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용 의류 시장은 참 작습니다. 여성 라이더 의류 시장은 더 작습니다. 요즘은 그나마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선택지가 많지는 않습니다. 시장이 커져야 제품도 다양해질텐데 누가 봐도 그럴 가능성은 낮아보입니다. 답 없는 문제지만 하소연이라도 해보려고 합니다.
규모의 경제와 바이크 시장

파리에서 사온 이 헬멧은 지금도 잘 쓰고 있습니다
유명한 경제학 개념 중에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라는 말이 있습니다.
알고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 경제학 개념이란 수식어가 거창하게 느껴질 정도니까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설명을 해 보자면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이익도 증가한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바이크 100대를 만들 때보다 500대를 만들 때 더 많은 이익이 기대된다는 의미입니다.
생산량이 늘어나는 만큼 생산 비용도 늘겠지만 많이 만드는 만큼 재료·부품·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지니까요.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에 “A부품 100개가 아니라 500개를 살 테니까 1개당 가격을 더 낮춰달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사업의 규모가 클수록 저금리로 자금을 대출받을 수도 있고요. 물론 규모가 커진다고 언제나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는 건 아닙니다만, 대체로는 옳습니다.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장이 클수록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 팔면 되니까 사업가는 이익을 남기기 쉽고, 그만큼 여러 사업가들이 뛰어들어 가격 경쟁을 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반대로 작은 시장이라면 어지간해선 큰 이익을 내기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다양한 제품, 낮은 가격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뜬금없이 경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그토록 좋아하는 바이크 시장에서도 이런 경제학 이론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바이크 시장은 그래도 작지 않은 규모겠지만 한국 바이크 시장은 정말 작습니다. 10년 넘게 연간 신차 판매대수가 10만 대 수준이니까요. 최근에 15만 대 수준으로 올라왔지만요.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여성 라이더 용품

2015년 일본 후쿠오카의 '냅스'에서 산 물건들. 재킷도, 장갑도 이제 수명이 다 해서 고이 잘 버렸습니다
이렇게 작은 바이크 시장에서 라이더용 의류 시장 역시 클 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처음 바이크를 타기 시작한 2014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제조사 수는 몇 안 됩니다. 이들 제조사들마저도 여성용 라이딩 의류는 소량만 만들고 있고요. 진짜로 세어본 적은 없지만 바이크 용품점에 가면 여성용 제품은 10개 중 많아야 두세 개뿐입니다. 이마저도 10년 전보단 높아진 비중이겠지만요.
시장의 논리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보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백만 여성라이더 대군’을 양성하지 않는 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그저 살 수 있는 제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때가 많습니다.

일본 오사카 스미노에구의 이륜관 매장
다만 딱 한 가지 지적하고픈 게 있다면, 일부 브랜드(특히 일본 회사의) 여성용 라이딩 의류에는 분홍색이 참 자주 들어갑니다. 여자니까 그런 색을 좋아할 것이란 편견이 바이크 의류에도 적용된 겁니다. 실제로 여자들은 분홍색뿐만 아니라 회색, 파란색, 녹색, 검은색 등 다양한 색을 좋아하는데도 말입니다.
또 어떤 브랜드의 라이딩진 제품 사진에는 모델이 언제나 안짱다리처럼 서 있습니다. 같은 브랜드의 남자 라이딩진 모델 사진과 비교하면 아주 수줍고 소극적인 포즈입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거슬리기 시작해 결국 그 브랜드 제품은 사지 않게 됐습니다.
여성용 라이딩 의류의 분홍색, 모델의 희한한 자세가 악의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안이하다고 느껴질 따름입니다. 성별에 따라 남녀를 구분하고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있으니까요. 전쟁과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게 무슨 대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성별에 근거한 편견 역시 중요한 문제입니다.
전 세계 여성과 남성의 다양한 가능성을 가로막으니까요. 이 문제가 전쟁만큼 중요하진 않겠지만 그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세상에 중요한 문제는 거의 없을 겁니다.
