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한의 세계를 달리다_운명의 노래, 파두가 울려 퍼지는 ‘포르투갈’

2022-05-25

이베리아 반도 서편 끝자락에서 언제나 대서양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들이 포르투갈 사람들입니다. 일찍이 대항해 시대를 열고 누구보다 먼저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아메리카의 브라질을 비롯해서 아프리카와 동아시아까지 많은 나라와 지역을 식민지로 삼아 해양강국으로 성장했으나, 식민지를 차례로 잃으면서 위세도 함께 잃었습니다.


가장 최근(1990년) 중국에 포르투갈령 마카오를 돌려주는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대항해 시대에 포르투갈 남자들은 세계로 떠났다가 바다에서 죽거나 현지에 눌러 앉아서 돌아오지 않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포르투갈 여자들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나 남편을 그리며 슬픔이 가득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그것이 ‘운명’ 또는 ‘숙명’이라는 뜻을 가진 노래 ‘파두(Fado)’입니다.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떠나 포르투갈을 향해 남하합니다.


처음에는 브라가를 거쳐서 포르토 방향으로 갈까 했지만, 포르투갈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는 형편인 것을 감안해서 생각을 바꿉니다.


포르투갈 국경의 카페에서


방치된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경사무소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경을 이루는 미뉴강 다리를 건넙니다. 다리를 건넌 뒤 처음 만나는 건 과거에 국경선 업무와 검문을 담당했던 낡은 건물입니다. 온통 낙서가 새겨지고 낡아서 방치된 건물 특유의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버려진 국경사무소 건물을 지나 포르투갈에 들어섭니다. 완만하게 산허리를 돌아서 오르는 비탈길 위에 작은 카페가 보입니다. 카페 앞에 바이크를 세우자, 작은 야외 테이블에 에스프레소 한잔을 놓고 지팡이로 턱을 괴고 있던 아저씨가 말을 걸어옵니다.


“하우알유, 아임파인땡스, 앤유?” 세 마디를 이어서 중얼거리듯 말씀하시니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저 “고맙습니다.”라고 하고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빵을 사서 나오니 아저씨가 여전히 뭔가 중얼거리십니다.


페네다 제레스 국립공원


페네다 제레스 국립공원 길


제레스 자연공원의 오솔길


포르투갈 북부 스페인과 국경을 이루는 페네다 제레스 국립공원은 그동안 달렸던 스페인은 물론 다른 유럽 지역에서 본 적이 없는 특이한 경관을 자랑합니다.


알프스 등 유럽을 대표하는 산악지대가 석회암이 대부분인 것과 비교하면 페네다 제레스 국립공원 산악지대는 둥그런 화강암(?)류 바위들이 능선을 가득 뒤덮고 있어서 분위기가 무척 다르고 색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멀리서 보면 카르스트 지형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카르스트 특유의 거친 석회암이 아닌 표면이 말끔한 바위들입니다. 


페네다 제레스 국립공원의 독특한 경관


크기도 집채만 한 것부터 고양이 집 정도로 작은 것까지 다양합니다. 이런 지형은 도대체 왜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요? 바이크 여행을 다니다 보면 우리나라에 없는 특이한 경관을 만나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학창시절 지리 시간을 소홀히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눈이 즐거운 협곡과 능선을 오르락내리락 달리다가 다시 한 번 스페인에 들어갔다가 포르투갈로 돌아옵니다. 스페인 로비오스(Lobios)에서 포르투갈 제레스 호수공원까지 이어지는 경로에서 멋진 가을 풍경을 만납니다.


페네다 제레스의 염소떼


고갯마루 버려진 국경사무소를 지나 포르투갈 쪽으로 뻗은 내리막 오솔길을 달립니다. 단풍이 물든 울창한 숲길을 따라 달리는 기분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포르투갈은 한국에서 가장 먼 유럽 땅이고 말 그대로 지구 반대편입니다. 왜 내가 이 시간에 여길 달리고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들뜹니다.


