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남의 더 히스토리_EICMA, 110년에 걸친 이륜차 디자인 이야기(2편)

2024-12-20

시대를 이끈 혁신적 디자인


110주년을 맞이한 EICMA 모터사이클 쇼는 그야말로 특별했다. 모터사이클 산업의 주요 브랜드들이 참여해왔고 그것이 곧 모터사이클 산업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110년의 세월 속에서 이 산업은 적지 않은 변화를 겪어왔고 그것은 결국 다양한 모터사이클들의 존재 그 자체로 증명됐다. 


EICMA의 110주년을 맞이한 특별 전시는 바로 이러한 모터사이클 역사를 관통하는 것이며 그 변화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 그만큼 전시된 모델 하나하나는 자세히 들여다볼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형태적 특징에 따른 중요 모터사이클들을 함께 알아보자. 이번 호는 시대를 이끈 혁신적인 디자인을 한 모터사이클을 살펴본다.


스즈키, DR800S BIG(SUZUKI, DR800S BIG) - 1992년

 

스즈키의 DR800S는 1992년의 EICMA에서 전시됐던 모델이다. ‘빅 버드’. 즉, 큰 새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던 스즈키의 DR BIG 모델은 싱글 실린더 엔진으로 일반 양산 모델 중 최대 배기량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먼저 등장했던 DR750S이 갖고 있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그 후계 기종으로써 다소 의미를 축소할 수도 있겠지만 단일 실린더 엔진으로는 가장 큰 배기량 779cc의 SOHC 엔진을 갖췄다는 것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 엔진은 두 개의 미쿠니(Mikuni) 카뷰레터와 트윈 스파크 플러그를 통해 최고 54마력을 냈고, 최대토크 59Nm를 발휘했다. 외형적으로는 DR BIG의 시작점인 DR750S의 것을 거의 그대로 잇는다. 더블 크레들 프레임으로 거대한 싱글 실린더 엔진을 감싸 안고 있으며, 특유의 거대한 ‘부리’와 ‘윈드 스크린’은 그야말로 상징적이다. 왜냐하면 현시대의 ‘듀얼퍼퍼스’ 또는 ‘어드벤처 투어링’ 장르의 디자인 경향을 이보다 앞선 DR750S가 표준을 제시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두카티, 몬스터 M900(DUCATI, MONSTER M900) - 1993년


두카티 몬스터의 탄생은 그야말로 극적이었다. 이름처럼 당시에는 존재 자체가 괴물과도 같은 것이었고,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에도 불구하고 모터사이클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모터사이클 중 하나로 꼽힐만한 미적 완성도를 갖췄다.


아마도 모터사이클 역사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쳐왔고 현재까지도 여전히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천재적인 모터사이클 디자이너를 하나만 꼽는다면 바로 이 몬스터를 디자인한 미구엘 갈루찌(Miguel Galluzzi)가 될 것이다.


몬스터 M900은 슈퍼바이크 세계에서 사용됐던 차대와 엔진은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 네이키드 모터사이클로 만들었기에, 일반적인 네이키드 모터사이클의 수준을 넘어선 말 그대로의 ‘괴물(Monster)’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몬스터 이전의 네이키드 모터사이클은 그 자체로써 레이스 머신 그 자체, 혹은 레이스 머신의 베이스 모델이었지만, 몬스터는 슈퍼바이크에서 출발해 네이키드 모터사이클이 된 현시점에서의 ‘슈퍼네이키드’란 장르의 시발점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의미를 집어치우더라도, 이 미니멀리즘의 극치는 군더더기 없는, 아름답고 섹시한 디자인으로 손에 꼽힌다.

 

트라이엄프, 스피드 트리플 955i(TRIUMPH, SPEED TRIPLE 955i) - 1999년

 

영국의 트라이엄프에서 자존심을 걸고 세기말에 선보였던 스피드 트리플 955i는 당시 영화 속에서의 노출을 통한 마케팅 효과로써 특히 더 널리 알려지게 됐다.


