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of GS. 1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모터사이클들은 갑자기 어느 순간 등장하지 않았다. 나름의 역사적 맥락에 따라 탄생할 수 있었고, 그것이 적절했다면 널리 사랑받으며 유행을 끌게 된다. 이번에 다룰 BMW 모토라드의 GS 시리즈 역시 그렇다. 그 이름 자체가 하나의 장르나 다름없는 상징적 존재의 역사를 앞으로 3부작으로 나눠 다룰 계획이다. 그 첫 번째 편을 시작해보자.
1923년부터 시작된 BMW 모토라드의 역사는 2023년을 기점으로 100주년을 맞는다.
BMW 모토라드의 100년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를 하나만 꼽는다면 그건 단연 ‘GS’가 될 것이다.
단순히 모델 자체의 판매량이나 유명세 때문만은 아니다. BMW 모토라드의 GS 시리즈는 그 자체가 장르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로 완성해냈고 그로 인해 전 세계의 모터사이클 산업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렇다.
2023 BMW R 1250 GS ADVENTURE GS TROPHY
물론 BMW 모토라드의 GS에 앞서서도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아우르는 듀얼퍼퍼스(Dual Purpose) 모터사이클은 존재했다. 고르게 포장된 도로가 많지 않던 시절부터 모터사이클이 판매된 것을 생각하면 사실 당연한 일이며 상대적으로 배기량이 높은 단기통 엔진 모터사이클들이 듀얼퍼퍼스 모델로 선보여졌다.
하지만 GS의 등장 이후,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장거리를 편안하게 달릴 수 있는 투어링 모델로써의 장르적 구분이 이뤄졌다. 넉넉한 배기량과 출력을 갖고 있으면서 노면 상태를 가리지 않고 편안하게 달릴 수 있는 이 장르적 특징은 전 세계인들을 매료시켰고 현재의 듀얼퍼퍼스 장르를 견인하게 됐다.
전설의 시작
1세대 R 80 G(슬래시)S는 G와 S 사이에 슬래시가 포함된다
최초의 GS는 G와 S를 슬래시로 분리해서 표기했다. 초대 GS로 알려진 R 80 G/S가 등장한 것은 1980년 9월 독일 쾰른에서 열린 IFMA 국제 자전거 및 모터사이클 박람회에서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G/S는 각각 독일어 오프로드와 온로드를 뜻하는 겔렌데/스트라쎄(Gelande/Straße)에서 머릿 글자를 딴 것이다. 첫 등장은 1980년이었지만 실제 그 역사는 그 이전으로 올라간다.
1977년 BMW 모토라드의 테스트 부서에서 활동하던 라슬로 페레즈(Laszlo Peres)가 이탈리아의 모터사이클 제조사 라베르다(Laverda)를 통해 GS 800 이란 이름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해 테스트한 것을 GS의 시초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미 1960년대 중반부터 개발되어 판매되었던 BMW 모토라드의 /5, /6, /7 모델들도 오프로드 주파성을 갖춘 모델이었으며, 이들은 당대의 식스데이스 엔듀로(트라이얼) 대회를 위한 팩토리 머신 개발로 이어졌었다.
GS를 탄생시킨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라슬로 페레즈
사실 역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볼 수도 있다. 나치 독일과 함께 군수 물자로 모터사이클을 납품했던 BMW 모토라드의 R75 같은 모델은 BMW 특유의 박서 엔진과 샤프트 드라이브 방식을 사용하여 북아프리카 전선과 러시아에서 활약한 바 있다. 이 시기 할리데이비슨 역시 미군에 모터사이클을 납품하고 있었다.
당시 BMW 모토라드의 내구성과 주파 성능에 주목한 미국 정부는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모델을 할리데이비슨에 요구했으며, 할리데이비슨은 사실상 BMW 모토라드의 R75를 카피하다시피 한 군납 모델 ‘XA’를 개발한 바 있다.
