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한의 한국기행

눈 내리는 일본 규슈를 찾아 달리다

이번에는 렌탈 바이크로 규슈를 가다


2024년은 왠지 모를 아쉬운 기분이 드는 한해였습니다.


실은 코로나19가 잦아드는 2023년 초 즈음에 내년에는 4번째 유라시아횡단 겸 파미르 고원을 달려볼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러시아를 지나서 유럽에 이르는 경로가 모두 막힌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 달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포기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던가 봅니다.


어쩌면 2024년 말에 규슈를 찾은 것은 그래서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규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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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증기가 가득한 나카다케 칼데라


내 바이크로 해외를 달릴 수 있는 ‘임시 반출’이 가능해졌다는 소식을 접한 건 2005년 말 즈음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임시 반출을 이용한 국가 간의 교통 왕래에 관한 규약에 가입(MOU)한 것이어서 이륜차도 거기에 포함됐다니 눈이 커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곧장 관련 자료와 절차를 확인해 가며 준비해서 이듬해 봄에 내 바이크를 가지고 해외투어에 나섰으니, 거기가 바로 일본 규슈였습니다.


돌이켜 보면 어느덧 20여 년이 지난 옛 추억이지만 지금도 그때의 기분이 생생하고 일본 땅 규슈를 달렸던 느낌이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전에도 몇 번인가 이미 항공편으로 일본을 다녀왔던 일이 있지만 내 바이크를 가져와서 달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요. 그 뒤로 규슈는 제가 해외투어로 가장 즐겨 찾는 곳이 됐습니다.


그동안 유라시아횡단을 세 번이나 하고 유럽 알프스나 노르웨이 피오르드, 스페인 안달루시아 같은 이름난 곳들을 달리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즐거움도 무척 컸지만……, 그런데도 규슈는 매해 달릴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이 있으니 희한한 노릇입니다. 어쩌면 ‘처음’ 내 바이크로 해외를 달렸던 경험이 크게 작용하는 게 아닐까 싶긴 합니다만. 하지만 이번에는 내 바이크가 아닌 렌탈바이크를 타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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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사키 버시스 250


인천공항에서 항공편을 이용해서 크리스마스를 앞둔 후쿠오카에 안착한 뒤 바이크 렌탈숍을 찾습니다. 20여 년간 규슈를 달리며(12월 초나 2월 포함) 4계절을 모두 달리긴 했지만, 12월 말에는 처음이라 내 바이크를 가져오기는 조금 어려움이 있습니다.


만약 내 바이크를 가지고 오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동하는 문제가 가장 걸림돌이 됩니다. 춥고 길이 얼어있으니까요. 렌탈바이크를 받아서 짐을 싣고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후쿠오카 시내를 벗어나는 것으로 투어가 시작됩니다.


지온노타키와 유후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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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보이브로스의 수제 햄버거


대략 30분쯤 달려서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서 우키하 들판을 가로지릅니다. 드넓은 쿠루메 들판의 끝자락에 위치한 우키하는 곧잘 투어 경로가 되면서 점심 먹기에 딱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우키하 미치노에키(휴게소)도 있고 수제햄버거집 ‘델리보이브로스’도 있어서 부근을 지날 때면 찾곤 합니다.


10년 좀 더 됐을까요? 햅버거집이 처음 개업했을 무렵에 우연히 찾았다가 맛이 좋고 주인장도 친절해서 단골이 됐습니다. 최근에는 유튜브에도 소개되면서 규슈를 달리러 온 한국인 라이더들도 곧잘 찾는다고 합니다.


베이컨치즈버거와 어니언링에 콜라를 곁들여서 점심을 맛나게 먹은 뒤에는 스카이팜로드를 달려서 저지밀크 목장에서 직영하는 소프트크림 맛집 ‘커플’을 찾는 것이 하나의 경로였으나, 이번에는 다른 경로를 달립니다.


03c0f179a3941.jpg자비로움과 은혜의 자은폭포
68f36b60d466a.jpg일본 100대 명폭 마나이폭포


커플의 주인이 바뀐 뒤에 맛이 평범해져서 그렇습니다. 대신에 온천마을 아마가세를 거쳐서 찾은 곳은 지온노타키 폭포입니다. 지온노타키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자비로운 은혜가 있다’는 이름의 ‘자은폭포’입니다. 큰 길가에 있는 데다 상당히 수량이 큰 폭포여서 찾아볼 만합니다.


