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한의 한국기행 2_9편, 동해와 남해의 경계선까지

2023-05-12

남해도를 빠져나온 뒤 삼천포를 지나는 와중에 하늘이 어둡고 바람이 거세게 붑니다. 열흘쯤 앞서 집을 나설 무렵에 제주도 남쪽 저 멀리 태풍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있긴 했습니다. 서해를 거쳐서 바닷가를 따라 달리는 동안 태풍이 북상하더니 내일부터는 남해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바이크 투어 도중에 비를 만나는 일이야 흔하지만, 태풍은 조금 다릅니다. 태풍이 접근하는 추이를 살피면서 여차하면 경로를 조금 조정하기로 합니다.

광안대교의 아침

사천바다케이블카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벼슬아치로 잘 나가다가 죄를 짓고 섬으로 유배를 갈 때 삼천포에서 배를 탔기에 생겨났다거나, 진해에 근무하던 해군 병사가 휴가를 갔다가 복귀하는 기차를 잘못 갈아타서 진해가 아닌 삼천포로 가게 돼서 그렇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집니다만, 정작 삼천포 사람들은 이 말을 매우 싫어한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표현에 지역명이 들어가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1995년에 사천군과 삼천포를 통합하는 투표를 할 때도 이 영향으로 도시명을 삼천포시가 아닌 사천시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삼천포는 신라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고려시대에는 세곡을 운반하기 위해서 통영창이 설치되기도 했는데, 수도인 개경에서 3천리 거리여서 삼천포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고 합니다.


상족암으로 가는 길에 만난 공룡


사람이 북적이는 삼천포항을 거쳐서 상족암군립공원을 지납니다. 상족암은 수 억 년 전 호수 바닥이던 곳에 공룡 발자국 화석이 많이 발견되고 층층이 쌓인 퇴적암이 바닷물에 침식돼서 만들어진 해식동굴이 독특한 경관을 보여줍니다. 동굴을 이루는 바위들이 마치 상다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상족암’입니다.


통영의 관문 학섬휴게소


여유있게 바닷가를 걸으며 구경하고픈 마음이 간절하지만 하늘이 심상치 않아서 곧장 1010번 지방도를 따라 통영으로 달립니다. 고성을 지나 통영으로 가는 길가에 커다란 돛단배 모양 지붕을 한 주유소가 보입니다.


학섬휴게소입니다. 바닷가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전망이 좋은 곳입니다. 통영에 올 때마다 만나는 곳이어서 왠지 통영의 관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4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거제와 통영이 나뉘는 갈림길에서 1021번 지방도를 따라 통영 시내로 들어섭니다.


삼천포에서 통영으로


통영은 조선시대에 설치된 삼도수군통제영의 줄임말이 그대로 지역명이 된 것입니다.


삼도수군통제영은 오늘날 해군본부입니다. 그러니 통영은 일찍이 군항이자 군사기지로 발전한 곳이고 육지와 바다에서 나는 물산이 풍부해서 예로부터 먹거리가 이름난 고장이기도 합니다.


잔뜩 흐리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조금 서둘러 달려온 덕분에 여유롭게 숙소를 정하고 숨을 돌립니다. 한때 ‘동양의 나폴리’라는 별칭을 내세운 적이 있을 만큼 통영은 바다와 도심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랑합니다. 역사적으로는 임진왜란 시기에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 활약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통영항에서 만나는 거북선


통영항이 잘 보이는 여항산 자락에 이순신 장군을 모신 통영충렬사가 있고 한산도가 보이는 바닷가에 이순신공원이 있습니다. 또한 1955년부터 1995년 사이에는 통영항 지역만 따로 떼어내 ‘충무시’로 독립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다시 합쳐져서 통영시가 되었습니다만. 비가 조금 잦아드는 걸 보면서 도심 구경에 나섭니다.


미륵도와 통영을 나누는 통영운하


충무교와 통영대교 사이 좁은 바다는 운하입니다. 건너편 미륵도와 통영항은 임진왜란 이전까지 육지로 이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한산도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에 대패한 왜선들이 이곳으로 도망쳐 왔다가 갇히자 도망칠 물길을 내기 위해서 파내면서 미륵도가 육지에서 떨어지게 됐다고 합니다. 그 뒤로 흙을 파낸 곳이어서 ‘판데목’으로 부르거나 왜군 시신이 쌓였던 곳이라 ‘송장목’으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에 대대적인 운하공사를 해서 지금 같은 모습이 됐다고 합니다.


