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라이더 스토리②, “관심 감사합니다, 하지만 여왕벌은 아니에요”

2021-08-20

요즘 젠더 갈등이 심하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만 심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현실에서도 조금씩은 그런 갈등이 엿보이는 것 같습니다.


여러 말이 난무하는 가운데 여성 라이더들은 괜찮은지 적어봤습니다.


제가 대표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다양한 시각을 이해한다면 더 화목한 오두바이씬(scene)으로 거듭나지 않을까요. 2회에 걸쳐 씁니다.


첫 회는 여성 라이더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 단어, ‘여왕벌’입니다.

라이더들은 기본적으로 서로에게 친절합니다.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던 시절 보호대를 주신 분(보답으로 와인을 드렸습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행오프 교육을 해 주신 검의전설님, 제가 390듀크를 갖다 박았을 때(두유바이크 100회 특집 참조) 땡볕에서 같이 용달차를 기다려 준 동호회원들에게 새삼 고마워지네요.


또 TMI(너무 과한 정보'란 의미의 신조어, Too Much Information)로 샜는데, 어쨌든 라이더끼리의 우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훈훈하기 짝이 없습니다. 경사진 길에서 바이크 후진을 어려워하고 있을 때, 넘어졌을 때, 헤어핀(‘U’ 자 모양으로 급하게 구부러진 커브)에서 난감할 때...라이더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고 돕습니다.


관심이 독이 될 때


이런 기본적인 친절에 더해, 여성 라이더들은 좀 더 많은 관심을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라이더가 아닌 분들도 많은 관심을 주십니다.


저는 바이크 타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지나가던 관광객과 사진을 찍은 적(…)도 있고, 수도권 바깥의 통행이 드문 국도변 주유소에 잠깐 들르더라도 꼭 칭찬이든 질문이든 한 마디씩은 듣습니다. 솔로 박투어를 다니면서 경치 좋은 곳에서 쉬고 있으면 어머님들, 아버님들이 꼭 말을 걸어주십니다. 낯선 지역을 혼자 싸돌아다니느라 조금 심심하던 차에 반가울 때가 많습니다. 그 짧은 대화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기도 합니다.


이런 관심이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남성 라이더들도 라이더 자체가 드문 동네에서는 관심의 중심이 됩니다. 게다가 외국인 신분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지요. 유라시아를 바이크로 횡단하고 오신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러시아나 몽골이나 유럽 소도시에서 엄청난 관심과 환대를 받으시더군요. 


밥과 숙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같이 낑낑거리면서 바이크 부품을 구해주고, 센터를 찾아주고, 직접 고쳐주는 등 러시안 브라더들의 이야기는 거의 모든 후기에 등장합니다. 이름마저 주로 세르게이입니다. NPC(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할 수 없는 캐릭터, Non-Player Character)가 아닌지 의심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관심이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저도 멋있는 바이크와 라이더를 보면 눈을 떼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 분을 따라간다거나 특히 집 앞까지 쫓아가서 번호를 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여성 라이더들이 이런 일을 겪습니다. 나쁜 뜻이 없다고 해도 여성 라이더에게 위협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온라인으로도 비슷한 일들이 생깁니다. 저는 미국 투어를 같이 하자거나, 국내 투어 갈 때 불러달라거나, 카톡 친추를 하고 싶다는 메일들을 받았습니다. 나쁜 뜻은 없으셨으리라 믿지만 생면부지의 누군가로부터 연락처 혹은 만남을 요청받는 게 아주 달갑지만은 않았습니다. 혹시 제가 친구가 없어 보였던 걸까요? 불쌍해 보여서 도와주려는 의도였다면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여왕벌에 대한 고찰


여기까지는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라이더계의 볼드모트(해리포터의 악역으로서 ‘이름을 말해선 안 되거나, 존재를 부정할 때, 강력한 상대를 표현할 때 사용)급 단어, ‘여왕벌’이란 바로 그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단어를 아예 피해가는 게 저뿐만 아니라 모두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싶기도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면 애먼 여성 라이더들이 ‘여왕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거든요.


여성 라이더가 관심에 도취돼서 호의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자주 생기는 걸까요? 세상에는 남녀노소 막론하고 이상한 사람들이 종종 있긴 한데, 그 이상한 사람을 마주칠 확률보다 더 높은 확률로 여왕벌과 마주칠 수 있을까요?


우선 여왕벌의 존재 조건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왕벌이 있으려면 여왕벌에게 충성하는 일벌들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매력적인 외모의 여왕벌과 그에 호응하는 관심의 교환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런 조건을 감안할 때, 교환할 거리가 없는 이들 사이에는 여왕벌과 일벌 관계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여자 앞에는 일벌이 나타나지 않고, 대부분의 남자 앞에는 여왕벌이 나타날 일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꽃뱀이나 제비족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와도 같습니다.


라이더 모임에서 ‘여왕벌’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뜯어보면 실제로는 불륜이나 양다리 등 그냥 ‘지저분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불륜은 남녀 어느 한 쪽만의 책임도 아니고, 남초·여초 상관 없이 나타나는 문제고요. 그런 이야기가 여왕벌 스토리로 와전되고, 여성 라이더들이 괜한 의심부터 받기도 합니다. 그런 데에 낭비할 에너지를 좀더 생산적인 쪽에 쓰면 좋지 않을까요. 라이딩 스킬도 늘린다거나, 마음 맞는 라이딩 메이트를 찾는데 집중한다든가요.


좋은 분들에게는 좋은 인연이 따라다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터넷과 달리, 현실에선 대부분의 분들이 저와 비슷한 생각이라고 믿습니다. 타인의 정체와 의도를 의심하기보단 자신의 발전과 즐거움에 집중할 거라고요.

 

다음 편의 제목은 ‘그 많은 여성 라이더는 어디로 갔을까’입니다. 여성 라이더가 그래도 아주 드물지는 않고 심지어 최근 몇 년 간은 도로에서 상당히 많이 보이는 편입니다. 그런데 인터넷 바이크 커뮤니티에선 왜 안 보이는 걸까요? 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봤습니다.

 

유주희 기자


서울경제신문 디지털뉴스룸 기자, 8년차 라이더. 모터사이클 잡설 ‘두유 바이크’ 연재 중. SYM 울프125, KTM 390 듀크, 가와사키 W800을 타며 모터사이클 에세이 ‘그동안 뭐하고 살았지, 바이크도 안타고’를 썼다. 현재 서울경제신문에서 환경관련 뉴스레터 ‘지구용’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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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382호 / 2021.7.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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