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남의 더 히스토리_자신들이 가진 철학과 스타일을 우직하게 밀어붙인 결과물

2024-07-03

History of Ninja ZX-6R


가와사키는 언제나처럼 자신들의 길을 걸어왔다. 미들급 슈퍼스포츠 모터사이클의 한 축을 담당했던 Ninja ZX-6R의 역사를 들여다보자.

 

미들급의 자존심


직렬 4기통 600cc급의 슈퍼스포츠 시장은 한 때, 시장에서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현재의 리터급 슈퍼바이크들 이상의 평가를 받으면서 일반 소비자가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장 본격적인 스포츠 도구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이래로 시작된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이 클래스의 인기는 점차 하락했고, 여기에 날로 강화되고 까다로워지고 있는 환경규제와 소음 규제 속에서 직렬 4기통 엔진은 그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특히 중급 배기량은 더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가와사키는 여전히 그들의 고집대로 간다.


가와사키의 미들급 슈퍼스포츠 모터사이클을 상징하는 이름, ‘Ninja ZX-6R’의 역사는 그것을 온전히 증명한다. 가와사키의 Ninja ZX-6R은 그 세대 구분을 명확하게 하고 있진 않지만 출시 시기를 기점으로 그리고 변경점을 기준으로 삼아 분류했다.


1세대 Ninja ZX-6R, ZX600F (1995)


가와사키가 Ninja ZX-6R을 내놓았던 1995년 전까지 가와사키는 그 이상의 대형 모델들을 주축으로 삼고 있었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1994년에 등장했던 Ninja ZX-9R이 그 직계 모델로써 존재하고, 배기량 750cc 4기통 엔진으로 슈퍼바이크 레이스에 참전했던 ZXR750과 같은 모델이 있었다. 외형적으로 Ninja ZX-6R은 9R의 것을 거의 그대로 계승하면서 엔진은 가와사키의 스포츠 투어링 모델인 ZZR600의 것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Ninja ZX-6R이 당시 화제를 모았던 것은 엔진 램 에어 과급 시스템으로 최고 100마력 가까운 성능을 냈으며, 미들급에서는 그야말로 보기 드물었던 알루미늄 트윈 스파 프레임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특히, 일본의 제조사들은 대형 또는 풀 사이즈로 분류할 수 있는 리터급과 750cc급을 기준으로 삼아 600cc 이하는 풀 사이즈의 ‘다운사이징'된 개념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었다.


말하자면 본격적인 스포츠 라이딩을 위한 도구로써 보다 풀 사이즈 모델의 분위기를 내면서도 일상에서 쓸 수 있는 모델로써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가와사키는 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고, 그 결과로써 경쟁 브랜드들을 놀라게 하는 구성이 이뤄질 수 있었다.


2세대 Ninja ZX-6R, ZX600G (1998)


알루미늄 프레임과 수준 높은 성능의 엔진을 바탕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Ninja ZX-6R은 불과 2년 만에 풀 모델 체인지를 감행했다. 물론 겉보기에 크게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전반적으로 형님 격 모델인 Ninja ZX-9R의 동생뻘 되는 포지션 때문이기도 하다. 엔진의 고회전화와 흡기 계통의 개선으로 최고 마력을 더 끌어올리는 한편, 리어 타이어 사이즈도 기존 160 사이즈에서 170으로 대형화됐다. 그러면서도 무게를 4.5kg이나 더 덜어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하지만 2세대 Ninja ZX-6R의 가장 놀라운 방향성은 외형적으로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음에도 메인 프레임을 완전히 새롭게 개발해 1세대보다 휠베이스를 15mm 더 줄여냈다는 것이다. 불과 2년 만에 메인 프레임을 교체한다는 것은 개발 비용에 큰 부담을 주는 것이지만, 가와사키는 코너링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프레임의 변경을 통해 핸들링 감각을 극대화하는 쪽을 선택했다.