농가 호텔 퀸타다페네라& 파라도르


퀸타다페네라의 아침식사


제레스 호수공원 주변 숙소를 검색해서 예약한 뒤 찾아갔으나 간판이 보이지 않습니다. 숙박예약 사이트의 지도와 주변 지형을 대조해 가며 겨우 찾은 건물에는 작은 명판조차 없고 인기척도 없습니다. 난감하던 차에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좋은 곳이 있다며 앞장섭니다.


‘퀸타다페네라’는 농장에 딸린 저택을 호텔로 꾸민 곳입니다. 응접실 벽난로에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고풍스런 장식이 된 침실이 훌륭합니다. 하룻밤 묵은 뒤, 아침식사는 안주인이 직접 차려줍니다. 가정식 느낌이 드는 음식들이 소박하면서 정갈합니다. 


퀸타다피네타 농가호텔


오믈렛을 기본으로 빵에 햄을 얹어서 잼을 발라서 먹고 과일과 주스를 곁들입니다. 식사 뒤에는 안주인이 농장 구경을 시켜주는데……, 도토리를 먹여서 키우는 돼지, 알을 품은 암탉, 소, 말, 개, 고양이가 돌아다니고 각종 과일나무가 즐비합니다. 조금 전 아침식사를 만든 식자재가 모두 농장에서 나온 것들인가 봅니다.


라메고 구도심의 대성당


빌라헤알 부근 포도밭과 와인 양조장/빌라헤알의 코르고강 협곡의 다리


알바오 자연공원을 넘은 뒤 빌라헤알과 라메고 일대에 펼쳐지는 포도밭 사이를 달립니다. 산이든 들판이든 한나절 동안 달려도 포도밭이 계속 이어지고 곳곳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포도나무 가지치기를 한 뒤 불태우는 듯한데, 연기가 여기저기서 솟으니 흡사 전쟁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파라도르데카사다인수아의 시계탑


포르투갈에서 이틀째, ‘사탕’ 부근의 ‘파라도르에서 숙박합니다. 파라도르는 스페인 국영 관광호텔이지만 포르투갈에도 두 곳이 있습니다. 몇 백년된 고성을 호텔로 개조한 곳이라 어젯밤 묵은 농가호텔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왕족 또는 귀족이 살던 고성답게 볼거리도 많고 매우 호화롭습니다. 시계탑 내부에 들어가서 살펴볼 수 있도록 한 점이 특히 좋네요.


세하다에스트렐라


세하다에스트렐라


파라도르데카사인수아에서 본 일몰


파라도르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포르투갈 본토 최고봉인 세하다에스트렐라를 넘습니다.


바이크로 포르투갈을 달리면서 만나는 가장 멋진 고갯길입니다. 구아다에서 만테이가스로 넘는 끝없는 와인딩도 좋지만 또 하나의 고갯마루 피오르노스(Piornos)를 거쳐 코빌랑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최고입니다. 


세하다에스트렐라의 만테이가스 마을


고갯마루 부근 전망대에 피오르노스가 빙하 지형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어쩐지 피오르노스 고갯길을 오르며 노르웨이 피오르 지형같다고 생각하긴 했습니다만, 그게 진짜였던 겁니다. 이틀 전 페네다 제레스 국립공원을 지나며 가졌던 궁금증이 풀리는 순간입니다. 여기가 몇 만년 전에는 빙하에 뒤덮인 동토였다니, 세하다에스트렐라의 풍경을 보면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코빌랑을 지나고 카스텔루브랑쿠를 거쳐 스페인으로 넘어가며 포르투갈의 작가이며 시인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했다는 말을 떠올립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일찍이 모든 세상을 탐험해서 발견하고 정복한 터라 할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그저 바다를 바라보며 시를 쓰거나 축구를 하는 거다.”


이웃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사람들이 라틴 특유의 유쾌하고 발랄한 기질을 보이는 것과 달리 포르투갈 사람들이 조용하고 얌전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해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티구스강에 걸린 다리


티구스강에 걸린 다리를 건너서 스페인에 들어서면서 포르투갈을 다시 찾을 것이라 다짐합니다.


파두의 나라 포르투갈


글·사진/김종한(만화가·여행작가)

barami33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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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륜차신문 403호 / 2022.5.16~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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