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바이크 라이프_바이크로 달리는 ‘미식의 길’(비서울편)

2022-02-23

지난 ‘서울편’과 마찬가지로 이번 글 역시 ‘맛집 소개글’은 아닙니다. 그러기엔 제가 못 가본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진짜 오타쿠들의 노력과 투자는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고요. 그보다는 이 글을 읽고 얼른 라이더 동지들과 맛집에서 만날 약속을 잡으시면 좋겠습니다. 맛있는 음식은 삶의 재미를 더해주고, 그 순간을 함께 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으니까요.

예를 들어 강원도 영월의 ‘다슬기향촌 성호식당’, 다슬기해장국으로 유명한 집입니다. 낮에는 상당히 더운 6월이었기 때문에 일행이 이곳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무슨 해장국인가 싶었습니다. 게다가 애매한 시간대였음에도 대기 손님이 꽤 있더군요. 하지만 참을성 있게 기다려서 마침내 한 숟갈 뜨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행들은 저보다 해장국 수백 그릇은 더 먹었을 법한 아저씨들이었는데 그들 역시 인정했습니다.


“지금까지 먹어본 해장국 중에 제일 맛있다”던 한 일행의 개운한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영월은 원체 다슬기로 유명해서 바로 옆에도 다슬기해장국 식당이 몇 군데 더 있었습니다. 혹시 옆 식당이 성호식당보다 더 맛있다면 꼭 제보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의 두부는 잊어라


'굴포식당'의 복어탕


지난 ‘캠핑’ 편에서 등장했던 ‘영’을 따라 가보게 된 인제 ‘고향집’도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는 원래도 마트에서 파는 대량생산 두부를 잘 안 먹습니다. 비슷한 가격에 더 맛있는 걸 파는 두부집이 어느 동네든 한두 군데씩은 꼭 있거든요. 그런 두부를 들기름만 둘러 구워도 확실히 맛있습니다. 그런데 더 맛있는 두부가 있다니, 조금 반신반의하면서 따라갔습니다.


결론은 정말 ‘어나더 레벨’이었습니다. 철판에 구워주는 두부요리일 뿐인데 너무나 부드럽고 고소해서 일행들과 호들갑을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고향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두부집, ‘미산민박식당’도 유명합니다. 아직 못 가봤지만 일각에서 ‘두부계의 에르메스’라고 알려진 곳이라 기대가 큽니다.


사실 대부분의 맛집은 수도권에 몰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지만 인구도, 자본도 수도권에 집중돼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세월과 경험과 손맛과 산지직송 식자재가 합쳐진(가끔은 저렴한 임대료까지), 자본만으론 이길 수 없는 맛이 있습니다. 


그런 맛집을 투어 중에 발견할 때의 희열은 상당합니다. 진도의 ‘굴포식당’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역시 유명한 곳인데 저는 모르고 들어갔습니다. 메뉴는 딱 하나, 복탕. 복지리나 복국은 익숙하지만 복탕은 낯설었는데 심지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복과 걸쭉한 국물이 합쳐져 비주얼도 조금 거북하더군요. 하지만 역시 한 숟갈만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바이크 투어로 지친 한국인의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진한 국물이더군요.


맛집은 투어 기획 단계부터


'남촌가든'의 돌판닭갈비


이런 즐거움을 위해 투어 코스를 짤 때부터 상당한 비중으로 맛집을 선정하곤 합니다.


아침 일찍 양평의 ‘회령손만두국’에서 뜨끈한 이북식 만둣국으로 기분 좋게 투어를 시작합니다.


경기도 포천 쪽으로 느지막하게 가는 투어라면 의정부 ‘전주곰탕’을 떠올립니다. 이름과 달리 탕 종류보단 수육이 정말 실한 곳입니다.


점심 때 강촌IC 부근을 지나게 된다면 ‘남촌가든’을 들릅니다. 이전까지 닭갈비는 다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의 돌판닭갈비는 정말 제 취향입니다. 세 명 이상이라면 양념이 돼 있고 떡이 곁들여진 돌판닭갈비, 숯불에 굽는 숯불닭갈비 둘 다 주문하길 권해봅니다.


