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한의 해외투어_3편, 알프스 구조견 세인트버나드, 뚜르드프랑스, 한니발의 흔적을 거쳐서 프랑스 니스로

2024-12-06

모터사이클 투어 전문가인 김종한 작가가 유럽의 지붕으로 불리는 알프스 지역을 찾아갑니다. 알프스를 달리며 전하는 생생한 투어기를 소개합니다. 이번에는 이탈리아알프스에서 프랑스 니스까지 달립니다.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산을 넘는 이들의 수호성자 셍베흐노

 

나폴레옹 군대는 1800년, 그헝셍베흐노 고개를 넘기 위해서 부흐그셍뻬흐 마을에서 징발합니다.


식량과 땔감과 가마솥 같은 자원과 고갯길을 넘는 데 필요한 길잡이를 비롯해 짐꾼까지 징발하며 뒷날 파리로 찾아오면 보상해 준다는 문서를 마을 대표에게 쥐여 줍니다. 마을 측은 이 문서를 대대로 보관해 오다가 1984년 무렵 스위스를 방문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을 찾아가 내밀었다고 합니다.


문서 진위를 가린 뒤 184년간 이자를 포함해서 200억 원으로 불어난 보상금을 지급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실상은 좀 달랐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이자를 뺀 원금 6억 원 상당을 지급했다는 말도 하지만 이마저 부풀려진 것이고 실제로는 그런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동판화와 기념비 정도를 만들어서 마을에 준 것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조난자 구조견 세인트버나드


쁘띠셍베흐노의 세인트버나드 조각상

쁘띠셍베흐노에서 본 몽블랑

피콜로산베르나르도의 라고베르네 호수


그헝셍베흐노 고갯마루를 넘으면 이탈리아에 들어섭니다. 고개 이름도 이탈리아식으로 그란산베르나르도라고 부릅니다. 굳이 우리가 익숙한 영어식으로 바꿔 말하자면 그랜드세인트버나드가 됩니다.


알프스 산악에서 조난자 구조견으로 활약한 바로 그 개, 세인트버나드를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19세기 들어서 스위스 셍모리츠를 중심으로 알프스 산악을 찾는 관광과 등반이 붐을 이루면서 덩달아 조난자도 늘어납니다. 이들을 구조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이 바로 셍베흐노 수도원에서 기르던 개입니다. 오늘날 목에 브랜디 통을 매단 모습으로 그려지는 세인트버나드의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고갯마루의 세인트버나드 기념관이 그 사실을 보여줍니다.


나폴레옹 군대가 지난 고갯길을 따라 이탈리아의 아오스타를 지난 뒤 몽블랑 남쪽의 쁘띠셍베흐노 고개로 향합니다.


이탈리아식으로는 피콜로산베르나르도라고 부르는 이 고개는 기원전 로마를 치러 가던 카르타고의 한니발 군대가 넘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한니발이 넘은 고갯길 후보는 몇 곳이 있으므로 이 고개는 유력한 후보 가운데 하나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쁘띠셍베흐노 역시 세인트버나드가 조난자 구조 활동을 한 곳입니다.


고갯마루에 이탈리아와 프랑스 국경임을 알리는 옛 검문소와 함께 통나무를 깎아서 만든 세인트버나드 조각상이 앉아 있습니다. 당연한 듯 브랜디 통을 목에 매달고 있는 모습이지만, 실제로 매달고 다니며 조난자에게 브랜디를 마시게 해서 체온을 올린다거나 한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조난자를 구한 사실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신문 삽화에 재미로 추가된 것이 사실처럼 굳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세인트버나드 조각상을 지나면 바위에 올라선 성자의 조형물을 만납니다. 그가 바로 산을 넘는 자들을 위한 쉼터와 수도원을 만든 성자 셍베흐노 산베르나르도 세인트버나드입니다. 비록 신자가 아닐지라도 그 앞을 지나며 우리 바이크 투어팀 역시 탈 없는 여행을 하기를 기도드립니다.


브히앙송과 바흐

리제란 고개를 넘는 라이더들
고갯길에 새겨진 뚜르드프랑스 관련 그래피티
꼴드리제란을 넘는 자전거 라이더
뚜르드프랑스 구간에 포함된 꼴디죠아흐


부흐그셍모히스에서 좀 더 나아가면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알베르빌에 이르지만, 방향을 남쪽으로 돌려서 발디세흐를 거친 뒤 꼴데리제란 고갯길을 넘습니다.


이제 막 8월로 넘어가는 시점이지만 7월 초 무렵에 이 고갯길을 찾았다면 넘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 무렵은 전 세계 자전거 라이더들이 꿈의 축제로 불리는 ‘뚜르드프랑스’ 경기가 열리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리제란 고갯마루 부근 노면에는 경기와 관련된 그래피티가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든 모터사이클을 타든 모두 라이더로 불리며 같은 길을 달립니다만, 뚜르드프랑스 경기가 열리는 기간만큼은 프랑스알프스 고갯길들은 자전거 라이더들의 차지입니다.


