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한의 한국기행_‘역사’를 알면 더 ‘재미있는’ 경북 내륙 길

2021-10-20

단종애사가 전해지는 ‘고치령’과 보부상과 마꾼들이 넘나들던 ‘마구령’

 

충북 단양의 ‘의풍’은 예부터 전해지는 십승지 중에 한 곳으로 주변 산세가 높고 골짜기가 깊어서 피란하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삿갓 일가가 반역죄로 집안이 풍비박산된 뒤 여기에 숨어 산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겁니다. 태백산에서 흘러온 마포천과 소백산에서 흘러온 마락천 물길이 합쳐져서 김삿갓계곡을 지나 남한강으로 흐릅니다. 물길을 따라 곧잘 사람 다니는 길이 만들어지곤 합니다.마포천과 마락천이 만나는 의풍 분교 앞 삼거리는 충청도 단양, 강원도 영월, 경상도 영주로 나뉘는 갈림길이기도 합니다.


단종애사가 전해지는, 고치령



고치령을 넘는 바이크


충북 단양의 의풍 삼거리 옆 의풍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바로 곁에서 마포천과 마락천이 만나 어울리느라 자글자글 물소리가 시원합니다. 삼거리에서 마구령을 넘을지, 고치령을 넘을지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을 동안 생각하다가 시동을 걸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고치령에 있는 사천계곡의 이끼


의풍리 마락천 모습


마락천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고치령 길(영단로)에 들어서자 곧 ’경상북도 영주시‘임을 알리는 간판이 보입니다. 대체로 도계가 높은 산자락이나 강줄기에서 나뉘기 마련입니다만, 마락리 마을은 고치령을 넘기 전 북쪽에 위치해 있음에도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에 포함돼 있습니다.


고치령과 함께 단양과 영주를 잇는 마구령 북쪽에 위치한 남대리 또한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에 포함돼 있는 걸 보면 뭔가 사정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행정구역이 지역 특색이나 전통에도 영향을 받겠지만 사람들 편의가 크게 작용하기 마련입니다.


추측하건대 고치령과 마구령 주변 사람들의 생활상이나 행정적 편의가 고개 너머 영주 쪽에 기대어 있었던 게 아닐지? 조선 시대에 충청도 단양 사람들이 소백산 너머 경상도 순흥과 부석면 장터를 많이 찾았다고 하는데, 특히 영춘면 지역 주민들이 소백산을 많이 넘어 다니면서 고치령과 마구령 고갯길이 중요한 교통로가 됐다고 합니다.


경상도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 고치령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마락리를 지나면서 가파른 산비탈 굴곡을 따라 좁은 길이 구불구불 이어집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아스팔트 포장이 진행돼서 길이 좁아도 험하다는 느낌은 한결 덜합니다. 몇 년간 의풍리와 마락리를 지나는 비포장길이 아스팔트 포장길로 바뀌는 과정을 보며 ’옛길 정취‘가 없어지는 아쉬움도 있지만 넘어 다니기에는 훨씬 편리해 졌습니다.


조선 시대에 고치령은 소백산 남북의 장터를 오가는 보부상들이 많이 넘어 다니는 한편 경상도 지역 세곡을 한양으로 운반하는 교통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세곡을 운반할 때 동원되는 말이 가파른 산길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던가 봅니다. 조금 전 지난 ’마락리‘라는 마을 이름이 거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고갯마루에 자그맣게 산신각이 서 있습니다. 경북 영주 순흥과 충북 단양 영춘을 넘나들던 이들이 고개를 넘을 때 사고 없이 무탈하기를 빌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산신각에 모시는 산신(신령)이 다름 아닌 단종과 금성대군이라고 합니다.


세조 반정으로 왕위를 빼앗긴 단종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고, 이에 불복해서 복위를 도모하던 금성대군은 소백산 남쪽 순흥에 유배됐습니다. 이후 금성대군은 고치령을 넘어서 단종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다시 한 번 복위 운동을 꾀하다가 발각된 금성대군과 단종 모두 죽임을 당한 뒤……, 뒷날에 사람들이 단종을 태백산 신령으로, 금성대군을 소백산 신령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산신각을 잠시 둘러본 뒤 고갯마루를 넘어서 단산면으로 내려갑니다. 고도가 낮아지는 데 따라서 식생이 달라지고 좌석리 마을에 가까워지면 길 양편에 곧게 자라는 적송 숲이 보기 좋습니다. 나란히 흐르는 사천 물이 깨끗해서 잠시 발 담그고 쉬다가 단산면을 지나 봉화읍으로 향합니다.


보부상과 마꾼들이 넘나들던, 마구령

 

마구령 낙엽송길, 아직은 푸르다


경북 봉화 닭실마을을 들러서 청암정을 둘러본 뒤 내성천과 나란히 이어지는 915번 지방도를 따라 북상합니다.


