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라이더 스토리①, 재미로 시작한 바이크, 인생을 바꾸다

2021-08-20

지난 378호 인터뷰에 이어 연재까지 맡게 된 유주희입니다.


한국이륜차신문 연재라니, 이륜차 업계의 메인스트림에 당당히 합류한 듯해 영광이고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있어 반갑습니다. 앞으로 저의 이야기, 그리고 때때로 여성 라이더들의 목소리를 지면에 풀어보려고 합니다.


누추한 제가귀한 지면을 차지해도 되나 송구스럽지만, 라이더만의 기쁨과 고통을 담아 독자에게 잠시나마 웃음을 안겨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바이크는 사람을 어떻게든 바꿔놓는 취미입니다. 작게는 옷차림과 머리모양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인간관계, 더 크게는 삶의 방향성까지도 뒤집어놓곤 합니다. 하지만 그 뒤집어진 삶은 참 매력적이죠. 스로틀을 계속 당기는 한, 즐거운 삶도 계속될 것이란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일본 코미디 영화 제목인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를 감히 패러디해본 이유입니다.


저의 시작점은 면허 학원에 등록했던 2014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자동차 업계를 출입하고 있었습니다. 벤츠·포르쉐를 시승하던 행복한 시절이었죠. 7년차 기자로 의욕이 넘쳤던 저는 이왕이면 이륜차 시승기도 지면에 올려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신문에 이륜차 소식이나 시승기가 지면에 실린 적은 거의 없었거든요.


첫 바이크 체험에서 받은 충격


교육 첫 날은 아직 생생합니다. 강사님은 딱 봐도 새 것인 언더본 한 대를 내어주셨습니다. 다른 남자 교육생들은 바로 미라주로 시작했기 때문에 불만스러웠지만 잠자코 받아들였습니다. 코스를 한 바퀴 돌아보라는 지시대로 시동을 걸고 출발했는데, 쾌청한 봄날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은 충격적으로 좋았습니다. 사륜차 운전도 좋아했지만 공기와 하나가 되는 이륜차의 매력은 또 다른 차원이더군요. 단 몇 분만에 빠져든 경험은 인생 최초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때부터는 눈을 감아도 바이크가 아른거렸고, 곧장 중고 매물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2종 소형만 따면 BMW 리터급을 탈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잘 몰라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와줄 사람도 없이 무작정 중고를 찾아 나선 겁니다. 미라주나 데이스타에 잠깐 관심을 가졌다가 SYM의 울프125를 알게 됐고, 2000년대 초반 연식의 매물을 찾아 110만 원에 인수했습니다. 할머니들이 좌판에서 나물을 파시는 청량리 시장 입구에서 아버지뻘의 판매자로부터 바이크를 넘겨받았습니다.


멋도 모르고 ‘썩차’를 인수하다


인수 직후 몇 백 미터도 못 가서 시동이 꺼진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썩차’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초보고, 연습용 바이크라 큰 불만은 없었습니다. 풀 페이스 헬멧을 하나 사서 동네를 슬슬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헬멧 속에서 가빠진 호흡이 느껴졌습니다. 긴장했던 거죠. 그래도 너무 재미있어서, 혼자 북악도 가고 점점 주행 거리를 늘렸습니다. 경기도 송추계곡이나 공릉저수지 같은 곳으로 저만의 초보 라이더 투어를 가보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라이더 지인은 없었지만 다행히 자동차 기사를 쓸 때 여러모로 도와주셨던 혼다코리아에서 스쿠터 연수도 시켜주시고, 이런저런 조언도 해 주셨습니다. 이때쯤에는 제가 BMW 바이크를 탈 실력이 안 된다는 걸 깨닫고는 대림 모터스쿨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거의 매년 대림 모터스쿨을 찾아갔고 수업료가 아깝지 않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바이크로 이어진 인연들


그렇게 바이크 경력이 쌓이면서 라이더 인맥도 늘었습니다. 처음에는 ‘모토포토’와 연이 닿았습니다. 라이더인 사진기자들의 동호회인데, 사진기자들은 언변들이 너무 좋고, 같이 있으면 정말 많이 웃게 됩니다. 그리고 사진이라는 예술을 업으로 삼은 만큼 예술가 기질도 다분합니다. 


본인들에게 물어봤더니 “아니, 난 그냥 회사원인데?”라는 대답들이 돌아오긴 했지만요. 격론 끝에 결국 ‘회사에 다니는 또라이들’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어쨌든 평범한 문과 출신이 보기에는 아름다운 길, 맛있는 음식, 예쁜 바이크·차라든가 물건들에 대한 안목이 남다른 분들입니다.


‘헝그리 라이더스’는 여의도 금융인들의 동호회입니다. 증권업계를 출입하던 시절(궁금하실까봐 알려드리자면 저의 투자는 망했습니다) 안면을 익힌 금융계 라이더 분들을 모아 제가 창설(?)했습니다. 양복 차림으로 여의도를 주름잡는 금융인들이 각자의 봉인을 푸는 모습을 볼 수 있어 흥미로운 동호회입니다.


마지막으로 트위터에서 만난 친구들. 트위터에서 본 웃긴 이야기나 사진으로 10시간 정도는 수다를 떨 수 있고 인권을 포함한 여러 이슈에 대한 시각이 비슷해서 좋습니다.


바이크를 통해 이렇게 많은 이들을 알게 됐고, 라이더 특유의 두터운 동지애를 몇 년에 걸쳐 체감하게 됐습니다. 중고 울프를 인수한 직후 시동이 꺼졌을 때, 그리고 얼마 가지 못하고 동대문에서 급정차한 택시에 부딪혔을 때 킥시동을 걸어준 낯선 분들도 분명 라이더였겠죠. 그리고 이것저것 궁금한 뉴비를 반갑게 맞아주는 라이더들(본인들이 더 신나 보임), 낯선 라이더의 사고 현장에서 기꺼이 돕는 이들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2편에서는 '여성 라이더(a.k.a 여라)'들의 이야기를 풀어볼 예정입니다. 엄청난 조회수와 격렬한 댓글 배틀을 동시에 소환할 수 있는마법의 키워드! 다음 편에서 뵙겠습니다.


여성 라이더 유주희 기자


서울경제신문 디지털뉴스룸 기자, 8년차 라이더. 모터사이클 잡설 '두유바이크' 연재 중. SYM 울프125, KTM 390듀크, 가와사키 W800을 탔으며 모터사이클 에세이 ‘그동안 뭐하고 살았지, 바이크도 안타고’를 썼다.

 

글·사진/유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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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380호 / 2021.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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