켰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EICMA는 지난 2023년 역대 최대 참가로 기록됐던 2019년의 40개국 1,800여 참여 업체에 비견될 만한 45개국 1,700여 개 브랜드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었다. 

그럼 과연 110주년을 맞이하는 2024년의 EICMA는 어떠할까. 이미 집계된 참가 업체는 45개국에서 2,200개가 넘는다. 이제 머지않아 열리는 EICMA 2024는 역대 최대 규모로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모터사이클 쇼로서의 가치를 또 한 번 더 증명해 낼 것이다. 

나경남 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사진_EIC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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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62호 / 2024.11.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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