지난 2000년에 개봉됐던 첩보 액션 영화인 ‘미션 임파서블 2’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톰 크루즈가 녹색의 스피드 트리플 955i를 타고 펼쳤던 곡예에 가까웠던 모터사이클 액션은 트라이엄프 브랜드의 가치를 단숨에 끌어올리는 아주 주요한 역할을 했다.


트라이엄프의 스피드 트리플 955i는 직렬 4기통 엔진이 절대적인 다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시기에 트라이엄프의 3기통 엔진을 갖춘 것으로도 차별화가 이뤄졌다. 더블 튜브 메인 프레임과 잠자리의 눈을 연상시키는 크롬으로 코팅된 특유의 2연장 헤드라이트로도 다른 어떤 모터사이클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 디자인을 구현했다.

 

MV 아구스타, F4 아고(MV AGUSTA, F4 AGO) - 2002년

 

MV 아구스타의 특별함은 두말하면 입이 아프다. 그런데 그 특별함은 어디서 왔을까? 세계를 의미하는 범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좁았던 시기에 MV 아구스타가 거뒀던 놀라운 레이스에서의 성과 때문일 수도 있지만, 현시대로 이어지는 MV 아구스타의 성공에는 바로 F4가 존재했다.


MV 아구스타가 카스틸리오니 가문의 카지바 그룹으로 인수되면서, 이들은 이 명문 브랜드의 재건을 위해 특별한 모터사이클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들은 모터사이클 디자인 역사에서 첫 번째로 꼽을 만한 디자이너 ‘마시모 탐부리니(Massimo Tamburini)를 통해 F4 750을 개발하면서 전 세계 이목을 완벽하게 집중시켰다.


당시의 F4는 슈퍼바이크 챔피언십의 규정을 따른 직렬 4기통 엔진의 배기량 규정에 따라 배기량 749.5cc로 맞췄고 이 엔진은 특히 1990년부터 92년까지 페라리(Ferrari)의 포뮬러1 레이스 머신 엔진에 차용됐던 기술을 적용했었다.


전시된 모델인 F4 아고는 현존하는 역사상 가장 많은 월드챔피언십을 기록한 그야말로 전설 중의 전설로 일컬어지는 레이서 ‘자코모 아고스티니(Giacomo Agostini)’를 기리는 헌정 모델로 개발됐다. 한정 수량으로 전 세계에 300대 만이 공급됐으며, F4 750 때와 달리 배기량 998cc 엔진으로 당시 기준으로는 충격적인 수준이었던 166마력을 달성했다.

 

베넬리, 토네이도 트레(BENELLI, TORNADO TRE) - 2006년

 

토네이도 트레는 최초에 1999년의 EICMA를 통해 토네이도 트레 900을 공개했는데 이 모델은 그야말로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단숨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탈리아어로 숫자 3을 의미하는 트레(Tre)는 엔진이 3기통이란 것을 의미했고, 최초의 토네이도 트레 900은 3기통 898cc 엔진이었다.


토네이도 트레 900의 첫 등장 이후, 그리고 실제 생산되기 시작한 2002년으로부터 4년 뒤인 2006년 등장하게 된 토네이도 트레는 흔히 토네이도 트레 1130으로도 불렸는데, 이것은 마찬가지로 3기통 엔진을 사용하고 배기량을 1,130cc로 끌어 올렸기 때문이었다.


토네이도 트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라이더 시트 아래로 라디에이터를 배치했던 것이었다. 이 방식은 엔진 전면에 배치되는 라디에이터를 뒤쪽으로 옮김으로써 프런트 타이어의 배치를 좀 더 차체 중심으로 끌어오고 그 덕분에 휠베이스를 줄일 수 있었다. 라디에이터를 식힐 공기는 전면 프런트 카울의 슬릿으로 흡입되어 리어 카울 아래로 배치된 두 개의 팬을 구동해 공기를 배출하는 방식이었다. 이 디자인은 MV 아구스타에서 슈퍼벨로체 800을 디자인했던 에이드리언 몰튼(Adrian Morton)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기도 하다.

