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꿍’(제자리 꿍, 바이크 전도의 조어)의 기억
바이크를 타고 있거나 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경험해 본 일이라 생각한다. 낮은 배기량의 작은 바이크를 넘어뜨렸을 때는 혼자 세울 수 있지만 무게가 큰 바이크를 넘어뜨렸을 때의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여성 라이더보다 힘이 좋은 남자는 쉽게, 스킬을 이용해 세울 수 있지만 여성 라이더에게 ‘넘어진 바이크를 혼자 세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방법을 알아도 내 몸이 마음과 달리 잘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CBR500R로 제꿍한 모습
나의 기억
첫 매뉴얼바이크 혼다 CBR250R. 경기도 시흥에서 파주 헤이리 마을까지 약 58km 구간의 첫 주행이 기억난다. 일산대교를 타고 달리는 중 내비게이션때문에 잠시 갓길 정차를 시도했다. 오른쪽으로 경사가 있었고 손쓸 사이도 없이 그 방향대로 넘어가버렸다. 다행인 건 교각 가드에 받혀 완전한 ‘제꿍’은 아니었지만, 경사면에 쓰러진 바이크의 어중간함은 스스로 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차들이 쌩쌩 지나는 대교 위에서 마네킹처럼 서 있는데 트럭 한 대가 갓길에 정차해 도움 주면서 하는 말. “세우지도 못하는 오토바이를 왜 타고 다닙니까”라는 뼈 때리는 말을 들은 이후, 여러 영상을 검색하고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내 바이크를 스스로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두 번째 ‘제꿍’은 논산에서 복귀 중, 길을 잘못 들어 논밭이 있는 임도로 들어갔는데, 무리하게 돌아 나오며 밭고랑에 처박히듯 넘어갔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곳, 적막하기만 했던 곳에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며 무슨 생각이었는지 바이크를 일으켰고 혼자 세우기를 성공했다. 누군가 그랬다, 위기가 닥치면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다고.
‘그 정도쯤이야’라고 말하는 라이더도 있겠지만 여성 라이더의 완력도 생각해야 된다. 바이크의 무게와 라이더의 몸무게는 천차만별이니까.
‘ㅁ’의 기억
별명 '피오나'로 불리는 'ㅁ'
내 경험을 쓰다 보니 위마코리아에서 활동을 하는 여성라이더의 ‘제꿍’ 반응도 궁금했다. 물어보니 저마다 에피소드를 갖고 있었다. 가장 많은 반응이 ‘나도 모르게 발휘되는 초인적인 힘!’이었고(웃음), ‘제꿍’ 시 여성 라이더라서 주변의 도움을 받기 쉬웠다는 것이다.
처음 바이크를 탈 때 혼자 배운 것이 아닌 이상 파트너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살짝 기울어진 길 위에서 한쪽 발 버티기를 하다가 방심한 순간 넘어가는 경우, ‘순간의 선택’을 해야 한다. 몸을 희생하던지, 바이크를 버리고 몸을 빼내던지. 내 주변의 여성 라이더 대부분은 ‘바이크를 버린다’였다.
여성 라이더 중 현재 BMW R 1250 GS 유저인 ‘ㅁ’의 경험이 인상 깊었다. 양만장(경기도 양평 만남의 광장)으로 가는 길, 오르막에서 신호대기 중 시동이 꺼지면서 왼편으로 넘어지는 순간에 바이크를 버려야겠다고 결심, 다행히 몸은 안전하게 착지했다. 함께 신호 대기하던 할리 라이더 두 분이 바이크 세우는 것을 도와주고, 에스코트 해줘 양만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 후 ‘내 바이크는 스스로 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주차장에서 시동을 켜지 않은 채 이동하는 연습과, 바이크 중심을 잡고 방향 돌리기 연습을 하며 겨울을 보냈다고 한다.
마치며
대부분 ‘제꿍’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이 경사진 내리막 길, 유턴하는 곳, 지하 주차장 등이었고, 신호에 서 있다 어이없게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동행한 라이더들이 쓰러지는 바이크를 본 순간 내 것처럼 뛰어가 도움을 주고받는 모습에 감동하면서 ‘우리는 라이더’라는 것을 다시 또 실감한다.
‘제꿍’, 창피해 하지 맙시다! 그럴 수 있다고요.
위마(WIMA, 국제여성모터사이클협회)
위마코리아는 WIMA(Women’s International Motorcycle Association)의 한국지부다. 윤수진 씨는 위마코리아에 가입한지 올해로 11년이 됐다. 그녀는 평상시에 학교에서 교과 실무 관련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퇴근 후나 휴일에는 어김없이 라이더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윤수진 씨는 여성 비율이 절대적으로 낮은 국내의 이륜차 문화 속에서 당당한 여성라이더 로서의 삶을 한국이륜차신문에서 계속 들려줄 계획이다.