라이더의 로망이 완성되는 지점

2017년 파리의 트라이엄프 매장에서 사 온 장갑. 아직까지도 애용 중입니다
눈 감으면 바이크가 아른거리던 입문기를 지나 이제 저도 어엿한 중견 라이더(?)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이크에 대한 욕심은 물론 바이크 용품에 대한 욕심도 급격히 사라졌습니다. 그저 허름해 보이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만 남았고요. 그럼에도 가끔은 허름해 보이긴 하지만요. 요즘엔 정말 멋있게 차려입은 라이더들이 많아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덕분에 라이더들이 많이 모이거나 지나가는 곳에선 자주 감탄하게 됩니다.
입문기 시절, 처음으로 일본의 바이크의 용품점에 가봤을 때가 기억납니다. ‘라이코랜드’였는지 ‘이륜관(니린칸)’이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기대감이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 일본 하면 바이크 대국이고 여성 라이더의 수가 한국보단 많을 테니 여성 라이더용 의류도 다양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체코 프라하 4구의 용품점 '와이샵'
안타깝게도 기대와 달리 일본도 여성 라이더용 제품은 적었습니다. 우리나라보다야 많았지만 상상했던 규모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이후 프랑스 파리나 미국 로스앤젤레스, 체코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도 미리 바이크 용품점의 위치를 알아뒀다가 찾아가곤 했습니다. 역시 여성용 제품은 물량 자체가 적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게다가 뭐라도 하나 사 오면 두고두고 이국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는 좋은 기념품이 됩니다. 국내에 트라이엄프가 정식으로 들어오기 전 파리의 매장에서 사 온 장갑, 일본 오사카 이륜관에서 사들고 온 가와사키 수건처럼 소소한 물건들이더라도요.
라이더 용품, 특히 의류는 라이더의 로망을 완성시켜주는 마지막 한 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이크의 속도감과 주행감, 머신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라이더로서의 멋짐’도 바이크의 매력의 한 부분일 테니까요. 더 멋진 라이더로 거듭나기 위해, 언젠가는 라이더 인구가 놀랍도록 늘어나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길 기원해 봅니다.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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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08호 / 2022.8.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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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용 의류 시장은 참 작습니다. 여성 라이더 의류 시장은 더 작습니다. 요즘은 그나마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선택지가 많지는 않습니다. 시장이 커져야 제품도 다양해질텐데 누가 봐도 그럴 가능성은 낮아보입니다. 답 없는 문제지만 하소연이라도 해보려고 합니다.
규모의 경제와 바이크 시장
파리에서 사온 이 헬멧은 지금도 잘 쓰고 있습니다
유명한 경제학 개념 중에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라는 말이 있습니다.
알고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 경제학 개념이란 수식어가 거창하게 느껴질 정도니까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설명을 해 보자면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이익도 증가한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바이크 100대를 만들 때보다 500대를 만들 때 더 많은 이익이 기대된다는 의미입니다.
생산량이 늘어나는 만큼 생산 비용도 늘겠지만 많이 만드는 만큼 재료·부품·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지니까요.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에 “A부품 100개가 아니라 500개를 살 테니까 1개당 가격을 더 낮춰달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사업의 규모가 클수록 저금리로 자금을 대출받을 수도 있고요. 물론 규모가 커진다고 언제나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는 건 아닙니다만, 대체로는 옳습니다.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장이 클수록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 팔면 되니까 사업가는 이익을 남기기 쉽고, 그만큼 여러 사업가들이 뛰어들어 가격 경쟁을 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반대로 작은 시장이라면 어지간해선 큰 이익을 내기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다양한 제품, 낮은 가격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뜬금없이 경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그토록 좋아하는 바이크 시장에서도 이런 경제학 이론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바이크 시장은 그래도 작지 않은 규모겠지만 한국 바이크 시장은 정말 작습니다. 10년 넘게 연간 신차 판매대수가 10만 대 수준이니까요. 최근에 15만 대 수준으로 올라왔지만요.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여성 라이더 용품
2015년 일본 후쿠오카의 '냅스'에서 산 물건들. 재킷도, 장갑도 이제 수명이 다 해서 고이 잘 버렸습니다
이렇게 작은 바이크 시장에서 라이더용 의류 시장 역시 클 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처음 바이크를 타기 시작한 2014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제조사 수는 몇 안 됩니다. 이들 제조사들마저도 여성용 라이딩 의류는 소량만 만들고 있고요. 진짜로 세어본 적은 없지만 바이크 용품점에 가면 여성용 제품은 10개 중 많아야 두세 개뿐입니다. 이마저도 10년 전보단 높아진 비중이겠지만요.