아마도 BMW 모토라드는 그들 스스로 제2차 세계 대전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진 않겠지만, BMW 모토라드의 박서 엔진은 북아프리카 사막을 누볐던 경험이 있으며 이는 1980년대에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다시금 그 저력을 확실히 보여주게 됐다.
BMW 모토라드를 살린 R 80 G/S
R 80 GS의 엔진
1970년대 후반의 BMW 모토라드는 상당한 위기를 겪고 있었다. 당시 이들의 판매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미국 시장이 연이은 오일 쇼크의 여파로 판매량이 급감했다. 또한 1980년대에 들어서는 미국 정부가 자국의 모터사이클 브랜드인 할리데이비슨을 살려내기 위해서 배기량 700cc 이상의 수입산 모터사이클에 약 45%에 달하는 막대한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실제로 영국의 트라이엄프가 파산하게 된 것 또한 이 여파로 보고 있다.
만약 이 시기에 BMW 모토라드가 R 80 G/S를 성공시키지 못했더라면 이들 역시도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된다. 당시의 R 80 G/S는 약 800cc의 배기량을 갖고 약 50마력을 발휘했다. 오프로드 주파 능력이 강조됐지만, 회의적인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체인 드라이브 방식이 아닌 샤프트 방식을 사용하고 상대적으로 부피가 큰 엔진을 사용하기 때문에 차체 설계에도 다른 단기통 또는 병렬 2기통 엔진보다 비효율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R 80 G/S는 형제 모델이자 차체의 기반이 되어준 R 80/7 모델 대비 약 30kg이 더 가벼운 차체로 뛰어난 주파 성능을 보여줬다. 그 여파는 실제로 굉장한 것이어서, R 80 G/S는 당시 계획한 수량보다 약 두 배 이상의 판매고(약 6,631대)를 올리면서 이 당시 BMW 모토라드의 전체 생산량에서 약 25%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BMW는 GS를 통해서 파리-다카르 랠리를 재패했다
동시에 BMW는 1979년 이래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파리-다카르 랠리가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할 장소라는 것을 깨달았고 전문 튜너인 HPN과 함께 팩토리 랠리 머신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으로 1983년과 1984년 파리 다카르 우승을 연달아 차지했으며 이런 성공은 일반 소비자들을 위한 ‘R 80 G/S 파리-다카르’ 버전이 판매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또다시 1984년과 85년에 연이어 파리-다카르 랠리를 제패하면서 그 인기에 더 날개를 달았다.
R 80 GS와 R 100 GS
R 80 GS와 R 100 GS
R 80 G/S는 1987년까지 약 21,864대를 판매하면서 그야말로 유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이 성공을 발판 삼아 BMW 모토라드는 차기 모델을 선보였는데 그것이 R 80 GS와 R 100 GS였다.
눈치챘을 수 있지만 더는 G/S가 아니라 GS다. R 80 GS는 기존의 797.5cc 엔진을 계속 계승하고, R 100 GS는 배기량을 980cc까지 확대했다. 물론 스타일적으로도 두 모델은 차이가 분명하다. R 80 GS는 기존의 G/S와 스타일을 계승하여 유지하는 한편, R 100 GS는 프레임 고정식 풀 페어링을 적용한 R 100 RS의 스타일을 일부 이어받으면서 프레임 고정식 프런트 페어링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전 세대와의 극명한 차이는 기존의 모노레버(Monolever) 방식에서 현행 시리즈까지 지속적으로 계량 발전되어 계승되고 있는 패러레버(Paralever) 방식으로 변경된 점이다.
파리-다카르 버전의 R 100 GS
애초에 BMW 모토라드가 G/S에서 제시했던 모노레버 역시도 혁신적이었다. 리어 휠을 좌우 양쪽에서 잡는 더블 사이드 스윙암 방식을 벗어나 싱글 사이드 스윙암을 적용하고, 리어 휠 허브 위쪽으로 쇽 업소버를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을 적용함으로써 얻은 장점은 무척 많았다. 그 무게를 절감하는 데 도움을 줬으며 쇽 업소버가 스윙암의 강성을 보조하며 싱글 사이드 스윙암 덕분에 배기 시스템이 콤팩트하게 차체에 고정될 수 있었고 휠을 분리하여 타이어를 교체하는 등의 유지 보수 및 정비 용이성이 높아졌다.
