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바이크 라이프_나홀로 ‘박투어’의 매력

2022-05-25

15년 전의 저는 ‘혼밥, 혼여행’을 매우 꺼리는 성격이었습니다. 친구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봐서요. 그래도 대학생 때는 왠지 그래 봐야할 것 같아서 단양 등지로 혼자 여행을 떠나본 적은 있었는데 실패했습니다. 혼자서는 좋은 풍경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고 날이 저물 때쯤이면 집에 가고 싶어졌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타인이 혼자 다니든 말든 별 신경을 안 쓴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직장인이 된 후에는 ‘혼밥’의 소중함을 알게 됐습니다. 동행인과 대화할 필요도, 동행인의 식사 속도에 신경 쓸 필요도 없이 방해받지 않고 식사를 하는 즐거움을요. 마음의 준비가 갖춰진 저는 2020년부터 나홀로 바이크 투어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지리산에서 오랜만에 마주한 ‘나’


지리산 오도재


첫 박투어의 목적지는 지리산이었습니다. 정령치, 지안재, 성삼재 등 지리산 라이딩 코스의 명성을 익히 들었지만 당일치기로는 가기 어려워 박투어 1순위로 꼽아왔던 곳이거든요. 모처럼 멀리 가는 김에 문경 일대와 무주 나제통문도 들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숙소도 지리산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문경의 STX 리조트에 잡았죠. STX가 망한지가 언젠데 괜찮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가격 대비 상당히 좋은 숙소였습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워터파크처럼 꾸민 실내외 수영장, 노천탕, 문경 ‘가나다라 브루어리’에서 만드는 맥주를 맛볼 수 있는 펍, 노래방과 오락실까지도요. 


이 중 어느 것도 이용하진 않았지만 가족 단위 숙박객들이 좋아할 법해 보였습니다. 객실도 널찍하고 깔끔했습니다. 꽤 외진 곳에 있어서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엄두가 잘 안 나는 대신 조용하고요.


원할 때 원하는 만큼 휴식할 수 있는 박투어


그렇게 문경을 베이스캠프로 해서 2박 3일 동안 열심히 쏘다녔습니다. 지리산, 나제통문 코스는 워낙 풍광이 아름다웠는데 멈추고 싶을 때 멈춰서 한참 멍 때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좋은 풍경을 동행인들과 같이 나눠도 좋지만, 혼자서 온전히 기억에 담는 순간도 가끔은 필요하단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첩첩이 이어지는 산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오랜만에 스스로와 대면하는 시간이랄까요. 그렇다고 인생을 되돌아본다거나 하는 거창한 일을 하진 않았지만 외부 세계에 온통 쏠려 있던 신경을 거둬들이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감각이 참 새로웠습니다.


이번엔 바다다, 거제도 투어


가조도의 해안도로


지리산에서 너무 즐거웠던 저는 몇 달 후 거제도로 향했습니다. 진주 남강을 내려다보는 숙소에서 1박을 한 후 진주 명물 ‘수복빵집’에 들렀다가 거제도에 도착했죠.


거제도를 한 바퀴 돌고 인근 섬들도 최대한 가 보자는 정도로만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칠천도, 가조도 같은 거제도 옆 섬들의 고즈넉한 매력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특히 칠천도는 바다와 대나무 숲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 인상 깊었습니다. 사람은 고사하고 차도 드물게 다니는 길가에서 한참을 쉬다 왔습니다.


진주성의 아름다운 야경


그런 작은 섬에도 인스타 핫플레이스처럼 생긴 카페들이 종종 눈에 띄었고 주말에는 꽤 나들이 행렬이 이어질 법도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평일에 투어를 다녔기 때문에 섬의 고요함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나홀로 투어의 장점 하나는 낯선 사람들과 적잖이 대화를 나누게 된다는 점입니다. 여자 혼자 바이크로 여행을 다니는 모습이 신기해서 말을 거는 분들이 대다수고 대체로 점잖으신 분들입니다. 예를 들어 제 나이나 결혼 여부 같은 사생활에 대한 질문은 거의 않으시더군요. 대신 자유롭게 여행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주민들이 추천하는 근처 좋은 코스와 맛집은 어디어디, 처럼 좋은 말들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장터식당과 굴포식당


진도의 굴포식당


목포-진도 투어도 참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습니다. 이때의 투어는 목포 장터식당에 가야겠다는 결심에서 비롯됐습니다.


장터식당은 꽃게살을 발라내 매운 양념에 무친 요리, 꽃게살 무침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찾아보면 서울에도 어딘가에서는 맛볼 수 있겠지만 겸사겸사 목포를 찾기로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메뉴는 포장이 불가인 데다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해서 씩씩하게 2인분을 해치웠습니다. 남이 발라준 꽃게살을 매운 양념에 버무렸으니 맛이 없을 수 없는 요리입니다. 바이크 없이 가서 술을 곁들였더라면 더 좋았겠지요.


목포 구도심의 한 카페에서


목포에선 이곳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근대역사관 정도만 둘러보고 카페에서 빈둥거렸습니다. 오래됐지만 편안한 골목을 바이크로 슬렁슬렁 둘러보는 재미도 각별했습니다. 적당히 잘 쉬었다 싶을 때쯤 진도로 향했습니다. 팽목항에서 잠시 세월호 희생자들을 향해 묵념을 했더니 아무래도 기분이 가라앉더군요. 진도 남쪽 지역의 조용한 바닷가가 왠지 쓸쓸하게도 보였습니다.


배가 고파질 때쯤 바이크를 세웠습니다. 한적한 바닷가에 ‘굴포식당’이란 간판이 눈에 띄었거든요. 아무런 정보도 없이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복지리도 복매운탕도 아닌 ‘복탕’이란 메뉴 하나만 파는 전국구 맛집이었습니다. 끈적한 국물에 다소 겁을 먹었지만 한 술 뜨자마자 인정했습니다. 한국인의 영혼을 울리는 국물맛이라는 걸요. 계획에도 없이 로또를 맞은 듯해 행복했습니다.


논산 인근에서의 휴식


삶을 보다 다채롭게 꾸며주는 박투어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입니다. 다음 목적지는 고창으로 정했습니다. 운곡람사르습지, 고인돌공원, 바지락솥밥을 위해서요.


‘삶에 감사하다’는 말이 예전에는 가식적으로 들렸는데 요즘에는, 특히 바이크 투어를 계획 중이거나 실천 중일 때는 그 의미를 절절히 체감하게 됩니다. 꼭 바이크 투어가 아니더라도 모두들 각자의 행복을 잔뜩 누리시길 바라겠습니다.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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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03호 / 2022.5.16~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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