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한의 세계를 달리다(최종회)_낯선 풍경, 낯선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도전

2022-06-24

2006년 봄, 평소 타고 달리던 ‘FAZER’를 배에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그 전까지 내 바이크를 가지고 해외를 달리기 위해서는 카르네(수출입통관서류)를 만들고 신용보증기구에 이행보증금을 맡겨야만 했으나, 2005년 자동차 일시수출입 제도가 도입되면서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고 간단히 내 바이크를 타고 해외 여러 나라를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시수출입 제도 덕분에 ‘도로교통에 관한 제네바 협약’에 의거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나라는 어디든 달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낯선 풍경


몽골 조랑말과 바이크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부관페리’에 내 바이크를 싣고 처음 출항할 때 기억이 지금도 또렷합니다.


어둑해지는 부산항 야경이 매우 아름답다는 걸 알았고 대한해협을 건널 무렵 밤바다가 너무나 새카매서 놀랐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뱃전을 서성이며 밤바다며 수평선 너머 오징어잡이 배들이 밝힌 조명이며 밤하늘의 별들까지, 모든 것이 기분 좋았습니다.


부산 페리 선상에서 본 부산항 야경 / 시모노세키 여객선 터미널


오전 8시에 맞춰서 시모노세키 항만에 도착한 뒤 입국장을 거쳐서 바이크를 통관한 뒤 시모노세키 시내에 첫발을 내딛기까지 모든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나리타공항이나 간사이공항을 통해서 일본에 입국하는 것과 뭐가 다르다고 그랬을까요? 그건 아마 나 혼자가 아닌 내 바이크와 함께 도착했기 때문일 겁니다.


후쿠오카 시내에 선 페이저


처음 마주친 좌측통행 도로가 꽤 생소했습니다. 기대했던 고속도로 통행은 그다지 재밌지 않아서 실소가 나왔습니다. 짧은 구간을 달리며 고속도로는 심심한 길이구나 싶어서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서 굉장히 비싼 요금에 놀랐습니다. 막상 달려본 고속도로가 별 게 아닌 걸 확인하고 기를 쓰고 이륜차 고속도로 통행을 막는 우리나라 교통행정이 아쉬웠습니다.


후쿠오카의 라멘집 / 돈코츠 라멘


운젠온천 지대의 유황 증기


후쿠오카 시내에서 본토 ‘돈코츠라멘‘을 먹었고 나가사키 야경을 보러 이나사야마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운젠온천을 지나면서 유황 증기를 만났는데 진짜 ’달걀 썩은 냄새‘였습니다. 시미바라에서 페리를 타고 아리아케 만을 건너 쿠마모토 성을 찾았습니다. 입구에 서 있는 카토 기요마사 동상을 발견하고는 임진왜란이 떠올라 약간 째려봤습니다. 아소산 분화구 전망대와 유후인 거리에는 우리나라 관광객이 아주 많았습니다.


낯선 사람들


휴게소에서 만난 일본 라이더들


휴게소에서 만난 일본인 라이더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로부터 투어 정보를 얻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알았지만 능숙하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친절하게 쉬운 단어로 설명해 주는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덕분에 큐슈에서 시코쿠로 건너는 페리를 탈 수 있었습니다.


휴게소 편의점 도시락으로 점심


마쓰야마 시내에서 길 가던 사람에게 다카마츠까지 가는 길을 물었을 때는 ‘아차’ 싶었습니다. 캐주얼한 복장이었지만 나이가 아주 많은 할아버지였습니다. 길을 묻기 위해서 내민 조그만 지도책에 얼굴을 찰싹 붙이고 글씨를 읽으려 애를 쓰는 할아버지를 보며 차마 다른 사람에게 가질 못하고 기다렸습니다. 지도책을 읽고 길을 살피는데 대략 15분쯤 걸렸고, 대답을 들은 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출발한 뒤에도 한참 손을 흔들고 계셨습니다.