잠시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다시 지방도 샛길로 빠집니다. 일본 국도는 차들이 많이 다니기도 하고 규정된 속도보다 느리게 줄지어 하염없이 달리는 경우가 많아서 그리 재미나진 않습니다. 그보다는 구불구불하고 작은 샛길이나 지방도를 따라 달리는 편이 경치도 좋고 달리기가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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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인의 상징 유후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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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다케를 달리는 라이더


유후인 부근에 자리한 자위대훈련장 옆을 지나는 길을 따라 드넓은 초지와 들판이 펼쳐지며 이색적인 풍경을 보여줍니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온천마을 가운데 하나인 유후인은 아기자기한 선물 가게와 카페들이 많아서 언제나 관광객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오늘은 마을에 들어가지 않고 지나쳐 곧장 유후다케전망대로 향합니다. 암수 봉우리가 뾰족하게 솟은 유후다케는 ‘유후인후지’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사실 일본 전국에 뾰족한 화산이 많은데 저마다 그 지역의 ‘후지’라는 별명으로 불리긴 합니다. 유후다케를 조망한 뒤 벳푸로 넘어갑니다.


야마나미하이웨이와 아소쿠주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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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인 명소 긴린코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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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주야마 산악구조견 히바리호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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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몬지바라전망대에서 본 벳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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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들의 명소 다이칸보


벳푸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어제와 다른 길을 달려서 유후인을 찾습니다. 마을 안에 있는 긴린코 호숫가 카페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홀짝이며 한가로운 시간을 즐깁니다. 실은 밤사이 비가 내렸고 아침이 돼서 잦아들긴 했는데 아직 비구름이 여전해서 그렇습니다.


오늘 달릴 야마나미하이웨이가 아소까지 이어지는데 대체로 고도가 높고 제법 가파른 고갯길이 있어서 살짝 걱정이 됩니다. 고지대에는 비가 아닌 눈이 내렸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기상 웹을 확인해 가며 기다리다가 적당한 시점에 야마나미하이웨이를 달려서 쿠주야마를 넘는데 마토노자카는 역시나 눈이 내려서 쌓였습니다. 특히 고갯길 북사면 그늘진 곳은 노면이 젖었거나 살얼음이 있는 구간도 있습니다. 아마 이른 아침에 제설작업을 하고 염화칼슘을 뿌린 듯한데 기온이 낮으니 그런가 봅니다. 고갯마루를 넘어서 아소에 이르는 길은 대체로 괜찮지만 구름이 짙어서 아소산이 보이지 않는 점이 아쉽습니다.


규슈 북부 라이더들의 ‘양만장’이랄 수 있는 세노모토휴게소를 거쳐서 다이칸보(대관봉)에 이르자 겨울철임에도 관광객이 많이 보입니다. 유후인 긴린코 호수도 그랬지만 다이칸보 역시 한국말이 많이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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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대분화구 전망대 다이칸보


점심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기온이 가장 높아지는 오후 2시 즈음에 아소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아소산 정상까지 오르는 아소파노라마라인은 그늘진 곳이 좀 젖은 것 말고는 대체로 괜찮습니다. 게다가 나카다케 칼데라(분화구)에 이르는 유료도로도 열려 있습니다. 보통 12월 말까지 개방하다가 1월 한 달간 폐쇄하는 걸 알고 있지만, 기상이 나쁘면 수시로 폐쇄하기도 하니까요. 오랜만에 칼데라를 들여다볼 수 있으니 운이 좋습니다.


일본 건국 신화의고장 미야자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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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모리의 센본자쿠라 고갯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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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카야 아지토의 모듬꼬치


미나미아소를 거쳐서 다카모리의 센본자쿠라 고갯길을 넘습니다. 봄에 천그루 벚나무들이 꽃을 피울 무렵에만 마을주민들이 관리비 명목의 통행세를 받는 길입니다.


일본 건국 신화가 전하는 다카치호협곡에 들러 주상절리와 마나이 폭포를 구경하며 오늘 묵을 숙소를 찾아봅니다. 2006년에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묵었던 호텔에 문의했지만, 방이 모자라네요. 일행과 함께여서 방 4개가 필요하지만 2개만 있다고 하니 난감합니다.


이번 투어는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달리다가 오후쯤 적당한 곳을 찾는 식인데, 겨울철이라서 여유 있을 거라고 방심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어둑해진 길을 더 달려서 바닷가 항구도시 노베오카로 향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일몰이 30분쯤 빠릅니다. 다카치호에서 숙소를 잡으려고 내심 정하고 있어서 괜찮을 걸로 여긴 예상이 빗나간 셈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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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한 모터사이클 투어 전문가(만화가/여행작가)

barami337@naver.com

https://band.us/@biketo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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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68호 2025.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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