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에 입문하면서 인터넷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저보다 먼저 이 길에 뛰어든 분들이 남겨둔 흔적, 그리고 댓글로 아낌없이 나눠주는 정보와 응원. 인류애가 솟아나는 나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인터넷 바이크 커뮤니티에서 불편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 라이더들도 비슷했을 겁니다.

문제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하자마자 보이는 ‘후방주의(공개된 장소에서 보기에는 선정적인 사진들을 업로드할때 게시물 제목에다 붙이는 일종의 경고문)’ 사진들이었습니다.
‘오빠’라는 단어와 함께 주로 등장하는 사진 속의 인물들은 아시다시피 현실의 여자들과 많이 다릅니다. 성적인 매력만 부각된, 그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는 궁금해 할 필요가 없는 존재들. 그리고 그런 사진들을 보며 즐거워하는 일부 회원들. 지저분한 댓글들도 많이 달립니다. 사실 그 댓글들이 더 원망스러웠습니다.
‘후방주의’가 불편한 이유

그런 사진들에 환호하는 회원들이 많을수록, 제가 속한 여성이라는 그룹이 이곳에서 인간으로 존중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여기서 헷갈릴 수 있는 부분. ‘후방주의’를 반기는 분들은 보통 ‘내가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데!’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연애의 대상, 성적인 대상으로 여성을 좋아하는 것과 동등한 인간으로서 좋아하는 것은 확연히 구분이 됩니다.
전자의 경우 쉽게 풀자면 ‘저 여자가 예쁜지 안 예쁜지, 나와 연애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저 남들과 똑같은, 어떤 바이크가 좋고 어떤 코스가 재미있는지 알고 싶은 라이더일뿐인데 말입니다.
여기서 고백하자면, 저도 한 바이크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면서 ‘여성 라이더’라는 말머리를 쓴 적이 한 번 있습니다. 그래야 조회수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이용해서 당시 갓 연재를 시작한 ‘두유바이크’의 초기 독자를 늘리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후방주의’가 횡행하는 환경에서 ‘여성 라이더’에 대한 관심은 한 ‘인간’이 아닌 한 ‘성별’에 대한 관심으로 좁혀질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면서 글에서 최대한 제 성별을 드러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굳이 ‘다른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와 동시에 ‘후방주의’ 게시물들이 점점 더 참을 수 없어져서 결국 인터넷 커뮤니티를 거의 찾지 않게 됐습니다. 많은 여성 라이더들이 저와 비슷한 기분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가끔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보다 보면 다행히 많이 달라진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후방주의’ 글이 줄어들었고, 종종 ‘이러지 말자’는 댓글도 달리더라고요. 물론 ‘선비’, ‘프로불편러’라는 말로 공격받기 일쑤지만, 남자 회원들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많이들 하는구나 싶어 반가웠습니다.
여성 라이더들은 대단한가

조금 더 덧붙이자면, ‘여자가 대단하다’는 칭찬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시승 행사에서 다른 나라 기자로부터 ‘여자 치고는 잘 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은 칭찬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여자는 대체로 운동 신경이 나쁘고 운전도 잘 못하는데 너는 다르구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남자들도 싸잡아 평가당하는 걸 싫어하듯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남녀의 차이라고 여겨지는 특성 대부분이 문화와 교육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 아이들이 선천적으로 핑크색 인형의 집, 공주풍 치마를 좋아하는 걸까요? 그럼 원시시대 여성들은 현대의 여성들과 종이 달랐던 걸까요?
여성의 운동신경, 운전 능력이 떨어진다는 믿음도 저는 부정하는 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여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거의 운동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고무줄, 배드민턴, 피구, 1년에 한번 있는 체력장이 끝입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나서 운동을 배워 보려고 체육관에 가면, 잘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 해봤으니까요.
그리고 여자니까 무릎을 바닥에 대고 푸쉬업을 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여자들도 조금만 노력하면 푸쉬업 몇 십 개 정도는 무릎을 대지 않고도 쉽게 합니다. 제가 몇 년째 권투를 배우면서 깨달은 사실입니다.
여성과 남성이 똑같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건 과학의 영역이니까요. 오래된 통념이 사실은 거짓일 가능성, 그 통념이 우리를 괴롭게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까지도요.
라이더는 모두 멋지다