시코쿠 귤밭 사이를 지나는 고갯길 / 다카치호 협곡


내 바이크를 타고 첫 해외투어를 하면서, 풍경이든 사람이든 인상에 남는 좋은 장면을 많이 만났습니다. 귀국한 뒤에는 내 경험을 나누기 위해서 ‘M’지에 여행기를 쓰고 ’FAZER‘클럽에 후기를 올렸습니다.


새로운 도전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동해항에서 내 바이크를 페리에 싣고 러시아로 향했습니다.


몇 년간 일본을 자주 달렸습니다. 일본은 내 바이크로 다녀오기에 편리한 ‘이웃나라’였고, 그 밖의 나라들은 여건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나마 가까운 동남아 국가들조차 내 바이크를 가지고 가기보다는 렌탈바이크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한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몽골 초원을 달리는 바이크들 / 몽골 초원의 소떼와 목동


러시아는 내 바이크로 달리기에 너무 큰 나라지만……, 그래서 오히려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라시아횡단’이 바이크로 달릴 수 있는 가장 긴 경로라는 점에 끌렸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달려서 대륙의 경계를 넘는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니까요.


몽골 민속춤을 함께 추는 라이더들 / 타타르인들의 자치공화국을 지나는 라이더 / 유후인에서 벳푸로 가는 고갯길


한국에서 러시아로 건너는 과정은 일본에 건너가는 것과 비슷하면서 조금 달랐습니다. 러시아어는 조금이나마 할 줄 알았던 일본어와 달리 무척 생소하고 낯선 언어였습니다. 그래서 통관 절차를 대행하는 회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일본은 도착 뒤 곧장 통관 절차를 거쳐서 시내로 나갔지만,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뒤 적어도 하루나 이틀을 보낸 뒤에야 통관을 마친 바이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서 며칠을 달려도 풍경이 비슷해서 힘들었다가, 역시나 땅이 큰 나라가 맞는구나 싶어서 체념했다가, 다시 힘들었다가, 체념했다가, 며칠씩 반복되기를 예닐곱 세트를 거치고서야 모스크바에 도착했습니다.


서늘함이 느껴졌던 바이칼 호수 / 러시아에서 우즈벡 레스토랑


바이칼 호수나 우랄산맥 같은 곳은 확실히 인상에 남지만,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베리아 평원의 광대함이 그것을 압도하고도 남았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뒤 러시아 국경을 다시 만나기까지 1만km를 달렸습니다.


우랄산맥을 넘은 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북유럽 핀란드로 넘어가든, 모스크바를 거쳐 라트비아를 지나 동유럽으로 넘어가든, 조지아와 터키를 거쳐서 남유럽으로 넘어가든, 모두 1만km를 달려야 러시아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도중에 몽골이나 중앙아시아 파미르고원을 거치면 거리가 더 길어집니다.


어쨌든 기나긴 여정을 거친 뒤 만난 알프스나 피오르드는 더 아름다웠습니다. 단순히 비행기로 날아가서 렌탈바이크로 달리는 것과 비교하면 그랬습니다.


내 바이크로 투어를 가려면


ROK 스티커 / 국제번호판


내 바이크를 해외로 가져가려면 사람과 바이크를 위한 필요한 것은 ▲여권 ▲국제면허증 ▲이륜차등록증(영문) ▲국제번호판 ▲일시수출입신고서 등 5개 서류가 필요합니다. 부수적으로 ‘ROK’ 표식과 국내용 신고필증 사본이나 면허증도 지참하는 편이 좋습니다. 


낯선 이국땅을 달리며 일행과 소통하기 위한 통신장비(세나)와 내비게이션이 있으면 좋습니다. 다만, 좀 더 모험적인 여정을 시도한다면 지도책이나 구글맵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시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어려움을 만났을 때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얼마든지 돌파할 수 있다는 굳건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합니다.


아소산 화구의 칼데라 / 울란우데 몽골민속촌의 환영식


이제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고 우리 라이더들의 시선이 보다 먼 곳을 향해 새로운 도전을 하길 바랍니다.


글·사진/김종한(만화가·여행작가)

barami33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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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05호 / 2022.6.16~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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