동양최초 통영해저터널


일제는 운하공사로 미륵도가 완전한 섬이 되자 1931년에는 운하 밑으로 해저터널을 뚫어서 ‘태합굴’이라고 불렀습니다. ‘태합’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당시 관직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순신과 조선 수군의 분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이 좌절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일제가 어떤 마음으로 운하 공사를 하고 해저터널을 뚫었는지 짐작이 되는 바입니다. 물론 지금은 ‘통영해저터널’로 부릅니다.


통영에서 부산 광안리 해변까지


돼지갈비로 이름난 거구장

지역 식문화가 된 다찌집


돼지갈비로 이름난 ‘거구장’에서 저녁식사하고 통영 ‘다찌집’에서 횟감과 함께 술을 한 잔합니다.


일본어에서 비롯된 다찌집은 통영항 부근에 아주 많습니다. 고기잡이 나갔던 선원들이 들고 온 잡고기나 해물을 간단히 조리해서 팔던 곳이 지역색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통영에서 하룻밤이 지납니다. 밤사이에도 계속 비가 내리더니 아침이 돼도 여전합니다. 태풍이 지나고 있나 봅니다. 원래대로면 거제도 해안도로를 달릴 생각이었지만 거센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날씨여서 경로를 조정하기로 합니다.


서낙동강 샛길


거제대교 부근에서 돌아선 뒤 77번 국도를 따라 동해면을 지난 뒤 창원으로 향합니다. 2번 국도기도 한 마창대교는 이륜차 통행을 제한하고 있어서 마산 시내를 거쳐서 진해로 넘어갑니다. 낙동강 하구에 이르러서는 서낙동강 둑길을 따라 김해까지 북상한 뒤 구포대교를 건너서 부산에 들어섭니다.


낙동대로, 구덕터널, 부산항 국제여객선터미널, 서면을 거쳐 광안리까지 부지런히 달립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바닷가를 좀 벗어난 큰길을 이용하니 오히려 이동 거리가 더 많습니다.


광안리 해변이 잘 보이는 곳에 숙소부터 정하니 어느덧 구름이 걷히면서 파란 하늘이 드러납니다. 아직 태풍이 완전히 지나지 않았건만 하늘빛이 밝아지니 기분도 한결 좋아집니다.


광안리길에서 본 광안대교

오륙도 해파랑길에서 본 풍경


가벼운 차림새로 옷을 갈아입고 찾은 오륙도 해파랑길을 찾습니다. 바람이 워낙 세차서 그런지 오륙도 스카이워크는 입구가 닫혀있습니다. 앞바다에 떠 있는 섬들이 다섯 개로 보이기도 하고 여섯 개로 보이기도 하면서 오락가락한다고 해서 오륙도라고 한다는데, 공원에서 바라보면 세 개 정도로 뭉뚱그려져서 보입니다.


오륙도와 영도 사이 신선대 부두로 이어지는 바다는 온통 흰파도가 부서지고 찬바람이 거세니 오래 머물지 못하고 시내로 물러섭니다.


옛 국도를 따라 달리는 운치


카페 거리가 된 간절곶

해운대 기와집대구탕


부산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해운대로 빠져나옵니다. 해운대 옆 달맞이고개는 남해와 동해가 나뉘는 지점이라고 합니다. 대략 부산까지 남해에 포함되고 송정부터는 동해가 되는 셈입니다.


기장 바닷가에 자리잡은 해동용궁사

오랑대

기장해변의 해물요리


서해나 남해와 달리 동해는 해안선이 비교적 단순한 편입니다. 다만 새로 놓인 국도(대로)가 아닌 바닷가를 따라 난 옛 국도를 따라 달리는 쪽이 운치가 있습니다. 바닷가를 따라 해동용궁사, 오랑대, 간절곶 같은 명소를 만날 수 있는 건 좋은데, 다시 빗줄기가 뿌리기 시작합니다.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길은 태풍 꼬리를 좇아서 달리는 셈이라 만만치 않은 여정입니다.

 

삼천포항 : 경남 사천시 향촌동 1031-15

상족암군립공원 :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50-1

학섬휴게소 : 경남 통영시 도산면 남해안대로 1869

거구장 : 경남 통영시 동충2길 22-3

통영다찌 : 경남 통영시 동충2길 10

통영해저터널 : 경남 통영시 당동 13

통영달아공원 :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산양일주로 1115

통영케이블카 : 경남 통영시 발개로 205

통영타워 : 경남 통영시 용남면 남해안대로 21

오륙도해파랑길 : 부산 남구 오륙도로 137

광안리해변 : 부산 수영구 광안해변로 219

해운대기와집대구탕 :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104번길 46

해동용궁사 : 부산 기장군 기장읍 용궁길 86

오랑대공원 : 부산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

간절곶 : 울산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김종한(만화가·여행작가)

barami337@naver.com

https://band.us/@biketo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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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26호 / 2023.5.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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