물야면에서 죄회전해서 931번 지방도(소백로)를 따라 가다보면 오른편에 부석사 이정표가 보입니다. 부석사는 676년 신라 문무왕의 명을 받은 의상이 봉황산 중턱에 터를 잡아서 창건한 화엄종 사찰입니다. 이 후 화엄의 가르침을 설파한 의상이 부석존자로 불리며 화엄종의 시초가 되었으므로 화엄종을 부석종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고려 공민왕 시절에 많은 건물을 새로 지었는데 국보로 지정된 무량수전이 유명합니다. 


부석사 안양루와 무량수전 모습


부석사 창건 설화가 전해지는 부석


무량수전 옆에는 창건 설화에 얽힌 부석(뜬돌)이 있습니다. 2018년에는 우리나라 산지승원 7개 사찰에 포함돼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습니다. 유명 사찰들이 으레 그렇듯이 부석사 일주문 앞에도 관광객을 위한 상가와 식당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곳을 찾아서 점심을 한 뒤 마구령으로 향합니다.


부석면과 영춘면 사이를 잇는 935번 지방도가 마구령 고갯길입니다. 과거 장사꾼들이 말에 짐을 바리바리 싣고 충청-강원-경상도를 넘나들던 고갯길이라서 마구령이라고 부릅니다. 현지 사람들은 ‘매기재’라고도 하는데 워낙 가파른 고갯길이라 넘기가 ‘논매기만큼 힘들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마구령을 달리는 바이크


태백산과 소백산을 나누는 경계선 역할을 하므로 ‘양백지간’으로도 부르는 마구령은 해발고도는 820m입니다. 해발고도가 770m인 고치령보다 높고 주변 산세가 더 거칠고 험합니다. 부석면에서 고갯마루에 이르는 길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포장이 번갈아 나타나고 노면이 낡아서 패인 곳도 많습니다. 게다가 길 밖은 뚝 떨어지는 벼랑이어서 방심하면 안 되는 위험한 구간도 있습니다.


고갯마루를 넘어서 남대리로 내려가는 길은 그나마 경사가 덜합니다. 구비가 비교적 완만하고 낙엽송이 우거진 아름다운 숲길에 잠시 멈춥니다. 북사면인 데다 낙엽송 숲이 워낙 우거져서 햇빛이 많이 들지 않습니다. 공기가 차갑지만 피톤치드 덕분인지 청량한 기운이 가득합니다.


마구령 남쪽 부석면이 아직 초록빛이 풍성한 여름 느낌이라면 북쪽 남대리는 벌써 낙엽송 이파리에 누런빛이 보입니다. 기온이 낮으니 단풍도 일찍 들고 겨울도 빨리 찾아와서 오래도록 머뭅니다.


언젠가 꽃피는 4월에 마구령을 넘은 적이 있습니다. 부석면에서 영춘면 방향으로 고갯마루를 넘자마자 노면이 온통 얼음으로 덮여 있어서 당황한 기억이 납니다. 햇빛이 들지 않는 북사면에 내린 눈이 얼어붙어 빙판길이 돼 있으니 돌아서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사정으로 마구령 터널 공사가 한창인데 2023년에 완료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우거진 숲길을 빠져나와 마포천에 걸린 다리(남대교)를 건너면 주막거리 남대리입니다. 조선 시대에 마구령을 넘는 보부상이나 짐꾼들이 지친 다리를 뻗고 쉬었던 마을입니다. 남대리 역시 마락리처럼 경북 영주시에 포함됩니다.


행인들이 쉬어가던 주막거리가 있던 남대리에도 단종과 얽힌 이야기가 전합니다. 계유정난을 일으킨 세조가 임금 자리에 오른 뒤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봉해서 천 리 밖으로 유배 보냈는데……, 영월에 도착해서도 천 리가 안 됐다고 합니다. 


그러자 호송 관리들이 천 리를 채우기 위해서 마구령 아래까지 와서 하룻밤을 보내게 됐는데, 지친 단종을 불쌍히 여긴 주민들이 돌담을 쌓고 초막을 지어서 밤이슬을 피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 뒤로 ‘남쪽 대궐이 있던 마을’이라는 뜻으로 ‘남대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부석사식당 간고등어


마구령을 넘기 전에 점심을 한 터라 주막거리에서 막걸리 한잔하며 옛일을 되새겨 보고 싶은 마음을 눌러 참습니다.


935번 지방도와 마포천 물길을 따라 달리니 의풍휴게소가 있는 삼거리를 다시 만납니다. 계속해서 935번 지방도를 따라 마대산 베틀재를 넘으면 남한강을 끼고 있는 영춘면에 이릅니다.

 


글·사진/김종한(만화가·여행작가)

barami337@naver.com

https://band.us/@biketouring

 

고치령 경북 영주시 단산면 마락리

마구령 경북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의풍휴게소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영부로 1480

봉화닭실마을 054-674-0963

경북 봉화군 봉화읍 충재길 44

청암정 경북 봉화군 봉화읍 충재길 44

부석사식당 054-633-3317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17

계곡속황토민박식당054-638-9578

경북 영주시 부석면 영부로 1021

 

※ 모든 사진은 코로나 상황 이전에 촬영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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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386호 / 2021.9.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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