 

허스크바나, 비트필렌 401 에어로(HUSQVARNA, VITPILEN 401 AERO) - 2016년

 

KTM 그룹으로 편입된 허스크바나 브랜드가 단지 라벨을 바꾼 KTM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등장했던 필렌 시리즈들은 실제로 효과가 굉장했다.


KTM의 390 듀크, RC390 등에서 사용됐던 엔진과 차대 전반을 활용하지만, 전혀 색다른 방식으로 어필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선택한 것은 레트로한 무드를 갖고 있으면서도 매우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젊은 층에게 어필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계획은 모두 KTM의 자회사이기도 한 KISKA 디자인에 의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특히 2016년도에 EICMA를 통해 공개됐던 비트필렌 401 에어로는 가장 모던한 카페 레이서, 네오 레트로 스타일 카페 레이서라고 부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콘셉트 모델로써 선보인 것이었지만, 수많은 이들이 실제로 이 디자인에 관심을 보였고, 그 덕분에 사외품으로 전용 프런트 페어링이 개발되어 적지 않은 이들이 커스텀 방식으로 이 형태를 구현하기도 했다.

 

루미, 투리스모 125(RUMI, TURISMO 125) - 1950년

 

아마도 국내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이탈리아의 모터사이클 브랜드 루미(RUMI)는 본디 섬유 기계를 위한 주조 부품을 생산하는 것에서 출발해, 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전쟁 물자를 제조했다. 그러다 1950년 종전 이후에는 소형 모터사이클을 제조하는 브랜드로 탈바꿈했다. 그러니까 이 모델은 루미의 가장 초창기 모델 중 하나인 셈이다.


그와 동시에 흥미로운 점은 창업주의 아들인 도니노 루미(Donnino Rumi)가 이탈리아의 현대 화가이자 조각가로도 그 이름을 알렸다는 점이다. 실질적으로 루미가 모터사이클을 생산하는 단계에서는 도니노 루미가 회사를 이끌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는 화가이자 자신의 모터사이클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투리스모 125는 2기통 124.6cc 엔진을 장착하고 최고 6마력을 냈는데, 엔진을 프레임의 일부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연료 탱크와 시트가 하나로 연결되어 메인 프레임에 의해 지지되는데, 리어 엔드로 시트가 연결되어 있지 않기에 마치 시트와 연료 탱크가 공중에 뜬 것처럼 보이는 것이 또한 인상적이다.

 

모토굿찌, 오토 칠린드리 500(Moto Guzzi, Otto Cilindri 500) - 1957년


1957년 EICMA를 통해 공개됐던 모토굿찌의 오토 칠린드리 500은 그야말로 가장 혁신적이고 특별한 모터사이클 중 하나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역사상 최고의 모터사이클 중 하나로 평가된다.


우선 이름부터 살펴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오토(Otto)는 이탈리아어로 숫자 8을 의미하고 칠린드리는 엔진의 기통. 즉, 실린더를 뜻한다. 숫자 500은 배기량이다. 그럼 어떻게 해석되겠는가. 8기통 500cc 엔진을 가진 모델이다.


이 특별한 모델은 모토굿찌의 줄리오 체사레 카르카노(Giulio Cesare Carcano)에 의해서 설계된 것이며, 누가 봐도 공기역학적인 디자인은 그야말로 혁신적이었다. 하물며 이 8기통 엔진은 수랭식 V형 8기통이었고 DOHC 방식을 도입했다. 당연히 무게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실제 엔진의 무게는 겨우 45kg밖에 되지 않았고, 전체 무게는 148kg밖에 되질 않았다. 최고 72마력을 달성했고 실제로 기록한 최고 속도는 시속 275km. 실제 그랑프리 레이스에서 이 속도에 도달하게 된 것은 약 20년 뒤다.

 

나경남 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사진_EIC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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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2024.12.16~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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