이런 모노레버 방식을 좀 더 개선하면서 특유의 샤프트 구동 방식에서 생기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채택한 것이 패러레버였다. 스윙암과 평행하게 링크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인 스윙암 방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샤프트 효과를 최소화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2023 BMW F 850 GS ADVEDTURE
이 밖에도 세계 최초의 크로스 스포크 휠을 적용하면서 튜브리스 타이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혁신이 이뤄졌다. 상대적으로 오프로드 모터사이클의 분위기가 훨씬 강했던 G/S 시리즈 때보다 R 100 GS에서는 온로드 스타일에 가까워졌다. 더 강력한 브레이크와 용량이 확대된 연료 탱크 등의 채용으로 장거리 주행이 더 유리해졌다.
이 시기에도 더 확장된 사양을 갖춘 파리-다카르 버전이 발매됐는데 재미있게도 1986년 말부터 BMW 모토라드는 파리-다카르 랠리에 팩토리 팀으로 참가하는 것을 중단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GS의 성능은 개별적인 참가자들이 BMW 모토라드의 R 80 또는 R 100 GS로 참전한 것으로 증명되고 있었다. 이들은 배기 배출가스 기준이 강화되는 시기를 맞이했으며, 이것은 곧 차세대 엔진과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했다. R 80/100 GS는 1996년 마지막으로 판매가 중단됐으며 그동안의 누적 판매량은 4만 5천 대 이상이었다.
2부에 계속
글/나경남(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사진/BMW MOTORRAD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나경남 #더히스토리 #BMW #GS
한국이륜차신문 420호 / 2023.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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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of GS. 1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모터사이클들은 갑자기 어느 순간 등장하지 않았다. 나름의 역사적 맥락에 따라 탄생할 수 있었고, 그것이 적절했다면 널리 사랑받으며 유행을 끌게 된다. 이번에 다룰 BMW 모토라드의 GS 시리즈 역시 그렇다. 그 이름 자체가 하나의 장르나 다름없는 상징적 존재의 역사를 앞으로 3부작으로 나눠 다룰 계획이다. 그 첫 번째 편을 시작해보자.
1923년부터 시작된 BMW 모토라드의 역사는 2023년을 기점으로 100주년을 맞는다.
BMW 모토라드의 100년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성과를 하나만 꼽는다면 그건 단연 ‘GS’가 될 것이다.
단순히 모델 자체의 판매량이나 유명세 때문만은 아니다. BMW 모토라드의 GS 시리즈는 그 자체가 장르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로 완성해냈고 그로 인해 전 세계의 모터사이클 산업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그렇다.
2023 BMW R 1250 GS ADVENTURE GS TROPHY
물론 BMW 모토라드의 GS에 앞서서도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아우르는 듀얼퍼퍼스(Dual Purpose) 모터사이클은 존재했다. 고르게 포장된 도로가 많지 않던 시절부터 모터사이클이 판매된 것을 생각하면 사실 당연한 일이며 상대적으로 배기량이 높은 단기통 엔진 모터사이클들이 듀얼퍼퍼스 모델로 선보여졌다.
하지만 GS의 등장 이후,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장거리를 편안하게 달릴 수 있는 투어링 모델로써의 장르적 구분이 이뤄졌다. 넉넉한 배기량과 출력을 갖고 있으면서 노면 상태를 가리지 않고 편안하게 달릴 수 있는 이 장르적 특징은 전 세계인들을 매료시켰고 현재의 듀얼퍼퍼스 장르를 견인하게 됐다.
