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희의 바이크 라이프_바이크로 달리는 ‘미식의 길’(서울편)

2022-02-09

바이크를 타게 된 후, 저는 먹고 싶은 걸 참지 않는 인간이 됐습니다. 언제든 바이크를 끌고 갈 수 있게 됐으니까요. 특히 대중교통으로 가기 복잡하거나 사륜차 주차난이 심한 지역일수록 바이크가 최고입니다. 

상편에서는 서울의 맛집, 하편에서는 그 외 지역의 맛집을 중심으로 저의 바이크 맛집 탐방기를 적어봅니다. 미식가는 아니라서 드릴 정보는 별로 없지만누구든 공감할 만한 이야기일 겁니다.

부암동의 빙수집 부빙 앞에서, 바이크와 함께라면 맛집 탑방이 훨씬 쉬워진다


제가 오래전부터 ‘맛집 탐방’을 좋아했던 건 아닙니다. 불과 4, 5년 전까지만 해도 음식에 별 관심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음식에 많이 진심인 친구들이 주변에 꽤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십 수 년 전, 중국 베이징에서 어학연수를 함께 했던 과 선배 둘이 그랬습니다. 저보다 반년은 늦게 온 두 사람이 두어 달 후에는 저보다 훨씬 다양한 현지 음식을 제패했으니까요. 


그들은 중국어가 좀 부족했던 연수 초기, 식당 영수증에 적힌 메뉴 이름을 복습해가며 두꺼운 식당 메뉴판을 정복해 나갔습니다. 그때는 조금 유난인 사람들이다 싶었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맛집 탐방으로 다지는 친목


동대문 파르투 내의 손님 대부분은 러시아인이나 우즈베키스탄인들이다


그러다가 7년 전 제 인생에 바이크가 들어서고, 이동 반경이 늘면서 비로소 맛집 탐방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물론 2010년대를 맞아 소셜미디어의 영향도 많이 받았습니다. 요망하게 잘 쓴 맛집 후기를 자꾸 읽다 보면 가만히 있는 게 손해인 느낌이거든요. 마침 트위터로 만난 바이크 친구들도 꽤 있어서, 바이크를 타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모임을 상당히 자주 가졌습니다. 소셜미디어의 부추김과 바이크의 기동성이 만나 맛집 탐방이라는 결과를 낳은 셈입니다.


처음에는 실패도 꽤 많았습니다. 인터넷에는 광고 같지 않은 광고가 많은 법이고, 아무거나 다 맛있는 입맛의 소유자들이 쓴 후기에 속기 쉽거든요. 몇 번 속은 후에는 지독한 불신에 빠지기도 했지만 곧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재래시장 국수집부터 미슐랭 레스토랑까지 찾아다니며 다년간의 미식 경험을 쌓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따르는 거죠. 그랬더니 성공률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성공률’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제가 전국 맛집 1위부터 500위까지 줄 세우려고 도장 깨기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중요한 건 좋은 사람들과 두근두근하며 궁금했던 메뉴를 함께 맛보고, 맛있든 맛없든 같이 호들갑을 떠는 시간입니다.


맛집 핑계로 친구들과 한 번 더 만나고 추억을 쌓으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맛의 경험치가 쌓이는 건 덤입니다.


주관적인 서울의 맛집들


소울 푸드, 광화문 화목순대국. 종종 바이크로 달려가 포장해오곤 한다


가본 곳, 가보고 싶은 곳이 늘면서 ‘뽈레’라는 국산 맛집 앱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직 이용자 수가 적지만 덕분에 ‘광고가 없다’는 매우 강력한 장점도 있어 애용 중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업장에 저와 비슷한 후기를 남긴 이용자들을 팔로우하면 제 기준에 맞는 새로운 업장을 찾기 쉽거든요. 혹은 비싸고 맛있다고 알려진 식당을 제집 드나들듯 다니는 이용자들을 팔로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맛집에 밝습니다. 슬슬 의심스러우시겠지만, ‘뽈레’ 앱과 저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는 점을 밝혀봅니다.


이런 노력을 거쳐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맛집들이 여럿 생겼습니다. 의식의 흐름 순으로 적자면 마라탕은 건대입구역 부근의 ‘봉자마라탕’이 좋습니다. 땅콩소스를 잔뜩 넣어서 한국화된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마라탕과는 다른, 본토식 마라탕을 맛볼 수 있는 곳입니다. 거의 언제나 바이크로 갔기 때문에 사장님도 저를 쉽게 기억하신 것 같습니다. 떡볶이집에 관해선 모두가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이 있겠지만 저에게 가장 완벽한 떡볶이는 혜화동의 ‘나누미’입니다. 


주말 아침에 바이크로 가장 자주 들르는 곳, 평창동 제과점 몽모랑시


버거는 인사동의 ‘다운타우너’, 베트남 쌀국수와 볶음밥은 대학로의 ‘뎁짜이’, 분짜는 여의도의 ‘파파호’, 순대국은 광화문 ‘화목순대국’(여의도 화목과는 많이 다릅니다), 케밥은 이태원의 ‘앙카라 피크닉’, 러시아·중앙아시아 음식은 동대문 ‘파르투내’와 ‘사마르칸트’, 터키 디저트인 카이막은 이태원 ‘알페도’, 우동은 연희동 ‘카덴’, 곰탕은 북창동의 ‘애월회관’, 바게트는 평창동의 '몽모랑시', 인절미는 신사동 ‘도수향’… …, 벼락 맞듯이 떠올라서 지체 없이 시동을 걸게 만드는 곳들입니다. 적기만 해도 너무 즐거워서 앞으로 8,000자는 더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맛집에서 깨닫는 겸허함의 가치


어떤 맛집에서는 그동안 특정 메뉴를 좋아하지 않았던 진짜 이유를 새롭게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그 음식을 잘하는 곳에 못 가봤던 거죠. 예를 들어 무스케이크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연희동 ‘재인’의 무스케이크를 먹어보곤 생각을 바꿨습니다. 곱창전골에도 별 관심이 없었는데 삼성동 ‘중앙해장’에서 완전히 반했습니다.


돈까스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삼청동 ‘긴자바이린’, 인사동 ‘문경올드’, 서촌 ‘주간소바식당 산’ 등을 거치며, 이전까지 맛없는 돈까스만 먹어봤기 때문이란 걸 깨닫게 됐습니다. 오로지 아메리카노만 마셨는데 보광동 ‘헬카페’의 카페라떼, 을지로 ‘투피스’의 비엔나커피를 마셔보곤 주기적으로 방문하게 됐습니다. ‘헬카페’와 ‘투피스’ 둘 다 공교롭게도 대중교통으로든 사륜차로든 조금 골치 아픈 지역에 있기 때문에 바이크로 가면 성취감이 상당합니다.


음식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열릴 때마다 저의 오만을 반성하곤 합니다. 제대로 곱창전골을 모르는 주제에 싫어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는 겁니다. 곱창전골도 커피도 돈까스도 들여다보면 참 넓은 세계인데 말입니다. 역시 겸허한 삶의 태도가 중요하단 사실을 깨닫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배움에 열려있는 만큼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다음 편에서는 서울 바깥의 맛집 탐방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글/유주희(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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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396호 / 2022.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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