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한의 타이완 투어_ 2편, 타이완을 대표하는 관광지 지우펀에서 루이수이 온천까지

2024-05-10

다시 눈길을 바다 건너편, ‘타이완’으로


지난달에 이어서 타이완투어 두 번째 원고를 써야지 생각하던 차에 깜짝 놀랄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규모 7.2에 이르는 강력한 지진이 타이완 전역을 때렸다는 속보였습니다.


뉴스 사이트에서 영상을 살펴보니 투어 때 숙박하기도 했던 화롄 시 부근 바다 밑이 진앙지로 가까운 시가지 건물들이 무너지거나 부서진 장면을 볼 수 있었고 사망자를 포함한 부상자도 많이 나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화롄 북쪽의 국가공원 타이루거 협곡을 지나는 길이 산사태로 막힌 모습도 보였습니다. 무너져 내린 바위와 흙더미를 파헤치며 실종자를 찾는 구조대의 급박한 움직임도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겨우 한 달 전에 지났던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곳들이 처참하게 바뀐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타이완 건물들이 내진설계가 잘 돼 있어서 과거 대지진 때와 비교해서 희생자가 현저히 적다는 점이 위안거리라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긴 합니다만.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부디 더는 인명피해가 늘지 않기를, 부서진 시가지는 물론 뛰어난 자연환경을 가진 산악지대를 지나는 길들도 빠른 복구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타이완 투어’ 2편을 씁니다.


지우펀을 거쳐 이란까지


지우펀으로 가는 길


지우펀은 과거에 광산업을 바탕으로 지역 경제를 꾸렸던 곳이지만 지금은 타이완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탈바꿈했습니다.


십수 년 전에 지난 기억을 되살려 보면 아기자기한 선물용 소품과 지역 특산물을 파는 가게들과 고갯길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멋졌는데, 오늘은 아쉽게도 낮게 깔린 비구름에 휩싸여서 제 모습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마을을 지나는 길은 관광객들이 타고 온 자동차들로 꽉 막혀서 이륜차가 빠져나갈 구멍조차 안 보일 지경입니다. 어렵사리 마을을 지난 뒤 도착한 슈메이전망대(樹梅觀景台)에서도 뭐가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네요. 기다리면 비구름이 걷힐지 모르지만 오늘 숙박할 호텔을 예약해 두었으니 마냥 머물기는 어렵습니다.


이란에서 우링으로 향하는 길

이란시 동먼야시장 / 이란 시내 한국풍 고깃집


카오샨(초산) 레이더기지 전망대에 올라가 보려던 생각도 접고 곧장 바닷가로 빠집니다. 궁랴오구 바닷가의 타이완 최동단 지동공원을 거쳐서 이란 시내에 들어서자 어느덧 저녁 무렵이 됩니다.


동먼역 부근에 자리한 호텔은 예약할 때 이름과 간판이 달라서 찾는데 좀 당황스럽긴 합니다. 벽에 걸린 간판은 한자 ‘斯飯店(보우스판디엔)’이지만 영어로는 ‘Boss Hotel’이라고 부릅니다. 중국인들은 이름을 영어식으로 만들 때 비슷한 발음을 가지면서 좋은 뜻을 가진 단어를 가져다 쓴다지요.


저녁은 동먼야시장 부근 고깃집에서 하는데 분위기가 우리나라 식당과 비슷합니다. 고기를 굽는 불판 모양이나 상추쌈이 나온다거나 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다만 메뉴 주문에 시간요금제 무제한 제공 방식이 있는 건 일본식 ‘타베호다이’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푸짐한 저녁 식사 뒤에는 동먼야시장 구경하는 것으로 투어 첫날을 잘 마무리합니다.


우링과 위산(옥산) 국가공원


쉐바국가공원의 고산들

우링의 인증샷 명소, 해발 3,275m


투어 둘째 날, 7번 국도를 따라 란양씨(蘭陽溪) 강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타이완은 우리나라처럼 동고서저 지형입니다. 태평양을 접한 동쪽은 3천m급 봉우리들이 널린 고산지대가 형성돼 있고 중국 본토를 마주 보는 서쪽 바닷가는 갯벌이 많고 완만한 지형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서부에 인구가 집중되고 도시와 교통이 발달한 경향을 보입니다.


반면에 험준한 산악을 이루는 동부는 바닷가를 따라 이란-화롄-타이텅 같은 중소 규모의 도시가 몇 개 있을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바이크로 달리기에는 복잡한 도심이 많은 서부보다 동부의 경치 좋은 산악지대를 지나는 경로를 선택하게 됩니다.