3세대 Ninja ZX-6R, ZX600J/ZX636A (2000)


세 번째 모델 체인지가 이뤄진 2000년형 Ninja ZX-6R은 이 시리즈의 역사 전체에서 첫 번째 장의 마지막 페이지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미들급 슈퍼스포츠 시장은 일본 4대 브랜드 모두가 치열하게 경쟁에 나섰고 저마다 성격이 좀 달랐다. 그중에서 대표 격이었던 혼다는 CBR600F 시리즈로 시장 활성화에 가장 크게 기여했고, 야마하의 R6와 스즈키의 R600과 같은 모델은 더 극단적인 슈퍼스포츠를 지향했다.


반면 가와사키는 애초에 ZZR 시리즈에서 출발한 엔진을 개량해서 사용해왔던 점과 이미 슈퍼스포츠 레이스에서 충분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본격적인 슈퍼스포츠보다 범용성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배기량 599cc의 엔진으로 출발해 지속적인 모델 개발이 이뤄져 왔지만, 이 세대 안에서도 후기에 해당하는 2002년에는 배기량을 약간 더 높인 636cc 버전의 모델이 판매되기도 했다.


4세대 Ninja ZX-6R, ZX636B/600K (2003)


월드 슈퍼바이크 챔피언십의 슈퍼스포츠(600cc급) 레이스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이 시기의 슈퍼스포츠 장르의 인기는 최고조에 올랐다. 이 가운데 가와사키는 자사의 Ninja ZX-6R을 새롭게 가다듬어 출시하면서 퓨얼 인젝션화 했으며, 일반 판매용으로는 최초로 레디알 마운트 브레이크 캘리퍼를 적용하고, 41mm로 대구경화된 도립식 프런트 포크를 적용하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


흥미로운 지점은 클래스 최고 수준의 호화로움을 갖췄으면서도 슈퍼스포츠 레이스의 규정(600cc 미만) 기준을 초과하는 배기량 636cc의 버전으로 새 모델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전 세대의 마지막에 배기량을 확대한 버전을 먼저 시험해본 결과이기도 하다. 겨우 37cc 차이이지만, 그 차이는 상당히 명확했다. 


조금 더 확대된 최대 토크 덕분에 라이더들이 다루기 훨씬 쉬워졌고 599cc의 경쟁 모델 대비 여유 있게 최고 마력을 달성할 수 있었다. 모든 라이더가 레이스 규격에 맞춰, 레이스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런 선택은 꽤나 선구안이 좋았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가와사키는 레이스 규격에 맞춘 599cc 버전의 Ninja ZX-6RR 버전을 선보였으니 더 할 말도 없었다.


5세대 Ninja ZX-6R, ZX636C/ZX600N (2005)


이전 세대에서 자신감을 얻은 가와사키는 2005년 모델 체인지를 통해서 또다시 변화를 시도했다. 이 세대의 가장 큰 특징점은 배기 시스템을 당시에 유행하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센터 업으로 변경됐다. 또한 가와사키는 그들 특유의 공기 역학 해석 능력을 발휘해 극단적인 공기 역학 성능을 디자인에 반영했다.


실제로 가와사키는 기존보다 더 낮은 마력으로도 같은 최고속을 낼 수 있을 정도로 효과를 증명했다. 단지 디자인적인 부분뿐 아니라 세부적으로도 발전이 대단했다. 듀얼 퓨얼 인젝션 시스템을 도입하고 타원형 스로틀 밸브를 적용한 것도 일반 시판 버전으로는 최초였다. 비대칭 전용 스윙 암의 설계나 백 토크 리미터, 레디알 마스터 실린더 등으로 충분히 프리미엄급 구성을 갖췄다. 특히나 가와사키가 이 세대에서 엔진의 한계 성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가 있었고 그 결과 이전 세대보다 10마력을 더 끌어올린 최고 128마력을 달성했다.