전설의 시작
1세대 R 80 G(슬래시)S는 G와 S 사이에 슬래시가 포함된다
최초의 GS는 G와 S를 슬래시로 분리해서 표기했다. 초대 GS로 알려진 R 80 G/S가 등장한 것은 1980년 9월 독일 쾰른에서 열린 IFMA 국제 자전거 및 모터사이클 박람회에서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G/S는 각각 독일어 오프로드와 온로드를 뜻하는 겔렌데/스트라쎄(Gelande/Straße)에서 머릿 글자를 딴 것이다. 첫 등장은 1980년이었지만 실제 그 역사는 그 이전으로 올라간다.
1977년 BMW 모토라드의 테스트 부서에서 활동하던 라슬로 페레즈(Laszlo Peres)가 이탈리아의 모터사이클 제조사 라베르다(Laverda)를 통해 GS 800 이란 이름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해 테스트한 것을 GS의 시초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미 1960년대 중반부터 개발되어 판매되었던 BMW 모토라드의 /5, /6, /7 모델들도 오프로드 주파성을 갖춘 모델이었으며, 이들은 당대의 식스데이스 엔듀로(트라이얼) 대회를 위한 팩토리 머신 개발로 이어졌었다.
GS를 탄생시킨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라슬로 페레즈
사실 역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볼 수도 있다. 나치 독일과 함께 군수 물자로 모터사이클을 납품했던 BMW 모토라드의 R75 같은 모델은 BMW 특유의 박서 엔진과 샤프트 드라이브 방식을 사용하여 북아프리카 전선과 러시아에서 활약한 바 있다. 이 시기 할리데이비슨 역시 미군에 모터사이클을 납품하고 있었다.
당시 BMW 모토라드의 내구성과 주파 성능에 주목한 미국 정부는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모델을 할리데이비슨에 요구했으며, 할리데이비슨은 사실상 BMW 모토라드의 R75를 카피하다시피 한 군납 모델 ‘XA’를 개발한 바 있다.
아마도 BMW 모토라드는 그들 스스로 제2차 세계 대전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진 않겠지만, BMW 모토라드의 박서 엔진은 북아프리카 사막을 누볐던 경험이 있으며 이는 1980년대에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다시금 그 저력을 확실히 보여주게 됐다.
BMW 모토라드를 살린 R 80 G/S
R 80 GS의 엔진
1970년대 후반의 BMW 모토라드는 상당한 위기를 겪고 있었다. 당시 이들의 판매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미국 시장이 연이은 오일 쇼크의 여파로 판매량이 급감했다. 또한 1980년대에 들어서는 미국 정부가 자국의 모터사이클 브랜드인 할리데이비슨을 살려내기 위해서 배기량 700cc 이상의 수입산 모터사이클에 약 45%에 달하는 막대한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실제로 영국의 트라이엄프가 파산하게 된 것 또한 이 여파로 보고 있다.
만약 이 시기에 BMW 모토라드가 R 80 G/S를 성공시키지 못했더라면 이들 역시도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된다. 당시의 R 80 G/S는 약 800cc의 배기량을 갖고 약 50마력을 발휘했다. 오프로드 주파 능력이 강조됐지만, 회의적인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체인 드라이브 방식이 아닌 샤프트 방식을 사용하고 상대적으로 부피가 큰 엔진을 사용하기 때문에 차체 설계에도 다른 단기통 또는 병렬 2기통 엔진보다 비효율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R 80 G/S는 형제 모델이자 차체의 기반이 되어준 R 80/7 모델 대비 약 30kg이 더 가벼운 차체로 뛰어난 주파 성능을 보여줬다. 그 여파는 실제로 굉장한 것이어서, R 80 G/S는 당시 계획한 수량보다 약 두 배 이상의 판매고(약 6,631대)를 올리면서 이 당시 BMW 모토라드의 전체 생산량에서 약 25%를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BMW는 GS를 통해서 파리-다카르 랠리를 재패했다
동시에 BMW는 1979년 이래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파리-다카르 랠리가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할 장소라는 것을 깨달았고 전문 튜너인 HPN과 함께 팩토리 랠리 머신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으로 1983년과 1984년 파리 다카르 우승을 연달아 차지했으며 이런 성공은 일반 소비자들을 위한 ‘R 80 G/S 파리-다카르’ 버전이 판매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또다시 1984년과 85년에 연이어 파리-다카르 랠리를 제패하면서 그 인기에 더 날개를 달았다.