글/윤수진(위마코리아 회원)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윤수진 #위마코리아 #여성라이더
한국이륜차신문 373호 / 2021.2.16~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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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꿍’(제자리 꿍, 바이크 전도의 조어)의 기억
바이크를 타고 있거나 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경험해 본 일이라 생각한다. 낮은 배기량의 작은 바이크를 넘어뜨렸을 때는 혼자 세울 수 있지만 무게가 큰 바이크를 넘어뜨렸을 때의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여성 라이더보다 힘이 좋은 남자는 쉽게, 스킬을 이용해 세울 수 있지만 여성 라이더에게 ‘넘어진 바이크를 혼자 세우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방법을 알아도 내 몸이 마음과 달리 잘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CBR500R로 제꿍한 모습
나의 기억
첫 매뉴얼바이크 혼다 CBR250R. 경기도 시흥에서 파주 헤이리 마을까지 약 58km 구간의 첫 주행이 기억난다. 일산대교를 타고 달리는 중 내비게이션때문에 잠시 갓길 정차를 시도했다. 오른쪽으로 경사가 있었고 손쓸 사이도 없이 그 방향대로 넘어가버렸다. 다행인 건 교각 가드에 받혀 완전한 ‘제꿍’은 아니었지만, 경사면에 쓰러진 바이크의 어중간함은 스스로 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
차들이 쌩쌩 지나는 대교 위에서 마네킹처럼 서 있는데 트럭 한 대가 갓길에 정차해 도움 주면서 하는 말. “세우지도 못하는 오토바이를 왜 타고 다닙니까”라는 뼈 때리는 말을 들은 이후, 여러 영상을 검색하고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내 바이크를 스스로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두 번째 ‘제꿍’은 논산에서 복귀 중, 길을 잘못 들어 논밭이 있는 임도로 들어갔는데, 무리하게 돌아 나오며 밭고랑에 처박히듯 넘어갔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곳, 적막하기만 했던 곳에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며 무슨 생각이었는지 바이크를 일으켰고 혼자 세우기를 성공했다. 누군가 그랬다, 위기가 닥치면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다고.
‘그 정도쯤이야’라고 말하는 라이더도 있겠지만 여성 라이더의 완력도 생각해야 된다. 바이크의 무게와 라이더의 몸무게는 천차만별이니까.
‘ㅁ’의 기억
별명 '피오나'로 불리는 'ㅁ'
내 경험을 쓰다 보니 위마코리아에서 활동을 하는 여성라이더의 ‘제꿍’ 반응도 궁금했다. 물어보니 저마다 에피소드를 갖고 있었다. 가장 많은 반응이 ‘나도 모르게 발휘되는 초인적인 힘!’이었고(웃음), ‘제꿍’ 시 여성 라이더라서 주변의 도움을 받기 쉬웠다는 것이다.
처음 바이크를 탈 때 혼자 배운 것이 아닌 이상 파트너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살짝 기울어진 길 위에서 한쪽 발 버티기를 하다가 방심한 순간 넘어가는 경우, ‘순간의 선택’을 해야 한다. 몸을 희생하던지, 바이크를 버리고 몸을 빼내던지. 내 주변의 여성 라이더 대부분은 ‘바이크를 버린다’였다.
여성 라이더 중 현재 BMW R 1250 GS 유저인 ‘ㅁ’의 경험이 인상 깊었다. 양만장(경기도 양평 만남의 광장)으로 가는 길, 오르막에서 신호대기 중 시동이 꺼지면서 왼편으로 넘어지는 순간에 바이크를 버려야겠다고 결심, 다행히 몸은 안전하게 착지했다. 함께 신호 대기하던 할리 라이더 두 분이 바이크 세우는 것을 도와주고, 에스코트 해줘 양만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 후 ‘내 바이크는 스스로 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주차장에서 시동을 켜지 않은 채 이동하는 연습과, 바이크 중심을 잡고 방향 돌리기 연습을 하며 겨울을 보냈다고 한다.
마치며
대부분 ‘제꿍’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이 경사진 내리막 길, 유턴하는 곳, 지하 주차장 등이었고, 신호에 서 있다 어이없게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동행한 라이더들이 쓰러지는 바이크를 본 순간 내 것처럼 뛰어가 도움을 주고받는 모습에 감동하면서 ‘우리는 라이더’라는 것을 다시 또 실감한다.
‘제꿍’, 창피해 하지 맙시다! 그럴 수 있다고요.
위마(WIMA, 국제여성모터사이클협회)
위마코리아는 WIMA(Women’s International Motorcycle Association)의 한국지부다. 윤수진 씨는 위마코리아에 가입한지 올해로 11년이 됐다. 그녀는 평상시에 학교에서 교과 실무 관련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퇴근 후나 휴일에는 어김없이 라이더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윤수진 씨는 여성 비율이 절대적으로 낮은 국내의 이륜차 문화 속에서 당당한 여성라이더 로서의 삶을 한국이륜차신문에서 계속 들려줄 계획이다.
글/윤수진(위마코리아 회원)
#한국이륜차신문 #모터사이클뉴스 #윤수진 #위마코리아 #여성라이더
한국이륜차신문 373호 / 2021.2.16~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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