거제도의 '경주식당'


한 쉐프님께서 추천해주신 거제도의 백반집 ‘경주식당’은 평범한 가운데 빛나는 집입니다. 찌개, 생선구이, 제육볶음 백반처럼 정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메뉴들인데 집밥처럼 정갈하고 깔끔합니다. 반찬 가짓수가 적은 편도 아닌데다 전부 국내산인데 가격이 7,000~8,000원이라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1947년에 개업했다는 ‘수복빵집’은 잘 알지도 못하는 진주에서 1박을 하게 만든 곳입니다. 영업시간이 하루 딱 세 시간 반, 그나마 재료가 떨어지면 마감하는 집이거든요. 메뉴는 단촐합니다. 따뜻한 팥죽을 부은 찐빵과 찐빵을 튀긴 꿀빵, 그리고 팥죽과 팥빙수 딱 네 가지입니다. 


찐빵의 식감이나 계피향 진한 묽은 팥죽맛이 옛스러워서 겪어보지도 못한 60, 70년대를 떠올리고 말았습니다. 복고풍이지만 누구도 싫어하기 어려운 맛이더군요. 혼자 가서 찐빵밖에 못 먹어봤기 때문에 다음번에 꼭 다시 가볼 계획입니다.


결론은 바이크가 최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미식가, 오타쿠까지는 아니라서 투어 때 눈에 보이는 아무 곳에나 들어갈 때도 꽤 많습니다. 지방 국도를 달리다 눈에 띄는 식당 중엔 유난히 기사식당, 한식부페식당이 많더군요. ‘박투어’를 다니다가 한 번쯤 그런 식당에 들르면 메뉴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아합니다.


얼마 전엔 충북 단양의 한 기사식당에서 된장찌개 백반을 먹었는데 애매한 시간이라 손님이 저밖에 없더군요. 백반을 차려주신 다음 등을 돌리고 TV를 보시던 여사장님께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본인도 예전에 스쿠터를 탔는데 요즘은 잘 안 탄다, 너무 빨리 달리지 말아라, 사고 조심하고 부모님이 뭐라고 안 하시냐, 이런 말씀들을 하시더군요. 최대한 안심시켜드리면서 식사를 마치고 바이크에 시동을 거는데 사장님이 나와서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꾸벅 인사드리고 출발하면서 조심스러우면서도 따뜻한 관심에 헬멧 속으로 웃음을 지었습니다.


이번 편의 모든 맛집은 바이크를 타지 않았더라면 못 갔을 겁니다. 바이크를 타기 전엔 국내 여행 자체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이크를 타고 투어를 다니기 시작한 후에야 우리나라의 길과 산과 강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알게 됐습니다.


‘박투어’를 위해 경남 진주, 강원 태백, 경북 울진, 전남 목포, 경북 문경 같은 낯선 동네에서 종종 묵기 시작했고요. 낯선 곳에서 하루 이틀 묵으면서 유적지든 야경이든 자연이든 그 지역의 자랑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재미도 알게 됐습니다.


지역 맛집을 조사하는 과정, 찾아가는 과정도 즐겁습니다. 결국 바이크 덕분에 몰랐던 재미를 알게 된 셈입니다. 앞으로도 갈 곳이 많아서 삶에도 기대감과 활력이 더해집니다. 오늘도 이렇게 ‘바이크 만능론’으로 끝을 맺어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글에 등장한 맛집들보다 더 확실한 맛집을 아시는 독자님이라면 조속히 이메일(ginger @sedaily.com)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이 글을 쓴 진정한 목적입니다.


다음 편에선 바이크 시트고와 무게 때문에 괴로웠던 지난 7년 간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남자 분들, 특히 키가 큰 분들일수록 공감을 못 하실 테지만 전국의 키 작은 라이더들을 위해 꿋꿋이 써 보겠습니다.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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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397호 / 2022.2.16~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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