코끼리를 어렸을 때부터 말뚝에 묶어놓으면, 커서도 얌전히 묶여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말뚝 하나쯤 쉽게 뽑을 수 있는 덩치인데도 길들여진 거죠. 여성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여자답기를, 운동이나 운전보다는 인형놀이나 요리에 관심 있기를 주입받아왔으니까요.
물론 인형놀이나 요리나 화장이 가치 없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모든 여성이 그런 식으로 ‘여성다워야’ 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남성이 ‘남성다워야’ 할 필요는 없는 것처럼요. 그냥 나다우면 되는 겁니다. 남자가 뜨개질을 좋아하거나 하이힐을 신고 싶어하거나 펑펑 울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 뭘 하든 ‘여자가 대단하다’, ‘여자가 뭘 그런 걸 하냐’, ‘남자는 울면 안 된다’, ‘남자가 이것도 못 하냐’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멋있어서 좋은 말을 해 주고 싶다면, 그냥 ‘멋지다’고 응원하면 됩니다. 여자가 타든, 남자가 타든 바이크는 그냥 멋있는 겁니다.
유주희 기자

서울경제신문 디지털뉴스룸 기자, 8년차 라이더. 모터사이클 잡설 ‘두유 바이크’ 연재 중. SYM 울프125, KTM 390 듀크, 가와사키 W800을 타며 모터사이클 에세이 ‘그동안 뭐하고 살았지, 바이크도 안타고’를 썼다. 현재 서울경제신문에서 환경관련 뉴스레터 ‘지구용’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유주희 #두유바이크 #여성라이더
한국이륜차신문 384호 / 2021.8.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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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에 입문하면서 인터넷에서 많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저보다 먼저 이 길에 뛰어든 분들이 남겨둔 흔적, 그리고 댓글로 아낌없이 나눠주는 정보와 응원. 인류애가 솟아나는 나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인터넷 바이크 커뮤니티에서 불편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 라이더들도 비슷했을 겁니다.
문제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하자마자 보이는 ‘후방주의(공개된 장소에서 보기에는 선정적인 사진들을 업로드할때 게시물 제목에다 붙이는 일종의 경고문)’ 사진들이었습니다.
‘오빠’라는 단어와 함께 주로 등장하는 사진 속의 인물들은 아시다시피 현실의 여자들과 많이 다릅니다. 성적인 매력만 부각된, 그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는 궁금해 할 필요가 없는 존재들. 그리고 그런 사진들을 보며 즐거워하는 일부 회원들. 지저분한 댓글들도 많이 달립니다. 사실 그 댓글들이 더 원망스러웠습니다.
‘후방주의’가 불편한 이유
그런 사진들에 환호하는 회원들이 많을수록, 제가 속한 여성이라는 그룹이 이곳에서 인간으로 존중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여기서 헷갈릴 수 있는 부분. ‘후방주의’를 반기는 분들은 보통 ‘내가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데!’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연애의 대상, 성적인 대상으로 여성을 좋아하는 것과 동등한 인간으로서 좋아하는 것은 확연히 구분이 됩니다.
전자의 경우 쉽게 풀자면 ‘저 여자가 예쁜지 안 예쁜지, 나와 연애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저 남들과 똑같은, 어떤 바이크가 좋고 어떤 코스가 재미있는지 알고 싶은 라이더일뿐인데 말입니다.
여기서 고백하자면, 저도 한 바이크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면서 ‘여성 라이더’라는 말머리를 쓴 적이 한 번 있습니다. 그래야 조회수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을 이용해서 당시 갓 연재를 시작한 ‘두유바이크’의 초기 독자를 늘리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후방주의’가 횡행하는 환경에서 ‘여성 라이더’에 대한 관심은 한 ‘인간’이 아닌 한 ‘성별’에 대한 관심으로 좁혀질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면서 글에서 최대한 제 성별을 드러내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굳이 ‘다른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와 동시에 ‘후방주의’ 게시물들이 점점 더 참을 수 없어져서 결국 인터넷 커뮤니티를 거의 찾지 않게 됐습니다. 많은 여성 라이더들이 저와 비슷한 기분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가끔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보다 보면 다행히 많이 달라진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후방주의’ 글이 줄어들었고, 종종 ‘이러지 말자’는 댓글도 달리더라고요. 물론 ‘선비’, ‘프로불편러’라는 말로 공격받기 일쑤지만, 남자 회원들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많이들 하는구나 싶어 반가웠습니다.
