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바이크 라이프, 최종회_20년 후, 길에서 만납시다

2022-09-08

바이크를 계속 타도 좋을지 고민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꺼내려는지 알아차리신 분들도 꽤 될 겁니다. 바로 ‘사고’입니다. 저는 지난해 알고 지내던 분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집 근처 바이크 정비센터 사장님이셨는데 센터 코앞에서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아프리카 트윈’ 신차를 샀다며 들떠 계시던 얼굴이 기억에 선한데 말입니다. 사장님의 부고가 더욱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오랫동안 바이크를 탔고 심지어 잘 타는 라이더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체감됐기 때문입니다.

 

‘잘 타기’와‘오래 타기’


부주의하거나 오만한 주행은 일행의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다


“숙련된 라이더에서도 사고가 날 수 있다.” 마치 ‘소금이 짜다’처럼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부정하고 외면하고픈 사실입니다. 무사히 5년, 10년씩 바이크를 타다 보면 자신감에 도취되어서 사고가 날 리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고요.


나만 잘하면 도로 위의 온갖 사고를 다 피해갈 수 있을 것 같죠. 내 시야가 이렇게 넓은데, 앞뒤 사륜차들이 어디로 가려는지 빤히 보이는데, 내가 이렇게 민첩하게 방어운전을 하는데, 내 바이크가 이렇게 빠른데…, 하고 자신감이 넘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륜차든 사륜차든 타다 보면 나만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어떤 음주 운전자가 불행히도 들이받아 버린다면?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는 사륜차가 있다면? 어지간한 운동 신경의 소유자라도 예상치 못한 사고에는 대응하기 힘듭니다. 실제로 이륜차 사고 중 가장 많이 들려오는 유형 중 하나가 ‘불법 유턴 차량으로 인한 사고’입니다. 제아무리 규정 속도로 신호를 준수하며 달린다 해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정말 운이 나쁘게도 말입니다.


게다가 사고가 나면 이륜차 운전자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라이더 분들도 온갖 종류의 사고와 부상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 결과가 어떤 지도요. 심지어 라이더 앞에서 사고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먹이며 바이크 타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들도 적잖습니다. 그런 ‘사고 사례’ 중 하나가 되지 않으려면 항상 사고의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사고의 가능성을 떠올리다보면 라이딩이 덜 즐거워지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요.


비합리적인 자신감의 치명적인 결과


사고로 파손된 390 듀크


결국 ‘바이크를 잘 탄다’는 ‘사고 없이 오래 탄다’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헤어핀을 아무리 고속으로 달릴 수 있다 한들 사고가 나면 끝이니까요.


그럼에도 많은 라이더들이 스스로의 라이딩 스킬만 믿고 도로를 누비곤 합니다. 예를 들어 칼치기를 하며 고속으로 주행하다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밀고 들어오는 사륜차와 충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갓길을 고속으로 달리다 갓길로 들어오려는 차에 치이기도 하고요. 와인딩 코스를 고속으로 돌다 중앙선을 넘어 달리는 맞은편 차에 충돌하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상당히 비합리적인 일입니다. 다른 운전자들이 준법 운전 혹은 예상 가능한 운전을 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과속을 하고, 갓길을 달리고, 칼치기를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런 자신보다 더 예상 밖의 운전을 하는 차량과 마주친다면 어떨까요? 결국 사고가 나는 겁니다.


그리고 거듭 강조하지만 이륜차의 사고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본인은 물론 상대 운전자, 심지어 같이 라이딩하는 분들의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으니까요. 한 차례의 사고로 두셋 이상의 바이크 동호회원들이 잇따라 휩쓸린 사례들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래서 나만이 아닌 모두를 위해, 보수적인 주행을 해야 합니다. 서킷이 아닌 공도에서는 실력의 60% 정도만 발휘한다는 느낌으로요. 요즘은 ‘선비주행’이라고 하더군요. 인터넷에선 ‘선비주행’ 혹은 ‘선비질’이 비꼬는 뜻으로 자주 쓰이지만 저는 칭송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조신하게 행동하는 분들을 따라하진 못할망정 비꼬다니요.


아찔한 사고의 기억


사고 후 용달차에 실린 390 듀크


그럼 너는 얼마나 잘하고 있냐고요? 사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습니다. 저도 멋모르고 혼자 입문해 중고 바이크를 인수한 첫날 택시에 가볍게 받혔고, 입문 6년차인 해에는 단독 사고를 냈습니다. 그 이후로는 사고를 피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입문 6년차 때의 단독 사고는 이렇게 벌어졌습니다. 신나게 와인딩 코스를 돌고 그만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하필 자동차전용도로로 진입하는 바람에 당황해서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쳐다보다가 도로 갈림길의 구조물을 들이받았습니다. 다행히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들이받고도 넘어지진 않았습니다. 


냉각수 통이 찢어져 냉각수가 흩뿌려졌다


갓길에 바이크를 세우고 보니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느껴졌고, 바이크는 엔진탱크 오른쪽의 커버가 뜯겨나간 상태였습니다. 커버 안쪽의 냉각수 통까지 찢어지는 바람에 마치 외계인의 피처럼 초록색 냉각수도 흩뿌려져 있었습니다. 라디에이터 일부도 뜯겨나가고 프런트 펜더, 머플러까지도 상처가 나 있었고요.


그나마 무릎은 며칠 아프고 말았지만 바이크 수리에는 거의 두 달이 걸렸고 무엇보다도 뼈저린 후회에 시달렸습니다. ‘두유바이크’를 연재하면서 안전 운운 해놓고는 결국 조심성 없이 타다가 사고가 났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고 후 블루투스 헤드셋으로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만 듣는다


3년이 지난 지금 되새겨보면 그 때의 사고가 오히려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 때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스스로의 실력과 운을 과대평가하다가 더 큰 사고를 냈을 수도 있으니까요. 단독 사고로 그치지 않고 다른 누군가의 안전을 위협했을 수도 있고요. 그 사고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내비게이션 화면을 보느라 전방 주시를 덜 하고 다녔을 수도 있습니다(지금은 블루투스 헤드셋으로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만 듣습니다).


불행한 사고는 가족들, 친구들에게도 큰 충격과 상처를 남길 겁니다. 심지어 잘 모르는 분의 사고 소식조차도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으니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분들과 10년, 20년 후에도 말짱한 모습으로 계속 도로에서 마주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스로틀을 놓으면 안돼!’는 총 10회 연재를 끝으로 여기서 마칩니다. ‘유주희의 바로 그 장면’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라 섭섭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음 번 ‘바로 그 장면’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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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10호 / 2022.9.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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