시장의 논리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보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백만 여성라이더 대군’을 양성하지 않는 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그저 살 수 있는 제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때가 많습니다.
일본 오사카 스미노에구의 이륜관 매장
다만 딱 한 가지 지적하고픈 게 있다면, 일부 브랜드(특히 일본 회사의) 여성용 라이딩 의류에는 분홍색이 참 자주 들어갑니다. 여자니까 그런 색을 좋아할 것이란 편견이 바이크 의류에도 적용된 겁니다. 실제로 여자들은 분홍색뿐만 아니라 회색, 파란색, 녹색, 검은색 등 다양한 색을 좋아하는데도 말입니다.
또 어떤 브랜드의 라이딩진 제품 사진에는 모델이 언제나 안짱다리처럼 서 있습니다. 같은 브랜드의 남자 라이딩진 모델 사진과 비교하면 아주 수줍고 소극적인 포즈입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거슬리기 시작해 결국 그 브랜드 제품은 사지 않게 됐습니다.
여성용 라이딩 의류의 분홍색, 모델의 희한한 자세가 악의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안이하다고 느껴질 따름입니다. 성별에 따라 남녀를 구분하고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있으니까요. 전쟁과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게 무슨 대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성별에 근거한 편견 역시 중요한 문제입니다.
전 세계 여성과 남성의 다양한 가능성을 가로막으니까요. 이 문제가 전쟁만큼 중요하진 않겠지만 그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세상에 중요한 문제는 거의 없을 겁니다.
라이더의 로망이 완성되는 지점
2017년 파리의 트라이엄프 매장에서 사 온 장갑. 아직까지도 애용 중입니다
눈 감으면 바이크가 아른거리던 입문기를 지나 이제 저도 어엿한 중견 라이더(?)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이크에 대한 욕심은 물론 바이크 용품에 대한 욕심도 급격히 사라졌습니다. 그저 허름해 보이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만 남았고요. 그럼에도 가끔은 허름해 보이긴 하지만요. 요즘엔 정말 멋있게 차려입은 라이더들이 많아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덕분에 라이더들이 많이 모이거나 지나가는 곳에선 자주 감탄하게 됩니다.
입문기 시절, 처음으로 일본의 바이크의 용품점에 가봤을 때가 기억납니다. ‘라이코랜드’였는지 ‘이륜관(니린칸)’이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기대감이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 일본 하면 바이크 대국이고 여성 라이더의 수가 한국보단 많을 테니 여성 라이더용 의류도 다양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체코 프라하 4구의 용품점 '와이샵'
안타깝게도 기대와 달리 일본도 여성 라이더용 제품은 적었습니다. 우리나라보다야 많았지만 상상했던 규모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이후 프랑스 파리나 미국 로스앤젤레스, 체코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도 미리 바이크 용품점의 위치를 알아뒀다가 찾아가곤 했습니다. 역시 여성용 제품은 물량 자체가 적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게다가 뭐라도 하나 사 오면 두고두고 이국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는 좋은 기념품이 됩니다. 국내에 트라이엄프가 정식으로 들어오기 전 파리의 매장에서 사 온 장갑, 일본 오사카 이륜관에서 사들고 온 가와사키 수건처럼 소소한 물건들이더라도요.
라이더 용품, 특히 의류는 라이더의 로망을 완성시켜주는 마지막 한 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이크의 속도감과 주행감, 머신의 아름다움도 좋지만 ‘라이더로서의 멋짐’도 바이크의 매력의 한 부분일 테니까요. 더 멋진 라이더로 거듭나기 위해, 언젠가는 라이더 인구가 놀랍도록 늘어나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길 기원해 봅니다.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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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08호 / 2022.8.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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