프랑스알프스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동부알프스는 물론 스위스알프스와도 분위기가 다릅니다. 먼저 땅이나 바위가 붉은빛을 띤 것이 많고 식생도 꽤 달라서 색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바누와스국립공원의 몽세니스 호수

몽세니스 호수


바누와스국립공원을 거쳐서 몽세니스 호수를 지나면 다시 한번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 ‘수사’에 이릅니다. 그리고 한니발이 넘은 고갯길 후보로 꼽히는 몽쥬네브흐를 거쳐서 다시 프랑스 ‘브히앙송’에 이릅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 알프스 고갯길들을 지그재그로 넘나드는 셈입니다.


브히앙송은 프랑스에서 해발 고도가 가장 높은 도시로 꼽히는 산악도시입니다. 숙박이 예정된 호텔에 도착하자 매니저인 듯한 프랑스 아저씨가 특유의 농담을 건넵니다.


“너희들, 야마하 모터사이클을 타거나 아니면 이탈리아 두카티를 타지, 왜 BMW 모토라드를 타고 왔냐?”라며 너스레를 떱니다.


아마 2차대전 시기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만들어진 악연과 뿌리 깊은 라이벌 의식이 바탕에 깔린 농담으로 추측되긴 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열어준 차고 안에 야마하 FJR1300이 서 있습니다. 그의 야마하 사랑은 찐이었나 봅니다.


라꽁다민느샤들라흐의 추억


프랑스알프스의 지역색이 보이는 퐁듀

프랑스알프스식 퐁듀 요리


브히앙송에서 저녁 식사는 쉽지 않습니다. 레스토랑의 여사장님은 영어가 전혀 안 통해서 대학생인 따님을 불러서야 겨우 의사소통이 이루어집니다.


듣기로는 프랑스 사람들이 일부러 영어를 못하는 척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고 진짜로 학교에서 영어 교육이 거의 없는 듯합니다. 하기야 프랑스도 힘 있는 강대국이니 자국 언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조금 전 호텔 매니저 아저씨의 유창한 영어가 별개였던 겁니다.


어렵사리 프랑스식 퐁듀를 비롯한 요리와 와인을 주문해서 저녁 식사에 성공(?)합니다. 프랑스알프스의 지역색이 나는 퐁듀는 끓는 기름솥에 고기를 넣어서 익혀 먹는 것으로, 치즈에 빵조각을 찍어 먹는 스위스식 퐁듀와는 아예 다릅니다. 기억에 남을 브히앙송의 저녁을 뒤로 하고 이튿날은 아침부터 분주합니다.


꼴디죠아흐의 황량한 풍경

프랑스 주유소


프랑스를 대표하는 마켓 카루프에 들러서 과일과 음료 등을 산 뒤 꼴디조아흐 고개를 넘습니다. 마치 사막을 보는 듯 황량한 고갯길 주변 풍광을 만나는가 하면 길(Guil)강을 따라서 깊은 협곡을 지나는 길을 달리기도 합니다.


바흐 고개를 넘어서 만나는 라꽁다민느샤뜰라흐에는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2019년에 BMW R 1150 RS를 타고 세 번째 유라시아횡단을 해서 유럽까지 와서 프랑스알프스를 지나던 무렵입니다. 고갯길 아랫마을에서 청년과 마주쳐 눈인사를 나누고 지나쳤는데, 그가 ATV를 타고 고갯길을 오르던 저를 부리나케 뒤쫓아와서는 고갯길 위는 비포장인데 비에 패이고 거칠어져서 네 바이크로 지나기는 위험하다고 알려줬습니다. 제 바이크가 온로드 스타일인 것을 알아챈 청년이 아무래도 걱정이 됐던 모양입니다. 청년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돌아섰습니다.


제가 탄 R 1150 RS는 유라시아횡단을 하는 과정에 브레이크가 문제가 생겨서 거친 비포장길에 들어섰다면 낭패를 볼 뻔했습니다. 마치 석고상 쥴리앙처럼 잘생긴 청년을 떠올리며 꼴드라보네뜨 고갯길을 오릅니다.


고갯길 주변에 군사시설이 여럿 보입니다. 프랑스알프스가 꽤 넓은 지역이지만 이탈리아와 국경 부근에 바싹 붙은 곳으로 경로를 잡아서 그런 모양입니다.


라보네뜨 고개는 해발 2,802m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파쏘델스텔비오보다 높습니다. 어쩌면 알프스 고갯길들 가운데 가장 높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고갯마루에는 자전거를 탄 라이더가 여럿 보입니다. 아마 이곳도 뚜르드프랑스 구간에 포함되나 봅니다. 라보네뜨 고개를 넘은 뒤 메흐껑뚜흐국립공원을 지나면 지중해를 대표하는 도시 프랑스 니스에 이릅니다.


(다음에 이어서)

 

김종한 모터사이클 투어 전문가(만화가/여행작가)

barami337@naver.com

https://band.us/@biketo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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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64호 / 2024.1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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