여성 라이더들은 대단한가
조금 더 덧붙이자면, ‘여자가 대단하다’는 칭찬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시승 행사에서 다른 나라 기자로부터 ‘여자 치고는 잘 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은 칭찬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여자는 대체로 운동 신경이 나쁘고 운전도 잘 못하는데 너는 다르구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남자들도 싸잡아 평가당하는 걸 싫어하듯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남녀의 차이라고 여겨지는 특성 대부분이 문화와 교육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 아이들이 선천적으로 핑크색 인형의 집, 공주풍 치마를 좋아하는 걸까요? 그럼 원시시대 여성들은 현대의 여성들과 종이 달랐던 걸까요?
여성의 운동신경, 운전 능력이 떨어진다는 믿음도 저는 부정하는 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여자들은 어렸을 때부터 거의 운동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고무줄, 배드민턴, 피구, 1년에 한번 있는 체력장이 끝입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나서 운동을 배워 보려고 체육관에 가면, 잘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 해봤으니까요.
그리고 여자니까 무릎을 바닥에 대고 푸쉬업을 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여자들도 조금만 노력하면 푸쉬업 몇 십 개 정도는 무릎을 대지 않고도 쉽게 합니다. 제가 몇 년째 권투를 배우면서 깨달은 사실입니다.
여성과 남성이 똑같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건 과학의 영역이니까요. 오래된 통념이 사실은 거짓일 가능성, 그 통념이 우리를 괴롭게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까지도요.
라이더는 모두 멋지다
코끼리를 어렸을 때부터 말뚝에 묶어놓으면, 커서도 얌전히 묶여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말뚝 하나쯤 쉽게 뽑을 수 있는 덩치인데도 길들여진 거죠. 여성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여자답기를, 운동이나 운전보다는 인형놀이나 요리에 관심 있기를 주입받아왔으니까요.
물론 인형놀이나 요리나 화장이 가치 없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모든 여성이 그런 식으로 ‘여성다워야’ 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남성이 ‘남성다워야’ 할 필요는 없는 것처럼요. 그냥 나다우면 되는 겁니다. 남자가 뜨개질을 좋아하거나 하이힐을 신고 싶어하거나 펑펑 울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 뭘 하든 ‘여자가 대단하다’, ‘여자가 뭘 그런 걸 하냐’, ‘남자는 울면 안 된다’, ‘남자가 이것도 못 하냐’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멋있어서 좋은 말을 해 주고 싶다면, 그냥 ‘멋지다’고 응원하면 됩니다. 여자가 타든, 남자가 타든 바이크는 그냥 멋있는 겁니다.
유주희 기자
서울경제신문 디지털뉴스룸 기자, 8년차 라이더. 모터사이클 잡설 ‘두유 바이크’ 연재 중. SYM 울프125, KTM 390 듀크, 가와사키 W800을 타며 모터사이클 에세이 ‘그동안 뭐하고 살았지, 바이크도 안타고’를 썼다. 현재 서울경제신문에서 환경관련 뉴스레터 ‘지구용’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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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384호 / 2021.8.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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