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라이더 스토리 ④, 캠핑 헤이터와 캠핑 러버가 만났을 때(上)

2021-09-07

지난해에는 저를 제외한 모두가 캠핑을 다니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주변 지인들, 직장 동료들, 소셜미디어 친구들이 주말이면 어딘가에서 텐트를 치고 있더군요. 코로나19 때문에 갈 데가 없어져선지 인적이 드문 곳을 더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듯했습니다. 특히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은 대체로 캠핑을 좋아하더군요. 같이 모토캠핑을 가자는 라이더 친구들의 제안도 수차례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습니다. 저는 캠핑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느긋한 캠핑장의 풍경


캠핑을 싫어하는 이유는 우선 ‘귀찮아서’입니다. 집에서도 손가락 까딱하기 싫은데 왜 사서 고생을 한단 말입니까. 왜 바리바리 짐을 싸서 이동하고, 텐트를 치고 밥을 지어먹고 뒷정리를 해야 한단 말입니까. 야외에서 먹는 밥이 맛있기야 하겠지만 세상엔 맛있는 식당도 널렸습니다. 남이 차려주는 밥을 더 쾌적하게 먹을 수 있지 말입니다!


불편하고 귀찮은 캠핑?


캠핑장을 떠날 준비 중인 지하(왼쪽)와 영


텐트에서 잠을 청한다는 건 더욱 말이 안 되게 느껴졌습니다. 어린 시절 여름방학이면 몇 가족이 모여서 강으로 계곡으로 물놀이 겸 캠핑을 다닌 기억이 있습니다. 시원한 계곡물에서 한참을 놀다가 맛있는 저녁을 먹고 텐트에서 잠들었던 그 아이는 자라서 캠핑을 싫어하게 됐습니다.


불편한 잠자리와 새벽의 차가운 공기와 습기 때문에 자주 잠에서 깼거든요. 포근한 이불과 쾌적한 온도의 숙소를 저버리고 텐트에서 밤을 보내야 하는 이유가 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 먹어가면서 이렇게 사람이 보수적으로 변하는구나, 싶은 생각이요. 나이 들면서 정치 성향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보수화를 겪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새로운 물건·기술·트렌드를 접했을 때 ‘에이 나는 싫어’, ‘난 안돼’라고 쉽게 거부하는 거죠. 이런 과정이 조금씩 쌓이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젊은 시절에 좋아했던 것, 옛날 사고방식에 그대로 머무르게 됩니다. 그게 꼭 나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워낙 좋은 취향과 가치관을 지녔거나,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지만 않는다면요. 본인이 지금 충분히 즐겁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해서 얻는 것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7년 전에 바이크를 시작할 수 있었겠죠. 중학교 2학년 이후로는 해보지도 않은 캠핑을 ‘싫다’고 하는 스스로에게 도전할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 도전하다


캠핑장 근처에서의 물놀이. 앞부터 순서대로 필자, 영, 지하


도전은 소심하게 진행됐습니다. 친구 ‘지하’는 오프로드 바이크에 80리터 가방과 7.5리터짜리 워터저그까지 야무지게 실어왔고, 저는 사륜차에 제가 쓸 캠핑체어(여름철 계곡 바이크 투어를 위해 이 정도는 갖고 있습니다)와 각종 주류, 하나로마트에서 산 식재료와 친구 ‘영’을 실어서 캠핑장에 도착했습니다.


‘지하’와 ‘영’은 라이더이자 모터캠핑 마니아들. 둘은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숙박할 예정이었고, 저는 캠핑장 근처에 펜션을 예약했습니다. 저는 텐트가 없거든요. 물론 친구들이 텐트를 빌려주겠다고도 했지만 애써 모른 척 했습니다.


충북 단양의 캠핑장은 여름휴가를 보내는 이들로 북적였습니다. 주변 경치도 워낙 좋았고 무엇보다 일상에서 벗어난 이들 특유의 분위기가 감돌더군요. 


느긋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책을 읽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챙기느라 바쁜 어른들도 있었고, 누워서 도란도란 대화하는 분들도,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부산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평소 서울 어디를 가도 느껴지는 조급함이 없었습니다. 이제 막 도착한 저도 순식간에 그 느긋함에 녹아들어갔습니다.


잠시 물놀이를 하며 두 친구의 캠핑 역사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둘 다 바이크를 타기 전부터 캠핑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영’은 대학교 등산 동아리에서 ‘야영’을 시작한 케이스. 등산이니까 모토캠핑보다도 더 짐이 가벼워야 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캠핑을 바이크로 가든 사륜차로 가든 미니멀리스트에 가깝습니다. 화려한 ‘글램핑’에는 관심이 없다네요.


캠핑의 꽃, ‘감성템’


캠핑 분위기를 살리는 가스랜턴


‘지하’는 과거 미국에서 8년을 살았는데, 그 때 캠핑을 자주 다녔던 터라 한국에서 캠핑을 하면서 많이 놀랐다고 합니다. 인적을 찾기 힘든 미국의 대자연 속에서 캠핑을 하다가 한국에 왔더니 어딜 가도 캠퍼가 많아서요. 미국의 광활한 자연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캠핑이라니 무척 부러웠습니다. ‘지하’도 보통 바이크로 캠핑을 다니다 보니 대략 미니멀리스트인 편입니다.


그리고 둘의 또 다른 공통점은 ‘슬렁슬렁 캠퍼’라는 점입니다. 캠핑의 전 과정에 아주 공을 들이진 않는다고 합니다. 한 번 쓴 도구들도 대강 씻어서 말랐다 싶으면 그대로 짐에 넣어뒀다가 다음 캠핑 때 그대로 들고 온다고. “완벽주의자들은 피곤하지 않을까?(영)”라길래 저는 그만 속으로 ‘캠핑 자체가 피곤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버렸습니다. 다만 정리와 관리에 집착하지 않으면 덜 귀찮게, 오래오래 캠핑을 즐길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미니멀리스트이자 슬렁슬렁 캠퍼인 둘도 ‘감성 아이템’은 꼭 챙긴다고 합니다. ‘영’은 가스랜턴과 화롯대를 꼭 챙깁니다. 캠핑의 백미는 불멍이라네요. 캠핑을 다녀와서 사진들을 보니 과연 랜턴의 사진발이 강력하더군요. ‘영’은 식사 때가 되면 흑단 젓가락을 꺼내듭니다. 목공이 취미거든요. ‘지하’는 처음에는 감성템 따위 없는 실용주의자처럼 굴었지만, 알고 보니 비싸고 예쁜 스탠리 커피 드리퍼와 워터저그를 언제나 챙겨다닌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아주 깊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가스랜턴도, 스탠리 캠핑 용품도 너무 예뻤거든요. 아마 이즈음부터 조금씩 캠핑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다음 편에서 저의 변화를 확인해 보시길!


글·사진/유주희 기자

 

유주희 기자


서울경제신문 디지털뉴스룸 기자, 8년차 라이더. 모터사이클 잡설 ‘두유 바이크’ 연재 중. SYM 울프125, KTM 390 듀크, 가와사키 W800을 타며 모터사이클 에세이 ‘그동안 뭐하고 살았지, 바이크도 안타고’를 썼다. 현재 서울경제신문에서 환경관련 뉴스레터 ‘지구용’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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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386호 / 2021.9.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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