R 80 GS와 R 100 GS
R 80 GS와 R 100 GS
R 80 G/S는 1987년까지 약 21,864대를 판매하면서 그야말로 유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이 성공을 발판 삼아 BMW 모토라드는 차기 모델을 선보였는데 그것이 R 80 GS와 R 100 GS였다.
눈치챘을 수 있지만 더는 G/S가 아니라 GS다. R 80 GS는 기존의 797.5cc 엔진을 계속 계승하고, R 100 GS는 배기량을 980cc까지 확대했다. 물론 스타일적으로도 두 모델은 차이가 분명하다. R 80 GS는 기존의 G/S와 스타일을 계승하여 유지하는 한편, R 100 GS는 프레임 고정식 풀 페어링을 적용한 R 100 RS의 스타일을 일부 이어받으면서 프레임 고정식 프런트 페어링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전 세대와의 극명한 차이는 기존의 모노레버(Monolever) 방식에서 현행 시리즈까지 지속적으로 계량 발전되어 계승되고 있는 패러레버(Paralever) 방식으로 변경된 점이다.
파리-다카르 버전의 R 100 GS
애초에 BMW 모토라드가 G/S에서 제시했던 모노레버 역시도 혁신적이었다. 리어 휠을 좌우 양쪽에서 잡는 더블 사이드 스윙암 방식을 벗어나 싱글 사이드 스윙암을 적용하고, 리어 휠 허브 위쪽으로 쇽 업소버를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을 적용함으로써 얻은 장점은 무척 많았다. 그 무게를 절감하는 데 도움을 줬으며 쇽 업소버가 스윙암의 강성을 보조하며 싱글 사이드 스윙암 덕분에 배기 시스템이 콤팩트하게 차체에 고정될 수 있었고 휠을 분리하여 타이어를 교체하는 등의 유지 보수 및 정비 용이성이 높아졌다.
이런 모노레버 방식을 좀 더 개선하면서 특유의 샤프트 구동 방식에서 생기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채택한 것이 패러레버였다. 스윙암과 평행하게 링크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인 스윙암 방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샤프트 효과를 최소화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2023 BMW F 850 GS ADVEDTURE
이 밖에도 세계 최초의 크로스 스포크 휠을 적용하면서 튜브리스 타이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혁신이 이뤄졌다. 상대적으로 오프로드 모터사이클의 분위기가 훨씬 강했던 G/S 시리즈 때보다 R 100 GS에서는 온로드 스타일에 가까워졌다. 더 강력한 브레이크와 용량이 확대된 연료 탱크 등의 채용으로 장거리 주행이 더 유리해졌다.
이 시기에도 더 확장된 사양을 갖춘 파리-다카르 버전이 발매됐는데 재미있게도 1986년 말부터 BMW 모토라드는 파리-다카르 랠리에 팩토리 팀으로 참가하는 것을 중단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GS의 성능은 개별적인 참가자들이 BMW 모토라드의 R 80 또는 R 100 GS로 참전한 것으로 증명되고 있었다. 이들은 배기 배출가스 기준이 강화되는 시기를 맞이했으며, 이것은 곧 차세대 엔진과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했다. R 80/100 GS는 1996년 마지막으로 판매가 중단됐으며 그동안의 누적 판매량은 4만 5천 대 이상이었다.
2부에 계속
글/나경남(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사진/BMW MOTORRAD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나경남 #더히스토리 #BMW #GS
한국이륜차신문 420호 / 2023.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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