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한의 한국기행_단풍치마 두른 덕유산과 유유자적 수승대

2021-11-09

원학고가를 찾은 라이더


무주읍을 출발해서 덕유산 ‘신풍령’을 넘는 경로는 나제통문을 거치는 국도와 ‘적상산’을 거치는 지방도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사계절 풍광이 좋은 곳이지만, 봄에는 벚꽃 가로수가 보기 좋은 나제통문 쪽을, 가을에는 단풍이 든 ‘적상산’을 놓칠 수 없습니다.


적상산 적산호


상곡천 물길을 따라 727번 지방도를 달리다가 초리 부근 산성교를 건넌 뒤 ‘적상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적상산’은 단풍이 들면 온 산이 붉은 치마를 두른 듯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적상산 고갯길


해발고도 1,034m에 이르는 정상부 부근까지 고갯길이 구불구불 가파르게 이어집니다. 덕유산 국립공원에 포함되고 조선시대 왕조실록과 역사서를 보관하던 사고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대부분 역사서가 불타 사라지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전주사고의 실록과 역사서 등을 새로 인쇄해서 전국 각지에 보관했는데, 1614년에 세운 적상산 사고도 그 중 한 곳입니다.


무주구천동 산나물맛집 산채비빔밥


안타까운 사실은 그렇게 몇 백 년을 보관한 사서들이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옮겼다가 행방을 잃었다는 겁니다. 1992년에는 무주양수발전소 상부댐 적상호 건설로 사고지를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이전해서 지금에 이른다고 합니다. ‘적상산’에서 내려와 727번, 49번 지방도를 따라 치마재를 넘은 뒤 무주구천동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합니다.


덕유산 백련사 부근에서 시작된 구천동계곡 물길이 ‘신풍령’ 부근에서 발원한 원당천과 합쳐져 나제통문에 이르기까지 ‘구천동33경’이 이어집니다. 계곡을 따라 경치 좋은 곳들이 널려있어서 그저 37번 국도를 따라 달리기만 해도 눈이 즐거운 경로입니다.


빼재 고갯마루


‘신풍령’은 전북 무주군과 경남 거창군 경계를 이루는 고개입니다. 과거 ‘빼재’로 불리던 고갯길이 아스팔트 포장이 된 뒤 ‘신풍령’이라는 휴게소가 들어서면서 고갯길 이름으로 굳어진 경우입니다. ‘신풍령’이라는 이름은 ‘추풍령’에서 따와서 지었다고도 합니다. 한편 ‘빼재’는 ‘뼈재’가 경상도식 발음으로 굳어진 거라고 합니다.


빼재에서 본 거창 방향


삼국시대부터 덕유산 일대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대립하며 서로 싸웠던 전략요충지였다고 합니다. 잦은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이 곳에 뼈를 묻었기에 ‘뼈재’가 되었다니 서늘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빼재’가 ‘신풍령’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이름입니다. 지금은 고개 아래를 지나는 ‘빼재터널’이 개통해서 통행이 한결 편리해 졌습니다.


수승대를 찾은 라이더


‘빼재’를 넘어 거창에 들어섭니다. 마치 서킷을 떠올리게 하는 구불구불한 와인딩을 달리다가 신기교차로에서 1001번 지방도로 갈아탑니다. 덕유산 남쪽 송계사 계곡을 지난 소정천 물길이 위천과 합쳐지는 곳에 ‘수승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1001번 지방도 역시 ‘수승대’ 부근에서 37번 지방도로 바뀝니다. ‘수승대’는 빼어난 경치를 가진 명승이라는 뜻입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던 곳인데, 백제 사신이 신라로 떠날 때 환송회를 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수승대/수승대 거북바위


신라에 보낸 사신이 돌아오지 못할 것을 걱정하며 보낸 곳이어서 근심할 ‘수(愁)’ 보낼 ‘송(送)’을 쓴 ‘수송대’라고 불렀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퇴계 이황이 유람차 들렀다가 이름 유래를 듣고 어울리지 않는다며 빼어난 명승이라는 뜻이면서 발음이 같은 ‘수승대’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수승대 거북바위


‘위천’ 가운데 우뚝 선 거북바위에는 조선시대 학자 요수 신권이 퇴계의 유지를 받아서 음각한 ‘수승대’ 글씨가 있습니다. 그 밖에도 바위 삼면에 조선시대 시인묵객들의 한시와 오언절구를 비롯해서 이름 석자 등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어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황산리에서 본 남덕유산 연봉


황산리 들판의 가을빛


‘위천’에 걸린 ‘귀연교’와 소나무 사이에 자리잡은 ‘요수정’도 둘러볼 만합니다. 부근 황산리는 조선시대 학자 요수 신권이 벼슬하기를 포기한 채 은거하며 ‘구연재’를 세워 후학을 가르친 뒤로 거창 신씨 집성촌이 되었습니다. 마을 전체가 전통 한옥들이 빼곡하고 민박을 하는 곳도 많습니다.


마침 날도 기울어서 황산리 원학고가(신씨고가)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합니다. 고가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37번 지방도, 37번 국도, 3번 국도, 24번 국도를 따라 함양으로 향합니다.





글·사진/김종한(만화가·여행작가)

barami337@naver.com

https://band.us/@biketouring


적상산사고지 - 전북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117-5

산나물맛집 - 063-322-0858 전북 무주군 설천면 구천동1로 87

빼재/신풍령 - 경남 거창군 고제면 개명리

수승대 - 055-940-8530 경남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790

원학고가(거창황산리신씨고가) - 055-940-3185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1길 109-5

황산정가든 - 055-943-9662 경남 거창군 위천면 송계로 355-12

 

※ 모든 사진은 코로나 상황 이전에 촬영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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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388호 / 2021.10.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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