6세대 Ninja ZX-6R, ZX600P (2007)


이들은 Ninja ZX-6R에 배기량 37cc를 더함으로써 일반 소비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성능적으로도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한편, 레이스를 위한 599cc 버전을 일부 공급해왔다. 하지만 이 시기에 들어서 유럽 중심으로 배기량 600cc 미만으로 통합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가와사키는 그에 부응해 다시금 배기량을 낮춘 버전으로 통합했다. 이것은 결국 636cc 버전과 599cc의 RR 버전이 모두 판매가 썩 훌륭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모델 체인지와 더불어 지나치게 강성이 높다고 평가되었던 메인 프레임의 개선 작업도 이 시기에 이뤄졌으며, 이후 세대의 프레임이 바로 이때 확립됐다고 평가된다.


7세대 Ninja ZX-6R, ZX600R (2009)


외형적으로는 이전 세대에 단절하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엔진과 프레임의 구성은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너무 귀여운 인상이었던 6세대의 디자인을 개선해 날카로운 인상으로 변모하는 한편 센터업 머플러를 폐기함으로써 질량 집중화와 경량화를 동시에 이뤄냈다. 거의 10kg가량이 감량되었으니, 효과는 대단했다. 또한 쇼와(Showa)의 빅 피스톤 포크(BPF)가 최초로 적용된 모델로 기록이 남는 것 또한 특별한 포인트 중 하나다.


8세대 Ninja ZX-6R, ZX636E/F (2013)


599cc 버전으로 통합된 2007년 이후, 또다시 배기량 636cc로 돌아오게 되는 시점이다. 엔진은 스트로크량을 약 2.6mm 늘렸고, 그 결과 엔진의 전 영역에서 토크와 마력 상승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면서도 엔진의 압축비는 오히려 낮췄다. 애초에 가와사키가 636cc를 고집했던 이유가 되는 것은 결국 전 영역에서 충분한 토크를 바탕으로 제대로 가속할 수 있을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엔진 맵핑 변경과 라이더 모드 설정, 가와사키의 트랙션 콘트롤(KTRC) 기능들이 기본 제공되는 등 업데이트가 진행됐다.


9세대 Ninja ZX-6R, ZX636G (2019)


강화되는 배기 배출가스 규제로 인해 단종이 예상됐던 것을 가와사키는 다시 한번 더 되살려냈다. 배출가스 규제를 충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가장 중요한 지점을 해결한 뒤에, 전후 기어비를 다듬는 한편 상품 가치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노력을 기울였다. 퀵시프터의 기본 채용이나 LED 헤드라이트를 채용하면서 모델의 전면 디자인을 한층 개선했다.


10세대 Ninja ZX-6R, ZX636J (2024)


가와사키가 만약 599cc를 고집했다면 어땠을까? 배기량에서 여유가 없었으니 규제를 충족시키는 설정에서 엔진의 출력 손실이 지금보다 컸을 것이고, 그렇다면 미들급 슈퍼스포츠 모터사이클을 원하는 이들의 요구를 충족하기 어려워졌을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가와사키는 배기량에 여유를 두는 쪽을 선택했기에 미들급 직렬 4기통 엔진의 슈퍼스포츠 모터사이클들이 멸종되어가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일 수 있다.


유로5+ 기준을 충족하도록 개발된 차세대 모델인 만큼, 현대적인 기준의 전자제어 시스템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지원되고 있으며, 풀 컬러 TFT 계기판은 라이더의 스마트폰과 연동시킬 수도 있게 됐다. 1984년 이래로 사용된 ‘닌자’라는 이름의 40주년을 기념하는 컬러 버전이 도입되는 것도 특별하지만, 2025년이 되면 그 자체로 Ninja ZX-6R의 30주년이기도 하다.


가와사키의 많은 모델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철학과 스타일을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Ninja ZX-6R이 현재까지 이어질 수 없지 않았을뿐더러, 팬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경남 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사진제공/가와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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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54호 / 2024.7.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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