타이루거협곡에 선 바이크

쉐바국가공원의 고랭지채소밭

난샨 주유소


그 가운데 타이완 중북부에 자리한 쉐바 국가공원과 타이루거 국가공원을 먼저 만나게 됩니다. 국도 번호가 7에서 7甲으로 바뀌면서 고도가 점차 높아갑니다.


난샨 마을에서 주유한 뒤 쉐바 국가공원을 이루는 산악을 바라보며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하염없이 오릅니다. 이 경로에 주유소가 귀해서 눈에 띌 때 주유하지 않으면 낭패를 겪을 수 있습니다. 도중에 고랭지채소를 키우거나 산비탈을 따라 복숭아밭이 조성된 곳도 보입니다. 아직 2월이지만 복숭아나무 꽃이 피어 보기 좋습니다.


우링에 선 한국 라이더들

우링에서 본 타이루거협곡

구름이 지나는 우링 고갯길


역시나 타이완이 남쪽 나라인 걸 느낍니다. 8번 국도와 14甲 국도를 차례로 바꿔 달리며 끝없이 이어지는 고갯길에 지칠 무렵, 갑자기 침엽수림이 아닌 풀만 자라는 능선이 나타납니다. 드디어 해발 3,275m 높이를 자랑하는 우링(武領) 고갯마루에 도착합니다. 


이런 높이를 가진 고갯길을 유럽 알프스에서도 만나지 못했는데……, 우리나라와 가까운 타이완에서 만납니다. 하기야 타이완 동부 산악지대는 동북아시아 최고봉 위산(玉山)을 비롯해 3천m가 넘는 봉우리가 200개나 있다니 고갯길도 높고 험준한 것이 당연합니다.


십 수년 전에 오른 적이 있지만, 그때는 비구름이 짙어서 뭔가 본 기억이 없습니다. 오늘은 티 없이 쾌청한 날씨여서 주변 고산들은 물론 발아래 펼쳐지는 모든 경치가 선명합니다. 이렇게 맑은 하늘 아래 모든 걸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라 할 만합니다.


타이루거 국가공원


타이루거를 달리는 한국인 라이더


우링을 내려와서 타이루거 국가공원으로 향합니다. 타이완 중북부 내륙과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험준한 산악과 협곡이 어우러진 곳입니다. 특히 석회암이 침식돼서 만들어진 타이루거 협곡을 타이완 사람들은 세계제일 절경이라며 자랑하곤 합니다.


타이루거를 이루는 산악지대 골짜기를 흘러내린 물줄기가 모여서 태평양으로 흐르면서 만든 깊은 협곡을 따라 폭포와 기암절벽이 끝없이 이어지니 가히 절경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협곡을 지나는 8번 국도를 만드는 과정에 얽힌 아픈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중국 본토에서 타이완 섬으로 건너온 장개석 정부가 이곳에 길을 만들기 위해서 원주민들을 동원해 도로공사를 강행하면서 많은 희생자를 냈다고 합니다. 지금도 희생자 가족이나 후손들의 원성이 이어질 정도라니 얼마나 난공사였을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큰 희생을 무릅쓰고 타이완 섬의 동서 교통로를 만든 결과, 오늘날 우링과 타이루거는 타이완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바이크를 타고 편안하게 절경을 만나는 셈이니 잠시나마 숙연한 마음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한편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석회암이 침식된 타이루거의 명소 녹수

타이루거를 빠져나와 화롄으로


타이루거 협곡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는 란팅(蘭亭)전망대서 녹수(錄水)를 바라보며 잠시 머무릅니다. 과거에 지날 때도 깊은 인상을 받았던 곳이라 다시 찾은 기쁨이 큽니다. 게다가 우링에서 타이루거를 지나는 동안 “여기가 이랬었나?”하는 생각이 들고 생소한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이미 왔던 곳이라고 해도 긴 세월이 지나면 기억이 희석되기 마련인가 봅니다.


길고 험준하며 아름다운 절경을 가진 타이루거를 빠져나와서 화롄 시가지를 관통해서 오늘의 숙소가 있는 루이수이온천으로 향합니다. 실은 어젯밤 숙소는 예약한 곳이었지만 오늘부터는 예약하지 않고 투어 도중에 정한 곳입니다. 이렇게 하면 투어가 자유로워지는 장점이 있지만 약간의 모험이 따르기도 합니다. 과연 오늘 숙소는 어떤 곳일지……?


(다음에 계속됩니다)

 

김종한(만화가·여행작가)

barami33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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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50호 / 2024.5.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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